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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물리학이 발견한 창조주 ㅣ 정신과학총서 2
폴 데이비스 지음, 류시화 옮김 / 정신세계사 / 1988년 4월
평점 :
우주는 신에 의해 창조되었는가? 이 책의 결론은 아직 우주가 신에 의해 창조되었다는 증거도 그렇지 않다는 증거도 발견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사실 이 책은 신이 이 세상을 창조했는지를 증명하는 책도 그 반대를 증명하는 책도 아니다. 지금까지 물리학자들이 발견한 지식을 통합해서 우주의 기원, 생명의 기원, 멀리는 우주의 종말까지 두루두루 설명하고 있는 책이다. 아직은 과학의 지식만으로는 우주 창조의 원리를 제대로 설명할 수 없다. 과학으로 어떤 현상을 제대로 설명할 수 없다고 해서 우주를 신이 창조했다고 설명하는 건 자기모순에 빠지는 결과만 낳을 뿐이다. 과학은 이제 막 우주의 비밀을 엿보기 시작했고 종교보다는 과학이 신을 발견하는데 더 확실한 길을 제공해 줄 것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종교인들은 우주 기원의 원인이 하느님이라고 말한다. 이 세상에 있는 모든 것들은 원인이 존재한다. 그러므로 우주의 존재 원인은 바로 하느님(신)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물리학자들은 원인이 없어도 물질이 탄생할 수 있다고 믿는다. 무에서도 물질이 생겨나올 수 있음을 양자역학이 증명했듯이 우주도 신의 설계와는 상관없이 무에서 우연에 의해서 탄생했다고 주장한다. 종교인들은 터무니 없는 주장이라고 말할지 모르겠지만 사실 나는 이런 주장을 믿는 편이다. 현대물리학에 관한 책들을 읽다 보니 그런 관념들이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게 되었다.
종교인들과 몇몇 과학자들이 말하는 현재 상태 이대로 영원히 존재하는 우주란 너무 밋밋할 뿐만 아니라 생명의 본질과도 거리가 멀어 보인다. 우주란 생명체와는 다른 개념이라고 반박할지 모르겠지만 우주 또한 생명체처럼 탄생과 죽음을 겪는 존재라는 게 훨씬 자연스러운 이론으로 들린다. 현대물리학자들 또한 대부분 이런 주장에 동의하고 있지만. 원자만한 작은 것에서 출발한 우주가 시간과 공간을 함께 토해 내면서 별을 만들고 은하를 만들고 생명을 만들고 끝내는 죽음을 맞이하는 과정은 생각해보면 참 장엄하다. 엄청난 팽창 끝에 모든 별들이 내부의 연료를 다 태우고 거대한 동결 상태로 종말을 맺을 건지, 아니면 다시 원자상태로 수축해 들어가서 거대한 폭발을 일으키며 새로운 우주를 탄생시킬 건지, 혹은 끝없이 팽창을 계속해 갈 건지 아무도 알 수 없지만 그 어마어마한 시간의 거리를 생각해보면 나란 얼마나 작은 존재인가 새삼스레 깨달아지기도 한다.
우주의 종말을 지켜보는 지적생명체가 존재할 수 있을까. 분명한 건 그 생명체가 인간의 모습을 하고 있지는 않을 거란 것이다. 지구 상에 나타난 수많은 생명체가 멸종했듯이 긴 지구의 시간에서 인간 또한 분명히 멸종이라는 자연현상을 겪을 것이며 끈질긴 적응 끝에 살아남는다고 하더라도(분명 지금과 같은 인간의 모습을 하고 있진 않을 거라고 과학자들은 말한다.) 태양의 폭발과 함께 지구와 태양계 모두 태양 속으로 사라지고 말 테니까. 아니면 과학 소설처럼 태양이 폭발하기 전에 지구 탈출에 성공해서 태양계와 비슷한 조건을 가진 행성에 터를 잡고 계속해서 우주를 관찰하고 이론을 발전시켜 갈 것인가? 아주 먼 과거의 과학자들이 예언했던 대로 우주가 진행되고 있음을 확인하고 놀라움을 금치 못할 것인가, 아니면 지금 과학자들이 지구가 세상의 중심이라는 과거 신학자들의 생각을 비웃듯이 그 이론들은 이미 폐기처분된 상태일까?
우주의 기원에도 종말에도 인간은 아무런 역할도 하지 못한다. 그럼에도 인간은 내 존재의 기원을 찾아서 혹은 그 반대를 향해 끊임없이 물음표를 던지며 답을 구하려 한다. 정말로 우주는 몇몇 과학자들의 말대로 언젠가 자신의 존재를 찾고 우주의 원리를 발견하기 위해 애쓰는 생명체가 발견해주기를 바라며 설계되어진 것인가. 생각해보면 지적인 생명체 없이 그저 물질만으로 존재하는 우주란 거대한 낭비가 아닐 수 없다. 양자역학에서 관찰자란 우주를 있게 하는 중요한 존재다. 정말로 우리가 있기 때문에 우주가 있는 것일까, 혹은 우주가 존재함으로써 우리가 있는 것일까? 과학자들은 무한한 우주를 설명하기 위해 원자보다 작은 단위의 세계를 유영하고 있다. 그 안에서 우주의 기원을 신의 역할을 찾아낼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