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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비부머를 위한 변명
장석주 지음 / yeondoo / 2017년 12월
평점 :
베이비부머 세대 남성의 관점에서 바라본 한국인으로서의 시대 경험에 대한 사적 서사. 전체 220쪽 분량 중 3/2는 저자 장석주의 이야기이고, 나머지 1/3은 저자의 고향에서 나고 함께 청소년기를 보낸 동창 5명의 이야기. 여러 가지 이유로 이 세대에 관심을 갖고 있기에, 관련 자료들을 찾아서 읽고 있다.
이 책에 대한 단상 몇 가지 메모
1. ‘함께 말하기’ 편집
“동창 모임에 나타난 여러 친구가 약속이라도 한 듯 등산복을 입고 있어서 놀랐다. 등산복이 편하기 때문일 테다. 한편으로 등산복 패션은 이들이 감당하는 생의 나날이 여전히 ‘산’ 같이 가파르고 힘들다는 무의식적인 암시다.” 12쪽.
저자는 “노년기 초입의 ‘처음 늙어보는’ 시간을 어리둥절하게 맞는” 시점에 이 책을 썼다고 했다. 저자가 시작하고, 저자의 동창들이 쓴 이야기로 마무리한 책의 편집이 눈길을 끈다. 요즘 이러한 형식의 ‘함께 말하기’가 많아지고 있어, 이 현상을 여러 측면에서 분석 중이다. 어쨌건, 저자의 이야기만 수록되었다면, 다소 외롭고 쓸쓸한 여운을 남겼을 것 같은데, 뒷부분에 다섯 명의 친구들의 이야기가 있어 다채롭기도 하고, 무엇인가 ‘손을 잡아주는’ 것 같은 여운이 남는다.
2. “부스러기 인간” 의식
“‘부스러기’ 인간이라니! 나는 이 표현에 전율을 느꼈다. 내가 알 수 없는 현실 저편의 끔찍함이 모호하게나마 감지되었던 것이다. 알다시피 전태일은 노동자들이 부당하게 소외되고 희생되는 차별의 시대에 항거하며 그 제단에 자신을 송두리째 희생 제물로 바쳤다.” 63-64쪽.
전후에 태어난 이 세대 남성의 공통점은 개인적, 사회적 차원에서 ‘부재하는 아버지’/‘아버지의 결핍’/‘아버지와의 불화’/‘아버지에 대한 부정’을 경험했고, 다른 세대에 비해 유독 많이 태어난 동년배들과 치열한 경쟁 속에서 살아남아야 했고, 박정희 체재로 인한 국가 폭력의 자장 안에서 살아왔다는 점이다.
“부스러기 인간”, 조영래 변호사의 <전태일 평전>에서 저자가 ‘전율’을 느꼈다고 한 표현이다. 저자는 문학소년 시절, 이 책을 통해 ‘세상의 비참’, ‘소외되고 희생되는 사람들’의 존재에 눈을 뜨게 되었다는 것. ‘잉여 인간’이라는 지금의 표현과 ‘부스러기 인간’이라는 저 표현이 미묘한 차이가 있는 듯하다. ‘잉여’라는 단어에서는 ‘쓸모없는’이라는 형용사가 연상된다면, ‘부스러기’라는 단어에서는 한 덩어리에서 떨어져 나간다는, 이탈에 대한 두려움이 감지된다. 이 표현이 소외, 배제, 차별에 대한 시대 경험의 특수성을 나타내는 것이 아닐까 싶었다.
어쨌건, “부스러기 인간”, 저자가 이 표현에 ‘전율’을 느낄 정도로 강한 인상을 받았다는 대목에서, 마치 DNA처럼 각인된 베이비부머 남성의 시대 경험, 즉 사회에서 떨어져나갈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긴장의 감정, 즉 ‘부스러기 인간’ 의식이 읽힌다.
3. 베이비부머 남성의 ‘한국이 싫어서’
전후 무조건 앞만 보고 달리도록 조건화된, 직진만 가능한 고속도로를 달리도록 강제된 시대, 그 시대를 통과한 삶을 회고한 이 책을 다 읽고 나서 문득 눈에 들어온 것. 저자의 글과 함께 수록된 5명의 친구 이야기 중 2편이 이민자였다는 점. ‘한국이 싫어서’의 50년대 생 남성 버전이라고나 할까.
4. 그림자 – 여성의 존재
“한 번 핀 것은 지고, 온 것은 기어코 돌아간다. 그게 자연의 섭리다. 우리 목숨이 화사하다 한들 그 섭리를 넘어설 수는 없을 테다. 그러나 마 선생의 죽음은 너무 빨리, 억울하게 온 죽음이다. 솔직하고 자유로운 한 영혼의 죽음은 슬프고 안타깝다! 마광수 선생님, 서둘러 이승의 삶을 등지고 떠난 그곳은 얼마나 평화로운가요? 아침이면 누리에 금빛을 뿌리는 해가 뜨고, 저녁이면 누리의 빛들을 거두며 해가 지나요? 이제 바글거리는 생명마저 놓으셨으니, 이승의 좋은 인연과 나쁜 인연도 다 놓고, 고단한 영혼을 편히 쉬게 하소서! 당신 영전에 머리 숙이고 흰 국화꽃 한 송이를 바칩니다.” 113쪽. (2017년 9월 7일자 중앙일보에 실린 저자의 추도사)
저자를 비롯하여 글쓴이들이 어쨌거나 그 엄혹한 시대를 무너지지 않고 통과한 데에는 ‘함께 하는’ 사람들의 존재가 결정적이었다. 저자는 자신의 출판사에서 <즐거운 사라>를 펴낸 후 마광수와 함께 필화사건을 겪었다. 마광수가 학교에서 쫓겨나 법정 싸움을 벌이며 해직과 복직을 반복하는 동안, 그는 출판사를 접고 “사업과 가정이 다 깊은 내상을 입고 풍비박산이 났다.” 모든 것을 다 접고 시골로 내려가 책을 읽으며 살았는데, 그때 한 사업가가 한 달에 50만원씩 책을 사서 읽으라고 보내주었다고 한다. 아무런 조건 없이 이런 호의를 베푸는 사람이 있다니, 이런 마법 같은 일들이 정말 있구나! 나는 이 대목에서 짜릿한 전율을 느꼈다.
그.리.고. 중요한 한 가지
여성들의 존재다. 글쓴이들 몇 분이 ‘아내’에 대한 고마움을 언급했는데, 이렇게 직접 언급하지 않아도 이 책에 수록된 남성 베이비부머의 이야기들에서 ‘그림자’ 혹은 ‘배경’으로 보이는 여성들의 존재에 주목하게 된다. 그 여성들의 관점에서 바라본 시대 경험이 자못 궁금해진다. 누군가의 그림자, 이야기의 배경으로 가려진 사람들의 이야기, 평생 누군가를 돌보는 존재로 강제된 삶을 살아온, “돌봄의 궤도(caring trajectory)”를 살아온 사람들의 이야기. 역시 나의 진정한 관심사는 이것이구나. 새삼, 발견. 68년생 여성인 나에게, 그들은 나의 ‘오래된 미래’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