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선생님 최고 동화는 내 친구 10
하이타니 겐지로 지음, 햇살과나무꾼 옮김 / 논장 / 199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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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학년 3반 신바람 똥싸개 선생님은 다섯발 연속 방귀를 뀌어 아이들을 즐겁게 해주었으므로 "바보훈장"을 드립니다. 책의 마지막 부분에 아무래도 우리의 선생님은 50급훈장(일본에는 훈장에 1급부터 급이 매겨져 있는 모양이다.)도 받지 못할 것 같다는 결론이 모아지고 결국 아이들은 술병 뚜껑 (그때 아이들 사이에 한창 유행하던 것이 술병 뚜껑 모으기였다.)을 이용해 거기다가 예쁘게 색칠을 해서 선생님에게 훈장을 만들어준다. 참 아이들 다운 생각이다.

  우리들의 선생님은 절대로 특별하지 않다. 조금 다른 점이 있다면 보통의 선생님은 나름의 상처나 아픔을 숨긴 채 아이들 앞에서 완벽한 어른 노릇을 하려고 하지만 이 선생님은 자신의 상처도 아이들에게 그대로 드러내고 똑같이 상처를 가지고 있는 아이들과 함께 이야기하면서, 장난치면서 풀어간다는 점이다. 선생님이 아니라 조금 더 나이를 먹은 아이 같은 면을 보일 때가 많다.

  이야기는 어떤 커다란 흐름에 따라 이어지기 보다는 에피소드 형식으로 묶여 있다. 그래서 일관된 줄거리를 찾아내기는 조금 어렵다. 기억에 남는 이야기를 따라가자면 아이들이 교실에서 싸우고 있으면 선생님은 아이들을 말리는 대신 옆에서 응원을 한다. 그러면 아이들은 금세 싸움이 시들해져 멈춰버리고 만다. 어찌 보면 싸움도 아이들에게는 조금 과격한 놀이인지도 모르겠다. 4학년 3반에 오리라는 별명을 가진 아이가 있다. 다른 아이들보다 조금 뚱뚱하고 엉덩이가 오리처럼 튀어나와서 붙여진 별명이다. 조별 달리기 대회에서 오리와 같은 조에 있는 아이들이 오리 때문에 달리기에서 졌다고 불평을 하자 선생님은 아이들 허리에 3,4킬로그램 정도 무게의 띠를 두르게 한다. 그렇게  해서 달림으로써 오리가 달리기를 할 때 얼마나 불편할지 느껴보라는 것이다.

  선생님 외의 중요한 인물로는 감옥에 갔다 보석으로 풀려난 아버지와 갈등하는 따따부따, 어머니가 산파여서 무지무지 바쁜 관계로 어머니의 보살핌을 덜 받고 있다고 생각하는 딱부리( 이 아이는 배부른 여자를 보면 바늘로 퐁퐁 터뜨려버리자 라는 제목의 시를 짓는다.), 삶은 호박등이 있다.

  아이들도 어른들도 정말 재미있어 하면서 읽을 수 있는 책이다. 삽화도 익살맞고 재미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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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코 폴로의 동방견문록
로빈 브라운 지음, 최소영 옮김 / 이른아침 / 200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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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주 먼 옛날(?) 국사 시간인가 사회 시간에 배운 이후로 이제 겨우 손에 들어온 책 마르코 폴로의 동방견문록. 책읽기를 너무 게을리한 탓이다. 도서관에서 몇 권의 동방견문록 중에서 이책을 선택했다. 일단은 너무 지나치게 요약해서 내용을 제대로 파악하지도 못한 채 책을 덮게 되는 염려가 없으며, 혹은 지나치게 두께가 두껍고 활자들만 빽빽해서 위압감을 주는 정도도 아니며, 책 읽는 맛이 나겠는데 하는 정도의 두께감과 책 사이사이에 박혀있는 컬러 그림들이 책을 읽는 재미를 배가 시켜줄 듯한 인상이었다. 특히 재미 있었던 점은 마르코 폴로의 책을 보고 그린 그림 속 장면들이 동양의 모습이 아니라 서양 사람들의 얼굴이었으며 건축물 또한 그러했다. 동양 사람과 문화를 접해 보지 못한 그 당시 화가에 의해 그려진 탓에. 나름대로 재미난 그림이었다. 그 당시 (13세기)에는 서양 사람들의 동양에 대한 지식이 전무한 상태나 다름없었다. 그 때문에 마르코 폴로의 기록이 신비하고 재미난 이야기 정도의 취급을 받았을 것이다. 또한 그 곳이 세상의 중심이라고 생각하는 서양 사람들에게 어딘지 알 수 없는 저 동쪽 어딘가에 그렇게 뛰어난 문화와 기술을 가진 나라들이 있다는 걸 인정하고  싶지 않았을 것이다. 게다가 마르코 폴로는 대체로 긍정적으로 동양을 그리고 있다. 특히 그 당시 동양의 지배자였던 쿠빌라이 칸(몽골 제국)과 그가 지배하는 나라들에 대해서. 

  역시 첫인상대로 페이지가 너무 잘 넘어간다. 약간은 아쉬울 정도로. 중고등학생 정도면 충분히 읽어낼 수 있을 것 같다. 마르코 폴로가 이 책을 처음 출간했을 때 소설 정도의 취급을 받았다고 했는데 그만큼 재미있게 씌어 졌기 때문인 것 같다. 그리고 여러 다양한 판본을 바탕으로 재구성한 로빈 브라운의 솜씨도 쉽게 읽히는 데 한몫을 한 것 같다. 약간 아쉬웠던 점은 마르코 폴로가 여행한 곳의 지도가 좀더 상세하게 나와 있었더라면 하는 정도였다. 책을 읽어내려가다가 새로운 도시가 등장하면 앞쪽에 있는 지도를 찾아가며 읽었는데 몇몇 중요한 도시를 빼고는 어디인지 정확히 알 수가 없었다.  

  마르코 폴로의 아버지 니콜로와 숙부인 마페오는 상인으로 모험을 찾아 동양을 향해 떠난다. 그들은 지금의 아프카니스탄에서 쿠빌라이 칸의 대사를 만나 쿠빌라이 칸이 있는 궁전으로 가게 된다. 그곳에서 그들은 쿠빌라이 칸의 부탁을 받게 된다. 교황께 청해서 일곱 가지 학문에 정통한 학자 100명과 성유를 가져와 달라는. 그들은 떠난 지 4년만에 우여곡절 끝에 고향 베네치아로 돌아오게 된다. 그리고 부탁대로 성유와 2명의 신학자와 함께 쿠빌라이 칸이 있는 궁전을 향해 두 번째 모험을 떠난다. 이때 어린 마르코 폴로도 함께 길을 떠나게 된다. 결국 2명의 신학자는 돌아가버린다.

  아르메니아를 거쳐 바그다드,티벳고원,고비사막, 둔황, 상두 등을 거쳐 쿠빌라이 칸이 있던 베이징까지 오게 된다. 다양한 도시를 지나면서 들은 이야기, 직접 경험한 이야기들을 상세히 기술하고 있다. 마르코 폴로는 쿠빌라이 칸의 보호 아래 중국 이곳저곳 등 많은 곳을 다니면서 본 풍물, 자연, 그 지방의 생산품 등을 관심을 가지고 기록하고 있다. 마르코 일가가 베네치아를 떠난 지 17년 여 만에 그들은 고향에 돌아갈 결심을 하지만 쿠빌라이 칸은 허락하지 않는다. 하지만 페르시아 일한국의 군주인 아르군의 왕비에 오르게 되는 왕녀를 수행하는 임무를 맡게 되어 베트남 인도 등을 거쳐 고향으로 돌아오게 된다. 어쩔 수 없이 폴로 일가를 보내기는 했지만 쿠빌라이 칸은 그들이 떠나는 걸 달가워하지 않았다. 베네치아에 돌아온 마르코 폴로는 전쟁에 휘말리게 되어 감옥에 갇히게 된다. 그 때 기록한 것이 바로 동방견문록이다. 그가 직접 쓴 것은 아니고 감옥에 같이 있었던 소설가 루스티첼로의 도움을 받았다고 한다. 그래서 그의 기록이 사실이 아니라 단지 흥미 있는 이야깃거리로 받아들여졌다.

   그 당시 서양의 눈으로 보지 않더라도 충분히 흥미 있는 내용들을 담고 있었다. 책을 덮는 순간 그와 함께 13세기 중동과 동양 여행을 함께 끝낸 기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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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식
히라노 게이치로 지음, 양윤옥 옮김 / 문학동네 / 199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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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단 작가의 중세에 대한 지식에 놀라웠다. 게다가 이 작품을 쓸 당시의 나이를 생각하면 어린 나이임에도 소설을 쓰기 위해 소설 속의 배경이 될 시대에 대해 많이 공부하고 썼다는 게 느껴졌다. 단지 상상만으로 이루어진 허구가 아니라는 느낌이었다. 그러나 이 작품이 아주 독특한 작품이며 그 당시 일본의 보통 작가들과는 궤를 달리하는 작품인 것만은 분명하지만 움베르트 에코의 장미의 이름 같은 류의 책 같아서 그다지 신선하다는 느낌은 없었다. 연륜의 차이겠지만 그만큼 철저하다거나 깊이감은 없다는 느낌이었다. 사실적인 묘사보다는 다양한 지식으로  중세를 표현하려고 한 듯하다. 마지막 환타지 같은 장면을 이끌어내기 위해서는 그게 올바른 선택이었다는 생각도 든다. 이 작가는 삶이나 경험을 통한 작품 구상보다는 독서를 통한 작품 구상에 능통한 작가인 것 같다. 이미 나와 있는 고전을 원재료로 삼아서 거기에서 얻은 감흥을 또다른 작품으로 완성해내는, 추체험을 통한 새로운 작품 만들기가 아닌가 싶다. 아마도 앞으로는 이런 류의 작품이 훨씬 많아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아마도 우리들의 경험이 삶에서 직접 얻어지는 체험보다는 다양한 정보를 통해 간접적으로 얻어지는 경험이 더 많아졌기 때문일 것이다.

  어쩌면 이 작가도 이 곳에서는 색다른 상상이나 흥미를 발견하기가 어렵지 않았을까. 작품을 쓸 그 당시에는 어린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그가 사는 현실이, 곧 우리가 살고 있는 이곳이 뭔가 새로움을 찾기에는 너무 낡아버렸고 현실이, 미래가 빤히 보인다고 생각하지 않았을까. 그래서 뭔가 새로움을 찾아나선 곳이 유럽이라는, 중세라는 상상의 세계가 아니었을까.  사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곳에서 소설적 상상력을, 특히 사소한 일상의 모습이 아닌 거대 환타지를 실현하기란 어려운 일일 테니까.

  작품 속 배경은 중세 카톨릭의 기반이 흔들리기 시작하고 이단이라는 이름 하에 배척받는 여러 다른 신앙들이 사람들 속으로 이미 퍼져나가고 있는 시점이다. 주인공인 젊은 수도사는 아직은 정통 기독교의 신념을 따르고 있지만 마음 속에서는 자신의 믿음에 대해 의문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그런 의문을 함부로 드러낼 수는 없다. 언제 이단이라는 심판대에 설지 알 수 없기 때문에. 수도사 외에 주요한 인물로는 자신의 믿음에 철저한 자크 미카에리스, 마을에서 고립된 채 홀로 연금술을 연구하는 피에르 뒤페, 그리고 자웅동체의 형상인 안드로규노스가 마지막으로 등장한다. 일식이라는 제목은 마지막에 이단이란 이름으로 안드로규노스가 산 채로 화형을 당하는 장면에서 비로소 제목과의 연관성 드러난다. 젊은 수도사는 달과 태양이 결합되는 일식의 순간에, 자웅동체인 안드로규노스가 검은 태양을 향해 정액을 내품는 순간에 영혼과 육체를 결합을, 초월을 경험한다. 안드로규노스가 타고 남은 재 속에는 금덩어리 하나가 묘한 빛을 발하며 섞여 있었다. 그러나 이단심문관은 그것은 단순한 재일 뿐이라며 금덩어리의 존재를 부인했고 재와 함께 금덩어리는 강물 속에 버려졌다.

  진실은 받아들이기가 두려운 법이다. 중세 기독교들에게 이곳저곳에서 퍼져가고 있는, 이단으로 이름지었던 다른 믿음이나 종교에 대해 가지고 있었던 거부감이나 두려움을 작가는 안드로규노스라는 (사실 아직까지도 내게는 정체불명인 형상으로 남아있는) 형상으로 표현하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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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야마 부시코
후가자와 시치로 지음 / 출판시대 / 199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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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문열의 세계명작산책에 실려 있던 단편에서 이 작품을 읽었다. 이 작품을 읽고 났을 때 한마디로 충격이었다. 너무 완벽한 소설이어서. 내가 쓰고 싶었던 소설이어서 너무 충격적이었고 너무 질투가 났었다. 그때 소설을 쓰는 것도 소설을 읽는 것도 다 시들하던 시기였는데 우연히 이 작품을 보고 이렇게 잔인하고, 속되고, 적나라하고, 기이하고 그러면서도 완벽하게 아름다운 소설이 있을 수 있구나 싶었다. 더 절망스러웠다. 이렇게 못 쓸 바에야 아예 나도 소설을 쓰고 싶다는 생각조차 하지 말아야 하는 게 아닌가. 읽는 내내 저항감이 느껴졌다. 완벽하게 멋진 묘사여서 그리고 그들의 풍속이 이 세상의 가치를 배반하는 것이어서.

  우리의 고려장과 같은 풍속이 일본에도 있었던 걸까 내내 궁금했었다. 아니면 이런 류의 설화가 존재하는 것일까. 먹고 사는 것이 모든 것인 세상, 남의 식량을 훔쳐내는 것이 가장 큰 죄를 짓는 일인 마을, 그것으로 마을 사람들에 의해 온 가족이 산 채로 생매장을 당하고 그들이 숨겨 놓은 식량은 마을 사람들의 생존을 위해 나눠가지는 마을. 삶에 대한 본능만 남아 있는 산 속 오지 마을.

  70세만 되면 노인들은 나라야마에 가야한다. 그곳에서 생을 마감해야만 그들의 영혼이 극락으로 갈 수 있다. 나라야마가 아닌 마을에서 죽거나 그곳에 가기를 거부한다면 그건 가문 전체의 수치다. 이제 곧 70이 되는 오린은 나라야마에 갈 준비를 한다. 오린은 부끄럽다. 곧 나라야마에 가야하는데 하나도 빠진 데가 없는 튼튼한 이가. 그래서 돌로 앞니를 부서뜨린다. 이제 보란 듯이 빠진 이를 드러내고 웃는다. 오린은 소원이 하나 있다. 나라야마에 가는 날 첫눈이 오는 것. 그래야 죽어서 극락에 갈 수 있다. 오린은 이제 떠날 준비가 되었다. 떠나기 전에 마을 노인들에게 대접할 음식도 준비하고 술도 빚는다. 떠나기 전날 마을 노인들은 돌아가며 오린이 빚은 술을 마시며 나라야마에 갈 때는 어떻게 해야하는지 노래로 들려준다.

  드디어 떠나는 날, 아들이 진 지게에 오린이 말없이 올라앉는다. 두 사람 사이에는 아무 말도 없다. 절대로 말을 해서는 안 된다고 노래에서 가르쳐 주었다. 산을 몇 개씩  넘고 호수를 돌아 나라야마에 도착한다. 아들의 발걸음은 무겁다. 그러나 오린은 어서 오르라고 눈빛으로 재촉한다. 꼭대기로 올라갈수록 여기저기 하얗게 드러난 뼈들이 뒹굴고 있다. 평평한 바위 아래 어머니 오린을 내려놓고 아들은 차마 돌아설 수가 없다. 오린은 내려가라고 눈빛으로 말한다. 어머니 몫인 지게에 매단 음식까지 아들에게 내어 주며. 아들은 산을 내려온다. 그리고 첫눈이 내린다. 아들은 산을 뛰오른다. 죽음을 기다리며 앉아 있는 어머니에게로 가서 아들은 말한다. 첫눈이 내려요. 아들은 다시 산을 내려온다. 산을 내려오는 중에 마을 친구를 본다. 그는 나라야마까지 아버지를 데려가지 않고 절벽 아래로 아버지를, 지게에 매달려 떨어지지 않겠다는 아버지를 절벽 아래로 밀어버린다. 노인들의 노래에는 나라야마까지 지고가기 힘들 때에는 중간에서 노인을 두고 와도 된다고 했다. 절벽으로 까마귀떼가 몰려든다. 아들은 진저리를 치며 마을로 내려온다. 아내는 벌써 어머니가 입던 옷을 입고 있다. 산에서 가지고 온 음식을 식구들과 나눠 먹는다. 

  도저히 입을 법하지 않을 이야기를 잔인하도록 아름답게 선명하게 그려 내고 있다. 먹고 사는 일이 이토록 잔인한 것일까. 이토록 절대적인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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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2007-03-04 14: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책은 못 보고 오래 전 영화를 보았던 기억이 납니다. 정말 너무나 속되고 처절해서 아름답다고 말할 수밖에 없었던, 강한 기억이 나네요. 소설을 쓰는 일에 관심이
많으신가봐요. 질투가 날 정도라고 하시니요.^^ 그런 열정 부럽습니다.

ㅇㅇㅇ 2008-10-21 11: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이문열 따라하기 하지 마시죻ㅎㅎㅎㅎ
 
철도원
아사다 지로 지음, 양윤옥 옮김 / 문학동네 / 199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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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두 번째로 읽었다. 도서관에서 책을 고를 때 읽었던 책인가 아닌가 조금 망설였다. 너무 유명한 책이라서 어쩌면 읽었다고 생각했을 수도 있다. 게다가  느긋하게 내용을 보면서 고를 시간이 없어서 일단 들고 나왔다. 몇 페이지를 넘기자 역시 읽었었군, 했다. 내 기억이란 항상 이렇다. 몇 년 전, 역시 언제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이 책을 읽었을 때의 느낌이 어렴풋이 기억난다. 참 잔잔한 내용이구나 싶던. 하지만 어떤 이야기인지 기억나는 건 거의 없다. 그 때 가장 선명한 인상으로 남았던 작품이 "러브레터"였다. 이 작가는 참 멋지게 작품을 쓸 줄 아는 구나 싶었다. 사진 몇 장과 그 사람에 대한 이야기 몇 가지만으로 죽을 때까지 그리워했던 파이란의 그 잔잔한 그리움과 뒤 늦게 파이란의 존재를 알고 그녀가 보낸 편지를 읽으면서 오열하는 세상에 찌든 한 남자. 그 때 읽으면서 참 많이 울었던 기억이 있다. 이번에도 마지막에  이미 늦어버린 사랑을 깨닫고, 이미 세상에 없는 한 여자를 사랑하고 만 남자가 펑펑 울던 장면에서 눈물이 났다. 처음 읽은 그때처럼은 아니었다. 그때 왜 그렇게 울었을까. 무슨 다른 이유가 있었던 걸까. 기억나지 않는다.  

  "철도원"에는 어깨며 모자에 눈이 수북히 쌓인 제복차림의 남자가 서 있다. 그는 그곳에서 딸을 보내고 아내를 보냈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그가 떠난다. 그는 그저 어렴풋이 존재한다. 눈에 덮인 역사와 주위의 모든 것들이 그를 압도하는 느낌이었다. 평생 자신을 드러내지 않은 채 그 자리에서 철도원이라는 직업을 숙명으로 여기며 살아갔던 남자의 모습에서 일본적인 가치랄까 숭고함이랄까 그런 게 느껴졌다. "츠노하즈에서"도  "오리온 좌에서 온 초대장"도 그런 느낌이었고.  "악마"는 작가 자신의 어릴 적 경험이 많이 들어간 이야기가 아닐까 싶었다. 영화롭던 집안이 서서히 몰락해가는 과정에서 느끼는 소년의 공포가 작가 자신이 겪었던 공포가 아니었을까. 그 공포를 악마라는 구체적인 형상으로 그려낸 듯하다. 실제로 악마를 보았다고 생각하는 소년의 공포가 아주 생생하게 다가온다.  "메리 크리스마스, 산타"는 정말 크리스마스 즈음에 읽으면 좋을 짧은 콩트 같은 이야기다. 이름이 산타인 소매치기가 우연히 감방에서 만난 남자의 가족을 위해 크리스마스에 산타가 되어주는 이야기. 어린 아이 같은 감상이긴 하지만 작가는 따뜻한 심성을 가진 사람이었을 같다.  "백중맞이"는 남편의 외도로 이혼의 위기에 처한 여자가 이혼을 담담히 받아들이게 되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백중맞이 첫 제사라는 일본의 풍습이 아주 흥미로웠다. 마중불을 피워서 혼을 맞아들이고 배웅불을 피워서 영혼을 보내는 풍습이 인상적이었다.  "캬라"는 뭔가 좀 색다른 느낌의 소설이다. 미스테리한 여자의 모습만 기억에 남는다.

  이번에 다시 책을 읽으면서 작가는 현실과 환상을 교묘하게 잘 섞어 처리하는 능력이 탁월하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철도원"에서 죽은 딸아이와 영혼과 만나는 모습, "츠노하즈에서" 자신을 버렸던 아버지의 영혼과 대면하는 장면, "백중맞이"에서 역시 할아버지의 영혼과 만나는 모습, 특히 이 작품은 마중불과 함께 온 할아버지의 영혼이 손녀딸의 가정을 지켜주기 위해 애쓰는 장면이 나오는데 우리가 사는 이곳과 저곳이 서로 영향을 주고 받으며 공존하는 것일까 하는 생각까지 들게 한다. 그만큼 현실과 환상의 드나듦이 자연스럽게 묘사되어 있다. 어느 시간에고 불쑥 영혼이 나를 찾아와 줄 것 같은 느낌이다. 그리고 말을 걸 것 같다. 사랑한다고 보고 싶었다고. 그러면 나도 말할 것이다. 보고 싶었어요. 정말 보고 싶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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