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lobal Woman: Nannies, Maids, and Sex Workers in the New Economy (Paperback)
Ehrenreich, Barbara / Henry Holt & Co / 2004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부조리한 현실을 보지 못하는 것이 불의(injustice)이다!

요즘 ‘정의’라는 화두가 크게 주목받고 있다. 이런 유례없는 현상은 그만큼 한국 사회에서 부조리가 극에 달한 탓도 있겠지만, 세상이 너무 복잡해져서 도대체 무엇이 정의이고, 무엇이 불의인지 가늠하기가 어려워졌기 때문인 듯하다. 「글로벌 여성」은 정의(justice)에 대한 지적 갈망이 높아진 이 시점에서 매우 유용한 책이다. 서구의 철학적 사유 체계가 아니라 구체적인 삶의 현장을 바탕으로 한 책이기에 쉽게 읽힌다.

제목이 풍기는 학술적․전문적 분위기(「글로벌 여성: 신 경제에서의 유모, 가사도우미, 성노동자들」)에 비해 의외로 내용은 쉽게 잘 읽힌다(사회과학 서적 치고는 상당히 쉬운 영어로 씌어있다). 「감정노동」의 저자 앨리 러셀 혹쉴드, 「빈곤의 경제」의 저자 바바라 에렌라이히, 「경제의 세계화와 도시의 위기」의 저자이자 ‘글로벌 시티’라는 개념으로 널리 알려진 사스키아 사센 등 다수의 저명하고 명민한 저자들이 그들의 지적 통찰력과 학문적 성과를 대중과 공유하기 위해 뭉쳤다. 지금까지 알려진 것과는 전혀 다르거나 지배 담론에서 가려진 ‘세계화’의 이야기, 이른바 세계화에 대한 대안적 서사를 제시하기 위해서다. 이 이야기의 초점은 그동안 주류 학계나 미디어에서 그다지 주목받지 못한 이주 여성들의 삶, 여성 노동의 세계화를 둘러싼 부조리한 국제적 노동 분업의 현실이다. ‘이주의 여성화’, ‘보살핌 노동’ 등을 주제어로 하는 이 앤솔로지 중에서도 앞에 언급한 3명의 저자들의 글이 제일 널리 읽히는 듯하다.

이중 혹쉴드의 논의만 간략하게 언급하고자 한다. 혹쉴드(2장 “사랑과 금”)는 신경제의 그림자, 비공식 섹터인 보살핌 노동 및 감정 노동에 종사하기 위해 제3세계의 여성들이 제1세계로 이주하는 현상을 ‘부드러운 제국주의’ 혹은 ‘정서적 제국주의’로 명명한다. 예전에는 금이나 상아, 고무 등과 같은 자연 자원, 즉 물질적 자원이 주된 약탈의 대상이었지만, 지금은 1세계가 3세계로부터 ‘사랑’이라는 정서적 자원을 착취하여 재분배하는 양상을 띠고 있다는 것이다. 문제는 이 착취가 강압이나 폭력을 동원하여 이뤄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부조리의 문제’로 인식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러한 착취를 가능하게 하는 조건은 세계화로 인한 불균등한 발전과 이로 인해 더욱 극심해진 국가 간 빈부 격차, 그리고 이것이 제3세계에 야기한 빈곤과 빚이기 때문이다.

세계화가 야기한 부조리와 그것의 비가시성 문제에 대해 혹쉴드는 보살핌 노동의 사용자-피고용인 사이에서 그 노동이 인식되는 방식의 차이를 조명함으로써 신랄하게 분석한다. 혹쉴드는 이주 여성 유모가 아이를 보살피고 사랑하는 노동 과정에서 소외가 발생한다는 점에 주목하면서 이를 ‘사랑의 페티시화’로 설명한다. 이주 여성 유모는 사용자(고용자)에게 사랑을 주는 존재로 ‘소비’될 뿐, 그 사람이 인간으로서 겪는 감정이나 보살핌 노동 과정의 어려움들은 간과된다. 1세계의 ‘있는 집 자식들’은 여러 명의 어른들(부모, 유모)로부터 듬뿍 사랑을 받는다. 이 아이들이 애정의 ‘과식’을 향유하는 반면 남겨진 3세계의 아이들은 정서적 결핍 상황에 놓여 있다. 노동 과정에서 상품이 생산되는 과정과 맥락이 무시된 채, 최종적으로 제공되는 상품이 독립적인 대상으로 간주되는 현상을 지칭하는 페티시즘. 혹쉴드는 이 용어를 가져와 유모의 노동 행위의 핵심인 ‘사랑’을 고립적으로 사고하여 그것이 속해 있는 글로벌 자본주의의 질서와 분리시키는 현상을 비판한다. 1세계(부유한 고용주 부모)가 3세계 유모의 애정을 소비하고 낭만화하면서도, 한 사람의 인간으로서 유모가 겪고 있는 외로움, 딜레마, 고통에 대해서는 철저하게 무관심하다. 혹쉴드는 이와 같이 ‘사랑’이라는 정서적 자원이 불평등하게 배분되는 현상을 ‘부정의 injustice’의 문제로 볼 것을 제안한다.

대안으로 제시된 “보살핌 노동의 가치를 올리자”, “글로벌한 윤리 감각을 개발하자”는 주장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여성 노동의 세계화의 비가시성”을 가시화하고, “여성을 완전한 인간으로 보는 것”, 서론에 제시된 이 책의 목적이다. ‘글로벌한 윤리 감각’이라...어떻게 이것을 획득할 수 있을까. 저자들이 주장한 바와 같이 비가시적인 정의의 영역을 가시화하고, 정의(justice)의 인식론적 지도를 바꾸는 것, 이를 통해 이른바 집단 지성을 확장시키고 변화시키는 것이 핵심적일 것이다. 한편 개인적 차원에서의 ‘글로벌한 윤리 감각’이란 다름 아닌 ‘의존’에 대한 깨달음이라는 생각이 든다. 내가 누리는 행복, 나의 생존과 삶이 나 혼자만의 몫이 아닌 다른 사람들, 다른 존재들과 연결되어 있고, 타자에게 전적으로 의존되어 있다는 깨달음. 그것이야말로 정의 감각을 일깨우는 가장 큰 동력이 아닐까 싶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새아의서재 2015-02-14 00: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 번역은 안되어 있는건가요?

stonewriter 2015-02-14 17: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글쎄요. 제가 읽을 때는 번역되지 않았어요. 좋은 책인데 말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