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의 쓴 맛, 맥주의 쓴 맛, 블랙러시안의 쓰면서 단 맛에 이어 소주는 다디달았다. 세상에- 너무 달아서 백자평 하나 남길 일 없이 증발한 월요일이 조금 부끄럽구나. 숙취가 심하지 않아 조금만 부끄러운 건가. 여하간 부끄러울 줄 알면서 또 저녁 술약속이 돼있는 화요일이다.
품절이라 어렵게 구한 이 멋진 <교수와 광인>을 차분히 앉아 음미하지 못함이 못내 아쉽다. 19세기의 위대한 프로젝트 <옥스퍼드 영어 사전> 편찬에서 엮인 두 사람, 제임스 머리와 윌리엄 마이너의 이야기가 각각 조금씩 맛보기로 소개된 흥미진진한 초기지점에 내 책갈피는 머물러 있다. 그런데 빅토리아 시기 영국이니 제임스 머리(어마어마한 지식 소유자이자 추구자)가 슥- 스치고 지나가는 주변인들이 예사롭지 않아 단 몇 줄의 만남이라도 헛-하는 비중으로 다가온다.
만약 두 사람의 우정이 없었다면, 머리의 언어학에 대한 관심은 아마추어로 열심히 노력하는 정도에서 끝났을지도 모른다. 그에게 도움을 준 친구는 케임브리지의 트리니티 칼리지에서 수학을 가르치는 알렉산더 엘리스였고, 또 한 친구는 옹고집에다가 불손하기로 악명 높은 음성학자 헨리 스위트였다. 헨리 스위트는 얼마나 특이했던지 이 사람의 성격은 나중에 버나드 쇼가 <피그말리온>이라는 작품에서 헨리 히긴스 교수라는 인물로 묘사했는데, 이 작품은 후에 불후의 영화 <마이 페어 레이디>가 되었다.
렉스 해리슨 경의 연기로 기억되는 히긴스 교수 아닌가. 주위에 이런 사람들과 같이 지내는 건 어떤 기분일까. <미드나잇 인 파리>같은 마술이 일어난다면 내가 택할 시기도 다름 아닌 19세기. 프랑스 뿐 아니라 영국, 러시아까지 가 볼 거다...(?)마술이니까 내가 게으르거나 하진 않겠지.
하지만 퍼니발은 뛰어난 학자였고, 머리처럼 배움에 대한 갈망을 지녔다. 알프레드 로드 테니슨, 찰스 킹즐리, 윌리엄 모리스, 나중에 밝혀진 바에 따르면 마이너의 런던 스승이었던 존 러스킨, 요크셔 태생의 작곡가 프레더릭 딜리어스 같은 사람들이 퍼니발의 친구이자 숭배자였다. 같이 스컬 배를 타는 동료 케니스 그레이엄은 잉글랜드 은행 직원이었는데, 퍼니발에게 매혹되어 <갈대밭에 부는 바람Wind in the Willows>이란 동화를 쓰기도 했는데, 그는 작품 속에서 퍼니발을 물쥐로 표현했다. 작품 속에서 “우린 그것들을 배웠어!”라고 두꺼비가 말하면 물쥐는 “우린 그것들을 가르쳤어”라고 고쳐준다. 퍼니발은 잔꾀 많은 악동이었을지 몰라도 때로 맞는 말을 하는 사람이었다.
‘갈대밭’이 아니라 ‘버드나무’가 바른 모양, <버드나무에 부는 바람>은 이런 저런 책을 읽으면서 몇 번이나 만났음에도 이상하게 아직 손에 넣지 않았는데, ‘반쯤 미친 집시 학자’이자 ‘빅토리아 시대 영국에서 가장 놀라운 사람으로 꼽히는’ 퍼니발이 물쥐의 모델이라니, 확 구미가 (다시) 당겼다. 많은 번역본들 중에서도 이것으로! (좀 비싸구나;;)
1878년 4월 26일, 제임스 (오거스터스 헨리) 머리는 옥스퍼드로 초대받았다. 옥스퍼드의 크라이스트 처치에서는 세계 최고의 지성인 집단으로 꼽히는 옥스퍼드 대학 출판부 대표 위원 전원이 모인 어마어마한 회의가 열리고 있었다. 그야말로 대단한 인물들이 모여 있었다. 칼리지 학장 헨리 리델, 라이프치히 언어학자이며 동양학자, 산스크리트학자로 옥스퍼드의 비교 언어학과장 막스 뮐러, 빅토리아 시대에 역사학을 존중받는 학문으로 만들었다는 평가를 받는 역사학 흠정 강좌 담당 교수 윌리엄 스터브즈, 크라이스트 처치 대성당 참사 위원이자 고전 학자 에드윈 팔머, 뉴 칼리지 학장 제임스 수얼 등등.
헨리 리델의 딸이 바로 앨리스다. 수학자 찰스 도지슨 또는 작가 루이스 캐럴도 이때쯤 주변에서 소녀들 사진을 찍거나 하면서 서성이고 있었겠다. 막스 뮐러는 그 유명한 <독일인의 사랑>의 막스 뮐러가 맞다.
아 빅토리아, 빅토리아. 이런 책도 보관함에 들어앉아 있는데 <교수와 광인>을 다 읽고 나면 덜컥 지를지도 모르겠다.
빅토리아? 그러고 보니 어제는 영화 <글로리아>를 봤고
“작품에 총이 등장하면 반드시 발사되어야 한다.”는 체호프의 말과(ㅋㅋㅋㅋ), 이런 영화는 관람 시 (흡연까지는 아니더라도) 음주를 허해야 할 것이라는 생각을 했었다.
그렇구나, 사라진 월요일은 <글로리아> 때문이었어. 술과 숙취와 외로움의 쓰고도 단 맛. 음? 핑계 대기는. 네 삶 자체가 안주라고 그냥 말해. 내 삶은 안주, 삶은 안주,,, 날것은 못 먹습니다. 네 발로 기는 내일이 아니길 바랄 뿐입니다. 네네.
이 닦으러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