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도원
아사다 지로 지음, 양윤옥 옮김 / 문학동네 / 1999년 10월
평점 :
품절


  두 번째로 읽었다. 도서관에서 책을 고를 때 읽었던 책인가 아닌가 조금 망설였다. 너무 유명한 책이라서 어쩌면 읽었다고 생각했을 수도 있다. 게다가  느긋하게 내용을 보면서 고를 시간이 없어서 일단 들고 나왔다. 몇 페이지를 넘기자 역시 읽었었군, 했다. 내 기억이란 항상 이렇다. 몇 년 전, 역시 언제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이 책을 읽었을 때의 느낌이 어렴풋이 기억난다. 참 잔잔한 내용이구나 싶던. 하지만 어떤 이야기인지 기억나는 건 거의 없다. 그 때 가장 선명한 인상으로 남았던 작품이 "러브레터"였다. 이 작가는 참 멋지게 작품을 쓸 줄 아는 구나 싶었다. 사진 몇 장과 그 사람에 대한 이야기 몇 가지만으로 죽을 때까지 그리워했던 파이란의 그 잔잔한 그리움과 뒤 늦게 파이란의 존재를 알고 그녀가 보낸 편지를 읽으면서 오열하는 세상에 찌든 한 남자. 그 때 읽으면서 참 많이 울었던 기억이 있다. 이번에도 마지막에  이미 늦어버린 사랑을 깨닫고, 이미 세상에 없는 한 여자를 사랑하고 만 남자가 펑펑 울던 장면에서 눈물이 났다. 처음 읽은 그때처럼은 아니었다. 그때 왜 그렇게 울었을까. 무슨 다른 이유가 있었던 걸까. 기억나지 않는다.  

  "철도원"에는 어깨며 모자에 눈이 수북히 쌓인 제복차림의 남자가 서 있다. 그는 그곳에서 딸을 보내고 아내를 보냈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그가 떠난다. 그는 그저 어렴풋이 존재한다. 눈에 덮인 역사와 주위의 모든 것들이 그를 압도하는 느낌이었다. 평생 자신을 드러내지 않은 채 그 자리에서 철도원이라는 직업을 숙명으로 여기며 살아갔던 남자의 모습에서 일본적인 가치랄까 숭고함이랄까 그런 게 느껴졌다. "츠노하즈에서"도  "오리온 좌에서 온 초대장"도 그런 느낌이었고.  "악마"는 작가 자신의 어릴 적 경험이 많이 들어간 이야기가 아닐까 싶었다. 영화롭던 집안이 서서히 몰락해가는 과정에서 느끼는 소년의 공포가 작가 자신이 겪었던 공포가 아니었을까. 그 공포를 악마라는 구체적인 형상으로 그려낸 듯하다. 실제로 악마를 보았다고 생각하는 소년의 공포가 아주 생생하게 다가온다.  "메리 크리스마스, 산타"는 정말 크리스마스 즈음에 읽으면 좋을 짧은 콩트 같은 이야기다. 이름이 산타인 소매치기가 우연히 감방에서 만난 남자의 가족을 위해 크리스마스에 산타가 되어주는 이야기. 어린 아이 같은 감상이긴 하지만 작가는 따뜻한 심성을 가진 사람이었을 같다.  "백중맞이"는 남편의 외도로 이혼의 위기에 처한 여자가 이혼을 담담히 받아들이게 되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백중맞이 첫 제사라는 일본의 풍습이 아주 흥미로웠다. 마중불을 피워서 혼을 맞아들이고 배웅불을 피워서 영혼을 보내는 풍습이 인상적이었다.  "캬라"는 뭔가 좀 색다른 느낌의 소설이다. 미스테리한 여자의 모습만 기억에 남는다.

  이번에 다시 책을 읽으면서 작가는 현실과 환상을 교묘하게 잘 섞어 처리하는 능력이 탁월하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철도원"에서 죽은 딸아이와 영혼과 만나는 모습, "츠노하즈에서" 자신을 버렸던 아버지의 영혼과 대면하는 장면, "백중맞이"에서 역시 할아버지의 영혼과 만나는 모습, 특히 이 작품은 마중불과 함께 온 할아버지의 영혼이 손녀딸의 가정을 지켜주기 위해 애쓰는 장면이 나오는데 우리가 사는 이곳과 저곳이 서로 영향을 주고 받으며 공존하는 것일까 하는 생각까지 들게 한다. 그만큼 현실과 환상의 드나듦이 자연스럽게 묘사되어 있다. 어느 시간에고 불쑥 영혼이 나를 찾아와 줄 것 같은 느낌이다. 그리고 말을 걸 것 같다. 사랑한다고 보고 싶었다고. 그러면 나도 말할 것이다. 보고 싶었어요. 정말 보고 싶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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