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처음 | 이전 이전 | 11 | 12 |다음 다음 | 마지막 마지막
비스트 그렌스 형사 시리즈
안데슈 루슬룬드.버리에 헬스트럼 지음, 이승재 옮김 / 검은숲 / 2011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2011년 11월 11일 완독

제목: 비스트 The Beast

지은이: 안데슈 루슬룬드 Anders Roslund, 버리에 헬스트럼 Borge Hellstrom

옮긴이: 이승재

펴낸곳: (주)시공사

초판 1쇄 발행 2011년 8월 4일

 

최근에 읽은 책 중 단연 최고다. 책의 마지막 페이지까지 계속되는 반전이 인상적이었고, 그 내용이 제시하는 사회적인 화두 역시 여운을 남긴다.

 

이 책은 꼭 끝까지 읽어야 전체의 그림이 완성되는 글이다.

 

소재가 변태 소아성애자를 다루고 등장인물 여러 명이 어린 시절 성적으로나 폭력적인 학대를 당한 내용이 나와서 조금 거부감이 들긴 하지만 뒤로 갈수록 그보다는 사회적인 정의와 개인의 비극 등이 글의 중심이 된다.

 

정말 잘 쓰여진 사회 스릴러다. 이 작가들의 최초 한국 번역본인데 추리/스릴러에 관심있으신 분들께 꼭 권하고 싶다.

 

재소자들은 그곳을 자유롭게 오가며 아무 생각 없이, 지나간 적도 없고 앞으로도 올 일 없는, 오직 현재에만 존재하는 시간을 때우며 지낸다. 출소 날짜를 기다리는 건 아까운 생을 허비하는 행위일 뿐이다. 그곳에 들어와 등 뒤로 문이 닫히는 순간부터 당신이 해야 할 일은 오직 살아남아서 시간을 때우는 일 밖에 없기 때문이다. (pg 97) 

 

“덧붙일 말도 없어. 룬드는 누가 됐든, 죽었다 깨나도 절대 이해할 수 없는 그런 종자야. 우리한테도 위험한 인물이지만, 자기 자신에게도 위험한 인물이라고. 언제까지나 남들에게서 자기 자신을 보호할 순 없어. 인간은 자기 자신을 파괴할 수 있는 능력을 지닌 유일한 표유동물이야. 자신과 똑같은 인간을 증오하고 살해하고 위험에 빠뜨릴 수 있는 그런 존재라고. 그래서 벤트 룬드라는 인물을 이해한다는 건 불가능하다고.” (교도관 렌나트 오스카숀, pg 115)

 

산다는 건 정말 복잡한 문제다. 가끔은 더 이상 생을 이어나갈 엄두가 나지 않을 때도 있었다. 해를 거듭할수록 늙어가는 느낌만 들고 일이 벌어지는 속도는 감당이 안 될 정도로 순식간이다. 어떨 때는 모든 일이 그냥 알아서 지나도록 두 눈을 감아버리고 싶기도 했다. 누군가 대신 결정을 내려줬으면 좋겠다는 생강이 수시로 들었다. 마치 어렸을 때처럼. 그때는 바닥에 앉아 놀다가 그냥 눈만 감고 있어도 엄마와 아빠가 분주히 오가며 무언가를 대신해주었고, 다시 눈을 떴을 때는 모든 게 제자리로 돌아가 있었다. (교도관 렌나트 오스카숀, pg 122)

 

“전 이 세상 사람이 아닙니다. 가진 것도 없어요. 전에는 아이가 하나 있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그 아이도 저세상 사람이 되었습니다. 언제나 생명이란 걸 신성하게 여겨왔습니다. 그런데 그런 제가 살인을 저질렀습니다. 이젠 뭐가 뭔지 정말 모르겠습니다. 생명을 잃고 나면 뭐가 남을까요?” (프레드리크 스테판손, pg 405)

 

다섯 살짜리 여자아이를 살해한 살인범을 자신의 손으로 직접 죽인 어느 아빠의 사건을 두고 모두의 관심이 집중됐다.

아이를 잃은 슬픔과 고통을 이해하는 사람들.

동기를 떠나 살인은 단지 살인일 뿐이라는 사람들.

과감한 그의 결단과 사회를 보호하려 했던 그의 마음을 높이 사는 사람들.

정당방위를 주장하며 성범죄 전과가 있는 시민에게 집단 폭행을 가한 사람들.

온갖 사람들의 시선이 프레드리크 스테판손을 향하고 있다. (pg. 435)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에고이스트 - SYRomance
이서형 지음 / 신영미디어 / 2011년 1월
평점 :
품절


 

 

2012년 5월 17일

제목: 에고이스트

지은이: 이서형 (온라인: 라니)

펴낸곳: (주)신영미디어

초판 발행 2011년 1월 26일

 

조폭 출신으로 유흥업계에서 성공한 남주와 법조계 집안 출신의 기자인 여주라는 조금은 뻔한 설정임에도 불구하고 작가님의 뛰어난 필력이 재미있는 이야기를 만들어냈다.

 

무엇보다 주인공 최수혁과 강시원의 캐릭터가 생생하게 살아 있다. 책의 제목 ‘에고이스트’란 말과 어울리도록 두 사람은 주변 환경이나 사람들, 여건들보다도 각자의, 그리고 서로의 행복을 추구하는 것이 최우선인 인물들이다. 두 사람의 대화에서 톡톡 튀는 재미가 있고 개성 강한 주인공들을 만나서 즐겁다.

카리스마 강한 남자주인공과 역시나 강한 여자주인공을 선호하는 분들께는 추천한다.

 

책의 앞부분이 수혁이 소유하고 있는 바와 클럽으로 엮여 있는 것이 나름 특이하다.

하지만 폭력 조직의 대부를 배경으로 두고 유흥업계의 큰손이 된 남주나 법조계 집안을 배경으로 둔 기자인 여주 등의 설정은 조금 너무 식상하고 뻔하다. 이 두 사람이 서로 밀고 당기는 과정에서 이미 조금은 예측된 상황들이 차례대로 일어난다. 남주와 원한 관계에 얽인 인물에 의해 여자 주인공인 시원이 납치된다. 그것도 두 번이나 같은 인물에 의해서. 소재나 설정이 조금 식상하고, 스토리가 약간 억지스럽고 중복되는 느낌이 든다.

 

최고의 장면/대사:

 

“어떻게 할 건데요? 쥐도 새도 모르게 납치해서 낙도에 팔아 버릴 거예요?”

수혁은 윙체어 등받이에 머리를 기대고 시원의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훑어 내렸다. 그의 노골적인 시선에 시원의 눈에서 불길이 일었다.

“너처럼 못생긴 애는 상품 가치가 없어서 안 팔려. 낙도에 계신 분들 눈 높아.”

시원의 턱이 파르르 떨렸다. (pg 18)

 

“내가 무서워. 내가 겁나서 죽을 것 같다고!”

수혁의 외침이 병실 벽에 부딪쳤다. 시원은 천천히 눈을 깜박였다. 멍해져 있던 머리에 수혁의 목소리가 깊이 각인되는 순간 마비되었던 감각이 일시에 되살아났다.

수혁은 거칠게 머리를 쓸어 올리며 창가에 섰다.

“네가 다치는 걸 두 번 다시 보고 않을 거야.”

“자기 옆에서 지옥을 맛보라고 했던 그 대단한 이기심은 어디로 간 거예요?”

“그러는 넌, 사랑하지 않는 남자와 지옥행은 사절이라고 했잖아.”

“그래서 나와 헤어지겠다는 거예요? 차라리 죽으라고 할 땐 언제고, 왜 갑자기 사람 좋은 척하는 건데요?”

“사랑하지 않는 여자와의 지옥, 별로다.”

시원은 고집스러운 등을 보며 인상을 썼다.

.

.

.

“나 때문에 지옥을 맛본 거예요?”

“그래.”

시원의 입가에 행복한 미소가 떠올랐다.

“기분 좋다. 당신이 나 때문에 죽을 것 같았다니까. 나도 당신이 다칠까 봐 무서워서 죽을 뻔했거든요.”

수혁을 안은 팔에 힘을 주었다.

“절대로 난 안 떨어져요. 꼭 붙어 있을 거야.”

“시원아.”

“나 때문에 죽을 것처럼 무서워도, 나 때문에 겁이 나서 미칠 것 같아도 내 옆에 있어야 해요. 말했죠. 사랑하는 남자를 위해서 떠나는 짓 안 한다고. 그러니까 함께 지옥에 떨어져야 해요.”

.

.

.

"사랑해요.“

그녀의 담백한 고백에 수혁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침묵이 흘렀다. 마주한 시선이 서로를 빨아들일 듯 바라보았다.

“영원히 사랑해요, 라고 하지 않겠어요. 하지만 지금은 죽을 것처럼 사랑해요.”

그가 마침내 입을 열었다.

“영원히는 아니라고?”

“매일 오늘처럼 사랑한다고 해요, 그럼? 그런 거짓말 너무 웃기잖아요. 그냥 함께 지옥에나 떨어지자고요.”

수혁은 시원의 턱을 들어올려 당당하게 키스를 했다.

“좋아. 함께 지옥에 떨어지는 것도 나쁘진 않겠지.”

시원은 비딱하게 웃으며 수혁의 허리에 팔을 감았다.

“가슴 떨리는 사랑 고백이네요. 너무 로맨틱해서 눈물이 나올 것 같아.”

(pg 405-407)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용의자 X의 헌신 - 제134회 나오키상 수상작 탐정 갈릴레오 시리즈 3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양억관 옮김 / 현대문학 / 2006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2012년 1월 4일 완독

제목: 용의자 X의 헌신

지은이: 히가시노 게이고

옮긴이: 양억관

펴낸곳: (주)현대문학

초판 1쇄 발행 2006년 8월 10일

초판 30쇄 발행 2011년 8월 1일

 

이 남자는 누구일까, 하고 이시가미는 생각했다. 어디서 나타나, 어느새 야스코와 친해지고 말았을까.

택시에서 내려섰을 때 야스코의 표정을 이시가미는 지금도 또렷이 기억하고 있다. 그때까지 본 적이 없던 화사한 얼굴이었다. 어머니의 표정도 아니고 도시락 가게 점원의 표정도 아니었다. 그것이 바로 그녀의 본래 모습이 아닐까. 그때 그녀가 보여준 것이 그녀의 진정한 얼굴이 아닐까.

나에게는 결코 보여주지 않던 그 얼굴. 그러나 그녀는 이 남자에게 그런 얼굴을 보여주었다.

이시가미는 수수께끼의 남자와 야스코를 번갈아 바라보았다. 두 사람이 좁은 공간을 뒤흔들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초조감과 비슷한 감정이 이시가미의 가슴에 퍼져나갔다. (pg 166)

 

“순수하지요. 이시가미라는 사내 말입니다. 그가 구하는 해답은 늘 단순합니다. 몇 가지를 한꺼번에 구하지 않아요. 거기에 도달하기 위해 선택하는 수단 또한 단순해요. 그래서 망설임이 없지요. 사소한 일에 발목이 잡히거나 하지 않아요. 그렇지만 그런 삶의 방식이 그리 좋다고만은 할 수 없을 겁니다. 얻는 게 아무것도 없어요. 늘 그런 위험과 같이 하지요.” (pg 268, 유가와 마나부)

 

선입견은 적이야. 보이는 것도 감추어버리게 하거든. (pg 290, 유가와 마나부)

 

워낙 유명한 책이라 기대가 너무 컸던 것 같다. 책을 다 읽고 난 나의 감상은 그저그렇다, 였다. 꽤 극적인 마지막 반전도 아, 그랬구나, 정도였다.

 

그런데 조금은 실망을 하고 놓았던 이 책이 그 뒤로도 한동안 문득문득 생각이 났다. 묘한 느낌과 여운을 남긴다고 할까. 정말 그럴 수 있을까, 꼭 그래야만 했을까, 등등. 내 생각을 오랫동안 붙든 것은 이시가미의 행동이었다. 스스로를 몰아간 그의 행동, 결단. 그리고 그의 그런 결단과 희생에도 불구하고 그는 원하는 것을 이루지 못한다. 이들은 모두 인간이기 때문에.......

 

이 책은 내가 읽어본 최초의 일본 추리소설이다. 어린 시절 읽었던 영미의 추리소설과는 꽤 다른 느낌을 준다. 트릭이나 미스터리에 중심을 두기 보다는 그 안에 담긴 인간의 심리나 내면에 중점을 두는 것이 인상적이었다. 덕분에 한동안 일본추리소설에 빠져 있을 것 같다.

 

***요즘 포스팅 이미지들을 새로 올리고 있는데 우연히 발견했다. '용의자X의 헌신'이 올해 10월 한국에서 새로 영화로 만들어진단다. 부디 원작에 부끄럽지 않은 영상물이 되기를 기대해 본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김제동이 만나러 갑니다
김제동 지음 / 위즈덤경향 / 2011년 4월
평점 :
품절


 

 

제목: 김제동이 만나러 갑니다

지은이: 김제동

펴낸곳: (주)위즈덤하우스

초판 1쇄 발행 2011년 4월 21일

초판 50쇄 발행 2011년 11월 25일

 

나는 〈환상의 짝꿍〉을 진행하면서 만난 아이들 얘기를 했다. ‘사촌이 논 사면?’일고 물으면 ‘보러 간다’고 대답하는 아이들. 그 싱싱함에 덧씌워 ‘배가 아프다’고 가리치는 사회다. 함께 산에 갔던 윤도현 형의 딸이 ‘아빠가 개미를 밟았다’면서 30분간 울었던 얘기도 했다. 그런 아이들의 푸름을 어른들이 마치고 있는 게 아닐까? (pg 13, 김제동, 이외수 편)

 

간절하면 가 닿으리

너는 내 생각의 끝에 아슬아슬 서 있으니

열렬한 것들은 다 꽃이 되리

이 세상을 다 삼키고

이 세상 끝에 새로 핀 꽃 한 송이

 

-꽃 한 송이, 김용택 (pg 39)

 

박 변호사께서 갑자기 명함을 건네신다. 명함엔 ‘소셜 디자이너’라는 명칭이 새겨져 있다. 소셜 디자인? 생활과 사회와 사람을 바꾸는 디자이너라는 설명이다. 사람의 생각과 습관과 문화를 읽어내고 거기에 맞춰 무언가를 바꿔 상황을 업그레이드한다는 것. 이참에 나도 ‘스마일 디자이너’ ‘해피바이러스 디자이너’라고 새겨볼까? (pg 64, 김제동, 박원순 변화사 편)

 

지금까지 과학은 인간의 노동을 대체하고, 편하고 풍요롭게 살아보자는 방향으로 사용됐어요. 이에 대한 반성은 있어야 해요. 앞으로의 과학기술은 인간적 가치를 높이는 기술, 세상이 더 나은 방향으로 가는 것에 대해 기여하도록 해야 해요. 그러기 위해서는 질주하는 과학을 멈출 수는 없으니까 질주의 방향을 바꾸는 것이 필요하지요. 지금도 과학은 권력과 돈에 종속돼 있는데 이건 인간적 가치를 높이는 과학과 다르잖아요. 과학을 국가성장 동력으로 바라볼 것이 아니라 삶을 행복하게 해주는 합리적 사고이자 방법론으로 보고 싶어요. (pg 77, 정재승, 정재승 편)

 

그게 답답해? 남들이 나를 어떻게 보는 것, 그게 다 내가 한 일이고 나에게서 나온 거야. 내가 한 행동에 대해 그들이 판단하는 건 그들의 자유야. 남들의 생각까지 내 의도대로 맞추겠다고 하는 것은 또 다른 권력욕이지. 내가 주장한 건 핑크였는데 사람들이 받아들이는 것은 검정이 될 때가 있지. 그 간극을 줄이겠다고 나서는 것은 잔류형 인간이야. (pg 103, 고현정, 고현정 편)

 

내가 만든 작품에 대한 당당함과 자부심이 있거든. 그래서 내 작품에 대한 비판에는 언제든 정당하게 맞설 준비가 돼 있어. 요즘 선진국 되겠다고 발버둥들을 치잖아. 그런데 우리가 알고 있는 나름의 선진국에서 대중 아티스트들은 정말 존중받아. 이런 어려운 시대에 감성적으로 위안을 줄 수 있는 사람들은 박수 받을 만하지 않나? 연주, 노래, 연기, 개그 등 모든 작품 하나하나가 자기 고통을 갉아 먹으면서 창작한 산물이야. 난 내 작품에 한 점의 부끄러움도 없는데 그게 인기를 못 끌 때 도저히 이해를 못하겠어. 그러면서도 사람들이 무러 좋아할까 고민하며 좇아가는 식의 본질을 비트는 일은 하고 싶지 않아. (pg 141, 김C, 김C 편)

 

그럼, 우리가 지금 어떤 시대를 살고 있는 거죠?

겨울이죠. 그렇지만 겨울이야말로 생명이 싹트는 계절이에요. 어릴 때 어머니가 밀가루를 치대서 칼국수를 만드는데 그만하고 끓이면 좋겠다 싶은데도 자꾸 비벼 치대기를 반복해요. 그럴수록 칼국수의 면발이 쫄깃해져요. 전 그 칼국수의 면발이 역사가 전진하는 방법 같아요. 지금은 치대고 있지만 이 자체가 전진이죠. 태양만이 역사를 전진시키는 것은 아니라고 봐요. (pg 166, 안희정편)

 

후배들한테 잔소리를 마이 하는데 결국은 본인이 느껴야지. 마지막 공 하나까지 최선을 다하는 것. 땅볼로 날아간다고 뛰다 말고 돌아오는 거, 나는 인정 안 해. 안타가 아니더라도 전력을 다하면 송구 에러가 나고 그게 안타를 만들거든. 그게 진정한 프로지. 내가 나를 돕고 최선을 다해야 남도 나를 돕고 기회가 생기는 이치지. 야구뿐 아니라 인생이 그렇다 아이가. (pg 178, 양준혁 편)

 

어찌 보면 이 시대가 가장 불행해요. 일본 식민지 때 타인에 의해 말을 잃어버렸는데 지금은 우리 스스로가 우리말을 천시해요. 바깥을 나가보면 죄다 외국어를 우리말 발음으로 써놨는데 이게 무슨 짓인지……. 광화문 세종대왕상 뒤에 있는 꽃밭 이름이 ‘플라워 카펫’이래요. 이런 얼빠진 놈들이 있나. 스스로 식민언어정책을 펼치면서 식민지를 자초하고 있다니까. 물론 영어가 필요해요. 그렇다면 영어로 먹고 살아야 할 사람을 집중 양성하고 투자하면 돼. (pg 200, 조정래 편)

 

호텔에서는 야한 영화를 안 틀어줘서. 하하. 늘 좋은 것, 좋은 음식, 좋은 잠자리만 찾다보면 몸이 썩어. 진짜 취한 게 없어지는 거지. 시상식에도 그래서 안 가고 싶어. 작품보다 배우에게 스포트라이트가 모아지는 게 아주 싫어. 어떨 땐 레드카펫을 팍 찢어버리고 싶을 때도 있는데……. (pg 213, 황정민, 황정민 편)

 

울지마라

외로우니까 사람이다

 

살아간다는 것은 외로움을 견디는 일이다

공연히 오지 않은 전화를 기다리지 마라

눈이 오면 눈길을 걸어가고

비가 오면 빗길을 걸어가라

 

갈대숲에서

가슴 검은 도요새도 너를 보고 있다.

 

가끔은 하느님도

외로워서 눈물을 흐리신다

 

새들이 나뭇가지에 앉아 있는 것도

외로움 때문이고

 

네가 물가에 앉아 있는 것도

외로움 때문이다

 

산 그림자도 외로워서

하루에 한 번씩 마을로 내려온다

종소리도 외로워서 울려 퍼진다 

 

-수선화에게, 정호승

 

 

결빙의 순간은 뜨겁다

꽝꽝 얼어붙은 겨울강

도도히 흐르는 강물조차

일생에 한 번은

모든 흐름을 멈추고

서로 한 몸을 이루는

순간은 뜨겁다

 

-결빙, 정호승

 

20년을 견디는 힘은 하루하루 찾아오는 깨달음이었어요. 그래서 그 시절을 ‘나의 대학 시절’이었다고도 술회하지요. 뭔가를 깨닫는 삶은 견디기 쉬워요. 감옥에서 보면 나가는 날만 기다리는 단기수들이 더 괴로워했어요. 나 같은 무기수는 사간이 지난다고 빨리 나가는 게 아니니까 오히려 하루하루가 의미가 있었어요. 우리 삶도 그래야 해요. 성과, 속도, 효율…… 뭔가에 자꾸만 도달하려고 하는데 잔혹하고 비인간적인 거죠. 삶과 인생에 대한 생각이 부족하다 싶어요. (pg 289, 신영복, 신영복 편)

 

2011년 한국의 출판계는 시사, 사회 이슈가 중심이었던 것 같다. 연말에 여러 곳에서 나오는 가장 많이 팔린 책 목록 중에 빠지지 않는 책들이 있다. ‘아프니까 청춘이다’, ‘닥치고 정치’, 정치 풍자 토크쇼 ‘나는 꼼수다’와 '청춘콘서트'가 화제가 된 해. 이건 아마도 현 한국사회가 이런 이슈들에 깊이 고민하고 첨예하게 갈등하고 있다는 것을 말해주는 것일거다.

 

사람들은 살아가는 것에 힘들어 하고, 그 힘듦을 이길 해법을 찾는다. 그 해법을 찾는 하나의 방법으로 사람을 만나 소통하려 한다.

 

이 책 ‘김제동이 만나러 갑니다’도 이런 맥락의 책 중 하나이다. 방송인 김제동 씨가 경향신문에 [김제동의 똑똑똑]이라는 칼럼에 실었던 이 시대의 흥미로운 인물들과 만나 나눈 내용들을 간추려 책으로 엮은 것이다.

 

심각하거나 깊이가 있는 내용은 아니다. 이 시대를 살아가는 각양각층의 흥미로운 사람들을 가볍게 만나고 부담없이 사는 얘기를 들을 수 있다는 것이 이 책의 매력이다.

 

편당 길이도 짧아서 짬짬이 읽기 좋다. 평소 책을 잘 읽지 않는 남편에서 지하철에서 읽기를 권한 책이다. 일주일 뒤 출퇴근 시간을 이용해서 완독했다는 보고가 있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선물 The Present
정다움 지음 / 발해 / 2008년 5월
평점 :
품절


 

2012년 5월 23일

제목: The Present [선물]

지은이: 정다움 (온라인: 스스와타리)

펴낸곳: 동아 & 발해

초판 발행 2008년 5월 16일

 

사람은요, 태어나는 순간부터 죽음을 맞으러 살아가는 거예요. 그 기간이 하루가 될 수도 있고 일 년이 될 수도 있고 30년, 60년, 길게 100년을 산다고 해도 그 끝엔 언제나 죽음이 기다리고 있는 거지요. 돈이 많든 적든, 화장이 돼 육신의 재가 훨훨 뿌려져도, 아무리 넓은 땅을 차지하고 묻혀도 결국은 다 똑같은 끝인 거죠.”

조용히 말하고 있는 재인의 얼굴에 준하의 시선이 닿았다. 늘 생생하던 표정이 착잡해 보였다.

“사람들은 무심하게 오늘 잠자리에 들면서 내일은 꼭 해야지 하고 결심하지만 내일이 안 올 수도 있다는 걸 자꾸 잊어버려요. 만약 내일이 없다는 걸 미리 안다면 오늘 하고 싶은 일이 얼마나 많겠어요. 미련이 남지 않도록, 매일매일 하고 싶은 것을 하고, 하고 싶은 말을 하며 살아야 하는 거예요." (pg. 137-138)

 

"당신이 그랬잖아 내일이 없을지도 모르니까 오늘 하고 싶은 거 다 해야 한다고. 그러니까 난 당신이랑 결혼할 거야. 그래서 당신이든 나든 누구의 오늘이 먼저 끝나더라도 그때까지 살아낼 거야. 당신이 없는 내일이 죽을 만큼 아파도, 그래도 오늘 만큼은 마주보고 싶다." (pg. 359)

 

앞부분이 어딘가에서 본듯한 할리퀸 한 장면이 연상되어서 조금 추춤했던 것을 제외하면 정말 재미있게 봤습니다. 전체적으로 잔잔하면서도 따뜻하고 기분 좋은 글이었습니다.

 

 

과거의 아픈 가족사를 미래에 되갚으려 했던 남자, 이준하와 불투명한 미래를 걱정하기 보다는 현재를 최선을 다해 충실히 살아가는 여주 서재인이 만나 사랑하는 이야기입니다. 두 사람은 서로 만나 알게 되고 사랑하면서 서로 조금씩 변해 갑니다. 그 이야기가 참 따뜻하고 재미있게 그려져 있습니다. 남주는 여주를 만나 아픈 과거보다는 밝은 미래를, 여주는 남주를 만나 희망찬 미래로 용감하게 한 발 성큼 나아갑니다.

 

혹시라도 소개글을 보시고 여주가 시한부라고 생각하실지 모르지만 그렇지는 않습니다. 단지 조금의 건강상의 문제가 있을 뿐입니다. 하지만 이 이야기에 제가 조금 감탄한 점은 남주의 아픈 가족사나 여주의 건강상의 문제가 이야기의 큰 흐름인 두 사람의 사랑하고 변해가는 모습을 가리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차가운 머리와 따뜻한 가슴을 가진 두 주인공입니다. 남주의 카리스마에 묻히지 않는 여주를 보고 싶은 분들, 마음 따뜻하고 기분 좋은 이야기를 원하는 분들께 추천드립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처음 처음 | 이전 이전 | 11 | 12 |다음 다음 | 마지막 마지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