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명을 찾아서 - 상 - 京城, 쇼우와 62년 문학과지성 소설 명작선 13
복거일 지음 / 문학과지성사 / 1987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 책을 읽는 내내 미치오 카쿠라는 일본물리학자가 쓴 "평행우주"란 책이 떠올랐다. 거기에 다중우주이론이란 것이 나오는데 임의의 관측이 행해질 때마다 양자적 분기점이 형성되면서 우주는 끊임없이 갈라지고 있다는 주장이다. 조금이라도 가능성이 있으면 그 사건이 발생하는 우주가 반드시 존재하며, 이 모든 우주들은 우리가 살고 있는 우주만큼 현실적이다. 다중우주가 정말 존재한다면 지금 이 순간에 나는 다른 상태로 존재하고 있을 것이다. 어떤 우주에서는 어릴 적 꿈을 이뤄 행복하게 살고 있을지도 모르고, 지금보다 더 비참한 처지에 있을지도 모르고, 심지어는 나라는 존재는 태어나지도 않은 우주가 존재할 수도 있다. 책의 처음부분에 작가가 과학소설을 많이 읽었다고 했는데  바로 이런 개념들을 염두에 두고 쓴 작품인 듯 싶다.

   이 작품은 이토오 히로부미가 안중근의 저격에 사살되지 않고 총상만 입고 회복되었다는 가정에서 시작한다. 온건주의자였던 이토오 히로부미의 영향으로 일본은 과격한 군국주의로 나아가지 않았고 그로인해 2차세계대전에서 패전을 모면하고 조선과 대만에 대한 식민지 통치권을 계속 유지할 수 있었고 만주를 대륙을 침범하기 위한 기지로 아직까지(1980년대)까지 이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조선인은 일본의 식민지라는 의식조차 없이 말과 글과 조선적인 모든 것을 잃고 일본인으로 살아가고 있다. 때로는 내지인과 같은 조상을 두었고 같은 말을 쓰고 같은 민족이 분명한데도 반도인이라는 이유로 차별받는 데는 의문을 품기도하지만 그 차별은 어쩔 수 없는 것이라고 받아들이며 살아가고 있다. 반도에서 태어난 일본인인 이상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그들은 조선인이 아니라 반도에 사는 일본인일 뿐이다.

  주인공 히데요도 그런 일본인 중의 한명이다. 내지인으로 태어나지 못했으므로 삶의 곳곳에 차별이 존재하긴 하지만 그는 경성제국대학을 나왔고 군대에서 퇴역한 후 한도우경금속이란 회사의 과장으로 회사에서도 능력을 인정받는 처지다. 경성에서는 제일 좋다는 아파트도 가지고 있다. 열렬한 사랑으로 맺어진 사이는 아니지만 아내가 있고 사랑스런 딸이 있고, 20년간의 결실로 만들어진 시집도 갖게 되었다. 어쩌면 그가 가장 사랑하는 대상인지 모르는 시를 통해 일상에 균열이 생긴다. 합작투자건에 큰 공이 있음에도 조선인이라는 장벽 때문에 부장 승진에서 탈락한 후, 처음으로 갖게 된 자신의 시집을 들고 찾아간 큰아버지에게서 히데요는 자신의 성이 기노시다(木下)가 아니라 박(朴)이란 것을 알게 된다. 돌아오는 길에 고서점에서 "조선 고시가선"이라는 책을 통해 조선의 시를 조금씩 알게 되고 불과 몇십 년 전까지만 해도 조선말과 글이 있었고 조선이라는 나라가 있었다는 걸 알게 된다. 호기심은 점차 커져서 경성제국대학을 찾아가게 되고 거기서 일본으로 보내지 않고 남은 "조불사전"을 복사해서 가져 온다. 혼자 조선어를 공부하면서 태어날 때부터 조선어를 썼던 사람이 낭독하는 시를 듣고 싶다는 소망을 갖는다.

  그러던 중 한도우 경금속과 유사라무와 합작투자건으로 만나는 앤드슨이란 미국인을 통해 얻은 "뉴스월드"란 잡지를 통해 상해에 임시정부가 아직 존재하고 있고 조선어사전 편찬 작업을 하고 있다는 글을 읽는다. 그런 것이 존재하고 있다는 것조차 몰랐던 히데오에게는 모든 것이 충격이었다. 유월, 아내 세쯔꼬의 어머니가 갑작스레 돌아가시고 장례에 참석하러 갔던 히데요는 샤꾸오우지(釋王寺)라는 절에서 쇼우고우(小空)스님으로부터 만해 스님의 책을 물려받게 된다. 그후 히데요는 합작투자 일로 일본에 출장을 가게 된다. 조선인이 내지로 들어가는 것은 허가가 있어야만 가능한 일이다. 히데요는 이 출장을 통해 조선에 대한 책을 더 구해보자는 목적이 있었다. 그가 일본에 있는 동안 육군에 의한 쿠데타가 일어나기도 한다. 드디어 유사라무와 합작투자건에 대한 정부의 허가가 떨어지고 히데요는 조선으로 향하는 비행기를 탄다. 동경제국대학과 교오또오제국대학에서 복사해온 "조선통사, 조선어 회화, 삼국사기, 청구영언" 등을 반입하려다 공항에서 붙잡힌다. 경찰의 취조 끝에 책들은 모두 압수당하고 사상재교육을 통해 보호감찰로 풀려나게 된다. 이 사상재교육을 통해 많은 조선 지식인들이 자신과 같은 과정을 거치면서 결국은 완전한 일본인이 되어갔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회사에서 사퇴하란 압력이 있고 혼자 여행을 떠났다 돌아오는 길, 히데요는 자신의 집에서 내지인인 아오끼 소좌와 밀회 중인 아내를 발견한다. 아오끼 소좌는 아내의 대학 후배의 남편으로, 세쯔꼬가 히데요를 감옥에서 나오게 하려고 부탁을 했던 인물이다. 아마도 아내는 남편의 석방을 위해 그에게 몸을 맡겨야  했을 것이다. 히데요는 용서하려 한다. 그런 아내가 가엾기까지 하다. 다행히 회사에서도 일을 계속할 수 있게 되었고 어쩌면 지금처럼 살아갈 수도 있을 것 같다. 아내의 생일, 히데요는 아내를 위로해주려는 마음에 생일에 몇 사람을 초대해서 파티를 연다. 아내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아내의 대학 후배 부부도 초대한다. 그 자리에 혼자 온 아오끼 소좌의 도를 지나친 행동을 보고 히데요는 자신의 행동이 대범함을 보여주려는 치기어린 짓이었다고 후회한다. 결국에는 술이 취한 아오끼 소좌가 자신의 딸까지 추행하려 한다. 히데요는 지금 이 순간의 선택이 자신의 삶을 어떻게 망쳐놓을지 알면서도 무서운 일을 실행하려 한다. 결국 그는 일본인 아오끼 소좌의 목을 조른다. 그리고 상해 임시정부를 향해 떠나는 것으로 소설은 끝난다. 기노시다 히데요가 아니라 조선인 박영세로 길을 떠나는 것이다.

  어쩐지 출발선에서 소설이 끝나버렸다는 미진함은 있지만 이렇게 마무리할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든다. 지금 히데요가 살고 있는 조선은 이미 죽어버린 조선이기 때문이다. 단 한 사람도 자신이 조선인이라고 말하는 사람이 없고 그런 생각조차 갖고 있지 않은 것으로 그려지기 때문에 그런 배경에서 주인공이 일본과 투쟁을 벌이고 무슨 커다란 변혁을 꾀한다는 설정은 불가능하다. 작가는 그저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개인이, 아무 의식도 없이 살아가던 개인이 자신의 참된 모습을 찾아가는 과정을 밀도 있게 그려나가는 것으로 만족한 것 같다. 히데요가 지금껏 자신이 갈고 다듬어왔던 언어를 버리는 것이 시를 쓰게 해준 모국어를 배반하는 일이 아닐까 자책하는 모습에서, 일본 출장에서 돌아오기 전에 일본 북쪽 지방을 여행하면서 내 나라 자연의 아름다움에 감동하고 두 번 다시 보지 못할 것에 대해 안타까워하는 모습에서 그가 얼마나 철저히 일본인으로 살아왔는지 실감할 수 있었다. 그는 어쩌면 마지막까지 기노시다 히데요로 살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사상재교육을 통해 완전한 일본인으로 살고 있는 조선의 많은 지식인들처럼 지금까지의 일이 그저 지나가는 감기였으면 하고 바랐을지도 모르겠다.

  이 소설은 엄청난 가정에서 시작하고 있지만 결코 우리 현실에서 벗어난 이야기는 아니다. 오히려 히데요가 살고 있는 시대의 배경은 군국주의의 일본을 연상시키기보다는 80년대까지 겪었던 우리의 군사독재시대와 쿠데타 등을 떠올리게 한다. 환경오염시설이 조선에 집중되어 있고 일본에 의한 통치가 조선을 잘 살게 했다는 걸 세계에 선전하기 위한 경성올림픽이 곧 개최될 것이라는 가정들이 곧 80년대 우리의 모습과 같다. 너무 현실과 똑같아서 이 소설이 대체역사소설인가 가상소설인가 그런게 맞나 싶을 정도다. 오히려 우리 80년대까지의 역사를 풍자한 소설이라는 느낌이 더 강했다. 해설에도 보면 도조 히데끼가 박정희를 연상시킨다든지 하는게 나와 있기도 하고. 실제와 가장이 교묘하게 잘 결합된 소설이다.

  아쉬웠던 장면들도 꽤 있었는데, 히데요가 시마즈 도끼에에게 애정을 느끼는 장면들에서는 느닷없다는 느낌이었다. 소년의 치기어린 사랑도 아니고 소설의 흐름상 튄다고 할까. 히데요가 도끼에에게 연연해하는 장면들이 꼭 필요했나 하는 느낌이다. 딱딱한 흐름에 재미를 위해서 넣었다고 하기에도 그렇고. 히데오가 이따금 등장하는 여자들에 대해 육체적 충동을 느끼는 장면들도 자연스럽지 못한 느낌이었다. 히데요란 인물설정과 그다지 어울리지 않는 느낌이었다. 그것도 인물에 사실성을 부여하기 위한 장치일까. 아무리 고뇌하는 지식인이라 해도 남자임에는 분명하니까. 가끔씩 보이는 너무 잘 쓰려 해서 어설퍼 보이는 문장들도 그렇고, 아마도 초기작이라서 그럴 것 같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열하일기, 웃음과 역설의 유쾌한 시공간 - 증보판 리라이팅 클래식 1
고미숙 지음 / 그린비 / 2003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얼마만에 손에 들어온 책이었던가. 주로 도서관을 이용하는 나로서는, 게다가 행동이 민첩하지 못한 나로서는 이 책은 눈도장만 찍어 놓고는 아직까지 손에 넣지 못한 책이었다. 일단 제목부터가 읽고 싶게 만든다. 제목 속에 열하일기를 풀어놓는 작가의 시선이 고스란히 들어가 있다. 저자는 연암의 골수팬이 아닐까 싶다. 연암의 행동 하나하나에 작가는 감탄하고, 곳곳에서 유머를 발견한다. 사실 이 책만으로는 연암의 매력을, 열하일기의 매력을 다 알 수는 없다. 작가의 글은 열하일기를, 제목만 수없이 들었던 열하일기를 꼭 읽어보고 싶게 만든다.

  연암은 조선 후기 권력의 핵심부인 노론 경화사족의 일부였다. 하지만 그는 권력의 중심부로 나아가는 대신 마이너리그로 스스로 내려온다. 권력의 바깥에서 자유로운 삶을 선택한 것이다. 자연과 벗하며 노니는 삶이 아니라 주류에 속하지 못한 다양한 인물들과의 교유를 통해 학문을 논하고 농업, 공업, 음악, 지리 등 실생활에 관련된 잡다한 분야에 이르기까지  논하기를 즐겼다. 박제가, 이덕무, 홍대용, 유득공 등등 우리의 기억에 여전히 남아 있는 인물이 그들이다. 열하로 가는 길에도 그들은 함께한다. 연암은 건륭황제의 70세 잔치인 천추절을 축하하는 사절단의 비공식 수행원으로 북경을 갈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된다. 말그대로 연암은 여행자의 신분이었기 때문에 북경으로 가는 길에 마주친 모든 것들에 눈을 돌릴 여유가 있었다. 그래서 탄생한 것이 바로 열하일기이다.

  책 제목이 열하일기가 된 데에는 나름의 이유가 있다. 건륭황제가 여름 궁궐이 있는한 열하로 처소를 옮겼기 때문에 사절단은 열하로 가지 않을 수 없었다. 열하로 가는 길은 그야 말로 악전 고투였다. 무박나흘간의 강행군 끝에 열하로 도착한 연암의 일행은 황제를 배알하고 황제의 특별한 배려로 티벳의 판첸라마를 뵙는 영광(?)까지 누린다. 이 대목에서는 조선시대 지식인들의 사고를 여실히 보여준다. 유교국가의 선비가 사교에 가까운 티벳의 불교 지도자에게 고개를 숙이는 일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런 생각을 지닌 사절단의 어정쩡한 태도가 황제를 화나게 만들어서 돌아오는 길은 청의 호송도 없는 푸대접을 받는다. 이런 고초를 겪기도 했지만 연암에게 열하는 새로운 문물이 뒤섞인 용광로였다. 세계 곳곳에서 황제의 70세 춘추절을 축하하기 위한 행렬이 지나가고, 생전 처음 보는 코끼리, 생김이 다른 사람들 온갖 이질적인 것들이 섞여 있는 곳이었다. 이런 이유로 제목이 열하일기가 되지 않을 수 없었다.

  저자는 열하일기에서 연암만 찾아내지 않는다. 다양한 주변인들 아니 주인공들을 열하일기 곳곳에서 찾아낸다. 대표적인 인물로는 연암의 종복인 장복과 창대이다. 한 사람은 청을 오랑캐라 여기는 고지식한 인물로, 한 사람은 허풍이 구단이 인물로 그려진다. 연암과 말과 함께 환상의 콤비가 아닐까 싶다. 그들이 없었다면 열하일기의 재미가 반감되었을 것이다.

  열하일기에는 조선 후기의 모습이 드러난다. 청을 아직 오랑캐라 여기지만 청의 황제를 두려워하지 않을 수 없는 사대부들과 청의 다양한 문물을 접해보고자 하는 조선의 깨어있는 선비들. 바로 연암은 그런 선비들 중의 하나였다. 연행 도중에 만난 청의 선비들과 필담을 나누고, 여관에서 만난 장사치와도 대화를 하는 장면에서 조선이라는 좁은 시야로부터 날아오르고자 하는 욕망이 보이기도 한다. 또 이 글을 통해서 중종의 문체반정의 의미도 비로소 제대로 알게 되었다. 문체반정의 중심에 연암의 글이 있었다는 것도.

 열하일기를 정독하지 않아서 단정지어 말할 수는 없지만 우리 나라의 고전 중에 열하일기만큼 생생하게 살아있는 글도 없지 않을까 싶다. 저자가 열하일기를 논하는 말투에는 열하일기는 죽은 글이 아니라 이 시대에도 살아 있는 글이라는 믿음을 갖게 한다. 


댓글(0) 먼댓글(1)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1. 고미숙, 몸과 우주의 유쾌한 시공간 '동의보감'을 만나다
    from 그린비출판사 2011-10-20 16:53 
    리라이팅 클래식 15 『동의보감, 몸과 우주 그리고 삶의 비전을 찾아서』출간!!! 병처럼 낯설고 병처럼 친숙한 존재가 있을까. 병이 없는 일상은 생각하기 어렵다. 누구나 그러하듯이, 나 역시 살아오면서 수많은 병들을 앓았다. 봄가을로 찾아오는 심한 몸살, 알레르기 비염, 복숭아 알러지로 인한 토사곽란, 임파선 결핵 등등. 하지만 한번도 병에 대해 궁금한 적이 없었다. 다만 얼른 떠나보내기에만 급급해했을 뿐. 마치 어느 먼 곳에서 실수로 들이닥친 불...
 
 
 
2006 젊은 소설
김민효 외 지음 / 문학나무 / 2006년 4월
평점 :
품절


  오랜만에 도서관에 책을 빌리러 갔다가 읽고 싶었던 책이 없어서 망설이던 중 제목이 눈에 띄어 고른 책이다. 제목처럼 신선하고 재기발랄한 소설을 읽을 수 있지 않을까 해서. 결과는 실망...  젊은 소설이란 게 무얼까? 갓 문단에 나온 신인들이 썼다고 해서 젊은 소설일까. 답답한 일상에 치인 인간군상들 이야기에서 한발자국도 더 나아가지 않은 작품들이 대다수였다. 한 때 참 열심히 소설을 읽었다. 우리 나라 소설들은 형편없다는 고정관념을 가지고 있던 주변 사람들에게 그렇지 않다며 책을 권하기도 했었고, 내가 추천해준 작품을 읽어보고는 편견이 사라졌다는 사람도 혹 있었다. 아마 그때가 우리 소설의 황금기가 아니었나 싶다. 그러다 어느 순간 현실보다 더 비루한 일상을 그리는 소설에 답답하고 숨막혀서 소설읽기를 거의 멈춰버렸다. 우리나라 소설들을, 특히 여성작가들... 그러다 뭔가 새로운 것을 발견하기 위해서 과학소설을 읽기도 하고 다양한 분야를 읽어보려 애쓰기도 하고.

  누군가는 말할지도 모르겠다. 일상은 원래 남루하며 동어반복의 연속이라고. 그러한 일상을 다루는 소설이 뭐가 그렇게 새롭고 낯선 것이겠느냐고. 서툴더라도 쿵하고 가슴이 내려앉는 소설을 만나고 싶다. 더 이상 새로운 이야기는 없는 것일까?

  개개의 작품들은 그저 평범할 뿐이다. 기존의 작가들보다 더 나아진 것도, 새로워진 것 같지도 않고 그저 동어반복만 하며 제자리에 머물고 있는 듯한 느낌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오줌 멀리싸기 시합 사계절 저학년문고 17
장수경 지음, 권사우 그림 / 사계절 / 2000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이 이야기는 요즘 아이들보다는 어린 시절을 시골서 보낸 어른들에게 더 인상깊게 다가올 것 같다. 요즘 아이들에게는 정말로 호랑이 담배 피던 시절의 이야기가 아닐까 싶지만. 사실 우리 어른들은 아이들이 이런 책을 통해 시골이나 자연 이런 것들에서 뭔가 좀 감동을 받았으면 하지만 도시시멘트 위에서 나고 자란 아이들은 남의 나라 일쯤으로 무덤덤하게 받아들인다. 우리의 추억을 아름답게 받아들였으면 하는 마음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아이들을 보면 한편으로는 섭섭하기도 하고 정말로 아이들과 내가 한 세대가 차이나는구나 실감하게 된다. 요즘은 여린 감성을 지닌 아이들을 참 보기가 참 힘들다. 애들이 참 억세졌다고 해야 할까. 

  생각해보면 예전에는 아랫마을 윗마을 편나눠서 싸움을 하던 게 유행이었던 것 같다. 별일 아닌 일로 한 아이가 놀림을 당하든가 하면 온마을 아이들이 우르르 나서서 한판 전쟁이 벌어진다. 두 마을 솔밭에서 씨름도 하고 막싸움도 하고 좀 치사한 아이들은 돌멩이를 던지기도 하고. 우리 어렸을 때는 그렇게 놀았다. 학교 같다 오는 길에 그렇게 한바탕 전쟁을 하고 나면 하루 해가 후다닥 가버린다. 여름에는 이 책에 나오는 아이들처럼 소풀먹이러 가기도 하고, 소는 나몰라라 하고 어둑어둑해지도록 놀다가 소를 잃어버린 기억도 떠오르고... 어릴 적 생각이 많이 나게 한 책이었다. 아마 작가도 이런 경험을 바탕으로 쓴게 아닌가 싶고.

  양지뜸의 대장인 갑모는 올해는 꼭 오줌멀리싸기 시합에서 우승을 하고 말리라 결심한다. 작년 2학년 때는 대를 이어온 라이벌인 도채에게 쓴 패배를 맛보았기 때문이다. 음지뜸의 대장인 도채는 우승으로 받은 진짜 가죽 축구공을 지들끼리만 가지고 놀면서 양지뜸 아이들을 놀려 먹는다. 갑모는 올해는 어떤 일이 있어도 우승을 해서 오장군(오줌장군) 소리도 듣고 야구글러브와 방망이도 타고 말리라 결심한다. 시도 때도 없이 물마시기, 농삿일 눈치보며 땡땡이 치기, 막걸리에 설탕 넣어 마시기 등등. 드디어 시합 날, 첫 대결에서는 갑모의 오줌줄기가 영 힘을 못 쓴다. 두 번째 대결, 갑모는 엉덩이를 한껏 뒤로 내민 다음 앞으로 튕기며 오줌을 갈긴다. 동시에 무반찬만 먹어 지독한 냄새를 풍기는 방구가 같이 발사된다. 그 바람에 옆에 선 도채와 아이들의 표정이 일그러지더니 힘차게 나가던 도채가 오줌줄기가 힘을 잃고 만다. 결국 야구글러브와 방망이는 갑모의 차지가 된다.

  오줌멀리싸기 시합 후 양지뜸 아이들과 음지뜸 아이들의 사이는 더욱 냉랭해진다. 어느날 도채가 양지뜸 아이들이 지키고 있던 소와 염소들을 몰래 풀어놓아서 어둡도록 잃어버린 소와 염소들을 찾는 소동이 벌어진다. 그 후 양지뜸 아이들은 염소똥 총알과 말린 소똥으로 음지뜸 아이들을 공격하고 불시의 습격으로 반격 한번 못하고 도망가는 녀석들에게 땡감(덜익은 작고 푸른 감)을 던져 도채의 머리를 깨지게 하는 복수를 감행한다. 갑모는 혹시나 도채가 자신의 만행을 일러바치지나 않을까 은근히 고민이다. 그런데 어쩐 일인지 도채는 학교에서 놀다 다쳤다고 했단다. 그러던 중 축구공을 주우려던 도채가 비로 엄청나게 불어난 개울에 빠지는 사건이 일어난다. 갑모는 도채를 구하기 위해 물로 뛰어들고 소용돌이에 휩싸인 두 아이 모두 위험한 상황에 이르게 되고 마침 지나가는 청년에 의해 아이들은 구출된다. 축구공을 잃어버린 후로 음지뜸 아이들은 슬그머니 양지뜸 아이들 야구놀이에 끼어들고 결국에는 도채도 함께 섞여 야구를 하면서 화해를 하고 양지뜸과 음지뜸의 전쟁은 막을 내린다.

  마지막 반전, 갑모가 왜 사실대로 말하지 않고 학교에서 놀다가 다쳤다고 말했는지 묻는다. 도채왈, 우리 아버지가 절대로 갑모 너한테는 지지 말라고 했거든.


댓글(1)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비로그인 2007-09-05 21: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줌멀리싸기 대회라니 기발하네요.^^ 어릴적 부끄러운 추억이 떠오르는군요. 양지뜸 아이드과 음지뜸 아이들의 전쟁이 굉장히 재미난 모습으로 보여지는 군요.
 
개구리네 한솥밥 보림어린이문고
백석 동화시, 유애로 그림 / 보림 / 2001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 작품 뿐만 아니라 백석의 시는 참으로 정겹다. 백석 자신의 고향 이야기를 한도막 얻어 듣는 것도 같고, 시인의 따뜻한 내면을 엿보고 있는 것도 같다. 이 작품 '개구리네 한솥밥' 을 처음 접했을 때 과연 백석 시인이 쓴 시란 이런 것이구나 싶었다.

식량 떨어진 개구리 한 마리  형네로 쌀 한 말 얻으러 길을 떠나네.

소시랑게 발다쳐서 울고

방아깨비 길 잃어 울고

쇠똥구리 구멍에 빠져 울고

하늘소 풀대에 걸려 울고

개똥벌레  물에 빠져 울고

마음 착한 개구리 가던 길 멈춰 모두모두 도와주니 벌써 해가 저물어.

 

형에게 받은 쌀 한 말 짊어지고 어둑어둑 길을 떠나네.

개똥벌레 길 밝혀 주고

하늘소 짐 받아지고

쇠똥구리 막힌 길 열어 주고

방아깨비 방아 찧어 주고

소시랑게 거품 지어 흰밥 한솥 지어주고

모두모두 둘러 앉아 한솥밥을 먹었네.

  이 작품은 그냥 마음 속으로 읽기보다는 소리내어 읽어보면 훨씬 더 읽는 맛이 살아날 듯 싶다. 비슷한 리듬으로  반복되는 구절과 재미난 의성어 표현 등을 소리내어 읽다보면 작가의 따뜻한 심성을, 개구리네 한솥밥 식구들의 따뜻한 마음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