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cret Garden Promo (Puffin Classics) (Paperback)
프랜시스 호지슨 버넷 / Puffin / 200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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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Story of Life and Miracle, 

Frances Hodgson Burnett <The Secret Garden>   

     

나는 대학을 가기 위해 처음 미국에 와서 지금까지 살고 있다. 꽤 오랜 학업과 직장생활로 영어로 글을 읽는 것이 낯설지는 않다. 한문이나 한자어에 익숙하지 않아서이기도 하지만 전공이나 일에 관계된 분야는 사실 한국어보다 영어가 더 쉽다. 

  

하지만 근래 들어 내 영어가 참 많이 부족하다는 걸 느낄 때가 많다. 주변의 가까운 이들이 거의 모두 한국인들이라 평소 대부분의 시간을 한국말을 쓰며 지내는 탓에 세월이 흘러도 영어가 일정 수준 이상 늘질 않는다. 말하고 듣는 것이 주가 되는 일상생활에는 큰 어려움이 없지만, 읽기와 쓰기는 정말 이래도 괜찮은가 싶을 때가 있다.

난 십대 후반에 외국으로 나와 외국인학교를 다니다가 미국에 있는 대학에 진학했다. 이 과정에서 나의 영어공부는 엉망이 되었다. 어찌어찌하다 보니 ESL(English as a Second Language)과정을 거치지 못했고 영어문법이나 영작문을 체계적으로 배울 기회가 없었다. 

 

한국에서는 영어를 중학교 때부터 제대로 배우기 시작했는데-내 때는 그랬다. 요즘은 조기교육의 열기에 훨씬 일찍 영어공부를 시작하는 것 같지만-한국에서 겨우 영어의 기초를 배웠을 때쯤 나는 외국인학교로 전학을 했다. 그런데 거기서는 그 나이에 문법이나 쓰기의 기초 등을 배울 일이 없었다. 그쪽 교육과정에서야 이런 기초는 훨씬 낮은 학년에서 모두 마쳤으니까. 결국 나는 주먹구구씩으로 생존형 영어를 배우게 되었고 항상 스스로 영어공부가 많이 부족하다고 느껴왔다.  

 

그래서 올해 초 새해를 시작할 때 계획한 것 중 하나가 영미문학을 원서로 읽어 나가는 것이었다. 제목은 들어 알고 있지만 아직 읽어보지 못한 책들, 번역서를 읽고 정말 좋아했던 영미권 책들을 차근차근 한 권씩 읽어보자는 것이다.  

 

그리고 삼월도 거의 끝나가는 지금 드디어 첫 번째 책을 마쳤다. 책 선택을 잘못한 것인지 읽는데 한참이 걸렸다. 계획은 쉬운 어린이 책부터 하나씩 읽어 나가는 것이었는데 아무래도 내용이 아이들 눈높이에 맞춰져 있다 보니 그다지 재미를 느끼지 못해서 읽는데 여러 날이 걸렸다 

  

이 계획의 시작으로 고른 책은 고전 중의 고전 ‘The Secret Garden’(‘비밀의 화원’)이다. ^^;; 난 이 책을 제목만 어디선가 주워들었지 한국어로든 영어로든 한 번도 읽어본 적이 없다. 주로 6세 이상의 어린이를 위한 아동도서이지만 아동도서 치고는 분량이 꽤 만만치 않다. 시리즈에 있는 다른 책들과 비교해 보면 이 책이 가장 두껍다.  

 

다 읽고 나서 나는 고개를 끄덕끄덕했다. 역시 고전이 고전인 데는 분명 이유가 있다. 진한 감동과 큰 재미가 있다. 초반에는 지루해서 하루에 두어 장을 겨우 읽었지만 중반을 넘어가자 이야기에 빠져 단숨에 끝까지 읽었다. 아직 읽어보지 못한 분들은 꼭 한 번 읽어보시길 권한다. 다만 영어를 공부하기 위해서 원서를 읽는 분들께는 이 책을 추천하고 싶지 않다. 백여 년 전에 써진 글이라 현대에는 잘 쓰지 않는 단어나 표현도 많고 배경이 영국 요크셔라서 그곳 사투리가 많이 삽입되어 있다.  

 

아래에는 이 책에 대한 나의 짧은 감상문을 영어로 적어본다. 읽기에 이어 쓰기도 연습을 해야 하기에.

******

 

This is a story about magic, love, growth and miracle.

 

Mary Lennox was born in India to British parents. Because both her parents were so wrapped up in their own lives and neglected their child, Mary Lennox was raised by Indian nannies and servants. Spoiled and not loved, Mary Lennox was an angry, rude and sour-faced child. When she was ten years old, her parents and most of servants were killed by cholera. She was discovered alone but alive in the empty house. Orphaned, she was sent to Yorkshire, England to live with her uncle, Archibald Crave at a place called Misselthwaite Manor.

In the manor, bored all by herself Mary ventured out and discovered a closed garden. And soon with a friendly robin’s help she discovered a key to the garden’s locked door. Inside the door lied a gray-colored, long abandoned garden surrounded by four walls. The garden belonged to Mrs. Craven who died ten years ago. After her death, it has been locked and forbidden to everyone at the manor. At first, everything in the garden seemed to be dead. But at close look Mary found little signs of life and determined to make it alive again. It became her secret garden.

 

But she was inside the wonderful garden, and she could come through the door under the ivy any time, and she felt as if she had found a world all her own. (pg. 90)

 

Through her maid, Martha, Mary met her brother Dickon, a twelve-year-old boy who virtually lived on the moor and seemed to communicate with animals and plants. These two children started on working on the secret garden. Under their loving hands, the garden started to come alive. And with the garden Mary herself became healed in body and mind.

One night, Mary heard someone’s crying and discovered a small boy. His name was Colin Craven. He was Mary’s cousin. Colin was sick and stayed in the bed most of his ten-year life. His mother died giving birth to him and his father could not bear looking at him overwhelmed by the sorrow of loss of his wife. Colin believed that he was crippled and dying. After their first meeting, Mary secretly visited Colin every day and talked to him about the moor in the spring, Dickon and their secret garden.

Dickon and Mary convinced Colin to go outside and see the garden himself. Surrounded by newly awakened nature Colin started to believe that he himself could recover.

 

‘You’ll get plenty of fresh air, won’t you?’ said Mary.

‘I’m going to get nothing else,’ he answered. ‘I’ve seen the spring now and I’m going to see the summer. I’m going to see everything grow here. I’m going to grow here myself.’ (pg. 251)

 

The story starts in the winter, goes through spring and summer and ends in the autumn. This natural cycle reflects changes in the secret garden as well as remarkable transformations of Mary and Colin. Like the garden the two unloved and neglected children become alive and starts to grow healthy and beautiful with love and attention.

 

When I was reading the book, it struck me odd how the focus of the story shifts from Mary to Colin. It turned out that the author’s young son died not long before this book was written. It is likely that when she wrote about Colin, she thought of her own dead son. She probably wished that what happened to Colin is what could have happened to her son. Her writing was her healing.

Finished: March 29, 2013 (완독: 2013329)

Title: The Secret Garden (제목: 비밀의 화원)

Author: Frances Hodgson Burnett (작가: 프랜시스 호즈슨 버넷)

Reading level: Ages 6 and up (읽기 수준: 6세 이상)

Hardcover: 544 pages (양장: 544)

Publisher: Penguin Classics (September 28, 2010)

*‘The Secret Garden’ was first published in its entirety in 1911.

비밀의 화원1911년에 처음으로 전체가 출간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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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파일러 1
김도경 지음 / 디앤씨미디어(주)(D&C미디어) / 200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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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이야기의 여자주인공인 도정우는 현대 이십 대 중반의 나이로 미국 FBI의 프로파일러다. 한국의 손꼽히는 재벌인 태선조선 창업주의 유일한 손녀인 그녀는 어린 시절부터 천재로 세간의 이목과 관심을 끌었다. 정우는 십대가 되기 전에 벌써 한국 최고의 대학에서 법학을 공부하고 미국으로 건너가 의학과 심리학을 공부했다. 하지만 불행한 사고로 부모님과 할머니를 한꺼번에 잃고 세상으로부터 스스로를 격리한 채 살아간다. 그러던 중 우연히 한국의 연쇄살인 사건을 돕게 되고 그 와중에 하나 남은 혈육인 할아버지가 돌아가시면서 한국으로 들어오게 된다.

 

할아버지의 장례를 치르다가 쓰러져 입원을 하게 된 정우는 자신이 입원해 있는 고구려종합병원이 연쇄살인과 관련이 있는 것을 알게 되고 사건에 직접 관여하게 된다.

미국 발티모어에 있는 존스홉킨스 대학에서 연구원으로 일하던 이시현은 스승이자 은인인 전 병원장 이동민의 부탁으로 일 년 전 삼십 대 중반의 젊은 나이로 고구려종합병원의 병원장이 되었다. 고아인 그는 뛰어난 능력과 끊임없는 노력으로 스스로를 만들어왔다. 몸가짐이나 옷차림 어디에도 빈틈이 없는 그는 결벽증을 가진 완벽주의자다

.

병원에서 VIP환자와 병원장으로 만난 두 사람 사이에는 처음부터 불꽃이 튄다.

 

나름 참신한 소재와 스토리, 독특한 인물설정에도 불구하고 읽는 것이 너무 힘들었다. 재미가 없는 것도 아닌데 왤까? 한참을 생각했다. 그래서 내린 내 나름의, 너무도 개인적인 분석(?) 내지 짐작을 써 볼까 한다.

이 이야기의 큰 축을 이루는 것은 두 가지다. 스릴러와 로맨스. 그런데 내가 지금까지 본 다른 로맨틱 스릴러나 스릴러를 가미한 로맨스와 달리-이런 글들은 한 가지에 중심을 두고 다른 요소는 부수적인 것이 보통이다.-이 책은 이 두 가지 요소가 비슷한 비중으로 섞여 있는 것 같다. 그리고 그 두 가지가 한참 뒤에까지 그다지 섞이지 않는다. 물론 스토리상으로는 서로 연결되어 있지만 실질적으로 이야기의 절반이 지나도록 별 상관없이 따로 진행된다. 마지막 위기, 결말 부분을 제외하고는 시현은 이 사건에 거의 관련이 없다. 두 가지의 이야기가 뒤섞여 따로 부유하는 느낌이다.

 

개인적으로는 로맨스보다는 스릴러 쪽이 좀 더 재미있었다. 처음 오십 장을 읽었을 때 범인을 짐작할 수 있어서 허망했는데 뒷부분에서 뜻밖의 반전이 있어 깜짝 놀랐다.

201331일에 종이책으로 읽다.

제목: 프로파일러 1&2

지은이: 김도경

펴낸곳: 디앤씨미디어

초판 1쇄 발행 20099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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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순한 열정 (무선) -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99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99
아니 에르노 지음, 최정수 옮김 / 문학동네 / 201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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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짧지만 인상 깊은 글이다. 이 책을 다 읽은 지금 난 이 글에 대해 익히 들었던 적나라하고 노골적인 표현등의 평가에는 별로 공감이 가지 않는다. 이미 많은 이들에게 들어서 식상하여진 탓인지 아니면 그저 나의 감수성이 거기까지여서인지는 모르겠다.

 

 

   ‘자전적, 전기적, 사회학적 글이라는 문학적 평가에 대해서는 대충 이해는 하면서도 그저 그런가 보다, 하는 감상이 전부다. 작가 본인의 경험을 바탕으로 썼으니 자전적, 전기적글이고, ‘사회학적 글이라는 평가는 이 글보다는 계층에 따른 사회적, 문화적 차이를 다룬 작가의 다른 작품의 연장선상에서 더해진 것 같다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이 글 자체에 대해 말하자면 그 서술 방식과 소재가 흥미롭다. 이 글은 유부남이자 외국인인 한 남자와의 사랑에 대해 여자의 일인칭 시점에서 쓰인 글이다. 줄거리가 있는 이야기라기보다는 단편적인 기억과 감상의 두서없는 서술들이 전부다. 일인칭 시점에서의 서술임에도 스스로의 자아를 멀리 떼어놓고 바라보며 분석하는 듯한 담담하고 때로는 냉정한 서술이 인상적이다. 하지만 자신의 일상과 의식의 전부를 오직 하나, 남자와 그 남자와 자신의 관계로만 채우는 열정과 집착은 차분하지도 담담하지도 않다. 그래서 그 대조가 더 깊은 인상을 남긴다.

 

작년 9월 이후로 나는 한 남자를 기다리는 일, 그 사람이 전화를 걸어주거나 내 집에 와주기를 바라는 일 외에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pg. 11)

 

여자의 상대 남자에 대한 열정과 집착은 어쩌면 관계의 한계에서 오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래갈 수 없는, 끝이 멀지 않은 관계이기에 더 안타깝고 열정적이고 모든 것을 쏟아 부을 수 있는 관계.

 

우리가 지금까지 몇 번이나 사랑을 나누었는지 헤아려보았다. 사랑을 할 때마다 무언가 새로운 것이 우리 관계에 보태어진다는 느낌이 들었지만, 동시에 쾌락의 행위와 몸짓이 더해지는 만큼 확실히 우리는 서로 조금씩 멀어져가고 있었다. 우리는 욕망이라는 자산을 서서히 탕진하고 있었다. 육체적인 강렬함 속에서 얻는 것은 시간의 질서 속에 사라져갔다. (pg. 17)

 

글의 곳곳에서 나는 여자가 남자라는 대상보다는 남자를 사랑하는 자신에게 집착하고 열광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느낌을 받았다. 여자는 평소의 지적이고 냉정한 자신으로서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무모하고 집요한 열정에 스스로 탐닉하고 도취된 것 같았다. 인생에 언제 또 다시 경험할지, 아니, 다시 경험할 수 있을지조차 알 수 없는 예외적이고 일탈적인 심리 상태에 흠뻑 빠진 스스로를 즐기고 있는 것 같은 느낌. 그리고 그 느낌을 놓지 않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모습. 그렇기에 열정 가운데서도 때때로 냉정한 일면이 비어져 나오는 것을 막을 수 없는 자의적인 모습들이 엿보였다.

 

요즈음 나는 내가 매우 소설적인 형태의 열정을 지닌 채 살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렇지만 지금으로서는 그걸 어떤 형식으로 써야 할지 잘 알 수 없다.

(중략)

나는 언제나어느 날사이에서 끊임없이 동요하면서 열정의 기호들을 모으고 있다. 그 기호들을 한데 모으면 나의 열정을 좀더 사실적으로 그려낼 수 있을 것 같았다. 사실을 열거하거나 묘사하는 방식으로 쓰인 글에는 모순도 혼돈도 존재하지 않는다. 그런 글은 순간순간 겪은 것들을 음미하는 방식이 아니라, 어떤 일을 겪고 나서 그것들을 돌이켜보며 남들이나 자기 자신에게 이야기하는 방식인 것이다. (pg. 26)

 

나는 이 글을 읽으면서 나의 첫사랑을 떠올렸다. 보통보다 늦은, 성인이 되고나서야 겪은 나의 첫사랑에 대한 기억이 그녀의 글 위로 겹쳐졌다. 나름 자의식이 강하고 스스로에 대해 분석적인 탓일까. 

 

2013년 2월 26일 종이책으로 읽다.

제목: 단순한 열정 Passion Simple (원작: 프랑스, 불어)

지은이: 아니 에르노 Annie Ernaux

옮긴이: 최정수

펴낸곳: ()문학동네

양장본 초판 발행 2012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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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인의 역사 뫼비우스 서재
케이트 앳킨슨 지음, 임정희 옮김 / 노블마인 / 200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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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Title: Case Histories
Author: Kate Atkinson

 

2013년 2월 8일 종이책으로 읽다.

 

    

띠지에 적혀 있는 ‘최근 10년간 발표된 미스터리 중 최고의 작품’이라는 선전 문구에 혹해서 이 책을 읽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 책의 내용은 절묘한 트릭이나 반전을 기대했던 나의 예상을 완전히 빗나갔다. 뒤늦게야 나는 내가 그 문구 위에 작게 쓰여 있던 ‘영국 최고의 휴먼 미스터리 작가’라는 말을 대충 보아 넘겼음을 깨달았다. 특히 ‘휴먼’이라는 단어를.

난 이 책을 미스터리나 스릴러라고 말하기가 주저된다. 비록 세 가지 실종, 살인 사건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펼쳐지지만 그 중심은 사건의 추적이나 해결이 아닌 그 사건들에 얽힌 사람들의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이 이야기는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영국의 캠브리지와 옥스퍼드를 배경으로 펼쳐진다.

주인공 잭슨 브로디-이 이름 때문에 한참을 웃었다. 너무도 사립탐정다운 어감을 가진 이름이다.-는 이혼을 한 후, 경찰을 그만두고 사립 탐정이 되었다. 잭슨은 한 해 전에 이혼을 하고 어린 딸 말리와 떨어져 지내게 된 것에 아직도 적응을 못해 힘겨워 한다. 그런 그에게 세 가지 사건이 비슷한 시기에 각기 다른 경로를 통해 들어온다.

그 첫 번째는 삼십사 년 전에 실종된 올리비아 랜드 사건이다. 당시 세 살이었던 랜드 가의 네 자매 중 막내 올리비아는 1070년 어느 여름 날 밤 언니 아멜리아와 함께 자신의 집 정원에 있는 텐트에서 잠을 자다가 사라졌다. 당시 경찰은 아이의 행방에 대한 어떤 실마리도 찾지 못한 채 수사를 접어야 했다. 그리고 삼십사 년이란 시간이 흘러 자매들의 아버지가 사망한다. 아멜리아와 줄리아는 사망한 부친의 유품들을 정리하다가 동생 올리비아와 함께 사라졌던 인형을 부친의 책상에서 발견하고 잭슨에게 사건을 재수사해서 진실을 밝혀주길 요청한다.

두 번째 사건은 무참히 딸을 살해한 범인을 찾기 바라는 아버지의 의뢰이다. 여러 건강상의 문제로 자신이 오래 살지 못할 것이라 생각한 테오 와이어는 십년 전인 1994년 자신의 변호사 사무실에서 일을 돕다가 무참히 살해당한 딸 로라를 살해한 범인을 죽기 전에 밝히고 싶다는 열망에 잭슨을 찾아온다.

1979년, 당시 갓난아이의 엄마였던 미셸 플레처는 도끼로 남편의 머리를 찍어 살해했다. 그녀의 여동생인 셜리 모리슨은 잭슨을 찾아와 미셸의 딸인 탄야를 찾아달라고 한다. 사건 당시 어린 소녀였던 셜리는 언니의 부탁을 받고도 조카 탄야를 돌볼 수 없었다. 여러 곳에 맡겨져 자라던 탄야는 결국 가출을 거듭하다가 소식이 끊어졌다.

 

군인과 경찰로 근무했던 경력이나 커다란 덩치에 어울리지 않게 정이 많고 마음이 여린 잭슨은 이 사건들을 맡아 조사해 나간다. 그리고 그 과정 속에서 사건들에 연루된 사람들과 얽히고 부딪히게 된다. 사건들의 진실이 하나둘 파헤쳐지고 때로는 경악스럽고 때로는 슬픈 진실의 한 조각이 드러날 때마다 그는 함께 아파하고 슬퍼한다. 작가 케이트 앳킨슨의 인간들에 대한, 인간사의 수많은 비극에 대한 따뜻한 시선과 동정어린 마음이 주인공인 잭슨 브로디를 통해 표현된다.  

 

너희가 진리를 깨닫게 될 것이다.

그리고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할 것이다.

-요한복음 8장 32절

 

그리고 글의 시작에 작가가 던져 놓은 이 성경의 한 구절처럼 잭슨의 도움으로 자신들의 삶에 지워지지 않는 충격과 고통을 안겨 주었던 사건들의 진실을 마주하게 된 사람들은 그 안에서 각자 다른 깨달음을 얻고 다른 자유를 찾게 된다.

이 책을 끝까지 모두 읽고 난 지금, 나는 이 글을 미스터리나 스릴러 형식으로 쓰인 한편의 휴먼드라마라고 말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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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브리맨
필립 로스 지음, 정영목 옮김 / 문학동네 / 200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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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12월 23일에 종이책으로 읽다.

원작 Everyman은 2006년 미국에서 영어로 출간 되었다.    

 

 

필립 로스는 몇 해째 해마다 강력한 노벨 문학상 후보로 거론된다고 한다. 이 책을 통해 나는 이 작가의 글을 처음 접했다. 역시나 허명이 아니었다. 그리 길지 않은 글이지만 일생을 작가로 전념해온  필립 로스의 깊이와 관록 완연히 느껴진다. 모자라지도 넘치지도 않는, 그래서 더 가슴에 와 닿는 인상 깊은 글이었다.

 

 

이 이야기는 뉴저지의 한 황량한 공동묘지에서 치러지는 주인공의 장례식에서부터 시작된다. 그의 가족과 친척들, 생전 그를 알았던 동료와 친지들이 모여 그의 생전에 있었던 일들을 추억하고 그의 시신을 땅에 묻고 떠난다. 그리고 그의 이야기가 시작된다.

이야기는 그의 어린 시절로 거슬러 올라갔다가 천천히 다시 더듬어 내려오며 그 사이사이 그의 노년의 삶을 교차해서 보여준다.

 

주인공 ‘그’는 1933년 미국 뉴저지 엘리자베스라는 곳에서 작은 보석상을 하는 유태인 아버지와 헌신적인 어머니의 둘째 아들로 태어났다. ‘그’는 평생 세 번 결혼했고 세 번 이혼을 했다. 첫 결혼에서 두 아들을, 두 번째 결혼에서 딸을 두었다. 두 아들은 이혼으로 그들을 떠난 ‘그’를 평생 미워했고 딸은 그를 사랑했다. ‘그’는 평생 광고 쪽 일을 하며 능력을 인정받아서 꽤 높은 자리까지 오르기도 했다. 그리고 적당한 나이가 되어서 편안한 노년을 계획하며 퇴직했다. 퇴직해서도 뉴욕에 살고 있던 ‘그’는 9.11을 겪고 저지쇼의 은퇴자 마을로 이주를 해서 한적한 노년을 보낸다.

 

아무리 어렸을 때부터 사랑하던 바다라 한들, 오직 그 바다만 보며 보낼 수 있는 시간이 얼마나 되겠는가? 조수가 밀려오고 밀려나가는 것을 한참 지켜보다보면, 바다를 바라보며 백일몽에 빠지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그렇겠지만, 모든 사람에게 그렇듯이 자신에게도 삶이 우연히, 예기치 않게 주어졌으며, 그것도 한 번만 주어졌으며, 거기에는 알려진 또는 알 수 있는 이유가 없다는 사실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pg. 131)

 

작가는 의도적으로 주인공 ‘그’의 이름을 알려주지 않는다. 그는 우리 중 누구일 수도 있는 에브리맨(everyman)이다. ‘그’는 삶의 어떤 면에서는 적당히 성공하고, 또 어떤 면에서는 실수도 하고 실패도 경험한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인물이다. 오십 대에는 젊은 여자와 바람이 나서 두 번째 결혼에 실패하고, 나이가 들어 무기력해지자 사라지는 젊음에 절망하며 젊은 여자에게 추파를 던져보기도 한다.

 

이 모든 과정을 작가는 감정이 넘치지도, 그렇다고 메마르지도 않은 담담한 어조로 서술해 나간다. ‘그’가 노년이라는 피할 수 없는 상황에서 겪게 되는 일련의 건강상의 위기들과 그에 따라오는 무력감과 위기감, 불안조차도.  

 

그와 함께 일했던 사람들은 이미 죽었거나, 병들어 죽을 날을 기다리고 있다. 건강상의 문제가 없던 그의 두 번째 아내는 갑자기 뇌졸중으로 쓰러져서 마비가 온다. 은퇴자 마을에서 알게 된 이들의 장례식에 참석하게 된다. ‘그’ 자신은 일곱 해에 걸쳐 매년 크고 작은 수술을 받게 되고 그럴 때마다 그의 곁을 지키는 사람들은 줄어간다.

 

그러나 그가 알게 된 것은 삶의 종말이라는 피할 수 없는 맹공격이 가져온 결과 전체와 비교하자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그가 긴 직장생활 동안 사귄 모든 사람의 괴로운 사투를 알았다면, 가각의 사람들의 후회와 상실과 인내에 담긴, 공포와 공황과 고립과 두려움이 담긴 고통스러운 이야기를 알았다면, 이제 그들이 떠나야 할 것, 한때 그들에게 생명과도 같았던 그 모든 것을 알았다면, 그는 하루 종일, 도 밤늦도록 계속 전화기를 붙들고, 전화를 적어도 수백 통은 해야 했을 것이다. 노년은 전투가 아니었다. 노년은 대학살이었다. (pg. 162)

 

그러나 이제는 수많은 노인들과 마찬가지로 그도 점점 줄어드는 과정에 있었으며, 종말이 올 때까지 남아 있는 목적 없는 나날이 자신에게 무엇인지 그냥 있는 그대로 보아야 할 것 같았다. 목적 없는 낮과 불확실한 밤과 신체적 쇠약을 무력하게 견디는 일과 말기에 이른 슬픔과 아무것도 아닌 것을 기다리고 또 기다리는 일. 결국 이렇게 되는 거야. 그는 생각했다. 이거야 미리 알 도리가 없는 거지. (pg. 167)

 

그의 노년은 외롭고 비참하다. 노쇠해지는 몸에는 점점 수술로 인한 흉터자국이 늘어가고, 그의 정신은 지나온 삶에 대한 후회가 늘어난다. 그리고 그는 몇 번째 되풀이되는 수술을 받다가 심장마비로 죽음을 맞는다.

 

이야기의 마지막은 이야기의 처음에 나오는 첫 유년의 기억으로 돌아간다. ‘늘씬한 상처 하나 없는 몸’과 바다. 아버지와 보석상. 노년의 대학살이 시작되기 훨씬 전의 기억으로.

 

그는 떠날 수가 없었다. 자신의 연약함을 감당할 수가 없었다. 모두가 지금 살아 있기를 바라는 갈망, 그래서 모든 것을 다 다시 시작할 수 있기를 바라는 갈망도 감당할 수가 없었다. (pg. 177)

 

이 책은 2006년 5월에 미국에서 처음으로 출간되었다. 작가인 필립 로스가 이 이야기의 주인공과 같은 1933년생이니 그의 나이 만 일흔셋일 때 책이 나온 셈이다. 노년에 대한 그의 직접적인 경험이 녹아 있어서 그런 것일까, 이 이야기는 참 사실적이다. 감정적이거나 극적이지 않다. 그래서 더 절절하게 느껴진다. 누구나 겪을 법한 나이 들어가는 것, 노쇠에서 오는 건강상의 문제들, 그와 함께 오는 현재에 대한 불안과 외로움, 과거에 대한 회한과 후회들이 가슴을 치며 와 닿는다.

 

한 해의 끝을 맞으며 늙음과 죽음에 대해 생각해 본다. 나의 노년도 이렇게 한 해 더 가까이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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