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문화유산답사기 1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1
유홍준 지음 / 창비 / 199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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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걱정이 많은 탓일까. 아니면 괜한 걱정일까. 이 책 속의 답사지가 얼마만큼이나 손상되지 않고 보존되어 있을까란 생각부터 든다.한 번 훼손되어 버린 것은 물질적인 것이든 정신적인 것이든 회복되기 어려운 것이니까.

  어쨌든 자신들의 문화유산에 대해 이렇게 아름다운 시각으로, 때로는 비판적인 눈으로 바라보게 하는 책이 있다는 건 행복한 일이다.

  예전에 교과서에서 읽었던 멋진 문장들을 남도답사일번지에서 읽으면서 다시 한 번 감탄하게 되었고 남도의 붉은흙과 부드러운 능선을 꼭 눈으로 확인하고 싶다는 생각을 해본다. 주춧돌과 비바람에 마모된 석탑만 남아 있는 폐사지를 석양 속에서 보고 싶다는 생각도 해보고.

   이 책을 읽으면서 새삼 또다시 깨닫게 되는 것은 우리의 건축이 자연과의 조화를 무엇보다도 중요하게 여겼다는 것, 저자 또한 그러한 점을 무엇보다 중요하게 생각한다는 것. 아무리 멋진 건축물이라도 자연과 조화롭지 못하면 좋은 점수를 주지 않는 모습을 보면서 이것이 우리 문화속에 숨겨져 있던 모습이란 걸 새삼 알게 된다.

  지금 우리는 1000년 뒤에 남을 만한 문화유산을 만들고 있을까? 20세기 아니 21세기 우리의문화능력은 어느 정도일까. 저자가 내내 말한 것처럼 지금의 문화능력은 오히려 과거를 망치기만 하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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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행우주 - 우리가 알고 싶은 우주에 대한 모든 것
미치오 가쿠 지음, 박병철 옮김 / 김영사 / 200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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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렸을 적에 자주 하늘을 올려다보았던 기억이 난다. 그때 보았던 은하수가 이제는 기억속에서 희미해져간다. 작은 시골 동네 한길에서 하늘을 올려다보면 길고 하얀 은하수가 하늘을 가로질러 뻗어 있었다. 지금은 그 은하수길이 마을의 어느쪽에서 어느쪽 방향으로 뻗어 있었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지금도 시골엘 가면 하늘을 올려다보는데 분명히 작은 동네의 하늘을 뒤덮은 채 은은하게 반짝이던 은하수길이 우주 저편으로 달아나버렸는지 도무지 보이지 않는다. 운이 좋다면 북두칠성이나 카시오페이아, 견우직녀성 정도 보는 걸로 만족해야 한다. 이제는 하늘을 올려다보면 별조차 제대로 볼 수 없고 유독 밝게 반짝이는 것이 별인지 인공위성인지부터 생각하게 된다.

  별을 본다는 의미는 별의 시원, 나아가 내가 어디서 왔는지, 우주는 어디서 시작됐는지, 우주는 어디로 가고 있는지를 생각한다는 의미인 것이다.  

  이 책은 내가 본 몇 권 안 되는 대중들을 위한 물리학 책들 중에서 가장 재미있게 읽은 책이다. 제목부터 흥미를 끌만한 데다가 책의 뒷장으로 넘어갈수록 과학의 산물인지 상상의 산물인지 구분이 되지 않을 만큼 독창적이고 흥미진진한 이론들이 등장하기 때문이다. 작년에 개봉한 'The one' 이란 영화도 평행우주 개념을 영화적으로 풀어낸 이야기다. 수많은 우주에 존재하는 똑같은 "나"가 유일한 존재가 되기 위해 다른 "나"을 없애는 이야기. 이 책은 다른 우주가 존재할 수 있는지, 다른 우주로 가는 여행이 가능한지, 물리법칙이 이런 여행을 허용하는지 과학적으로 설명하는 책이다.

 다중우주란 개념은 인간의 상상력은 무한대로 확대시킨다. 지구란 태양계를 돌고 있는 세 번째 행성이며, 태양계는 우리가 속한 은하의 변방에 속해 있으며 이런 태양계가 우리 은하내에도 수없이 있으며, 우리 은하는 우주에 속해 있는 무수한 은하들 중의 하나에 불과하며 우주는 지금도 팽창하고 있다는 사실. 대부분의 물리학자들은 우리의 우주는 더욱 빠른 속도로 팽창을 하다가 절대 온도에 가까운 거대한 동결로 멈추고 될 거라고 예견하고 있다.  그때는 은하도 별도 행성도 생명체도 모두 죽음을 맞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또 다른 이론은 여기서 우주의 종말을 가만히 보고만 있지는 않는다. 바로 평행우주란 개념이 그것이다.

  우리의 우주는 거대한 동결로 종말을 맺겠지만 우리의 우주 너머에는 또 다른 우주가 무수히 존재하고 있다는 것이다. 우리의 후손들이 앞으로 일어나게 될 온갖 우주적 사건을 극복하고 환경에 적응해서 (지금과는 전혀 다른 생명체의 모습으로 진화해서 )그 순간까지 존재하게 된다면 그 우주들 중 하나의 우주로 이주를 해서 새로운 문명을 형성할 수도 있다 는 것이다. 하지만 무수한 다른 우주는 우리의 우주와는 다른 물리법칙에 따라 움직인다. 그러므로 그곳의 생명체는 그 우주의 물리법칙에 맞는 형체를 가지고 있을 것이며, 아무런 물질도 없는 텅빈 공간만 있는 우주도 있을 것이며, 내가 태어나지 않은 우주도 있을 것이며, 드라마 "궁"처럼 조선의 왕실이 그대로 유지되고 있는 우주도 있을 것이며, 온갖 가능한 우주가 존재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런 이론을 관측하는 건 지금의 과학으로서는 불가능하지만 이론적으로는 오류가 없는 이론이라는 것이다. 

   이런 다중 우주라는 이론이 단순한 상상력의 산물은 아니다. 물리학의 발전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생겨한 이론인 것이다. 뉴턴과 아인슈타인의 고전물리학, 원자규모의 미시세계를 다루는 양자역학, 거기에서 발생하는 초끈이론, M이론 등을 거치는 동안 직면한 여러가지 물리학적 문제를 풀어나가는 도중에 발견한 여러 이론 중의 하나이다.

   이 책은 물리학의 여러 이론을 접할 수 있는 동시에, 공상과학소설을 읽는 듯한 재미도 곁들일 수 있고, 철학적이고(누군가 보고 있지 않다면 나는 존재하지 않는 것인가) 신화적인 주제까지도 생각해 볼 수 있는 종합서(이런 용어가 가능하다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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괭이부리말 아이들 - MBC 느낌표 선정도서. 양장본
김중미 지음, 송진헌 그림 / 창비 / 200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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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난하다는 거. 사람을 외롭게 하고 지치게 한다. 머릿속은 한순간도 먹고 살아야하는 문제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비록 어린아이일지라도. 아닌 척 할수록 그게 더 힘겨워보인다.

  그런 아이가 있었다. 어느날 오래된 핸드폰을 하나 들고와서 수업 시간에 은근히 만지기도 하고 문자라도 온 것처럼 확인을 하기도 한다. 아이들에게 보여주고 싶은 것이다. 나도 핸드폰 있다고. 그리고 이 아이는 언제나 가방 속에 군것질 거리를 가지고 다니며 틈만 나면 뭘 먹고 있다. 나중에 이 아이가 보이지 않고 아이의 사정을 알게 되었을 때 그 아이의 모든 행동이 이해가 갔다. 아이는 벌써 가난을 느끼고 있는 것이다. 전혀 티를 내지 않으면서. 아무도 그 아이가 가난하다는 것을 모르게.

  괭이부리말에 사는 아이들도 이 아이와 같은 모습이다. 이 아이보다 더 절실하게 가난을 느끼며 사는 아이들이다. 대부분의 아이들은 어머니가 집을 나갔거나 심지어 아버지마저 자신을 떠난 상황에서 이 동네 사는 아이들은 다 그렇다고 스스로 위안한다. 동수, 동준 그리고 쌍둥이 숙자, 숙희 자매 마지막으로 호용이까지. 내가 사는 가난한 동네  이곳 어딘가에도 이런 아이들이 존재한다. 할머니와 단 둘이 사는 아이, 장애인인 부모와 사는 아이, 동수와 동준처럼 어린아이들끼리 사는 아이들... ' 괭이부리말 아이들' 은 이야기가 아니라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들의 삶이다. 현실과 다른 점은 그 아이들에게는 보살피는 '영호'가 있고 '명희 선생님'이 있다는 것일까.

   보다 나은 삶을 위해 달려가기만 하던 명희 선생님이 자신이 자랐던 괭이부리말로 돌아오고, 동수가 방황을 끝내고 야간학교를 다니며 공장에 취직을 하고, 버려진 아이들을 돌보느라 제대로 된 일을 구하지 못했던 영호가 1년 계약직 일을 찾게 되면서 그들의 삶이 조금씩 안정이 되어가는 게 보인다. 동수가 자신이 취직한 공장의 기술자 아저씨를 보면서 소박한 삶에 만족해가는 모습이 안심이 되면서도 어떤 한계 같은 것을 느끼게 된다. 왜 이 아이들은 괭이부리말에 만족하며 살아야하는지. 함께 껴안고 사는 것만이 최선일까. 이 책의 결말은 이 아이들이 괭이부리말의 삶에서 크게 나아가지 못하게 될 것임을 역설적으로 보여주고 있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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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변의 카프카 (상)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김춘미 옮김 / 문학사상사 / 200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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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가 열다섯이었을 때, 나는 어쩌면 이 소설 속처럼 삶이 현실과 환상이 적당히 얼버무려져 있는 곳일 거라고 생각했는지도 모르겠다. 그때는 아주 좁은 세계에서만 살았으므로. 주인공인 다무라 카프카처럼 대도시에서 살지도 않았고 아주 작은, 어쩌면 우리 나라에서도 가장 외진 곳이었을지도 모르는 작은 마을에서 살았다. 작은 산을 오르면 저 멀리 사방으로 겹겹이 이어지는 산등성이들을 바라보면서 저 너머의 세계를 막연히 꿈꾸기도 했었던. 그러나 지금 이렇게 열다섯에는 짐작도 못 했던 나이에 이르고 보니 세상엔 환상의 세계란 존재하지 않으며, 이 책을 덮고 밖에 나가는 순간 좁은 거리에는 매연을 내뿜는 자동차들이 신경질적인 경적 소리를 내뿜으면서 달리고,  사람들은 이따금씩 별것도 아닌 일로 좁은 골목에서 싸우고, 모두들 이 현실에 발을 단단히 딛고서 하루하루 살아내기 위해 안달을 하면서 살아갈 뿐인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 그러나 열다섯 살 아이의 눈에는 이 사실적이고 무자비한 세상  틈으로 환상을, 현실 너머의 세계를 발견할지도 모를 일이다. 이 소설의 주인공이 열다섯 살인 이유가 여기에 있을지도 모르겠다.

  소년의 이야기는 1인칭시점으로 전개된다. 소년은 아버지의 저주에 자신이 점점 훼손되는 것을 막기 위해 집을 나선다. 전혀 와 본 적이 없는 작은 도시에 도착하고 우연히 고풍스런 도서관 하나를 발견하게 된다. 그 도서관에서  여자로 태어났으면서 남자로 살아가는 오시마상과 관장인 사에키상을 만난다. 사에키 상은 도서관 설립자의 아들의 약혼녀였지만 상대는 젊은 나이에 죽고만다. 그 후 사에키상은 20여 년을 종적을 감추었다가 이 도서관으로 돌아왔다. 소년은 그곳에서 해변의 카프카란 노래를 알게 되고 사에키 상의 약혼자가 썼던 방에 걸린 그림을 보게 되면서 혹 사에키 상이 자신을 버리고 가버린 어머니가 아닐까 라는 상상을 한다.

    소년과의 대척점에 나카타 상이 있다. 노인의 이야기는 3인칭으로 전개된다. 예순이 넘은 노인으로 어렸을 때 불가사의한 경험(산으로 버섯을 따러 가던 날 같은 반 아이들 모두 집단 최면 같은 상태로 실신해 있다가 몇 시간 후 깨어난다)으로 인해 3주간 의식을 잃었다가 깨어나서 지능이 아주 낮아져 버렸다. 노인은 늘 말한다. 나카타 상은 머리가 나빠져버려 아무것도 이해하지 못합니다. 그 말은 나카타 상에게는 너무 어렵습니다. 하지만 노인은 머리가 나빠져버린 대신에 한 번도 아파본 적이 없으며, 이따금 장어를 먹는 지금의 삶에 만족하며, 고양이와 대화를 나누는 능력을 새롭게 가지게 되었으며 그로 인해 집을 잃어버린 고양이를 찾아주는 일을 하고 있다.

  처음에는 노인과 소년의 상관 관계를 전혀 짐작할 수 없다. 노인이 고양이의 영혼을 빼앗는 조니 워커라는 기괴한 인물을 죽일 때 조차도. 조니 워커라는 인물이 소년의 아버지라는 사실이 밝혀지고 나카타 상이 어떤 일을 하기 위해 길을 떠나는 순간에야 그들의 관계가 어렴풋이 정리된다. 나카타 상은 도서관을 향해 가고 있다. 중간에 호시노 상이라는 젊은 사내를 만나 동행하게 된다. 사에키 상을 만나기 위해, 입구의 돌을 열고 닫기 위해. 실체를 띄지 않은 어떤 존재의 도움으로 입구의 돌을 찾고 입구를 연다. 환상과 현실이 넘나들고 시간이 얽힌다. 그 얽힘 속에서 아버지의 저주가 완성된다. 실체든 은유적으로든.

  소년의 이야기보다는 노인의 이야기가 내게는 훨씬 흥미 있었다. 소년의 오이디푸스 컴플랙스는 좀 진부한 것이었고 15세 소년의 입에서 나오는 음악 이야기나 오시마 상의 여러 이야기나 그다지 끌릴 만한 이야기들은 아니었다. 하루키의 작품에 흔히 등장하는 소재 정도이랄까. 어쨌든 상권은 굉장히 흥미있게 읽어내려 갔다. 요즘 들어 별로 재미있는 책을 읽어보지 못했는데 모처럼 뒷이야기가 궁금해지는 책이었다. 하지만 상권에는 환상과 현실이 적절한 균형을 가지고 있었던 반면에 하권에서는 너무 환상쪽으로 기울어져버린 감이 있었다. 어느새 판타지 소설을 읽고 있는 듯한 기분이었다. 사실 판타지 소설은 좋아하지 않는다. 일상을 다루는 소설 속에 적당히 판타지가 섞여 있는 건 좋아하지만. 커널 샌더스라는 인물이 불쑥 등장해서 입구의 돌을 찾아주는 장면은 만화 같았고, 죽은 나카타 상의 입에서 흰 물체가 기어나와서 호시노 상이 그걸 칼로 베는 장면은 엉뚱하다고 할까. 

  그리고 해결되지 않는 의문들... 2차세계대전 중 아이들을 집단 실신케 한 정체는 무엇이었으며, 소년의 옷에 남아 있던 핏자국은 무엇이었으며(은유적인 살인인가), 소년은 정말 새로운 세계을 찾은 것일까. 어떤 새로움이 있단 말인가. 긴 이야기에 비해 많은 인물들이 등장한 건 아닌데 뭔가 분명한 의미가 붙잡히지 않는다. 작가의 의도인가. 작가의 말대로 여러 번 읽어야 하는 걸가. 그래야 작가 숨겨놓은 답을 찾을 수 있을까. 아니면 작가가 너무 많이 말하고 싶었던 욕심이 앞섰던 탓에 의문만 곳곳에 던져놓고 만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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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구리와 두꺼비의 사계절 난 책읽기가 좋아
아놀드 로벨 글.그림, 엄혜숙 옮김 / 비룡소 / 199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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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개구리와 두꺼비 시리즈는 참 따뜻하다. 억지스럽게 뭔가 가르치려고 하지 않으면서 결국에는 친구란 이런 거구나, 사랑이란 이런 거구나 라는 생각을 갖게 한다.

  언제나 그렇듯이 개구리는 의젓하고 따뜻하게 두꺼비를 보살피고 두꺼비는 나름대로 친구를 위해보려하지만 엉뚱하고 재밌는 사고를 친다. 이번에는 계절 이야기다.

  봄. 개구리와 두꺼비는 봄이 와 있는 모퉁이를 찾아나선다. 이 모퉁이 저 모퉁이를 다 돌고 결국 자신의 집 모퉁이에 있는 봄을 발견한다.

  여름. 두꺼비가 아이스콘 두 개를 산다. 녹기 전에 얼른 개구리에게 들고 가고 싶다. 하지만 쨍쨍 내리쬐는 햇빛은 아이스콘을 녹게 하고 녹은 아이스콘이 옷에 달라 붙고 그 위에 온갖 나뭇잎에 달라 붙고 머리에는 아이스콘 손잡이의 뾰족한 뿔까지 달라붙어 괴물이 되어버린다. 결국 두 친구는 새 아이스콘을 사서 그늘에 나란히 앉아 먹는다.

  가을. 개구리의 집 마당에도, 두꺼비의 집 마당에도 나뭇잎이 수북히 쌓인다. 두 친구는 갈퀴를 들고 몰래 길을 간다. 그리고 각자 친구의 집 마당에 있는 나뭇잎을 갈퀴로 쓸고 돌아온다. 그새 커다란 바람이 일어 두 친구의 집 마당에는 전처럼 나뭇잎에 그득히 쌓인다. 집에 돌아온 개구리와 두꺼비. 내일은 내 집 마당을 쓸어야지 생각한다.

  겨울.  두꺼비는 전전긍긍한다. 크리스마스 파티를 하러 오기로 한 개구리가 늦고 있다. 커다란 동물의 공격이라도 받고 있는 것일까. 혹시 오다가 구덩이에 빠진 것은 아닐까. 길을 못 찾은 것은 아닐까. 두꺼비는 커다란 후라이팬을 들고, 줄을 들고, 손전등을 들고 길을 나설 생각을 한다. 그때 개구리가 들어선다. 혹시 오다가 커다란 동물을 만나지 않았니? 두꺼비는 걱정스런 얼굴로 질문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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