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계 학부 폐지의 충격
요시미 슌야 지음, 김승구 옮김 / 소명출판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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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시미 순야의 책이 드디어 <문계학부 폐지의 충격>(김승구 역, 소명출판)이라는 제목으로 번역 출판되었다. (링크 댓글) 기념으로 2019년 4월에 페이스북에 올린 바 있는 서평을 다시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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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계 학부 폐지의 충격>(요시미 순야, 2016년)을 읽고

책 소개에 따르면, 요시미 순야는 <대학이란 무엇인가>(글항아리)에서 대학을 시대 상황과 긴밀하게 연동해 지식을 매개하는 집합적 실천의 구조화된 장, 즉 '미디어'로서 새롭게 정의하고 그 역사를 살핌으로써 미래의 대학상을 제시한 바 있다. 요시미 순야의 저서들을 살펴보니, 시대의 상식을 만들어가는 담론 창출 공간으로서 대학의 역할과 정체성을 과거, 현재, 미래의 시간적 연속선 상에서 심문하는 작업을 꾸준히 해 온 듯하다.

이 책 <인문학부 폐지의 충격>은 그 후속작이다. 책 내용을 간략히 소개하자면 다음과 같다.

책의 첫번째 장 "인문학부 폐지라는 충격"은 2015년 우리나라로 치자면 교육부에 해당하는 일본의 "문과성 "의 보도 자료를 계기로 촉발된 '인문학부 폐지' 소동을 다루고 있다. 저자는 과연 시대와 긴밀하게 연동하는 지식 매개의 장으로서 대학의 역할이 무엇인지 질문하면서 이 소동의 연원과 배경을 추적한다.

저자의 설명에 따르면,

이 소동의 근저에는 깔려있는 암묵적 전제, 즉 "이공계는 돈이 되고 인문계는 돈이 안된다"는 생각은 일본 근대 국민 국가에 의해 추동되는 대학의 역사와 공명하면서 전개되어 왔다. 잠깐 그 흐름을 살펴보면, 일본 국민 국가의 형성기에 메이지 정부는 국가 건설에 필요한 이공계 관료 양성에 교육의 초점을 맞췄고, 메이지 후기에는 국가의 유지 및 관리가 중요해지면서 법조인 양성으로 그 초점이 이동했다가, 1910년대 전시 체제에서 무기 제조를 위한 기술 활용이 필요해 지면서 교육의 중심은 다시 법률에서 이공계로 이동했다.

그리고 "인문학부 폐지 소동"이 제시하는 문과와 이과의 불균형은 국립 대학이 법인화 등을 거치면서 신자유주의 질서에 의해 완전히 잠식된 2015년에 새롭게 생겨난 것이 아니라, 일본 고도 경제 성장기에 이미 형성된 흐름이라는 것. 이 시기에 이미 일본 국립 대학의 70%가 이과계였다고 한다.

요시미 순야의 "도움이 된다"론

문화연구자답게, 저자는 "문송합니다"의 일본식 표현, "문과는 도움이 안된다"를 둘러싼 담론 지형을 분석하고, "인문사회계는 왜 도움이 되는가"를 '목적 수행적 유용성'이 아니라 '가치 창조형 유용성'의 측면에서 재정의한다. 저자는 대학에서 생산되어야 할 지식은 인류의 보편성에 이바지할 수 있어야 하며, 그런 점에서 인문사회계는 '도움이 된다'는 것. 대학이 인류의 보편적 가치에 봉사하는 지식 생산의 장이 되지 않을 때, 특히 인문학적 사유가 결핍된 채 발전한 과학 기술이 인류에 어떤 비극을 야기하는가를 일본 역사를 통해 지적한다. 20세기 초반 일본이 일으킨 전쟁, 2011년 후쿠시마 원전 사고가 그것이다.

대학의 코페르니쿠스적 전환론

저자는 대학의 역할에 있어서 코페르니쿠스적 대 전환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저출생고령화 사회, 가치의 중심이 다원화되고, 복잡해지며, 유동하는 사회에서 인문사회학은 매우 중요하며, 대학이 이제 갓 고등학교를 졸업한 20대 초반의 젊은이만을 배타적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다양한 연령대의 사람들을 흡수하여, 세대의 경계를 넘나드는 삶의 재구성에 도움이 되는 공간이 되어야 하며, 교육의 양이 아니라 질로 승부해야 한다는 것.

책의 마지막 부분에는 이러한 맥락에서 대학의 코페르니쿠스적 대전환의 일환으로 몇 가지 교육방법론을 소개하고 있다.

예를 들면, 요시미 순야가 대학원 수업에서 오랫동안 해왔다는 액티브 러닝, '나를 공격하라'. 교수의 논의를 비판하는 단계와 방법을 알려주고, 학생들로 하여금 교수를 공격하게 하는 교육 방법. 교수와 학생 간의 사무라이적 대결을 통해 능동적 학습을 유도한다는 것인데, 아무나 써먹을 수 있는 방법은 아닌 듯하다.

그보다는 '배움'과 '놀이'의 관계를 언급한 대목에 밑줄을 긋게 된다. 배움에 있어서 '도움이 되는 것(유용성)'과 '노는 것(유희성)'은 배타적인 것이 아니라, 불가분의 관계라는 것. 매일 실패를 거듭하는 교육현장에 있다보니 즐거운 놀이로서 교육방법을 늘 고민하게 된다.

일본식 "문송합니다", 즉 "도움이 안된다"가 어떻게 국가와 대학간의 공의존적 관계 속에서 상식의 자리를 점유하게 되었는가를 일본의 맥락에서 비판하면서, 대학이 갈 길을 제시한 이 책, <인문학부 폐지의 충격>이 한국에도 출판되면 좋겠다. 무엇이 인간다운 삶인가, 대학은 어떤 곳이어야 하는가, 이런 질문을 전면적으로 공유하면서 함께 새로운 대학을 만들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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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여기 있어요
디담.브장 지음 / 교양인 / 202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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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본인의 페이스북에서 가져옴 https://m.facebook.com/story.php?story_fbid=1505759949814627&id=100011419091322

< 뒷줄 펭귄 이야기 >

오늘은 퍼스트 펭귄 이후의 세상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자 한다.

며칠 전 곧 출간 예정인 디담+브장 작가의 <나 여기 있어요>(2020, 교양인)를 소개한 바 있다. 만화계 성폭력 문제를 다룬 이 책의 주인공은 해당 분야에서 성폭력 사건을 공론화한 '퍼스트 펭귄'이다.

이 책의 첫 장면은 주인공이 성희롱-성폭력으로 인해 곤경에 처한 어느 무명 작가의 이야기를 듣는 데서 시작한다. 그리고 책의 말미에는 그 사람이 주인공에게 등단 소식을 알리는 장면이 나온다.

주인공의 삶을 '피해자'가 아니라 '퍼스트 펭귄'의 위치에서 조명해보면 다른 그림이 나온다.

'피해자'로서 주인공은 사실 가해자를 제대로, 충분히 응징하지 못했고, 지독하고도 전형적인 문화예술계의 2차 가해에 시달렸다. 그리고 여전히 그 폭력의 자장 안에서 살아가고 있다.

반면 '퍼스트 펭귄'으로서 주인공은, 수많은 뒷줄 펭귄들과 그들만의 새로운 세상을 창출한다.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서로의 존재를 알아주며, 남성중심적 헤게모니 속에서 고군분투하는 서로를 응원한다. 책에서 주인공은 50명 이상의 '뒷줄 펭귄'들과 만났다고 되어 있다.

그리고 수많은 여성 무명 작가들, 해당 분야의 후속 세대들은 주인공을 개인적으로 알지 못해도, '퍼스트 펭귄'의 존재를 알고 있다. 그들은 누군가 만화계라는 거대한 폭력의 유기체와 감히 맞서 싸웠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라지지 않고 '그곳에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선배 교수의 직장 내 괴롭힘을 고발한 한 교수가, 가해자로부터 다른 제자와 동료들이 겪은 폭력, 나아가 대학 내 인권 침해를 경험한 다양한 소수자의 목소리를 모아서 매일 페이스북에 쓰고 있다.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 그것을 아는 것 만으로도 우리는 살아갈 힘을 얻는다.

뒷줄 펭귄, 화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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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비부머를 위한 변명
장석주 지음 / yeondoo / 201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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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비부머 세대 남성의 관점에서 바라본 한국인으로서의 시대 경험에 대한 사적 서사. 전체 220쪽 분량 중 3/2는 저자 장석주의 이야기이고, 나머지 1/3은 저자의 고향에서 나고 함께 청소년기를 보낸 동창 5명의 이야기. 여러 가지 이유로 이 세대에 관심을 갖고 있기에, 관련 자료들을 찾아서 읽고 있다.

 

이 책에 대한 단상 몇 가지 메모

 

1. ‘함께 말하기편집

 

동창 모임에 나타난 여러 친구가 약속이라도 한 듯 등산복을 입고 있어서 놀랐다. 등산복이 편하기 때문일 테다. 한편으로 등산복 패션은 이들이 감당하는 생의 나날이 여전히 같이 가파르고 힘들다는 무의식적인 암시다.” 12.

 

저자는 노년기 초입의 처음 늙어보는시간을 어리둥절하게 맞는시점에 이 책을 썼다고 했다. 저자가 시작하고, 저자의 동창들이 쓴 이야기로 마무리한 책의 편집이 눈길을 끈다. 요즘 이러한 형식의 함께 말하기가 많아지고 있어, 이 현상을 여러 측면에서 분석 중이다. 어쨌건, 저자의 이야기만 수록되었다면, 다소 외롭고 쓸쓸한 여운을 남겼을 것 같은데, 뒷부분에 다섯 명의 친구들의 이야기가 있어 다채롭기도 하고, 무엇인가 손을 잡아주는것 같은 여운이 남는다.

 

2. “부스러기 인간의식

 

“‘부스러기인간이라니! 나는 이 표현에 전율을 느꼈다. 내가 알 수 없는 현실 저편의 끔찍함이 모호하게나마 감지되었던 것이다. 알다시피 전태일은 노동자들이 부당하게 소외되고 희생되는 차별의 시대에 항거하며 그 제단에 자신을 송두리째 희생 제물로 바쳤다.” 63-64.

 

전후에 태어난 이 세대 남성의 공통점은 개인적, 사회적 차원에서 부재하는 아버지’/‘아버지의 결핍’/‘아버지와의 불화’/‘아버지에 대한 부정을 경험했고, 다른 세대에 비해 유독 많이 태어난 동년배들과 치열한 경쟁 속에서 살아남아야 했고, 박정희 체재로 인한 국가 폭력의 자장 안에서 살아왔다는 점이다.

 

부스러기 인간”, 조영래 변호사의 <전태일 평전>에서 저자가 전율을 느꼈다고 한 표현이다. 저자는 문학소년 시절, 이 책을 통해 세상의 비참’, ‘소외되고 희생되는 사람들의 존재에 눈을 뜨게 되었다는 것. ‘잉여 인간이라는 지금의 표현과 부스러기 인간이라는 저 표현이 미묘한 차이가 있는 듯하다. ‘잉여라는 단어에서는 쓸모없는이라는 형용사가 연상된다면, ‘부스러기라는 단어에서는 한 덩어리에서 떨어져 나간다는, 이탈에 대한 두려움이 감지된다. 이 표현이 소외, 배제, 차별에 대한 시대 경험의 특수성을 나타내는 것이 아닐까 싶었다.

 

어쨌건, “부스러기 인간”, 저자가 이 표현에 전율을 느낄 정도로 강한 인상을 받았다는 대목에서, 마치 DNA처럼 각인된 베이비부머 남성의 시대 경험, 즉 사회에서 떨어져나갈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긴장의 감정, 부스러기 인간의식이 읽힌다.

 

 

3. 베이비부머 남성의 한국이 싫어서

 

전후 무조건 앞만 보고 달리도록 조건화된, 직진만 가능한 고속도로를 달리도록 강제된 시대, 그 시대를 통과한 삶을 회고한 이 책을 다 읽고 나서 문득 눈에 들어온 것. 저자의 글과 함께 수록된 5명의 친구 이야기 중 2편이 이민자였다는 점. ‘한국이 싫어서50년대 생 남성 버전이라고나 할까.

 

4. 그림자 여성의 존재

 

한 번 핀 것은 지고, 온 것은 기어코 돌아간다. 그게 자연의 섭리다. 우리 목숨이 화사하다 한들 그 섭리를 넘어설 수는 없을 테다. 그러나 마 선생의 죽음은 너무 빨리, 억울하게 온 죽음이다. 솔직하고 자유로운 한 영혼의 죽음은 슬프고 안타깝다! 마광수 선생님, 서둘러 이승의 삶을 등지고 떠난 그곳은 얼마나 평화로운가요? 아침이면 누리에 금빛을 뿌리는 해가 뜨고, 저녁이면 누리의 빛들을 거두며 해가 지나요? 이제 바글거리는 생명마저 놓으셨으니, 이승의 좋은 인연과 나쁜 인연도 다 놓고, 고단한 영혼을 편히 쉬게 하소서! 당신 영전에 머리 숙이고 흰 국화꽃 한 송이를 바칩니다.” 113. (201797일자 중앙일보에 실린 저자의 추도사)

 

저자를 비롯하여 글쓴이들이 어쨌거나 그 엄혹한 시대를 무너지지 않고 통과한 데에는 함께 하는사람들의 존재가 결정적이었다. 저자는 자신의 출판사에서 <즐거운 사라>를 펴낸 후 마광수와 함께 필화사건을 겪었다. 마광수가 학교에서 쫓겨나 법정 싸움을 벌이며 해직과 복직을 반복하는 동안, 그는 출판사를 접고 사업과 가정이 다 깊은 내상을 입고 풍비박산이 났다.” 모든 것을 다 접고 시골로 내려가 책을 읽으며 살았는데, 그때 한 사업가가 한 달에 50만원씩 책을 사서 읽으라고 보내주었다고 한다. 아무런 조건 없이 이런 호의를 베푸는 사람이 있다니, 이런 마법 같은 일들이 정말 있구나! 나는 이 대목에서 짜릿한 전율을 느꼈다.

 

... 중요한 한 가지

 

여성들의 존재다. 글쓴이들 몇 분이 아내에 대한 고마움을 언급했는데, 이렇게 직접 언급하지 않아도 이 책에 수록된 남성 베이비부머의 이야기들에서 그림자혹은 배경으로 보이는 여성들의 존재에 주목하게 된다. 그 여성들의 관점에서 바라본 시대 경험이 자못 궁금해진다. 누군가의 그림자, 이야기의 배경으로 가려진 사람들의 이야기, 평생 누군가를 돌보는 존재로 강제된 삶을 살아온, “돌봄의 궤도(caring trajectory)”를 살아온 사람들의 이야기. 역시 나의 진정한 관심사는 이것이구나. 새삼, 발견. 68년생 여성인 나에게, 그들은 나의 오래된 미래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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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관과 관객의 문화사
가토 미키로우 지음, 김승구 옮김 / 소명출판 / 201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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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관과 관객의 문화사」는 영화관 및 관객을 통해 본 근현대사라고 할 수 있겠다. 즉, 영화 및 영화관이라는 특수한 장소를 경유하여 근대적 도시문화공간과 인간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를 보여주고 있다. “영화관 탄생 110년(2005년 기준)을 기념”하여 집필되었다는 이 책은 크게 이론적 틀을 제시하는 서론, 미국과 일본을 중심으로 “누가 어떤 장소에서 어떻게 영화를 보여주었는가 하는 역사”, “관객이 어떻게 영화를 향수했는가 하는 역사”를 기술한 본문으로 구성되어 있다.

미국의 영화관 및 영화 소비 역사를 다룬 부분에서 입이 떡 벌어졌던 부분. 자동차 영화관, 시네마 콤플렉스, 아이맥스 영화관이 미국에서 유래했다는 것은 알고 있었으나, 새삼 그 규모에 놀랐다. 예를 들면, 이른바 “영화궁전”, 즉 1920-30년대 미국의 거대영화관은 무려 6,000명 가까이 수용할 수 있는 곳도 있었다고. 영화관의 규모뿐만 아니라 영화 상품의 유형 및 소비 방식 등 모든 것이 거대해서, 마치 걸리버 여행기의 소인이 거인의 나라 박물관을 견학하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기도 했다.

“영화관은 이국땅에서 자기들이 본래 어디에 귀속되어 있었는가를 상기시키는 기억과 역사의 아카이브(수장고)가 된 것이다.” 79쪽.

문화연구자로서 인상적이었던 부분은 미국에서 대규모 이민자의 유입과 영화관 및 영화 소비 양상의 역사가 일정부분 겹쳐진다는 점, 이주민들이 영화를 통해서 미국화(americanized)되면서, ‘oo계 미국인’의 정체성을 형성했다는 점이었다. 예를 들면, 근대 국민-국가 이탈리아에서 국민 정체성이 없었던 이탈리아 남부 출신의 이민자들이 이탈리아 사극영화를 보면서, 자신을 “이탈리아계 미국인”으로 재규정 혹은 각성했다는 것. 하와이의 일본 이주민들이 변사가 일본어로 해설해주는 일본 영화를 보면서 향수를 달랬다는 것.

약 230쪽 분량으로 금방 읽을 수 있지만, 다소 전문적일 수 있는 이 책에 관심을 갖는 이유. 1990년대 짧았던 피시통신 시절의 영화동호회 활동의 경험이 내 삶에서 아주 특별했기 때문. 영화애호가로서 그리고 한 인간으로서.

피시통신이라는 전혀 새로운 플랫폼을 기반으로 성별, 나이, 직업 등을 초월하여 공통의 취향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 아이디 혹은 별칭으로 서로를 호명하며, 온오프 모임을 통해 영화를 함께 보고 소감을 공유했던 그 경험은 이전의 영화관 및 영화 체험과는 완전히 구별되는 것이었다.

1990년대 한국은 문화적으로 매우 풍요롭고 다양한 독특한 시대였던 것으로 기억된다. 이 시기, 이 동호회를 통해 만난 인연들이 아직 이어지고 있는 것을 보면, 내 삶에서 매우 특별하고 중요한 역사적 순간이었을 터. 이 책을 읽으면서, 나의 영화관 및 영화 향유 경험이 하나의 역사적 흐름 속에 있다는 감각을 가질 수 있어서 좋았다.

아쉬웠던 부분은, 나와 저자의 학문적 배경 및 지향점이 달라서 이렇게 읽히는지는 모르겠으나, 저자가 다룬 시대의 영화관 및 영화 향유 경험이 당대 자본주의와 제국주의라는 정치경제적 상황과 어떻게 맞물려 있는가에 대해 거의 언급하고 있지 않다는 점이다. 특히 일본의 경우, 제국주의 통치 체제 하의 검열과 통제, 영화관의 형성과 영화 체험이 어떻게 복잡한 방식으로 서로 관통, 중첩, 갈라지는지에 대해 전혀 다루지 않고 있다.

또한 저자가 젠더와 섹슈얼리티를 다룰 때 그 관점이 이성애-규범적 틀에 국한되어 있다는 점이 아쉽니다. 특히 “포르노 영화관의 관객”(225-227쪽)이라는 소제목에서 동성애적 실천, 영화관에서 남녀의 애정행각과 같은 이성애적 실천을 같은 층위에서 일별하고 있어, 마치 ‘포르노’라는 범주 안에 이 모든 것을 동질화하는 부분에서는 황당하고 어이가 없었다. 이 부분은 1957년생 일본인 남성 영화연구자의 한계일지도 모르겠다. 이러한 한계 및 틀을 염두에 둔다면, 일독할 가치가 있는 책이라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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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복요가 - 스트레스 감소, 원기 회복, 균형 찾기를 위한 편안한 방법
게일 부어스타인 그로스먼 지음, 요가릴라 옮김 / 대성의학사 / 201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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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간 이런저런 통증에 시달리다 보면 어느덧 안 해 본 것이 없는경지에 도달하게 된다. 직업적으로 한 자세로 오래 있어야 하는 사람들은 작업 도중 자주 스트레칭이나 이완이 필요한데, 트레이너한테 배우고 익힌 운동법도 집에서는 잘 안하게 된다. 그동안 사 모은 운동 도구들이 다 놀고 있다

 

요가 수업을 통해 알게 된 회복 요가(Restorative Yoga)”. 이 요가는 활동적수행이 아니라 수용적수행, 깊은 이완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 힘을 주는 동작이 하나도 없다! 몇 가지 소도구를 이용해서 몇 분 동안 전굴, 후굴, 역자세 등 따라 하기 쉬운 자세를 취하고 있으면 된다. 책에는 엎드리거나 눕거나 벽에 기대거나, 대개 이런 동작들에 대한 설명이 사진과 함께 실려 있다. 통상 재활치료 목적의 운동은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야 하는데, 이 요가는 따라 하기 쉽고 혼자 해도 부상 위험이 거의 없어 보인다. 특히 나처럼 누워있기 좋아하고 천성적으로 게으른 사람에게 안성맞춤

 

특히 이 요가에서는볼스터(bolster)’라고 불리는 긴 쿠션, 담요, 블록, 모래주머니, 눈베개 등 몇 가지 소도구들을 사용한다. 그 중에서 죽부인처럼 생긴 볼스터쿠션에 엎드리거나 누워있으면, 무언가 큰 존재로부터 보살핌을 받는 아기로 돌아간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안전하고, 따뜻하고, 편안하고, 깊은 휴식을 취하는 느낌...어른도 보살핌이 필요하다. 내가 어지간하면 사놓고 안 쓰는 것들이 많은데, 이 볼스터는 시도 때도 없이 끼고 있다.책값도 비싸고 볼스터도 사야 해서 좀 망설이긴 했다. , 그래도 어쩌리. 세상에서 내가 제일 중요하고 소중한 것을! 그냥 질렀다. 하루 종일 한 자세로 긴장 상태에서 작업해야 하는 사람들, 누군가를 돌보느라 정작 자신은 돌보지 못하는 여성들에게 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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