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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콜릿 우체국 - 황경신의 한뼘이야기
황경신 지음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16년 2월
평점 :
저자인 황경신작가는 잡지 '페이퍼'의 편집장이다. 이 책 '초콜릿 우체국'은 1990년~2000년 사이에 잡지 '페이퍼'에 실렸던 글중에서 모두 서른여덟편의 글을 추려서 한권의 책으로 엮은것이다.
단편들의 제목이 오분쯤 느린시계, 지평선 너머로 해가 지다 같이 무척 시적이다. 평범한 일상생활에서 이야기는 시작되지만, 어딘가 모르게 그리 평범하지않는 내용들이다. 굳이 장르를 구분하자면 에세이라고도 할 수 있고 어른들을 위한 동화라고도 할 수 있고 어떻게 보면 그냥 이야기라고도 할 수 있겠다. 마치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말처럼 사람의 마음을 헤집어 놓는 글들은 한편 한편이 너무 짧아서 소설의 범주에 속하는 글들이다.
"코끼리야, 기억해. 이 세상에는 우리 모두가 힘을 합하면 이룰 수 있는 일들이 너무나 많아. 우린 지금 막 그중에 한가지를 해낸거야." <스케이트를 타고 싶은 코끼리 중에서>
처음에 만나는 <스케이트를 타고 싶은 코끼리>는 우화라기엔 짧은 글이 주는 교훈이 담긴 글이다.
동물들이 모두 모여 코끼리에게 스케이트를 타게 해주기 위해 회의를 하고, 천사들은 인간에게서 질투심을 제거하는 문제를 놓고 심각하게 토론을 한다. 담담하면서도 달갈한 느낌이 드는 작가의 문체는 현실과 상상이 공존하는 세상으로 여행하는 기분이 들었다 이책을 읽을땐 몽환적인 음악이 함께여야 할것 같은 느낌이 들 정도로 작가의 상상은 무척 자유롭다. 하늘을 날기도 하고 말하는 동물을 만날 수 있다. 누군가 들려주는 잔잔한 이야기처럼 편안한 글로 저자의 환상적 상상력이 돋보이는 글이다.
세상이 눈에 보이는 대로만 귀에 들리는 대로만 이루어 졌다고 믿고 있다면 우리는 그만큼 어리거나 어리석은 것이다. "물건에도 어떤 기억이 머물러 있는 거야. 네가 그것을 오래 간직했다면 그 물건은 너에 대한 기억을 가지고 있는거지. 그러니 그 물건을 함부로 버린다는 것은 너의 기억 중 일부를 함부로 버린다는 거야. 너는 영원히 그 기억을 상실하게 되는 거지. 기쁜일은 아니쟎아?" <세발자전거는 모두 어디로 가는가 중에서>
글을 읽으면 일상에 젖어 무뎌져만 가던 내 감각이 언제 그랬냐는 듯 되살아난다. 우린 언제나 당연하다는 듯이 하루하루를 살아가지만, 그녀의 글에는 ‘당연한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사람의 기억 역시 마찬가지다. 어릴 때 타던 세 발 자전거, 크리스마스 때 걸어놓았던 빨간 양말, 생각만으로도 가슴 벅차오르던 그 때의 추억들을 우리는 자꾸만 잊는다. 어느새 우리는 그것을 당연하게 받아들고 너무 쉽게 새로운 것들에게 자리를 내어준다. 아쉬워하지 않는다.
세상의 종말을 위한 사과나무들은 바로 오늘, 누군가에게 노래를 불러주고 그와 이야기를 나누기 위해 존재하는 거야." <세상의 종말을 맞은 사과나무 중에서>
저자는 가장 슬프고 쓸쓸한 밤으로부터 태어난 행복한 이야기들을 달콤하게 들려준다. 특히, 책의 제목으로 선택한 <초콜릿 우체국>은 기억 속의 사람에게 초콜릿을 선물할 수 있도록 해준다는 발상이 무척 새롭게 다가왔다. 글을 쓰고 싶다는 생각과 글을 쓴다는 것은 엄청나게 커다란 간극이 존재하는것 같다. 흥미로움을 느끼며 잔잔하게 읽었던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