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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에 시가 없다면 너무 외롭지 않을까요 - 흔들리는 인생을 감싸줄 일흔일곱 번의 명시 수업
장석주 지음 / 포레스트북스 / 2024년 10월
평점 :
장석주 시인은 1970년대부터 활발히 활동해 온 한국의 대표적인 시인이자 문학평론가로, 50년 가까이 시를 읽고 쓰며 수많은 작품을 남긴 베테랑 작가입니다. 그의 문학 세계는 시의 미학과 의미를 오랫동안 탐구해온 결과물로, 그의 시와 평론은 모두 세밀하고 따뜻한 시선으로 삶을 조망합니다. 이번 책에서 그는 독자들에게 시를 ‘인생 수업’으로 다가가게 하며, 시가 던져주는 조용한 위안을 전하고자 했습니다.
책에 실린 시를 온전히 음미하기 위해 필요한 배경 지식은 없었습니다. 시는 그 자체로 독립적이고 직관적인 예술이기 때문에, 시가 전달하는 감정과 이미지에 자신을 맡기면 됩니다. 그러나, 시를 통해 전해지는 깊은 의미와 감정에 공감하려면 내면의 여유와 관조하는 마음이 도움이 될 것이라 생각됩니다.
작가는 시가 비록 현실적으로 ‘무용한’ 예술일지라도 오히려 그 무용함이 삶을 살아가게 하는 힘이 될 수 있음을 말합니다. 시는 고난과 외로움을 겪을 때 자신을 돌아보게 하고, 삶의 방향을 재정립하게 하는 유일무이한 언어임을 보여주고자 합니다. 책을 통해 시가 더 이상 입시의 도구로만 인식되는 것이 아닌, 일상의 복잡함 속에서 위안과 용기를 주는 예술로 다가가길 작가는 바라고 있었습니다.
"삶에 시가 없다면 너무 외롭지 않을까요"는 시와 함께하는 삶의 가치를 조명하는 인문서로, 장석주가 엄선한 명시 77편과 각 시에 담긴 그만의 관철을 엮어 만든 책입니다. 장석주는 백석, 칼릴 지브란, 나태주, 김소월, 메리 올리버 등의 명시를 통해 시가 어떻게 독자의 삶에 위로와 영감을 불러일으키는지를 설명합니다. 오늘날처럼 모든 것이 과잉된 시대에서 오히려 시처럼 간결한 언어가 던져주는 울림은 더욱 절실하며, 사색과 성찰의 시간을 선사하는 시적 순간을 역설합니다.
책은 다섯 개의 장으로 나뉘어 있으며, 각 장은 삶 속에서 시가 필요한 순간들을 중심으로 구분되어 있습니다. 첫 장에서는 “괜찮다”는 말보다 더 큰 위로가 필요한 순간에 읽을 만한 시들이 소개됩니다. 메리 올리버의 '기러기', 백석의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 등은 외로움 속에서 포기하지 않고 살아가기를 다정하게 속삭여 줍니다. 장석주는 메리 올리버의 시에서 “네가 누구든, 얼마나 외롭든 포기하지 말고 살아라”라고 격려받았다고 말합니다.
그 외에도 파블로 네루다, 윤동주, 김수영, 그리고 비스와바 쉼보르스카 등 다양한 시인의 작품을 통해 고독을 견디고 일상을 긍정할 수 있도록 돕고 있습니다. 이러한 시들을 일상에서 펼쳐볼 수 있는 ‘인생 수업’으로 정의하며, 독자들이 각기 다른 순간에 적절한 시를 통해 위로받을 수 있도록 안내합니다.
📌“우리 앞에는 천 개의 벼랑이 있고, 천 개의 벼랑을 넘으려면 천 개의 희망이 필요할 테다. 하지만 시는 현실에서 아무 쓸모도 없다. 시는 그토록 무용하지만 우리를 계속 살아가게 만드는 힘이 있다.”
시의 무용성과 동시에 무한한 가치를 함축한 말로, 우리에게 시가 어떤 존재인지 가장 잘 보여주는 문장입니다.
📌“하늘을 들여다보면 눈썹에 파란 물감이 든다” (윤동주, 「소년」 중)
시의 시각적 표현이 주는 아름다움과 감동을 느낄 수 있는 대목으로, 소년의 순수함과 자연을 투영한 이 구절은 독자에게 짧은 순간 동안 동심과 평온함을 전해줍니다.
📌“한 그릇의 더운 밥을 얻기 위하여 / 나는 몇 번이나 죄를 짓고 / 몇 번이나 자신을 속였는가.” (장석주, 「밥」 중)
삶의 고단함과 인간이 겪는 내적 갈등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며, 평범한 일상 속에서 발견되는 깊은 의미를 함축하고 있습니다.
중심 메시지는 시가 우리의 일상을 가만히 안아주며 그 자체로 깊은 위로가 될 수 있다는 점입니다. 시는 격동하는 감정들을 정제된 언어로 담아내어 읽는 이에게 자신의 내면과 마주할 기회를 제공합니다. 작가는 “가장 짧은 문학”인 시가 우리 삶을 비추고 삶의 진정한 모습을 찾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말합니다.
바쁜 일상 속에서 시는 마음을 내려놓고 여백을 느끼게 합니다. 이러한 시의 역할을 저자는 월트 휘트먼, 윤동주, 파블로 네루다 같은 시인들의 작품을 통해 차분하게 설명하며, 그 자체가 위로의 한 페이지가 되도록 만들었습니다.
책은 시와의 관계를 ‘해석하는 대상’이 아닌 ‘들여다보고 느끼는 대상’으로 변화시키며, ‘괜찮다’는 누군가의 말보다 더 깊고 진한 위로를 전하고 있었습니다.
또한 시를 통해 인생을 바라보는 다양한 관점들을 제시합니다. 예컨대, 나즘 히크메트의 '진정한 여행'이 "무엇을 해야 할지 알 수 없는 순간이야말로 진정한 여행의 시작"임을 일깨우는 것처럼, 저자는 시가 인생의 길을 잃었을 때 방향을 찾게 해주는 이정표가 된다고 말합니다.
시는 생의 무게를 감내할 수 있는 힘을 길러 주며, 우리의 존재를 일회적이지만 소중한 것으로 바라보게 합니다. 쉼보르스카의 시처럼 한 번뿐인 인생이기에 아름답고 애틋하다는 시각은, 일상 속에서 잃어버렸던 삶의 의미를 재발견하게 합니다.
이러한 삶의 혜안과 관련하여 장석주는 “시의 발견은 일상의 발견과 닮아 있다”고 말합니다. 덧붙여, 우리에게 익숙한 것을 낯설게 바라보는 시인의 시선이 독자에게도 삶의 새로운 차원을 선물합니다. 시는 결코 쓸모없지 않으며 오히려 우리를 계속 살아가게 만드는 무언의 힘이 되는 것입니다.
특히 시가 불확실한 인생 속에서 우리를 붙잡아 주는 것이며, 고요히 어깨를 두드리며 ‘괜찮다’라고 말해주는 유일한 언어라고 설명합니다. 특히, 메리 올리버의 '기러기'에서 "착하지 않아도 돼. 그저 너의 몸이라는 어린 동물이 사랑하는 걸 사랑하게 하면 돼"라는 구절은, 현대인이 느끼는 강박에서 벗어나 스스로를 바라보는 시간을 갖게 합니다.
시적 언어는 복잡한 세상의 번잡함을 덜어내고 진정한 나를 찾게 해주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장석주는 이러한 시의 언어가 감정의 정화를 제공할 뿐 아니라 삶을 새롭게 마주하게 해주는 필수적인 존재라고 말합니다.
이처럼 삶이 각박하게 느껴질 때, 이 책은 가벼운 문장으로 묵직한 울림을 전하며 일상에 치인 마음에 휴식을 제공합니다. 특히 시에 대한 깊은 애정을 갖고 있는 장석주는 독자들이 시에 쉽게 다가갈 수 있도록 한편으로는 해설을 더하고, 또 다른 한편으로는 느슨한 마음으로 읽어도 충분하다는 점을 강조합니다.
각 시에 대한 장석주의 해석은 시를 잘 모르는 독자라 하더라도 시와 친밀해지는 경험을 할 수 있도록 돕습니다. 또한 시가 한 편의 위로로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인생의 교훈으로 기능한다는 점은 독자가 이 책을 오래도록 곁에 두고 사색할 만한 이유가 될 것입니다.
장석주는 이 책에서 시가 무용함을 통해 얼마나 우리를 일깨우고, 되돌아보게 하는지 보여 줍니다. “무엇을 해야 할지 더 이상 알 수 없을 때 비로소 진정한 무엇인가를 할 수 있다”는 이 책의 메시지는, ‘실용’을 우선시하는 시대에 오히려 시가 가진 무용함이야말로 우리에게 꼭 필요한 가치임을 역설합니다.
시가 던져주는 덜어냄의 미학과 사색의 시간을 통해, 독자들은 자신이 미처 알지 못했던 내면의 소리에 집중하고, 치유를 경험하게 됩니다. 시의 언어가 건네는 고요하고도 깊은 위로가 필요한 모든 이들에게, "삶에 시가 없다면 너무 외롭지 않을까요"는 특별한 감동으로 다가올 것이라 생각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