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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도 - 일본 정신의 고향 ㅣ 종교도서관 3
C.스콧 리틀턴 지음, 박규태 옮김 / 유토피아 / 2007년 10월
평점 :
품절
‘명품’이라는 단어를 별로 좋아하지는 않지만, 이 책은 내용과 편집, 번역의 측면에서 좀처럼 찾아보기 힘든 품격을 보여준다. 한 지인은 이 책에 대해 ‘아름답다’는 표현까지 써가며 극찬을 했다. 아마도 편집 기술에 관한한 한국 출판계는 세계 최고 수준이 아닐까 싶다. 외국 서적들은 대개 표지가 페이퍼백이고 내지 또한 허름하며, 표지의 디자인도 간결하고 소박하다. 언젠가 출판사와 함께 해외 아동 도서 번역을 기획한 적이 있는데, 출판사 담당자는 소박한 페이퍼백 원서를 번역서로 내놓을 땐 단가가 올라가더라도 반드시 하드커버로 내야 그나마 팔린다고 했다. 그만큼 한국의 독자들은 책을 고를 때 내용에 앞서 외양을 중시한다는 것. 별로 좋은 현상은 아닐 듯싶다. 내용 보다 스타일을 중시하는 것, 영혼을 풍요롭게 하는데 그다지 도움이 되지 않으니 말이다.
하.지.만.
이 책에서 있어서만큼은 책의 편집과 디자인의 가치에 높은 점수를 주고 싶다. 아마도 원서는 이렇게까지 편집이 훌륭하지는 않았을 듯. 책의 내용 상 사진과 그림, 인용문과 해설이 본문과 함께 배치될 수밖에 없는데, 이 번역서에서 편집의 기술은 가독성과 책의 품위도 함께 높여준다. 또한 책을 만든 사람들의 정성과 그 안에 담긴 지식에 대한 존중이 느껴진다.
저자인 C. 스콧 리틀턴은 ‘고대인도 유럽의 종교 전통, 신도를 포함한 일본 문화 전반에 관한 전문 연구가’이다. 프로필을 보니 일본의 대학에서도 교편을 잡은 바 있다. ‘신도’에 대한 그의 견해는 학문적 연구와 더불어 일본에서 살면서 일상생활에서 보고 느낀 바의 총합이라고 할 수 있겠다.
이 책을 읽다보면 일본 영화, 드라마, 소설, 애니메이션 등에서 인상적이었던 장면들 중 ‘신도’와 연관된 것들이 하나 둘씩 떠오른다. 저자는 신도를 하나의 종교 시스템으로 파악하고 있는데, 역자 박규태 교수에 따르자면 이것은 서구 종교학적인 관점으로 반드시 신도의 본질과는 일치하는 이해라고는 단언할 수는 없다. 아마도 샤머니즘적 전통이 뿌리 깊은 한국 문화권에서 살아온 사람이라면 역자의 견해에 더 공감하게 되지 않을까 싶다.
이 책을 읽기 전까지 내게 ‘신도’는 일본의 군국주의와 동일시되곤 했었다. 왜냐하면 당연히 일본의 식민지배의 경험이 있는 한국인으로서, ‘신도’하면 떠오르는 것이 ‘야스쿠니 신사’이고, 왕을 신이라고 믿는 일본인들의 신념이 전쟁과 식민 지배를 정당화했던 역사이기 때문이다. 일본의 대표적 전통 문화인 신도에 대한 개론서에 해당하는 이 책은 ‘신도’를 이러한 선입견에서 벗어나 보다 폭넓고 객관적으로 이해할 수 있게 해 준다. 수천년간 일본인의 정신 세계의 근간을 형성해 왔던 신도, 즉 저자가 ‘일본 정신의 고향’이라고 명명한 ‘신도’는 메이지유신 이후 국가주의에 의해 새롭게 구축된 신도와 동일시될 수는 없다. 국가주의와 결합된 신도는 일본의 근대가 창조해낸 '오래되지 않은 전통'이기 때문이다. 신도는 ‘인간은 본래 주술적인 존재이며, 삶의 불안을 무언가에 의지해서 견뎌내지 않으면’(130p,역자) 안되는 인간의 실존적 불안이라는 보편성 속에서 이해되어야할 그 무엇이라고 할 수 있겠다.
120페이지 분량의 길지 않은 책 속에서 저자는 많은 이야기를 간결하고도 명료하게 전달한다. 기원과 역사, 일본 열도 창조 신화에 얽힌 이야기들, 신도의 윤리 원칙, 공간(신사), 의례(마츠리), 불교 등 타종교와 연관성 등을 설명하는 각장의 구성도 매우 잘 되어 있다. 오랜만에 만난 아주 좋은 책이다. 유토피아 출판사는 ‘종교도서관을 열며’라는 제목의 서두에서, ‘다문화․다종교 시대를 살아가는 한국사회 구성원들이 상호존중과 포용의 미덕을 지닌 세계시민으로 성장하는데 밀거름이 되길 기대한다’고 쓰고 있다. 이 기획 의도에 깊이 공감하는 바이다. ‘종교도서관’ 시리즈 중에서 『이슬람: 사막에 꽃핀 평화주의』, 『힌두교: 인도 사상의 뿌리』를 점찍어 두었다. 조만간 시간을 내어 읽어볼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