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하일기, 웃음과 역설의 유쾌한 시공간 - 증보판 리라이팅 클래식 1
고미숙 지음 / 그린비 / 2003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얼마만에 손에 들어온 책이었던가. 주로 도서관을 이용하는 나로서는, 게다가 행동이 민첩하지 못한 나로서는 이 책은 눈도장만 찍어 놓고는 아직까지 손에 넣지 못한 책이었다. 일단 제목부터가 읽고 싶게 만든다. 제목 속에 열하일기를 풀어놓는 작가의 시선이 고스란히 들어가 있다. 저자는 연암의 골수팬이 아닐까 싶다. 연암의 행동 하나하나에 작가는 감탄하고, 곳곳에서 유머를 발견한다. 사실 이 책만으로는 연암의 매력을, 열하일기의 매력을 다 알 수는 없다. 작가의 글은 열하일기를, 제목만 수없이 들었던 열하일기를 꼭 읽어보고 싶게 만든다.

  연암은 조선 후기 권력의 핵심부인 노론 경화사족의 일부였다. 하지만 그는 권력의 중심부로 나아가는 대신 마이너리그로 스스로 내려온다. 권력의 바깥에서 자유로운 삶을 선택한 것이다. 자연과 벗하며 노니는 삶이 아니라 주류에 속하지 못한 다양한 인물들과의 교유를 통해 학문을 논하고 농업, 공업, 음악, 지리 등 실생활에 관련된 잡다한 분야에 이르기까지  논하기를 즐겼다. 박제가, 이덕무, 홍대용, 유득공 등등 우리의 기억에 여전히 남아 있는 인물이 그들이다. 열하로 가는 길에도 그들은 함께한다. 연암은 건륭황제의 70세 잔치인 천추절을 축하하는 사절단의 비공식 수행원으로 북경을 갈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된다. 말그대로 연암은 여행자의 신분이었기 때문에 북경으로 가는 길에 마주친 모든 것들에 눈을 돌릴 여유가 있었다. 그래서 탄생한 것이 바로 열하일기이다.

  책 제목이 열하일기가 된 데에는 나름의 이유가 있다. 건륭황제가 여름 궁궐이 있는한 열하로 처소를 옮겼기 때문에 사절단은 열하로 가지 않을 수 없었다. 열하로 가는 길은 그야 말로 악전 고투였다. 무박나흘간의 강행군 끝에 열하로 도착한 연암의 일행은 황제를 배알하고 황제의 특별한 배려로 티벳의 판첸라마를 뵙는 영광(?)까지 누린다. 이 대목에서는 조선시대 지식인들의 사고를 여실히 보여준다. 유교국가의 선비가 사교에 가까운 티벳의 불교 지도자에게 고개를 숙이는 일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런 생각을 지닌 사절단의 어정쩡한 태도가 황제를 화나게 만들어서 돌아오는 길은 청의 호송도 없는 푸대접을 받는다. 이런 고초를 겪기도 했지만 연암에게 열하는 새로운 문물이 뒤섞인 용광로였다. 세계 곳곳에서 황제의 70세 춘추절을 축하하기 위한 행렬이 지나가고, 생전 처음 보는 코끼리, 생김이 다른 사람들 온갖 이질적인 것들이 섞여 있는 곳이었다. 이런 이유로 제목이 열하일기가 되지 않을 수 없었다.

  저자는 열하일기에서 연암만 찾아내지 않는다. 다양한 주변인들 아니 주인공들을 열하일기 곳곳에서 찾아낸다. 대표적인 인물로는 연암의 종복인 장복과 창대이다. 한 사람은 청을 오랑캐라 여기는 고지식한 인물로, 한 사람은 허풍이 구단이 인물로 그려진다. 연암과 말과 함께 환상의 콤비가 아닐까 싶다. 그들이 없었다면 열하일기의 재미가 반감되었을 것이다.

  열하일기에는 조선 후기의 모습이 드러난다. 청을 아직 오랑캐라 여기지만 청의 황제를 두려워하지 않을 수 없는 사대부들과 청의 다양한 문물을 접해보고자 하는 조선의 깨어있는 선비들. 바로 연암은 그런 선비들 중의 하나였다. 연행 도중에 만난 청의 선비들과 필담을 나누고, 여관에서 만난 장사치와도 대화를 하는 장면에서 조선이라는 좁은 시야로부터 날아오르고자 하는 욕망이 보이기도 한다. 또 이 글을 통해서 중종의 문체반정의 의미도 비로소 제대로 알게 되었다. 문체반정의 중심에 연암의 글이 있었다는 것도.

 열하일기를 정독하지 않아서 단정지어 말할 수는 없지만 우리 나라의 고전 중에 열하일기만큼 생생하게 살아있는 글도 없지 않을까 싶다. 저자가 열하일기를 논하는 말투에는 열하일기는 죽은 글이 아니라 이 시대에도 살아 있는 글이라는 믿음을 갖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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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고미숙, 몸과 우주의 유쾌한 시공간 '동의보감'을 만나다
    from 그린비출판사 2011-10-20 16:53 
    리라이팅 클래식 15 『동의보감, 몸과 우주 그리고 삶의 비전을 찾아서』출간!!! 병처럼 낯설고 병처럼 친숙한 존재가 있을까. 병이 없는 일상은 생각하기 어렵다. 누구나 그러하듯이, 나 역시 살아오면서 수많은 병들을 앓았다. 봄가을로 찾아오는 심한 몸살, 알레르기 비염, 복숭아 알러지로 인한 토사곽란, 임파선 결핵 등등. 하지만 한번도 병에 대해 궁금한 적이 없었다. 다만 얼른 떠나보내기에만 급급해했을 뿐. 마치 어느 먼 곳에서 실수로 들이닥친 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