우리는 차별에 찬성합니다 - 괴물이 된 이십대의 자화상 지금+여기 3
오찬호 지음 / 개마고원 / 201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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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읽기도 전에 다소 거부감이 있었다. 한국의 이십대를 괴물로 명명한 제목도 그렇거니와, 단연코 범죄자의 이미지를 풍기는 표지 때문이었다. 저 무시무시한 표지는 이 책에 대해 상당한 선입견을 갖게 했다. 표지에 실린 청년의 이미지, 떡 벌어진 어깨의 건장한 청년은 정면을 응시하고 있으나, 얼굴이 검게 처리되어 있어 표정을 읽을 수가 없다. 게다가 검은 얼굴은 후드 티를 입고 있어 마치 반지의 제왕에 나오는 죽음의 사자 같은 인상을 준다누군가와 한판 뜨려고단단히 벼르고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고, 심지어 테러리스트처럼 보이기도 한다. 표지 그림은 현재 한국의 이십대가 반사회적 존재라는 메시지를 분명히 전달한다. 그렇게 단정해도 되는 것일까. 너무 심하다 싶었다

 

어쨌든, 이러저러한 불편한 마음을 안고 책을 꼼꼼히 읽어보았다. 나의 결론은 걱정한 것에 비해서 책의 내용이 한국 사회에 대해 상당한 통찰력을 담고 있다는 것. 이 책을 읽으면서, 수년 전 학기말 성적 확인 기간에 강사로서 겪었던 에피소드가 기억났다. B플러스를 받은 학생으로부터 메일로 성적에 관해 항의를 받았다. 불만은 자기 성적이 아니라 자신과 같은 점수를 받은 다른 학생에 대한 것이었다. 수업 참여도 등에 있어서 자신이 노력한 것에 훨씬 못 미치는 학생이 자신과 같은 점수를 받은 것은 부당하다는 것. 이후 한동안 대학 강단에 서지 않았기에 잊고 있긴 했지만, 그때 상당히 놀랐던 기억이 있다. 이 책을 통해 학생들이 왜 그런 마음을 갖게 되는지 비로소 그들의 입장에서 헤아려볼 수 있었다.  

 

이 책은 현재 이십대의 정신세계를 지배하고 있는 신념은 능력주의이며, 무한경쟁 트랙에서 무조건 앞을 바라보고 내달리지 않으면 밖으로 밀려날 것이라는 불안이 이들로 하여금 더욱 더 자기 계발에 매달리게 한다고 말한다. 이러한 자기 계발 강박증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이십대는 거의 없으며, 이러한 삶의 조건이 이 세대의 정의 감각을 바꾸어 놓았다는 것이다. 이십대에게 정의란 노력한 만큼 보상이 주어지는 시스템이며, 외모, 수능 성적, 대학 간판 등 무엇이 되었건 노력한 바에 따라 노동 시장 진입, 노동 조건 및 보상의 차등화는 당연히 보장되어야 할 사회적 권리라는 것이다

 

회장님도 젊었을 때 이랬어요? 죽어라 뛰는데 계속 그 자리였어요? 얼마나 더 아프고 얼마나 더 잃어버려야 저도 어른이 될 수 있나요?” p.87 

 

책에서 인용한 단막 드라마 82년생 지훈이의 주인공이 충분히 노력하지 않는다고 비난하는 기성세대에게 절규하듯이 내 던진 말이라고 한다. “3장 괴물이 된 이십대의 자화상의 제목은 부적절한 듯하다. 3장은 오히려 이십대를 바라보는 기성세대의 분석에 가깝다. 저자의 분석인 즉, 고통을 감내하는 것 외에 다른 선택지가 없고, 남들처럼 달리지 못하는 이들이 구출 받을 수 있는 곳이 전혀 없는 현실에서, 타인의 고통은 물론 자신의 고통에 무감각해져야 한다. 그래서 자기 계발 논리에 담긴 무한 긍정의 마법이 절실하다는 것.   

 

대학 학생 상담실에 근무하는 상담전공자들을 만나보면, 상담 현장에서 본 이십대의 모습은 이렇다. 자기주도성이 심하게 결핍되어 있어 발달 단계로 치자면 거의 초등학생 수준이며, 부모, 특히 어머니에 대한 의존도가 심하다는 것여기서 이런 질문을 던져 보면 어떨까 싶다. 한국 사회는 과연 후속 세대에게 어른이 될 수 있는 제도적, 물질적, 문화적 조건을 제공해 왔는가? 우리 사회는 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어디로 가야할지 질문을 던지고 탐색할 기회를 가져보지 못한 채, 오직 일제히 다른 사람들이 향하는 곳으로 질주하도록 요구받는 삶을 살아온 이들에게 추락할지도 모른다는 불안외에 다른 삶의 동력을 제공한 적이 있는가? 한편 과연 한국 사회에서 기성세대는 제대로 된 어른 노릇을 할 수 있는 상황일까? 안철수가 전국적으로 청춘 콘서트투어를 다니면서, 기성세대로서 청년들에게 했던 말은 미안하다였다. 그 장면에서 한국 사회에서 이십대에게 미안하다고 말할 수 있는 위치에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단지 미안한 마음에 머무르지 않고 현실을 변화시킬 수 있는 정치적 실천으로 확장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라는 생각이 들었더랬다. 사회 구성원 전체가 추락할지 모른다는 불안 속에서, 생존을 위해 밤늦게 까지 일에 매달려야 하는 현실에서 말이다.  

 

저자가 이십대를 괴물이라고 단정하기보다는 좀 더 판단을 유보하면서 독자들로 하여금 이십대의 현실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도록 하면 어땠을까 싶다. 그러나 현재의 이십대를 문제적존재로 바라보는 저자의 시각은 분명 논쟁적이지만, 바로 그러한 점 때문에 이 책은 좋은 의미에서 생산적인 테스트라고 본다. 이십대에게 충분히 노력하지 않는다고 훈계를 하거나, 동정적 시선을 던지거나, 이들을 비판하는 대신, 우리 모두 질주를 잠시 멈추고 과연 이래도 되는 것인지 질문해볼 필요가 있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새로운 논쟁과 사유의 공간을 열어주고 있다고 본다

 

사족. 정작 이십대들은 이 책에 대해서 어떤 반응을 보일까. 책을 읽고 난 후 내내 그것이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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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caella20 2014-03-26 12: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꼭 읽어 봐야겠다.

micaella20 2014-03-26 12: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런데 그 고민의 향후 결론은? 어째야 할까?

micaella20 2014-03-26 12: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고민하고 멈춰서 돌아보면 이 사회의 병리가 치유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