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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로 가고 싶으신가요 Where Would You Like To Go? ㅣ K-픽션 14
김애란 지음, 제이미 챙 옮김 / 도서출판 아시아 / 2016년 1월
평점 :
에든버러에서의 시간은 더 이상 쌀뜨물처럼 흐르지 않았다. 화살처럼 지나가지 않고, 창처럼 세로로 박혀 내몸을 뚫고 지나갔다. 나는 내 안에 어떤 시간이 통채로 들어온 걸 알았다.(p.46)
주인공 명지는 스코틀랜드 에든버러에 살고 있는 사촌언니의 전화를 받게된다. 갑작스런 사고로 남편을 잃은 명지의 마음을 헤아려 남편과 휴가를 떠나 한달ㄹ간 집이 빈다며 명지에게 집에와 머물것을 권하는 전화였다. 소설은 이렇게 이렇게 시작된 스코틀랜드에서의 한 달 간 벌어지는 이야기를 담았다.
이야기의 중심을 차지하는 에든버러에 유학중인 동창 현석과의 만남에서도 남편의 죽음을 굳이 밝히지 않는다. 우연한 현석과의 잠자리에서 들켜버린 명지몸에 난 피부병의 흔적으로 어쩌면 잠재적인 욕망조차도 잠이 깨어버리듯 차가운 현실로 돌아와버리고 다시 일정 거리를 유지해버리고 마는 애도와 슬픔의 공유는 불가능성하다는 주제의식을 보여 주는 듯 한다.
소설은 타인의 애도가 불가능한 남편과의 사별이 가져다 준 상실감을 어느날 갑자기 자신의 몸에 발병한 '장미색 비강진'이라는 피부병을 통해 은유하고 있다.
소설속에서 남편 도경이 생전에 스마트폰 음성인식서비스 프로그램인 '시리'와의 공허한 대화. 지하철 안내방송과 같이 누군가에게 목적지로 가는 법은 말해 줄 수 있어도 거기까지 함께 가주지는 못하는 친구로 묘사하며 인간의 심연은 다른 어떠한 것도 대변해 줄 수 없다는 것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듯 하다. 언어가 인간의 도구라는 단순한 관점에서 벗어나 혼(魂)이 담긴 존재로 인정하는 것이며, 동시에 우리에게 추상적인 관념인 언어를 구체화하여 하나의 실체로서 제시하는 것이다.
이 소설 <어디로 가고 싶으신가요>는 신선한 개성과 활력이 넘치는 젊은 작가 단편작 시리즈 < K - 픽션 >시리즈의 14번째 발간작이다. 아사아출판사에서 펴낸 100여쪽 남짓한 두께를 가진 문고형태이다. 특이한점은 영문으로 번역되어 한글과 함께 수록되어있다는 점이다. ‘세계로 가는 젊은 한국 문학!’ 세계 문학의 문을 두드리는 젊은 한국 작가들의 최신 단편소설을 영어로 번역해 외국 독자들에게 소개하는 취지로 발간되었다고 한다. . 박민규 작가, 손보미 작가, 천명관 작가 등 관심가는 작가들의 책도 보이고 모르는 작가님의 책도 보이지만 작품 하나하나가 실력있는 작가들이 집필한 야심작들이어서 무척 반가웠던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