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식
히라노 게이치로 지음, 양윤옥 옮김 / 문학동네 / 1999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일단 작가의 중세에 대한 지식에 놀라웠다. 게다가 이 작품을 쓸 당시의 나이를 생각하면 어린 나이임에도 소설을 쓰기 위해 소설 속의 배경이 될 시대에 대해 많이 공부하고 썼다는 게 느껴졌다. 단지 상상만으로 이루어진 허구가 아니라는 느낌이었다. 그러나 이 작품이 아주 독특한 작품이며 그 당시 일본의 보통 작가들과는 궤를 달리하는 작품인 것만은 분명하지만 움베르트 에코의 장미의 이름 같은 류의 책 같아서 그다지 신선하다는 느낌은 없었다. 연륜의 차이겠지만 그만큼 철저하다거나 깊이감은 없다는 느낌이었다. 사실적인 묘사보다는 다양한 지식으로  중세를 표현하려고 한 듯하다. 마지막 환타지 같은 장면을 이끌어내기 위해서는 그게 올바른 선택이었다는 생각도 든다. 이 작가는 삶이나 경험을 통한 작품 구상보다는 독서를 통한 작품 구상에 능통한 작가인 것 같다. 이미 나와 있는 고전을 원재료로 삼아서 거기에서 얻은 감흥을 또다른 작품으로 완성해내는, 추체험을 통한 새로운 작품 만들기가 아닌가 싶다. 아마도 앞으로는 이런 류의 작품이 훨씬 많아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아마도 우리들의 경험이 삶에서 직접 얻어지는 체험보다는 다양한 정보를 통해 간접적으로 얻어지는 경험이 더 많아졌기 때문일 것이다.

  어쩌면 이 작가도 이 곳에서는 색다른 상상이나 흥미를 발견하기가 어렵지 않았을까. 작품을 쓸 그 당시에는 어린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그가 사는 현실이, 곧 우리가 살고 있는 이곳이 뭔가 새로움을 찾기에는 너무 낡아버렸고 현실이, 미래가 빤히 보인다고 생각하지 않았을까. 그래서 뭔가 새로움을 찾아나선 곳이 유럽이라는, 중세라는 상상의 세계가 아니었을까.  사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곳에서 소설적 상상력을, 특히 사소한 일상의 모습이 아닌 거대 환타지를 실현하기란 어려운 일일 테니까.

  작품 속 배경은 중세 카톨릭의 기반이 흔들리기 시작하고 이단이라는 이름 하에 배척받는 여러 다른 신앙들이 사람들 속으로 이미 퍼져나가고 있는 시점이다. 주인공인 젊은 수도사는 아직은 정통 기독교의 신념을 따르고 있지만 마음 속에서는 자신의 믿음에 대해 의문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그런 의문을 함부로 드러낼 수는 없다. 언제 이단이라는 심판대에 설지 알 수 없기 때문에. 수도사 외에 주요한 인물로는 자신의 믿음에 철저한 자크 미카에리스, 마을에서 고립된 채 홀로 연금술을 연구하는 피에르 뒤페, 그리고 자웅동체의 형상인 안드로규노스가 마지막으로 등장한다. 일식이라는 제목은 마지막에 이단이란 이름으로 안드로규노스가 산 채로 화형을 당하는 장면에서 비로소 제목과의 연관성 드러난다. 젊은 수도사는 달과 태양이 결합되는 일식의 순간에, 자웅동체인 안드로규노스가 검은 태양을 향해 정액을 내품는 순간에 영혼과 육체를 결합을, 초월을 경험한다. 안드로규노스가 타고 남은 재 속에는 금덩어리 하나가 묘한 빛을 발하며 섞여 있었다. 그러나 이단심문관은 그것은 단순한 재일 뿐이라며 금덩어리의 존재를 부인했고 재와 함께 금덩어리는 강물 속에 버려졌다.

  진실은 받아들이기가 두려운 법이다. 중세 기독교들에게 이곳저곳에서 퍼져가고 있는, 이단으로 이름지었던 다른 믿음이나 종교에 대해 가지고 있었던 거부감이나 두려움을 작가는 안드로규노스라는 (사실 아직까지도 내게는 정체불명인 형상으로 남아있는) 형상으로 표현하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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