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고 쓰고 파괴하다 - 청춘을 매혹시킨 열 명의 여성 작가들
이화경 지음 / 행성B(행성비) / 201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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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작년에 읽은 이 책을 다시 읽고 싶었다.
사랑하고 쓰고 파괴당하고도 다시 한 번 사랑을 외칠 수 있는 여자들의 목소리가 필요했다.
그래도 된다, 잘하고 있는 것이다, 라고 응원해줄 목소리가 필요했다.

언젠가 사랑, 이라는 말에 둔중한 무게를 담아 의미를 읽던 때가 있었다. 상대방에 대해 잘 알고 있고 그러기 위한 시간이 충족되었을 때 그 말을 할 자격이 있다고 믿었다. 그래서 나는 어리석게도 무지한 상황에 대해서는 “그건 사랑이 아니야.” 라고 단호하게 말하곤 했던 것이다. 그리고 지금은 모두가 내게 그렇게 말한다. 그건 사랑이 아닐거야, 라고.

그러니 내게 응원을 해줄 사람은 이미 무덤 속으로 들어가 누운 그녀들밖에는 없었던 것이다.
너를 행복하게 만들어주는 사랑을 하라고 말하는 이들 틈에서 “너는 너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라고 속삭여줄 악마같은 목소리가 내게 필요했다.

글쎄. 편안한 사랑을 하는 것이 좋은 걸까. 정말 좋은게 맞을까. 언젠가 단호하게 고개를 끄덕였던 적이 있는 것 같은데, 너를 만나고 나서 나는 헷갈리기 시작했다.

힘들고 고달퍼도 그리워 죽을 것 같은 사람이 있다는 것은 그것만으로도 꽤 멋진 일이 아닐까?

한 사람을 가슴에 묻고 독신으로 살다간 제인오스틴의 삶과
사르트르와의 계약 결혼에서 파괴당해간 시몬 드 보부아르의 삶, 쇼팽을 위해 헌신하다가 자신의 딸을 내어주게 된 조르주 상드의 삶.
아직 그 마음을 이해한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단순히 그녀들의 삶이 슬프다고만 말하기엔 사랑 있는 삶에는 매혹적인 무언가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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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랍에 저녁을 넣어 두었다 문학과지성 시인선 438
한강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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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어떤 사람들은 책에 별점을 매기는 일이 부당하다고 혹은 무의미하다고 말한다. 그러나 나는 별점을 매기는 일을 의미있게 만들어주는 책이 있다고 믿는데, 너무나 아름다워서 책에 대한 찬사를 해야만 할 때와 너무나 편협하고 좁은 시각에 갇혔거나 수준이 너무 떨어져 이건 독자를 무시하는 게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들 때 그렇다.

그러나 시에 대해서는 그것이 아무리 아름답다고 한들 혹은 무가치하다고 여겨진다고 한들 별점을 주는 것이 의미가 있을까, 라는 의구심이 든다.
시에는 마음이 담겨있기 때문이다. 특히나 그 마음이 아픔일 때 나는 도저히 그 가치를 판단할 자신이 없다.

이 시집을 읽는 동안 마음이 많이 아팠다.
시집 때문이 아닌지도 모르겠다.
나는 그 사람이 이 시집을 읽는 동안 어떤 생각을 했었는지가 궁금했는데, 그래서 이 시집을 장바구니에 넣어두고 그저 주문을 해야지, 해야지, 생각 하고 있었는데 그 사람은 사라졌고 나는 그가 무슨 생각으로 이 시집을 읽고 있었을지 알 수 없게 되어버렸다.

아래의 시처럼, 영원히 지나가버린 것이다.

이 시를 읽을 때 당신은 무슨 생각이었는지,
당신이 나를 지나가려 마음 먹었을 때 당신은 영원히 나를 지나가버린 것이란 걸 알았는지 나는 참 궁금하다.
나는 그날의 기억을 서랍에 넣어 두었다.
받아들여야할 그날의 기억을 차마 꺼내지 못하고 서랍에 넣은 채로 오늘까지 기다리고 있다.
혹시나 지나가버린 당신이 돌아올까 라는 생각에 쉬이 그 마음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다.
서랍을 여는 순간 모든 것이 달아날 것만 같다.
어쩌면 열지도 못한 채 서랍장을 불태울지도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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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에게 잠시 신이었던 문학과지성 시인선 508
유희경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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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누군가 ‘겹겹, 겹겹의’ 를 낭독하는 것을 듣고,
바로 구매한 책이다.
첫문장을 듣는 순간 바로 그 문장을 귀가 아닌 눈으로 읽고 싶어져서 인터넷 주문을 했더랬다.
살면서 ‘겹겹’이라는 말이 이렇게나 아름답고 쓰라린 적이 있었나. 나는 기쁨과 슬픔과 아련함과 그리움과 아픔과 둔중한 깨달음이 하나의 공간에 켜켜이, 겹겹이 쌓일 그 시간에 대해 생각했다.

이 시집의 앞부분을 읽을 때 나는 이미 지나가버린 것에 절망하고 있었는데
시집을 3/4쯤 읽었을 때 그런 내게
‘사랑스럽다’는 표현을 떠올리게 하는 누군가가 나타났고
나는 시집 읽기를 멈추었었다.
그리고 다시 남은 1/4를 읽은 건 그 사람이 떠나간 후였는데
아무렇지 않았던 글들이 자꾸만 마음을 찔러대는 통에
나머지 부분을 읽어내기가 힘들었다.

시집의 뒷부분에 시에 대한 해설이 붙어있는데
대충 훑어보던 중 우리에게 잠시 신이었던, 에서의 ‘신’이 누구인가에 대한 이야기를 보았다.
대충 보아서 정확하진 않지만 아마도 그건 ‘당신’일 것이다, 라는 것이 해설자의 해석이었는데,
나는 그 해석조차 아프게 들렸다.

나를 떠나간 그 사람이 내게 ‘신’이었던가, 라는 생각에
그리고 그가 ‘잠시’만 나의 신이었다는 생각에 다시 또 괴로워졌다.
유희경 시인이 정말로 그런 의미로 쓴 것인지는 알 수 없으나 시집의 제목만으로도 이 책은 할 일을 다했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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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픔을 공부하는 슬픔
신형철 지음 / 한겨레출판 / 201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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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일이 바빠져 마음의 여유가 줄어들면서 책을 선택하는 일에 신중해졌다. 실패하지 않을 것 같은 책을 선택하고 그 마저도 실패하게 되면 미련없이 책을 덮는다. 그런 책은 읽은 책으로 올려두지 않는다. 어떤 책들은 얄팍한 술수를 써서 마지막을 궁금하기 만드는 전략을 취하는데 그러면 나는 어쩔 수 없이 그 술수에 넘어가서 다 읽은 후 ‘읽은 책 목록’에 넣어두고는 자존심 상해한다. 그만큼 좋은 책들의 존재를 알아버렸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이 책을 추천받고 처음 읽기 시작한 것이 작년 12월이다. 완독까지 5개월 걸린 셈이다. 그때 내게 쏟아져 들어오던 책들이 얼마나 많았는지 그리고 그것들을 ‘빨리’ ‘해치우기’ 위해 나는 얼마나 책에 무심했던지 그래서인지 이 책이 별 감흥을 주지 못했다.

그리고 5월이 되어 애매하게 읽은 이 책을 이어서 읽을 여유가 생겨서 조용히 읽어내려갔는데, 그러다 문득 몇 개의 문장들이 연속적으로 내 시야를 사로잡았다.
좋은 구절이다 싶은 그곳에 포스트잇을 붙여놓고 다음 장을 넘겼는데 여전히 좋은 구절이 있다.
나는 그런 순간에 희열을 느낀다.
평소의 습관대로 책을 뒤집어 가격을 본다.
16,000원.
돈을 벌었다는 기분이 든다.

가장 마음에 들었던 글은 ‘넙치의 온전함에 대하여’ 라는 글이었다. 근래의 내 상황에 맞아 떨어져서 더 좋게 느껴졌을 것이다.

책의 뒷부분에는 신형철 평론가가 추천하는 책의 목록이 나오는데 그 중 읽고 싶은 책을 몇 권 체크해두었다. 추천 내용은 읽지 않았다. 스포를 방지하기 위함이다 :-)
좋은 책들은, 그리고 좋은 작가들은 끝없이 책을 뻗어가게 만드는 재주가 있는 것 같다. 독자로서는 기쁜 동시에 조금 버거운 일이다. 읽고 싶은 책이 감당할 수 없는 수준으로 늘어가고 있다. 물론 나는 여전히 거북이 독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언젠가 독서모임에서 다뤄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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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희진처럼 읽기 - 내 몸이 한 권의 책을 통과할 때
정희진 지음 / 교양인 / 201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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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삶의 방향을 확고하게 세워두고 내 말이 맞다, 라고 강하게 메세지를 전달하는 사람을 좋아하지 않는다. 누구나 한번쯤은, 아니 살면서 백 번쯤은 누구나 잘못을 하며 살아간다. 지금의 내 판단이 옳다고 여겨도 몇년 후에도 그 판단을 옳다고 여길 지는 알 수 없는 일이다. 그렇다고 아무런 방향성 없이 삶을 살 수도 없는 노릇이기에 우리에게는 이해라는 것이 필요하지 않은가?
내 가치관을 붙들어 두되, 타인의 가치관에 고개를 갸웃거리며 이해하려 애써보는 노력.
나그네의 옷을 벗기는 건 바람이 아니라 태양이 아니었나.
옳은 말을 한다고 해서 좋은 책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이번에 읽지 않아도 언젠가 읽었을 책이고,
내게 많은 것을 생각하게 만들어준 책이었지만
알려준 것은 많은데 배울 것이 느껴지지는 않는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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