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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어린 연인
정휘 지음 / 동아 / 2007년 12월
평점 :
품절
이 책을 한 마디로 요약하자면 고학하는 유학생의 신데렐라 이야기, 정도 되겠다.
박은수는 남보다 늦은 나이에 영국으로 유학 와서 대학에서 경영학을 공부하고 있다. 한국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디스플레이어로 일을 하다가 유학 온 지 삼 년째인 그녀는 현재 스물아홉 살이다. 나이가 연로하신 부모님으로부터 금전적인 도움을 받을 수 없는 그녀는 두세 가지 일을 해서 학비와 생활비를 벌면서 힘겨운 학업을 계속하고 있다.
그런 그녀의 곁을 지키는 현주하는 많은 여자들이 꿈꾸는 ‘왕자님’의 조건들을 두루 갖추었다. 일단 네 살 연하. 파릇파릇한 스물다섯의 청년으로 석사 과정에 재학 중인 재원인 그는 파트타임으로 피팅 모델을 할 만큼 큰 키와 잘 빠진 몸매를 가졌고 거기에 더해서…… 두둥, 현대판 왕자님의 빠질 수 없는 배경인 재벌 3세가 되신다.
겉으로 보면 너무 한쪽으로 기우는 이 두 사람은 벌써 일 년 넘게 친한 친구(?) 사이다. 하지만 그 안을 들여다보면, 주하는 은수에게 반해서 곁을 맴돌며 끊임없이 다가갈 기회를 엿보고 있고, 은수는 너무 부담스러운 조건을 갖춘 주하를 선뜻 받아들이지 못하고 거리를 두려 애쓰고 있다.
부모의 무관심에 상처를 입고 열한 살 어린 나이에 유학을 와 가족의 정을 모르고 자란 주하는 메마르고 냉소적인 성격이다. 모두에게 친절하지만 곁을 내주거나 정을 주지 않는다. 그런 그가 정 많고 마음 약한, 그러면서도 모든 일에 성실하고 진심을 다하는 은수에게 반했다. 처음으로 미치도록 가지고 싶은 상대가 생긴 것이다.
예기치 못한 사건이 생기고 두 사람은 의도하지 않았던 동거 생활을 시작한다. 살 곳을 잃어버린 은수가 주하의 집 빈 방에 들어가 살게 된 것이다. 한 공간을 공유하며 생활을 같이 하던 두 사람은 시간이 지나면서 연인으로 발전한다.
참 뻔하다면 뻔한 설정인데 이 두 사람의 관계는 로맨스소설에서는 흔치 않은 것이어서 개인적으로 재미있게 읽었다.
이 글의 남자주인공인 주하는 로맨스소설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카리스마 넘치는 완벽남이 아니다. 그러기에는 조금 아이 같고 어린 티가 난다. 이야기의 앞부분에서 주하는 정 많고 넉넉하게 품어 주는 은수에게 정에 굶주린 아이처럼 매달린다. 그런 그를 은수는 때로는 누나처럼, 또 때로는 엄마처럼 품어준다.
그런 두 사람의 관계가 함께 여러 가지 일을 겪으면서 변해간다. 주하는 점점 든든한 연인으로 또 의지할 수 있는 남자로 성장하고 낯선 나라에서 힘겹게 학업과 일을 병행하기 위해 애써 의연한 모습으로 버텨오던 은수는 점점 눈물과 애교가 많은 본래의 모습을 되찾아간다.
두 사람이 서서히 연인으로 발전해 가는 즈음, 은수로 하여금 유학을 결정하게 한 옛 연인과 그 어머니-이 글의 최고 악역-이 등장하고, 주하의 부모들이 두 사람의 관계를 알게 된다. 은수와 주하의 사이는 이 일들을 하나씩 해결해 가면서 더 단단해지고 견고해 진다.
평범한 고학생과 재벌 3세 완벽남의 로맨스라는 비현실적인 설정에도 불구하고 런던에서의 유학 생활이 사실적으로 묘사되어서 이야기에 현실감을 보태준다. 나중에 후기를 읽다 보니 작가분이 자신의 실제 경험이 많이 녹아 있다고 말해서 혼자 고개를 끄덕였다.
서로 너무도 다른, 그래서 혼자보다는 함께 있어서 더 좋아 보이는 두 사람의 모습이 닭살스러우면서도 재미있게 그려져 있다. 두 사람이 함께 도와가면서 성장해 가는 모습이 참 예쁜 로맨스소설이다.
은수는 자신의 한 손을 잡고 차분하게 설득하고 있는 주하를 봤다. 처음 만났을 때와는 너무 달라진 모습이라서 당황스럽기도 했다. 언쟁할 일이 생길 때면 그는 항상 언성을 높였었고, 은수는 달래는 입장이었는데, 어느새 주하가 차분하게 그녀를 설득하고 있는 것이다. 은수는 제 손을 잡은 그의 손을 자신의 가슴에 품었다. 의지할 수 있고, 성장하게 해 주는 주하가 많이 고마웠다. 자신의 손을 가슴에 안고 고개를 무릎에 묻은 은수의 머리를 주하가 살살 쓰다듬어줬다. 그 손길에 은수는 다시 고개를 돌려 그와 눈을 마주했다.
“너 많이 변했어. 다른 현주하를 보고 있는 것 같아.”
“나도 그렇게 생각해. 한 걸음씩 움직여 아이에서 사내가 되어 가는 것 같아. 고마워, 박은수 덕분이야. 조금 더 노력하면 진짜 근사한 남자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지금도 충분히 근사해, 불안할 만큼.”
(pg. 308)
전체적으로 참 달달한 이야기다. 개인적으로는 에필이 없었다면 더 여운을 남기지 않았을까 한다.
2013년 2월 20일에 읽다.
제목: 내 어린 연인
지은이: 정휘 (온라인닉네임: 기초작업)
펴낸곳: 동아 & 발해
초판 1쇄 발행 2007년 12월 19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