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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모 ㅣ 비룡소 걸작선 13
미하엘 엔데 지음, 한미희 옮김 / 비룡소 / 1999년 2월
평점 :
20대에 이 책을 처음 읽었었나. 잘 기억나지 않는다. 하지만 충분히 어른이라고 생각한 그 무렵에 이 책을 읽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당시는 이 책이 잘 이해되지 않았던 것 같다. 그때는 이 책이 동화책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철학적이고 주제가 무거웠던 느낌이었고 이 책에서 뭔가 특별한 것을 찾으려고도 했던 것 같다. 당시에는 책을 읽으면서 시간이란 뭘까에 대한 질문을 많이 했었다. 물론 동화책 한 권이 그것에 대한 답을 제시해 줄 수 없다는 걸 알면서도 그래도 뭔가 있지 않을까 기대도 했던 것 같고.
이제 나이를 충분히 많이 먹고 이 책을 다시 읽었을 땐 그냥 이야기를 통째로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게 된다. 특별한 뭔가를 찾으려고 하는 게 아닌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 모습에 대한 은유로. 시간이란 게 뭘까라는 질문보다는 어떻게 시간을 써야할까, 나에게 시간이 얼마쯤 남아 있을까 라는 질문을 더 많이 하게 되었다. 그다지 바쁘게 살지 않았음에도 회색신사들이 훔쳐가버린 듯 흘러가버린 시간들이 정말로 시간저축은행이란 곳에 쌓여있다면 하는 엉뚱한 생각을 해보기도 하고.
나이를 들어가면서 느끼는 건, 다른 분들도 절대적으로 공감하겠지만 시간이 정말 빠르게 흘러간다는 사실이다. 그동안 내가 들은 몇 가지 이유가 있었지만 며칠 전에 우연히 TV채널을 돌리다가 뇌과학자라는 분(이름은 정확하게 기억하지 못하지만 요즘 TV에 자주 출연하는 분이다.)이 어렸을 때는 뇌가 어떤 사건들을 슬로비디오로 인식하고 기억하는데 비해 나이가 들면 특별할 것 없는 것은 건너뛰고 몇 가지 사건들만 드문드문 기억한다는 것이다. 그말을 들으니 왜 이렇게 시간이 빨리 흐른다고 느끼는지 충분히 이해가 되었다. 한 가지 슬픈 사실은 나이는 계속 먹어갈 것이고 그러므로 우리의 시간은 점점 더 빨리 흐를 것이라는 것.
시간을 붙잡으려면 기억을 붙잡아야 하고 그럴려면 내 기억에 붙들릴 만한 특별한 일들이 있어야 한다는데 나이가 들수록 특별한 일은 그다지 생기지 않고 사실 특별한 일들을 굳이 만들고 싶지도 않아진다는 것이다. 결국은 어쩔 수 없는 현상이라는 것. 늘 바쁘게 똑같은 일상을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시간은 굳이 회색신사가 나서지 않아도 저절로 사라져버린다는 것.
이번에 이 책을 다시 읽으면서 새삼 발견한 사실은 모모가 살았던 곳이 점점 폐허로 변해가는 원형극장이었다는 것이다. 2000여 년의 세월을 견뎌온 원형극장과 시간의 흐름을 거스르는 모모는 어딘지 잘 어울린다. 원형극장 아래 빈 공간(그곳은 한 때 사자 같은 맹수의 우리였을 수도 있고, 검투사나 노예들이 썼던 대기실이었을 수도 있다.)에 모모라는 아이가 산다. 어쩌면 모모는 2000년 전에도 원형극장이 있는 이 도시 어딘가에서 살았던 아이일 수도, 어떤 고아원에서 도망쳐 나온 아일 수도 있다. 모모에게는 아주 멋진 장점이 있다. 모모와 함께 노는 아이들에게는 멋진 놀이를 떠오르게 하고, 어른들에게는 그 옆에 가만히 앉아서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만으로도 자신이 품고 있던 문제에 대한 답이 저절로 떠오르게 한다.
원형극장 외에도 내 기억 속에서 지워진 것이 하나 있었는데 바로 시간의 꽃 한송이였다. 사람들에게는 각자 시간의 꽃 한송이가 있다 것. 내 몫으로 주어진 시간의 꽃 한송이. 나는 이 꽃 한송이에 때맞춰 물을 주고 아름다운 꽃을 피우며 살고 있는가. 남들처럼 바쁘게 살아가는 대신 그저 낭비하며 살아오지는 않았는지. 어쩌면 내 몫의 시간의 꽃은 꽃잎이 몇 장 남지 않은 채 시들어 가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이제는 시간이 과연 뭘까 라는 고민 대신 남아 있는 시간이 얼마일까를 궁금해하는 나이가 되었다. 슬프게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