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랍에 저녁을 넣어 두었다 문학과지성 시인선 438
한강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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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어떤 사람들은 책에 별점을 매기는 일이 부당하다고 혹은 무의미하다고 말한다. 그러나 나는 별점을 매기는 일을 의미있게 만들어주는 책이 있다고 믿는데, 너무나 아름다워서 책에 대한 찬사를 해야만 할 때와 너무나 편협하고 좁은 시각에 갇혔거나 수준이 너무 떨어져 이건 독자를 무시하는 게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들 때 그렇다.

그러나 시에 대해서는 그것이 아무리 아름답다고 한들 혹은 무가치하다고 여겨진다고 한들 별점을 주는 것이 의미가 있을까, 라는 의구심이 든다.
시에는 마음이 담겨있기 때문이다. 특히나 그 마음이 아픔일 때 나는 도저히 그 가치를 판단할 자신이 없다.

이 시집을 읽는 동안 마음이 많이 아팠다.
시집 때문이 아닌지도 모르겠다.
나는 그 사람이 이 시집을 읽는 동안 어떤 생각을 했었는지가 궁금했는데, 그래서 이 시집을 장바구니에 넣어두고 그저 주문을 해야지, 해야지, 생각 하고 있었는데 그 사람은 사라졌고 나는 그가 무슨 생각으로 이 시집을 읽고 있었을지 알 수 없게 되어버렸다.

아래의 시처럼, 영원히 지나가버린 것이다.

이 시를 읽을 때 당신은 무슨 생각이었는지,
당신이 나를 지나가려 마음 먹었을 때 당신은 영원히 나를 지나가버린 것이란 걸 알았는지 나는 참 궁금하다.
나는 그날의 기억을 서랍에 넣어 두었다.
받아들여야할 그날의 기억을 차마 꺼내지 못하고 서랍에 넣은 채로 오늘까지 기다리고 있다.
혹시나 지나가버린 당신이 돌아올까 라는 생각에 쉬이 그 마음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다.
서랍을 여는 순간 모든 것이 달아날 것만 같다.
어쩌면 열지도 못한 채 서랍장을 불태울지도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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