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레이,즐거움의발견>을 읽고 리뷰를 남겨 주세요.
플레이, 즐거움의 발견 - 우울한 현대인이 되찾아야 할 행복의 조건
스튜어트 브라운 & 크리스토퍼 본 지음, 윤미나 옮김, 황상민 감수 / 흐름출판 / 2010년 5월
평점 :
절판


 

6월 13일자까지 써야하는 서평을 이제야 쓰게 되었습니다. 이제서야 쓰는 이유는 '노느라' 바빴기 때문이었지요. < 플레이, 즐거움의 발견 >은 '노는 것'에 대한 성찰을 보여주는 책입니다. 유교문화가 오래동안 이어져온 우리나라에는 그저 근면 성실이 최고의 덕목이었습니다. 그 덕분에 40년전만해도 강냉이 죽 먹던 우리가  이만큼 잘 살게 되었노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지요. 세상에서 제일 부지런한 우리가 지금 잘살게 됐지만, 세계 3위의 자살율의 나라가 된 이유는 무엇인지, 지금 우리는 이 문제를 진지하게 들여다 봐야 합니다.  


잘나가던 그들, 우울증과 자살
  

올해 초, 국립병원의 의사, 삼성계열사 부사장등 소위 '잘나가는 이들'의 자살이 사회적 충격을 준 바 있습니다. 타워팰리스, 10억이 넘는 연봉, 최고의 학벌, 남부러울 것 없는 그들은 삶이 행복하지 않았습니다. 이 책을 읽으면서 그들의 깊은 원인은 '놀이'를 잃어버린 사람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고된 일에 혹사당하느라 너무 오랫동안 놀이 없이 지내다 보면, 자기 인생을 보며 중얼거리는 순간이 찾아온다. “이게 사는 건가? 평생 이러고 살아야 하나?” 삶의 핵심에 다가서지 못하면, 좋은 성적과 높은 연봉도 맥 빠지는 일일 뿐이다. 아무리 찬사를 많이 받더라도 충만한 만족감이 느껴지지 않는다. 이러한 상실을 열여섯에 경험하는 사람도 있고, 예순이 넘어서 경험하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열심히 노는 사람에게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는다. (책 207쪽)

즐거운 놀이는 사람을 행복하게 합니다. 뇌파를 바꾸어 활기찬 마음이 들게 하지요. 새벽에 일어나 밤 늦게까지 성공을 바라보며 뛰어간다면 그는 어느새 지치게 될 것입니다. 이 책을 지은 스튜어트브라운 박사는 놀이가 어린이의 전유물이 결코 아니라는 것을 강조합니다. 인간은 놀이를 즐기도록 태어났고, 그것을 즐길 권리가 있다고 말하지요. 놀이가 막혔을 때, 우리의 삶도 답보하게 됩니다. 혹은 매우 불행하게 되기도 합니다.


아이들은 학원보다는 놀이터로 보내라 

아이들은 놀이를 좋아합니다. 어딘가를 가다가도 놀이터를  보면 꼭 들어가서 한번 놀고 와야 직성이 풀립니다. 그런데 우리 어른들은  아이들의 놀이를 '쓸데없다 ' 고 말합니다. 엠비 정부들어 강화된 일제고사를 대비해서 초등학생마저 시험기간엔 놀이터에 나와 제대로 놀지 못합니다. 하지만 지은이들은 이렇게 반박합니다.

아이들의 시간표를 대신 짜주고 온갖 활동을 시키면서 아이들이 미래를 준비하도록 돕고 있다고 생각한다. 물론 아이들에게 문화적으로 승인된 행동을 길러주고 ‘좋은’ 부모로서 역할을 다할 수 있다는 점에서 어느 정도 의의가 있긴하다. 그러나 실제로 우리는 아이들이 자신의 재능과 지식 상태를 발견하는 데 필요한 시간을 빼앗고 있는지도 모른다.(책 158쪽)

아이들은 놀이를 하면서 친구와 다투기도 하고, 협상도 하고, 규칙을 만듭니다. 이것은 곧 사회생활이 되지요. 좋은 대학을 나온 범생이 친구들 가운데 사회생활엔 젬병인 이들이 더러 있습니다. 그들 중 대부분은 어렸을 때 놀이를 통한 사회생활의 간접체험이 없었던 탓일 겁니다. 언제나 딱딱 떨어지는 문제풀이만 세상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모호한 기싸움, 감정싸움을 조절하면서 사람은 자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놀이는 아이들에게 세상공부입니다.


얼마나 잘노느냐?  내일을 예측할 수 있는 바로미터 

70년대 우리 산업은 무조건 많이 일하면 그것이 수확이 되던 그런 시대였습니다. 야근과 특근이 미덕이었지요. 하지만 이제 시대가 달라졌습니다.  책에선 지식경제 산업의 시대에 창의성은 놀이를 통해 키워진다고 말합니다. 이제는 놀 줄 아는 사람의 시대라고 강조합니다.

생존의 문제가 해결된 선진국은 놀이를 얼마나 잘 이해하고 어떻게 제도화하느냐에 따라 경제적으로 성공하거나 실패할 것이다. 왜냐하면 지식경제는 서서히 창의적인 경제로 전환되고 있기 때문이다. 20세기 초반의 산업은 생각할 수 있는 노동자를 원치 않았다. 그저 조립라인의 똑같은 동작을 능률적으로 반복할 수 있는 사람들이면 족했다. 이제 다른 나라들도 공장을 가동할 수 있는 능력이 있으므로, 산업화된 국가의 국민들이 높은 생활수준을 유지하려면 더 열심히 혹은 더 영리하게 일을 해야한다. 
(책 279쪽)

이명박 대통령이 취임하자 공무원의 업무시간이 늘어났습니다. 그는 70년대 경제 성장기에 대기업에서 일하던 이 입니다. 그는 업무 스타일도 자신의 젊은 시절부터 유지하던 스타일을 유지하고 있는 듯합니다. 무조건 열심히!, 밤늦게까지! 하면 된다! 정신으로 일하고 있지만, 국민들의 반응은 떨떠름합니다.  어쩌라고!!!
그는 딱히 취미가 있어보이지 않습니다. 골프를 하는 것 같지도, 축구를 좋아하는 것 같지 않습니다. 책을 즐기지도, 음악을 즐기지도 않는 듯 합니다. 그가 영화관이나 음악회에 와 있는 모습은 드뭅니다.

이 책의 지은이들은 말합니다. 
                       "경제적인 강대국은 지적재산을 창조할 수 있는 나라들이다.
                        그리고 혁신은 대개 놀이할 수 있는 능력에서 나온다."
고 말입니다.
정부의 통수권자, 각료, 대기업 임원 그 누구도 '놀이'를 즐기는 이는 없어보입니다. (아, 이건희는 스포츠카를 타고 무한속도를 즐기는 군요!) 놀이에 대한 경시, 그것이 우리 사회에 어떤 부메랑으로 다가올지, 사실 이 책을 읽으면서 많이 두려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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잃어버린 천사를 찾아서 국민서관 그림동화 105
막스 뒤코스 지음, 길미향 옮김 / 국민서관 / 200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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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루아는 늘 꼴등만하는 조금 멍한 구석이 있는 아이입니다. 미술이라면 지겹기짝이 없는 것이라 생각하지요.
어느날 학교에서 미술관에 가게 되요. 반아이들과 떨어져 혼자 처졌던 엘루아는 어디선가 "아기천사를 구해주
세요"라는 소리를 듣게 되요. 그림 속의 엄마는 아기가 없어졌다며, 엘루아에게 찾아달라고 부탁하지요. 자, 이
제부터 엘루아의 흥미진진한 그림여행이 시작됩니다. 

아기 천사가 몬드리안 그림속에!

프랑수아 부세의 < 비너스의 잠 >에서 아기 천사가 없어져요. 어디로 갔을까? 어떻게 데려와야하지? 고민하는
엘루아 앞에, 베르트 모리조의 <나비채집>에서의 엄마는 기꺼이 잠자리채를 내어줍니다. 여기저기 수소문한
결과, 아기는 아마도 몬드리안의 <구성A>에 들어가 있는 것으로 판명됩니다. 왜냐하면 이 그림은 미술관안에서
'사람을 안으로 빨아들이는 그림'으로 유명했거든요. 이 그림 속으로 엘루아는 빨려들어갑니다.

겨우 겨우 잡은 천사는 도망을 가버리고 말아요. 엘루아는 천사를 잡으러 가나 함께 파란 세상으로 빨려들어갔어
요. 바로 이 파란 세상은 이브클라인의 < IBK 71 캘리포니아 >예요. 파란 허공을 한없이 헤매나 싶었더니, 쟈코메
티의 <걷고 있는 남자>가 긴 팔을 뻗어 아기천사와 엘루아를 땅에 내려놓아 줍니다. 

한바탕 신나는 엘루아의 그림여행을 읽다보면, 나도 엘루아가 되고 싶군요. 명화 속으로 들어가 사람들과 말도 나
누고, 함께 놓고 싶네요. 질릴듯한 파란 이브클라인의 블루에 둥둥 떠다니는 그 기분은 과연 어떨까요!


미술관보다 재미있는 미술그림책

많은 아이들이 미술관에 가면 지루해 합니다. 추상화 앞에선 더더욱 그렇지요. 구체적인 사물을 그려놓은 그림이
라고 해도 별반 다를 게 없어요. 그림을 쳐다본다는 것은 사색을 요하는 것인데, 아직 아이들에겐 사색의 자리가
생겨나지 않았거든요. 다만 흥미를 잃지는 않았으면 한다는 겁니다.

아이들이 그림에대해 '재미있다'는 인식을 일찌기 심어두려면, 미술관보다는 미술그림책이 더 유용하지 않을까 싶
습니다. 미술그림책을 보면서 즐겁게 놀고, 이야기를 만들어 나가다 보면 미술이 익숙해 지지요. 미술이 익숙해지면
미술관에 갔을 때 하품나지 않고 '야, 저거 내가 봤던 그림이야'하며 신나겠지요. 내가 이미 알던 그림을 실제로 만
나 보는 자리, 이런 것이 미술관에 가는 기쁨이랍니다. 아이들도 그런 기쁨을 자주 자주 맛보기 바랍니다.

아이들을 미술에 가까이 끌어오는 그림책, 재미도 있고 유익하기도 한 책들은 흔치 않습니다. <잃어버린 천사를 찾
아서>는 어른인 내게도 미술이 얼마나 즐거운 것인지를 일깨워주는 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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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울의 심리학 / 꿈꾸는 20대, 史記에 길을 묻다>을 읽고 리뷰를 남겨 주세요.
꿈꾸는 20대, 사기史記에 길을 묻다
사마천 지음, 이수광 엮음, 이도헌 그림 / 추수밭(청림출판) / 201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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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기史記  >를 읽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나에게 < 사기 >는 그 저자 사마천에 대한 기억이 더 크게 자리잡고 있다.  대학시절 사마천의 사기 서문을 수업시간에 공부한 적이 있는데, 문장 구절 구절 힘이 넘치고 통분(痛憤)의 정서가 가득하였다 . 그는 사기 서문을 통하여, 긴 세월을 거쳐 이 역사서를 완성했음을 눈물로 기뻐하였다. 사기 집필은 단지, 세월을 길게 소요하였다는 데 있지 않다.  사마천이 궁형(남자의 생식기를 제거하는 형벌)이라는 치욕적인 형벌을 받은 뒤, 긴 세월을 인내하며 한자 한자 역사를 채워나간 각고의 세월이 거기에 있다. 사마천의 서문 내용은 세세히 기억하지 못하나, '피를 토하며 쓴 글' 이라는 이미지는 오랜 시간이 지난 지금도 기억에 남아있다.  


< 사기 史記>,  한 인간의 일생을 쏟아 만든 작품
  
    
사마천(BC 145?~ BC.86?)이 집필한 역사서  <사기>의 규모는 본기(本紀) 12권, 연표(年表) 10권, 서(書) 8권, 세가(世家) 30권, 열전(列傳) 70권 모두 130권 52만 6천 5백자에 이르는 방대한 저서다. 우리나라에 나와있는 <사기>는 대개 열전, 즉 인물에 대한 내용을 담은 것을 편집해서 펴낸 것이다. 드물게는 도서출판 까치에서 사기 전편을 번역해서 출판 한 것이 있는데, 모두 7권에 이른다. 열전이외의 글들은 꽤 지루하고 재미없다는 것이 읽은 이들의 평이다.

사마천의 아버지 사마담은  천문역법과 도서를 관장하는 태사령(太史令)으로 일했고, 사마천 역시 무제의 태사령이 되었다. 기원 전 110년, 아버지 사마담이 죽으면서 자신이 시작한 <사기>의 완성을 부탁하였고, 그 유지를 받들어 BC 108년 태사령이 되면서 황실 도서에서 자료 수집을 시작하였다.
그러나 그는 뜻하지 않은 일을 당한다. 당시 흉노를 정벌하러 간  이릉(李陵) 장군이 흉노에  부득이하게 투항하게 된 일이 있었다. 사마천은 어쩔 수 없는 상황에 놓였던 이릉(李陵) 장군을 변호하였고, 무제의 노여움을 사고만다.  사마천은 벌로 남자로서 가장 치욕스러운 궁형(宮刑:생식기를 제거하는 형벌)을 받았다. 그때 나이 48세였다.

하지만, 사마천은 옥중에서도 저술을 계속하였고, 몇년지나 황제의 신임을 회복하여 환관의 최고직인 중서령(中書令)이 되었다. 중서령은 황제의 곁에서 문서를 다루는 직책이었다. 하지만 그는 환관(宦官)신분으로 일부 사대부들의 멸시를 받았으며 운신의 폭도 자유롭지 못했다. 이러한 어려움 속에서도 사마천은 마침내 < 사기 >를 완성하였다.  우리는 많은 책을 매일 만나지만 유독 <사기>를 대할 때, 좀더 경외로운 마음으로 만나야 할 이유가 분명히 있다.


부끄러움을 알았던 사람들  

<꿈꾸는...>에서 주로 다루는 내용은 < 사기 열전 >의 일부다. 열전은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다. 현재 번역되어있는 책들 대부분이 인물편인 열전을 다루고 있다. 인물들의 남다른 모습들이 흥미진진하다. <사기>를 한번도 읽지 않은 나로서도 책 속에 사람들은 익히 아는 사람들이다. 편작, 동방삭, 여불위, 백이숙제... 한문시간에 고사성어를 통해 알았거나 교과서(!)에 인용되었던 사람들을 <사기>, 즉 원본에서 만나보게 되는 셈이다.  

<꿈꾸는...>에서 만난 인물들 가운데는 '부끄러움'을 아는  사람들이 많다. 사기 열전 첫머리에는 백이와 숙제가 나온다. 백이와 숙제는 이복형제다. 백이는 고죽국의 태자였으나 숙제의 어머니가 자기 아들을 태자로 내세우기 위해 음모를 꾸며 추방한다. 숙제는 이를 부끄러이 여겨 자신도 궁궐을 빠져나와 유랑한다. 두사람은 주나라가 은나라를 멸하자 신하가 천자를 토벌한다고 반대하여 주나라 곡식을 먹기를 거부하고 수양산에서 굶어죽었다. 인간의 도리와 명분을 지키기 위해서는 개인의 안위라곤 고려하지 않았다. 

책의 < 복숭아 두개로 세명의 장수를 죽인 천재 재상, 안평중>을 보면, 세명의 난폭한 장수를 손하나 까닥하지 않고 제거한 안평중의 계략이 나온다. 세명의 난폭한 장수 앞에 안평중은 2개의 복숭아를 두었다. 가장 뛰어난 사람이 이 복숭아를 먹을 수 있다고 했다. 첫번째, 두번째 장수가 자신의 용맹함과 공을 말하고 먹는다. 그런데 세번째 장수의 공적을 들어보니, 앞의 두 장수는 비길바가 못되었다. 세번째 장수는 자기가 인정받지 못함이 분하여 자결했고, 한사람은 복숭아를 먼저 먹어버린 경솔함이 부끄러워서, 한 사람은 이들과 의형제를 맺었으니, 자신이 살아있는 것이 부끄럽다며 자결했다.

'부끄러움'이  무엇인지 아는 시대였기에 이야기가 이루어질 수 있는 것 같다. 지금의 시대라면 얼씨구나 좋은 자리 차지하고, 내 명예 내세우며 호의호식하는 것이 전부가 아닐까. 이 시대를 버티고 있는 사실 자체가 부끄럽다.


 의외의 사람들  

어릴 적 교과서를 통해서, 이런 저런 글을 통해서 만난 역사속의 사람들을 원전을 통해 가까이 보니, 지금껏 알 던 것과 다른 사람도 있었다. 동방삭이 그렇다. 동방삭은 꽤가 많은 사람, 3천갑자, 즉18년만년을 산 사람의 이야기로 기억하고 있었으나, 원전에선 색다른 인물 전해진다.
 
한무제는 인재를 얻기 위해 천하에 포고하여 상서를 올리라고 한다. 많은 학자들이 치국책을 올렸는데, 동방삭은 무려죽간 3천개에 빽빽하게 써서 자신을 알리고자 하였다.많은 부분 자화자찬이 있었는데, 이를 본 무제는 "이놈은 미친놈 아니면 천재다"라고 말했다고 한다. 무제는 동방삭이 올린 상서를 읽는데 거의 두달이나 걸렸다. 내용이 길기도 길지만, 글이 포복절도할 정도로 재미있어서 아껴 읽었기 때문이다.어쨌든 그는 한무제에게 인재로 발탁되었고 높은 봉급을 받았다.

하지만 동방삭은 늘 가난했다. 술을 마시고 돈을 물쓰듯 썼으며, 젊은 여자만 보면 1년쯤 사귀다가 버리고, 또 새로운 여자를 만나고 했다한다. 끝없는 기행을 일삼아 신하들은 그를 미치광이라고 무제에게 고하기도 했다. 하지만 한무제는 " 그에게 일을 맡기면 이루지 못하는 것이 없다"하며 그를 감쌌다. 한문제는 동방삭을 신임하여 수십년간 측근으로 데리고 있었으며, 동방삭은 높은 벼슬을 누렸다. 

오래산 사람 동방삭, 알고 보니 괴이한 천재였던 거다. 원전을 읽는 즐거움이란 이런 것이다. 짧은 몇줄로 알았던 사실을 전과 후를 알게 된 것이다.


20대에 어필하려면
 

사기는 국내에 출판된 것만해도 20여종이 넘는다. 어린이 만화까지 범위를 넗힌다면 그 숫자는 더 많아질 것이다. 사기의 본전에 충실하게 나온 것은 까치출판사의 것으로 전부 7권에 이른다. 대개는 흥미진진한 열전, 즉 인물이야기에 촛점을 두고 현대적으로 편집한 것이다.

추수밭에서 나온 <꿈꾸는 20대, 사기에 길을 묻다>는 20대를 겨냥하고 만든 것 같다. 내용은 구어체로 전달되어 읽기 쉽다. 별 무리 없이 이야기 책 읽듯이 읽을 수 있어 좋았다. 책은 6장으로 여섯 갈레로 내용을 편집하였다. 1장 ,꿈꾸는 20대, 내 인생의 사람만들기, 2장, 꿈꾸는 20대, 내 안의 열정 깨우기, 3장, 꿈꾸는 20대 신념에 충실하기... 등으로 엮어진다. 하지만 1장, 2장, 3장, 4장 등의 분류가 흔쾌하지는 않다. 테마별로 묶기는 했는데,  그 이야기가 각각의 테마에 잘 들어맞는지 공감이 안간다. 

20대 젊은 세대에게 다가가기 위해서 일러스트를 과하게 썼다. 예쁜 책이 트랜드인 시대에 일러스트가 나쁜 건 아니다. 하지만 과한 색감이 마치 무협지를 연상케해서 책 읽는 내내 불편하다. 어떤 면, 책의 격을 떨어뜨린다는 생각마저 든다. 책은 내용도 내용이지만 편집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다시한번 느낀다.

20대에 어필하려면, 내용이 중요하지 않았을까. 테마의 분류가 적절하기 위해선 현실에 맞게, 혹은 편자의 철학을 가미해서 썼더라면 좋았을 것이다. 역사를 편저한다는 것이 결코 쉬운일이 아니라는 것을 느끼게 한다. 문득 시오노 나나미의 <로마인 이야기>가 떠오른다.  <로마인이야기>가 재미있는 것은 시오노 나나미 만의 독특한 해석이 있었기 때문이다. ' 

20대에 어울리는 사기'라고 하기엔 20대에 보내는 메시지가 약하다. 원문 해설에서 나아가 20대가 공감할 만한 이야기가 덧붙여줘야 하지 않을까? 3~4줄 코멘트 식으로 달아놓기는 했는데, 공감도 가지 않고, 내용은 너무 짧다. 이 책은 그래서 남녀노소, 누구나 읽어도 무방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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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이 들리고 음악이 보이는 순간>을 읽고 리뷰를 남겨 주세요.
그림이 들리고 음악이 보이는 순간 - 여자, 당신이 기다려 온 그림이 들리고 음악이 보이는 순간 1
노엘라 (Noella) 지음 / 나무수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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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나는 미술책을 전문으로 리뷰를 올리고 있다. 왜 미술책이냐고 묻는다면, '즐거우니까!' 시간이 날때면 삼
청동, 통의동, 인사동, 평창동의 화랑을 돈다. 각기 다른 세계관을 지닌 그들 화가의내면을 바라보고, 존경
하고, 감동하고, 또 즐거워한다. 내 꿈의 하나는 '세상의 모든 그림을 보는 것'이다.   
그림 못지않게 음악은 나에게 위안과 안식이다. 낮잠을 좀처럼 자기 힘든 나는 밤샘을 하고 돌아오는 날이면,
모차르트의 피아노 협주곡 20번을 턴테이블에 걸어 두곤 했다. 3악장의 악센트에 엷은 잠을 깨곤했지만, 그 음
악을 들으면 편안해 지고, 그래서 잠을 청할수 있어 좋았다. 그림이 없는 세상, 음악이 없는 세상은 상상할 수
없다!

음악을 들으면 색이 보였던 칸딘스키

내가 좋아하는 두 친구를 묶은 책이 나왔다. <그림이 들리고 음악이 보이는 순간>.
이 책의 지은이 노엘라는 나만큼이나 그림과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이다. 그리고 두분야에 박식하다. 책이 도착
했을 때 얼마나 반가웠는지 모른다. 게다가 출판사는 <나무 수>다. 이미 <핀란드 디자인 산책>에서 이 출판사를
눈여겨 보았던 터다. <나무수>의 블로그에서 이 책을 예전에 봤는데, 읽고 싶었다. 그런데 이번에 서평단 리뷰책
으로 온것이다. 서평단 하길 잘했지!

지은이는 바이올리니스트로, 2008년 연주앨범 <샤이닝 클라우드>를 내기도 했다. 그런 그는 미술에도 해박한
지식과 애정을 갖고 있어 이렇게 멋진 책을 내게 되었다. 글의 구성은 나의 이야기- 화가이야기 - 음악가 이야기
-나의 생각마무리 이런 패턴으로 되어있다.  비슷한 이미지의 화가와 음악가가 함께 나란이 글 한편에 등장하고,
그 이미지에 맞는 나의 추억과 삶이 씨줄날줄로 연결된다. 

책의 <오감으로 느끼는 사랑>이라는 제목의 글에선 음악을 들으면 색이 보이는 칸딘스키, 색을 보면 음악이 들리는
스크랴빈을 소개하고 있다. 칸딘스키의 그림을 보면 어떤 리듬감이랄까, 발랄한 음악이 들린다고 생각했던 적이 있
는데, 역시나. 그는  바그너의 오페라 <로엔그린>을 보고 음악을 들으면서 색을 보는 공감각 (두가지 감각이 동시에  
일어나는 현상)을 느꼈다.   칸딘스키는 악기들마다 고유의 색이 있다고 보았다. 트럼펫은 빨간색을 나타내며, 목표
지향적이고 열정적인 것을 의미하고, 플루트는 밝은 파랑, 첼로는 어두운 파랑, 오르간은 제일 어두운 파란색을 나타
내는 것이라 보았다. 칸딘스크의 이런 영감은 그의 작품 속에 고스란히 반영되고 있다.

도,레,미, 파에 색깔을 입힌다면?

스크랴빈은 관현악 <불의 시>를 작곡하면서 각각의 음정에 색깔을 지정하고 의미를 부여했다. 그는 '도'는 빨간색을
나타내고 인간의 의지와 격렬함을 표현한다고 했고, '레'는 노란색이며 환희를 '미'는 하늘색이자 꿈을, '파#'은 보라
색이며 창의력을 나타낸다고 했다. 그리고 그는 사람은 저마다의 영혼에 어떤 색깔이 있다고 믿었다. 
나는 무슨 색깔일까? 그리고 당신은?

이처럼 책에서는 모네의 그림과 드뷔시의 음악을 묶고, 뭉크와 쇤베르크를 묶는다. 발라동과 말러의 공통점을 발견하고,
고야와 베토벤에서 유사한 숨결을 읽는다. 바이올리니스트인 저자는 음악을 통해 미술을 보고 미술을 통해 음악을 읽어
낸다.  그림과 그림으로 이어가도 좀은 어려운 듯한데, 현대음악가들의 계보가 들어서니 좀더 어렵다. 그렇지만 나의 지
식창고는 한결 두둑해진다. 흠... 모네와 드뷔시가 이렇듯 같은 느낌으로볼 수 있겠구나...이 책을 읽고나면 근현대 예술
사를 짧게 지나오는 듯 하다. 화가의 삶, 음악가의 삶이 씨줄 날줄로 엮이면서 한 시대의 가치관과 사고의 변화가 어떻게 
그림과 음악에 반영되고 꽃피웠는지를 짐작케한다.


에세이란 '나'를 주어로 엮어가는 대화

이 책은 음악과 미술을 사랑하는 사람에게 흥미롭다. 그리고 에세이라 부담없이 책을 열게 한다. 한가지 아쉬운 점이 있다
면 기왕 에세이의 형식이라면 자신의 얘기가 구체적인 언어로 쓰여졌으면 하는 것이다. 나의 이야기를 하긴 하는데, 모호
하다. 사랑하고, 해외생활에 지치기도 하고, 괴로운 일도 겪었다는 표현이 있지만 뭔가 생생하지 않고, 누구에게나 다 있는
보편적인 삶을 보든 듯하다. 나를 드러내지 않은 건 아닌데, 안개속같다. 다 읽은 다음에도 지은이의 '컬러'가 느껴지지 않
는다. '나의 삶'을 깔고 시작하는 글이라면 나의 삶이 생생하게 드러나야 읽는 사람도 즐겁고 감동도 두배가 된다.

음악가나 화가에 대해선 간략한 백과사전식 소개를 하고 글을 여는 것이 좋았겠다. 잘 알려지지 않은 예술가들도 더러 있었
고, 두 사람이 하나로 묶이는 것은 시대적 배경도 무시할 수 없었을 것인데, 그에 대한 설명도 결들였으면 더 좋지 않았을까.
한가지 더 아쉬움을 지적하자면, 나의 이야기- 화가이야기- 음악가 이야기가 글 한편에 묶이다 보니, 주어가 산만해진 느낌
이다. '사랑했고 행복했다'는데, 나의 이야기인지, 화가가 그랬다는 건지, 음악가의 삶을 말하는 건지 좀처럼 긴장하지 않으
면 줄기가 금세 흐트러지고 만다. 


<그림이...>는 음악에는 지식이 일천한 나에게 그림과 더불어 음악을 바라보는 즐거움을 주었다. 선물은 더 있다. 초판을 사면 책에 소개된 음악가들의 음악이 실린 씨디가 선물로 온다. 너무반갑다. 게다가  미술관 티켓이 3장 따라온다. 이 책을 사
려면 일단 서두르시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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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영화 최고의 10경>을 읽고 리뷰를 남겨 주세요.
한국영화 최고의 10경 - 영화평론가 김소영이 발견한
김소영 지음 / 현실문화 / 201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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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씨네 21>에 나오는 김소영의 글을 좋아한다. 영화와 대중문화를 현실정치에 버무려 쓴 그녀의
글을 읽다보면 통쾌해질 때가 많다. 그녀의 글은 씨네의 기자로, 글잘쓰기로 이름난 백은하 나 김혜리
와 버금가는 또다른 개성있는 글이라 생각한다.

학술적 평론과 대중적 리뷰의 혼재

<한국영화 최고의 10경>이 배달되었을 때, 내심 좋아라 했다. 하지만 책의 제목이나 내용은 학술적이
어서 쉽게 읽혀지지 않았다. <반도의 봄>, <열녀문>, <귀로>등 낯선 이름들과 옛날 배우의 이름이 생
소하기만하다. <괴물>,<빈집>, <강원도의 힘>등 익숙한 영화들이 나왔을 때야 겨우, 편안하게 책에
몰입할 수 있었다.

영화리뷰 모음집이거나, 일반적으로 알려진 영화를 대상으로 쓴 글일 거라 생각했는데, 영화사적으로
의미있는 감독의 작품들, 우리영화에 족적을 남긴 영화를 대상으로 한 글이 대부분이다. 학술적 영화
평론이 주를 이루고 있는데, 혹시 김소영씨가 학위논문 통과를 위해 썼던 글이 아닐까? 대중에게 다가
가고 대중을 설득하려는 '커뮤니케이션'의 방식보다는 본인이 어떻게 생각하는 지에대한 정리에 더 힘
이 실려있는 것 같다. 그러니 영화학도가 아닌 사람에겐  지루한 선생님의 강의 같은 부분이 있다.

좋은 편집자를 만났더라면 혹은 작가가 유연했다면 

출판일에 관심이 있는 사람으로서, 충분히 좋은 재료를 갖고 잘 만들지못한 책 앞에선 '만약에'라는 단서
를 붙여 새로 만들고 싶어진다. 혹은 독자로서 더 좋은 책을 보고자하는 욕망에서 이런 저런 생각을 하게
된다.

첫째, 학술적으로 다룬 옛날 영화는 글의 서두마다 간략한 줄거리를 소개했더라면 어떨까.  

둘째, 10경이라고 했는데, 조금더 구체적인 의미를 달아보면 어떨까. 첫번째 '경'은  '경계의 경관'이라 이
름 했는데 좀더 쉬운 이름이었어도 됐다. '떠도는 이방인'에 대한 영화인데, 그에 맞는 이름이면 족하지 않
을까. 두번째 '경'은 '근대의 원초경'이라고 이름했는데, 역시나 어렵다.

세째, 학술적인 표현으로 이어지는 영화평론집이라면 차라리 시대연대기로 이어가면 좋지 않았을까. 그러면
읽는 사람이 덜 힘들었을텐데. 2006년 영화- 옛날영화- 다시 홍상수,김기덕 - 팜므파탈 도금봉 이렇게 이어지
는 책의 흐름은 왜 그런지 잘 모르겠다. 10경 자체가 그다지 명확하게 와닿지 않는데, 시대순마저 이렇게 이어
지니 어렵기만하다.

네째, 가장 '으악'한 것은 표지다. 요즘 책의 표지 디자인은 날마다 새로워지고 있다. 책표지 디자인 자체가 예술
이다 싶은 책이 많다. 이 책은 영화를 논하는 책이다. 보다 미학적으로 만들어졌어야 하는 책인데, 그 무지개빛
현란함이라니!  김소영의 이름값과, 현실문화라는 출판사의 이름이 무색해진다.
그리고 무엇보다 내가 편집자라면, 책 제목과 중간 섹션제목은 꼭 다시 달고야 말겠다.  


책을 낸다는 것은 논문을 쓴다는 것과는 다른 차원일 것이다. 논문은 학교 안에서 보는 것이고, 연구자들이 보는
것이니까. 책을 이세상에 내놓다는 것은 대중과 호흡하겠다는 생각에서 출발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한번쯤은
대중의 눈높이를 생각하자. 

아쉽다. 분명히 좀더 잘할 수 있었다. 글쓴이도, 출판사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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