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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여울의 문학 멘토링 - 문학의 비밀을 푸는 18개의 놀라운 열쇠
정여울 지음 / 이순(웅진) / 2012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2013년 1월 4일에 종이책으로 읽다.
난 때때로 ‘책에 대한 책’을 찾아 읽는다. 이런 책들은 지금까지 몰랐던 새로운 책들을 소개해 주기도 하고 독서에 대한 새로운 의욕을 불러 오기도 한다. 그래서 이번에 골라든 책이 ‘정여울의 문학 멘토링’.
2012년에 출판 된 책으로 제목에 ‘멘토링’이 들어간 것이 조금 걸리기는 했지만-2012년 하반기에 들어오면서 ‘멘토’나 ‘힐링’, ‘위로’란 단어가 들어간 책들은 피해 다녔다. ^^;;-워낙 평이 좋아서 집어든 책이다. 다행히 제목만큼 내용은 유행을 타거나 한시적이지 않았다.
이 책은 문학 참고서와 문학 이론서 ‘사이’에 위치하고자 한다. (pg. 6, 서문)
저자의 이 말이 이 책을 가장 잘 묘사하는 것 같다. 본격적인 참고서라고 보기에는 개인적인 에세이에 가깝고, 이론서라고 하기에는 글들이 서정적이고 주관적이다. 하지만 문학을 좋아하고 좀 더 깊이 이해하고 싶은 열망을 가진 사람들에게는 개론적인 참고서나 이론서의 역할도 톡톡히 할 수 있을 것 같다. 물론 일반적인 참고서나 이론서보다 훨씬 흥미롭고 쉬운 글들을 통해서 말이다.
이 책은 세 부분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구성과 목차가 책의 내용과 저자의 의도를 가장 잘 드러내는 것 같아 아래에 간단히 올려본다.
1부
문학의 역할
2부
문학의 기법
3부
문학의 내용
이 책은 독서에세이로 읽어도 좋을 것 같고 문학의 이해를 넓히기 위한 교양서적으로써도 손색이 없다. 물론 논술을 준비하는 학생들에게도 도움이 될 것이다.
한 번에 쭉 읽는 것 보다는 다른 문학 서적들을 읽으면서 병행해서 한 장(chapter)씩 야금야금 읽어 가는 것을 권하고 싶다. 이 책에서 읽은 내용을 바로 적용해볼 수 있고 다른 글에서 실질적인 예를 찾아보면서 더욱 잘 이해할 수도 있을 것이다.
개인적으로 ‘1부 금기를 넘어 욕망을 감싸 안다’와 ‘2부 고전은 왜 끊임없이 패러디되는가?’, 이 두 장이 특히 좋았다.
문학은 흑과 백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이 세상의 수많은 다른 색들에 대해 이야기하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문학은 ‘예/아니오’로 딱 잘라 말할 수 없는, 이 세상의 수많은 가능성에 대해 고민하는 존재다. 나아가 문학은 ‘좋음과 나쁨’으로만 판가름할 수 없는 세상의 수많은 가치들을 사랑하는 존재다. 문학은 인간이 꿈꿀 수 있는 그 모든 ‘만약’을 향하여 ‘정답은 없다’고 대답한다. 문학은 단 하나의 정답으로만 존재할 수 없는 우리의 다채로운 삶을 담아내는, 크기도 모양도 일정하지 않은 그릇이다.
(pg. 14, ‘1부 금기를 넘어 욕망을 감싸 안다’에서)
훌륭한 패러디는 원작에 새 생명을 부여할 뿐 아니라 스스로 독창적인 작품이 된다. 고전은 끊임없이 개작되고 당대의 관객과 소통함으로써 부활한다. 고전이 새롭게 부활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만약 고전이 ‘원전’으로만 남아 있기를 고집한다면, 극소수의 엘리트 또는 전문가들만 향유하는 배타적 산물이 되어 버리기 쉽다. 우리 시대, 우리 세대에 어울리는 새로운 목소리로 끊임없이 패러디될 때, 고전은 더 오랜 시간, 더 많은 사람들과 함께할 수 있다.
(pg. 59, 2부 고전은 왜 끊임없이 패러디되는가?’에서)
‘1부 문학의 역할’에서 개인적으로 한 가지 아쉬웠던 것은 오락으로써의 책 읽기가 빠진 것이다.
한국 사람들은 유럽과 미국은 물론 가까운 일본과 비교해서도 책을 참 안 읽는 편이다. 이건 이미 객관적인 조사들을 통해 여러 차례 수치화된 사실로 알고 있다. 왜 그럴까.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내가 개인적으로 꼽는 이유 하나는-수년에 걸쳐 미국도서와 한국도서를 함께 읽어오면서 느낀-한국문학책들이 전체적으로 구태의연하고 재미가 없다는 것이다.
이 책에서도 저자가 제시하듯 문학의 역할이 여러 가지 있겠지만 난 재미와 오락도 문학의 빠질 수 없는 큰 기능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내가 여기서 ‘재미’를 말하는 것은 한국의 장르문학에 대해 말하고 싶어서다.
내가 알고 있는 미국과 한국의 상황을 놓고 비교해 봤을 때 한국은 전체적으로 순수문학과 장르문학을 흑백으로 가른 듯 편을 가르는 것 같다.
미국에서 오래 전부터 로맨스, 미스터리나 스릴러물들이 많이 출간되어 왔다. 여러 장르의 글들을 쓰는 작가들도 많다. 순수문학에 분류되는 작가들도 다른 장르의 기법을 가져와 글을 쓰는 경우도 흔하다. 장르문학이지만 문학성을 인정받는 유명작가들도 많다. (예를 들자면 스티븐 킹같은?)
일본의 경우에는 오래 전부터 엄청난 양의 만화와 추리나 호러소설들이 출간 되었다. 게중에는 뛰어난 작품성으로 인정을 받고 동시에 대중적인 인기를 끄는 작품들도 많은 것으로 안다. 한국의 경우 인터넷 서점에서 장르소설들이 정식으로 자리를 인정받은 것은 최근 몇 년 사이의 일이다. 오프라인 서점에서는 여전히 이런 책들을 많이 찾아볼 수 없다.
참 이상하다.
요 근래는 한국에서도 미국, 일본, 북유럽의 스릴러와 추리물들이 많이 번역되어 출간된다. 인기를 끌어 베스터셀러에 오르는 책들도 많다. 그런데 왜 한국 작가의 이런 글들은 여전히 찾아보기 어려울까.
그만한 역량을 가진 작가가 없어서? 뛰어난 작품이 없어서?
만일 21세기 한국 사람들이 책을 읽지 않는 이유 중 하나가 정말 책 읽기가 재미없어서라면 과연 그건 누구 책임일까.
순수문학과 장르 사이에 선을 긋고 오락을 위한 글을 싸잡아 폄하하는 문단? 여기 동조하는 출판사들? 내용을 보기 전에 흑백논리에 따라 고급문화와 저급문화를 가르고 겉치레에 치중하는 독자들?
한 가지 반가운 것은 최근 많은 젊은 작가들이 왕성한 활동을 하면서 이런 점도 많이 바뀌고 있다는 것이다. 근래 들어 읽은 책 몇 권에는 ‘순수와 장르문학의 경계를 넘나들며’ 등의 글귀가 소개글에 들어가 있었다. 이 표현이 꼭 정확하지는 않은 것 같지만 확실히 한국소설들이 재미있어 지고 있다.
물론 나의 너무도 개인적이고 주관적인 의견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