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모프의 과학소설 창작백과
아이작 아시모프 지음, 김선형 옮김 / 오멜라스(웅진) / 200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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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이 책을 독파하고 나면 소설이 그냥 술술 쓰여질 거라고 착각하는 건 금물. 백과 사전 같은 과학 소설 창작에 관한 온갖 지식이 나열되어 있을 거라고 착각하는 것 또한 금물. 과학 소설에 관한 작가의 에세이 정도라고 생각하면 좋을 것 같다. 과학 소설에 매료되어 무작정 소설을 쓰기 시작한 십대 시절의 이야기부터 처음 자신의 작품이 잡지에 실렸을 때의 느낌, 자신의 작품에 가차없이 비평을 가하는 비평가를 대처하는 방법 등 작가 지망생이든 아시모프를 알고 싶어하는 평범한 독자이든 흥미를 가질 법한 내용들로 이루어져 있다. 단 유머에 무감한 사람들이 아시모프가 지나치게 자만심에 빠져 있지 않나 하는 불쾌한 생각을 할 수도 있다는 걸 명심한 후 읽기 시작하면 책은 술술 잘 넘어간다. 정말 잘 넘어간다. 어디 한구석 어려운 데도 없고 아시모프가 인용한 어느 비평가의 말 대로 정말 술술 잘 넘어간다. 

  그런데 이 너무 잘 넘어가는 부분이 나로서는 좀 불만이다. 앞쪽 과학 소설론과 창작론도 그렇긴 하지만 좀 진지한 이야기를 원하는 독자에게는 뭔가 알맹이가 빠진 듯한 맥빠진 느낌이 들기도 하기 때문이다. 3부에 실린 단편들은 너무 평범한 내용들이었다. 물론 재치와 아이디어는 뛰어나지만... 너무 잘 넘어간다는 점을 빼곤 우수한 작품이라고는 하지 못하겠다. 이건 순전히 내 개인의 생각이고 과학 소설에 특별히 조예가 깊은 것도 아니긴 하지만. 아시모프 스스로 이야기를 만들어내는데 탁월한 능력이 있다고 인정하고 있고, 그 이야기들을 애매하지 않게 명쾌하게 풀어내는 능력이 있다고 자부하고 있고, 바로 그 명쾌한 문장 때문에 성인들 뿐만 아니라 청소년 독자까지도 끊임없이 유입시키는 능력이 있는 건 분명하지만 내 개인적인 취향에는 맞지 않는 건 사실이다. 아직 그의 작품 중 빙산의 일각만 접한 후의 단순한 느낌일지도 모르지만. 하지만 단편 뒤에 실린 작가에 대한 해설들을 보면 내 생각과 크게 다르지 않은 느낌이다. 아이디이와 인물 간의 대화를 통해 진행되는 구조다 보니 인물의 개성이 잘 살지 않는 단점이 있다고 하늘 걸 보면.  

  사실 플롯 뿐이거나 대화 뿐인 이야기는 순수문학이든 장르 문학이든 구미가 당기지 않는다. 특히 장르문학 쪽이 플롯에 치중되어 있어서 과학 소설 외에는 장르 문학을 그다지 좋아할 수가 없다. 아마도 이야기만 술술 풀어가는 장르 문학의 특성(어쩌면 장점인지도 모르겠지만) 때문에 순수문학을 하거나 순수문학을 좋아하는 독자들은 장르문학을 폄하하지 않나 싶다. 

  사실 내가 가지고 있는 몇몇 과학 소설 단편집에는 재기넘치는 이야기에다 순수문학보다 더 뛰어난 배경묘사라든지 심리묘사를 볼 수 있는 작품들이 많이 있다. 그래서 스토리에 치중한 장편 과학 소설보다는 잘 짜여진 플롯과 뚜렷한 주제의식, 밀도 있는 서술이 돋보이는 단편들을 더 좋아한다. 이야기자체보다는 미묘한 문장의 맛이라든가 섬세한 배경묘사 등을 좋아하는 독자라면 3부에 실려 있는 단편들이 그다지 만족스럽지 못할 것이다. 골격만 있고 살은 없는 느낌이랄까. 과학소설의 대가 중의 한 사람이라는 아시모프의 다른 작품들을 제대로 접해보지 못해 내 개인적인 의견이 옳은지는 모르겠지만 이 책에 실린 작품들은 그다지 밀도 있게 쓰여진 작품이 아닌 것 같고 뭔가 허전한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대가라고 해서 모든 작품이 성공적일 리 없겠지만, 일 년 동안 발표한 작품 중에 한두 편은 실패한다고 아시모프 스스로도 밝히고 있듯이, 무성한 소문만 못하다는 건 어쩔 수 없는 결론이었다. 물론 이 책에 한 해서.

  몇 년 전에 본 윌 스미스 주연의 '아이, 로봇'은 정말 잘 만들어진 작품이라고 느꼈는데 (사실 그때는 원작이 아시모프인지 몰랐다.) 그런 뛰어난 작품을 접하지 못한 때문이라고 위로받고 싶다. 원작과 영화 중에서 어느 것이 더 나을지 궁금하다.(마지막 부분 작가 연보를 읽어보니 원작과는 많이 다르단다.) 이 책의 제일 마지막에 수록된 "황금"이란 단편에 기대를 걸었는데 역시 나의 구미에는 맞지 않는 스토리였다. 이름 뿐인 인물에서 인물의 개성을 찾아나가는 걸 작가가 아닌 컴퓨드라마( 배우가 각 인물의 역을 연기하는 것이 아니라 컴퓨터나 영상 기기, 음향기기에 의해 인물을 창조해서 만들어지는 미래의 영상 매체)의 감독에게 맡기는 부분에선 작가의 임무를 게을리하고 있다는 느낌마저 들었다. 물론 나아갈 바를 몰라 헤매고 있던 감독에게 실마리를 던져 준 건 러보리언이라는 작가이긴 하지만. 

  그의 명성 만큼 뛰어난 다른 작품을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면서 이만 마무리해야 할 것 같다. 그의 팬들의 나의 생각과는 전혀 다른 각도로 그의 작품을 예찬하고 있을 테니까. 이 책의 번역자처럼 군더더기 없고 간결하고 명쾌하며 유머 있는 글 솜씨와 끊임없이 쏟아지는 아이디어의 보고에 넋을 잃은 독자도 수없이 많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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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사 편력 1 - 아버지가 딸에게 들려 주는 세계사 이야기, 개정판 세계사 편력 1
자와할랄 네루 지음, 곽복희 외 옮김 / 일빛 / 200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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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학창시절 세계사는 참 어렵고 한눈에 파악하기 힘든 퍼즐과 같은 느낌이었다. 고3때 어쩔 수 없이 선택했다가 참담한 점수를 받았던 기억이 난다. 그 이후로 세계사는 어려운 것이란 각인이 되어 있었던지 이런 류의 책들에 쉽게 다가가지 못했던 것 같다. 이 책 또한 전 3권의 두툼한 분량 때문에 언젠가는 읽어야지 하면서도 자꾸 뒤로 밀리고 하던 책 중의 하나였다. 읽기 시작한 지 한 달이 넘었지만 아직 2권째를 넘기지 못하고 있다. 고대사는 상당히 재미있었고 근현대사 또한 흥미로왔다. 생각보다 책장이 잘 넘어가진 않지만 항상 다음 번 편지가 기대되는 책이었다.

  독립한 인도의 초대 수상이었던 자와할랄 네루가 옥중에 있으면서 딸에게 주는 편지 형식으로 쓴 것이다. 서양인의 눈으로 본 세계사가 아니라 동양인의 눈으로 본 세계사란 점에서 꾸준히 읽히고 있는 책이다. 저자가 인도인이니 만큼 우리가 쉽게 접해 볼 수 없었던 인도와 이슬람의 역사에 대해서도 눈을 뜨게 되었고 특히 2권에서 러일 전쟁에 대해 다룬 부분에 대해서 새로운 시각을 접할 수 있었는데 일본의 승리가 서양 제국주주의 지배를 받던 많은 아시아 국가에 대해 새로운 희망을 주었다는 것이다. 바로 이런 면 때문에 아직도 일본이 아시아에 대한 침략 전쟁을 서양 열강으로부터 아시아를 지키기 위한 전쟁이었다고 억지를 부리는 단서가 되지 않았을까 싶다. 물론 그것이 서양 제국주주의 충실한 모방에 불과한 것임을 이후에는 밝히고 있지만.  

  세계사를 읽다보면 매번 느끼지 않을 수 없는 것이 있는데 우리나라가 얼마나 우물 안 개구리처럼 지내왔는지 새삼 깨닫게 된다는 것이다. 서양의 열강들이 앞다퉈 아시아, 아프리카, 아메리가 등을 식민지화하려고 하고 있는데 조선이라는 나라는 당쟁이나 일삼고 이 세상에 강대국은 중국밖에 없다는 듯이 중국 눈치만 보고 있었으니... 우리는 조선을 식민지화한 일본을 항상 욕하지만 근본 원인은 나라를 지키지 못한 조선인 모두의 책임이지 않을까. 영국의 제국주의부터 그 뒤 서양 열강들의 식민지화 과정을 보면 제국주의적 본성은 일본이나 조금도 다를 바가 없다는 사실을 느끼게 된다. 약한 나라는 철저히 교묘하게 짓밟히고 제국주의 나라를 위한 원료 공급지나 공업화에 성공한 열강들의 공산품 소비지로 전락한다. 온 세상의 적이라고 알고 있는 독일제국과 싸우기 위해 영국이 식민지 인도인들을 강제징집한 것이나 태평양 전쟁 중 일본이 아시아 식민지 국민을 강제동원한 것이나 뭐가 다를까. 영국은 전쟁에 이겼고 일본은 전쟁에 졌다는 차이만 있을 뿐. 그 틈바구니에 있는 조선이나 인도는 그들의 전쟁을 위한 도구였을 뿐. 역사는 강한 나라에 의해 씌어진다는 사실을 새삼 실감할 뿐이다. 

  한번도 강한 나라였던 적이 없던 우리가 고구려에 심취하는 것도 제국에 대한, 보다 강한 나라에 대한 열망이 아닐까. 우리에게도 권력이 주어졌더라면 서양 열강처럼 제국주의의 길을 걸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고구려 지배 시의 만주 토착민들은 그들이 착취당하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을까. 권력을 가진 자는 어느 민족, 어느 나라를 막론하고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으니까. 보다 많은 것, 보다 힘 있는 것이 되려는 인간의 본성은 역사가 발전해도 달라지지 않는 것일까. 지금 이순간에도 세계는 크고 작은 분쟁으로 가득차 있고 인간이 존재하는 한 전쟁은 계속 될 것이다. 젊은 세대들에겐 영원히 누려온 것만 같은 이 평화도 고작 50년 남짓한 기간 동안 유지된 것일 뿐 외국의 눈에 한반도는 언제 전쟁이 터질지 모르는 분쟁지역인 것이다.   

  저자의 편지는 1933년에서 끝이 나지만 후기에서 히틀러에 의해 오스트리아가 병합된 후 체코슬로바키아마저 분리되고 영국과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에 의해 맺어진 뮌헨조약에 의해 이 침략행위가 묵인되기에 이르는 시기인 1938년까지 기술하고 있다. 세계는 바야흐로 제2차 대전에 목전에 있었다. 이 책을 읽다보면 유럽에 민족주의가 등장한 이래 유럽은 바로 이 전쟁을 향해 치닫고 있었던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저자가 영국의 식민지 아래 저항하던 인물이었던 만큼 유럽을 특히 영국을 긍정적으로 서술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것이겠지만 영국과 프랑스가 히틀러를 묵인한 결과 제2차 세계 대전의 위협에 직면하게 된 듯한 인상이다. 광대한 역사에 대한 저자의 시각이 모두 옳은 것은 아닐 것이다. 책에서도 스스로 말하고 있듯이 감옥에서 접하는 책은 제한적이고 어떤 사건에 대한 저자의 서술 중에는 분명 오류도 있을 수 있고, 편협된 생각도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역사를 보는 다른 시각을 이 책이 갖게 해주는 것은 사실이다. 

  처음부터 다시 한 번 읽어보고 싶은 책이다. 특히 고대사부터 시작되는 1권은 꼭 다시 읽어보고 싶고 고대사가 좀더 자세했더라면 하는 아쉬움은 남는다. 저자는 고대사보다는 식민지 지식인으로서의 자신의 삶에 많은 영향을 끼친 근현대사에 더 많은 관심을 기울인 듯했다. 한 번 훑어보고 덮어 버리기에는 아까운 책이다. 물론 두툼한 두께 때문에 쉽게 손에 잡히지는 않겠지만... 이 두꺼운 책을 읽다보면 좀더 말랑말랑한 다른 책들을 읽고 싶은 유혹에 종종 빠지게 된다. 하지만 그 유혹을 이겨내고 마지막 책장을 넘겼을 때는 인간의 긴 역사를 함께 걸어온 듯한 뿌듯함과 기분 좋은 피로를 함께 느끼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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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맥 매카시 지음, 정영목 옮김 / 문학동네 / 200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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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처음 몇 페이지를 읽어가는 동안 그들이 잿빛 세상 속을 카트 하나에 의지한 채 그저 묵묵히 걸어나갈 수밖에 없는 이유를 언젠가는 말해 주겠지 싶었다. 그러나 페이지를 넘길수록 그런 기대가 헛된 것이라는 걸 깨달을 수밖에 없었다. 작가에게는 우리에게 사건의 원인과 결과를 추리하고 상상하는 흥미진진한 이야기를 보여주려는 의도가 손톱만큼도 없었으니까. 그저 불이 지구를 휩쓸고 지나간 후에 삶아남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담히 보여주고 있다.  

  불이 지구를 휩쓴지 몇 십년은 지난 듯한 지구, 몇 명이나 그 잿더미 속에서 살아 남았는지는 알 수 없다. 남자와 그의 아들은 그저 남쪽을 향해 가고 있을 뿐이다. 그곳에 좋은 사람들이 있을 거라는 막연한 믿음만 가지고. 좋은 사람들이란 인간을 먹이로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 남의 통조림과 옷을 뺏지 않는 사람들, 죽어가는 사람들에게 약간의 동정심이라도 남아 있는 사람들이다. 생존 그 자체가 목적인 세상에서 좋은 사람들이란 살아남기 불리한 쪽에 스스로 서려는 것과 다름없는 일인 것이다. 아이는 끊임없이 묻는다. 

  "우리는 좋은 사람들이죠?" 

   그래. 아버지는 늘 그렇게 대답하지만 아이는 또 묻는다.  

  "왜 아까 그 사람을 도와주지 않았어요?" 

  그러면 아버지는 언제나 우리가 살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다고 대답한다. 그런 세상이다. 내가 살아남기 위해서는 죽어가는 사람에게 한 방울의 물도 낭비할 수 없는 세상. 남자는 아들을 위해 밤이 밤보다 더 어둡고  낮도 이미 낮이 아닌 세상을 한 걸음 한 걸음 비틀대며 나아가지만 마음 속에서는 진정으로 죽음을 부러워하며 아들에게는 끊임없이 걸어야하는 이유를, 살아가야 하는 이유를 말한다. 우리는 좋은 사람들이다. 불을 운반하는 사람들이다. 불이 무엇인지는 알 수 없다. 그저 죽어가는 남자의 눈에 비친, 환히 빛나는 아들의 모습에서 어렴풋이 짐작할 뿐이다. 아이가 가진 인간에 대한 한없는 연민인지도 혹은 아이 그 자체인지도 모를 일이다. 마지막 책장을 덮는 사람들이 생각하는 그 모든 희망적인 것이 다 불이 될지도 모르겠다.    

  책을 읽는 내내 나 자신이 그들과 함께 재를 마시며 녹아내린 도로 위를 ,녹아서 기이한 형태로 서 있는 건물들을, 거대한 숯 더미가 된 숲 속을 헤집고 나가는 것처럼 답답했다. 이런 상황에서 생명을 이어가는 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소설 초반 아이와 남편을 두고 죽음을 선택한 엄마의 행동이 차라리 더 인간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인간의 품성을 지닌 채 살아갈 수 없는 세상에서, 그저 아직 죽지 않은 생명일 뿐인 세상에서, 다른 사람들의 먹이로 사로잡히기 전에 죽기 위해 마지막 총알 하나를 끝까지 지켜내야 하는 세상에서 인간으로 살아간다는 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언젠가는 지구를 뒤덮은 재가 걷히고 죽은 땅에 최초의 풀 한 포기가 돋아나는 순간을 위해 죽음보다 더한 삶을 이어가야  하는 걸까. 최초의 풀 한 포기를 만나는 그 순간을 위해 길이 아닌 길 위를 죽을 힘을 다해 걸어가야 하는 걸까. 아버지는 아들의 목숨을 살리기 위해, 그 아들은 또 자신의 아들을 살리기 위해 죽을 힘을 다해 걸어가다 보면 언젠가는 지구 스스로 생명력을 회복해서 새로운 삶이 가능한 지구에서 잿빛 하늘과 땅 대신 씨앗을 키울 수 있는 땅과 태양을 마주할지도 모를 일이다. 그래서 살아남은 사람들에게 삶의 목적은 끝까지 살아남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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홀로그램 우주 - 인간.삶.우주의 신비를 밝힌다
마이클 탤보트 지음, 이균형 옮김 / 정신세계사 / 199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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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세계가 딱딱하게 닫힌 세계라는 믿음을 가진 사람들이 한 번쯤 읽어 보면 그 닫힌 세계의 틈을 엿볼 수 있을 것 같다. 책 속에서 제시하는 다양한 현실들을 받아들이고 말고는 읽는 사람의 세계관에 달렸겠지만...

  사실 제목만 보고 선택했던 책이라 내용은 내가 기대했던 만큼은 못 미쳤다. 난 새로운 우주론에 대한 보다 과학적이고 심층적인 접근과 해설을 원했는데 이 책은 홀로그램 우주론의 개략만 엿볼 수 있을 따름이었다. 아마 아직 심층적인 연구가 되지 않은 분야인 탓일 게다. 그리고 이 책은 우주론에 대한 책이 아니라 여러 심령현상들을 홀로그램 이론으로 설명한 책이었다. 내가 이해한 바로는 홀로그램 우주론이란 우주를 포함한 모든 현실계의 모습은 홀로그램 필름으로부터 3차원의 입체상이 생겨나듯이 숨겨진 차원으로부터 비롯된 것이라는 것이다. 지금 우리가 보는 이 물질계는 우리가 보는 것 만큼 단단하지 않으며 그렇다고 홀로그램 3차원 입체 영상처럼 환영인 것도 아니라는 것. 또한 홀로그램 필름 한 조각으로부터 완벽한 3차원 입체 영상을 얻어낼 수 있듯이 우주의 작은 부분, 나의 일부분에도 우주가 존재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 책은 우주와 모든 현상에 대한 지금까지의 지나치게 과학적인 것만 고집하는 접근 방식에서 벗어나서 보다 유연한 입장에서 접근할 것을 당부하고 있다. 사람들이 흥미거리로 넘기고 마는 다양한 주제들, 기적, 염력, 전생체험, 투시, 임사체험, 허공에서 물질을 만들어내는 능력 등을 홀로그램 우주론을 이용해서 설명하고 있다. 예를 들면 수많은 사람들이 함께 목격하는 성모출현 현상도 성모 출현을 간절히 바라는 집단무의식이 만들어낸 홀로그램영상이라는 설명이다. UFO 목격담도 그와 비슷한 관점에서 설명하고 있다. 

  물리학 분야에 관심이 많아서 그런지 가장 기억에 남는 부분은 이론적으로만 존재했던 뉴트리노 같은 소립자의 발견을 설명한 부분이었다. 홀로그램 이론에 따르면 뉴트리노 같은 입자들은 발견된 것이 아니라 수많은 물리학자들의 무의식 속에서 만들어낸 것이라는 것. 인간의 무의식이 그토록 발견을 고대해왔던 입자들을 만들어냈고 앞으로 또 다른 입자들이 만들어질 것이라는 것. 이런 작은 소립자들이 발견되는 것인지 이 책의 내용대로 만들어지는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작은 소립자로부터 작은 돌멩이, 사람 하나 하나, 전 우주에 이르기까지 우주는 의식의 차원으로 연결되어 있다는 것이다. 

  책 속에 제시된 여러 가지 기현상들을 읽는 동안 이것을 사실 그대로 믿을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끊임없이 들곤 했다. 아마도 사물을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고 우선 비틀고부터 보는 내 회의적인 사고 습관 때문이겠지만. 저자가 말하고 있는 것은 이제껏 과학이 무시해버렸던 사람들의 이해를 넘어서는 초자연적인 현상들을 과학적으로 접근해 볼 시기가 되었다는 것이다. 그럼으로써 인간의 이해의 영역을 한 단계 더 넓힐 수 있다는 것이다. 내게도 이 책은 사고의 영역을 넓히는 계기가 된 것 같다. 지금까지 부정적으로만 보아왔던 초자연현상들을 어느 정도는 가능성이 있는 현실로 받아들이게 되었고 인간의 의식(의지)의 힘이 얼마나 무한한가도 깨달을 수 있는 계기가 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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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의 미래사 - 21세기 파국과 인간의 전진
W. 워런 와거 지음, 이순호 옮김 / 교양인 / 200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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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책은 2210년 동면을 앞둔 역사학자가 손녀에게 들려주는 지구의 역사에 관한 이야기이다. 1980년대 후반에 처음 출판된 책이라 90년대 초반 부분에 대해서는 수정을 거쳤고, 2006년의 인도와 파키스탄의 핵전쟁은 이미 사실이 아닌 게 되어버렸지만 가까운 미래에 대한 깊은 통찰과 가능성 있는 예언을 들려 주고 있다.

  21세기 초반 공룡처럼 덩치를 부풀려가던 자본가들이 정치권력을 뛰어넘는 세계무역컨소시엄을 구성해서 지구를 자본의 손아귀에 넣게 될 즈음 최초의 유전자변형 아기가 태어나고 달 식민지, 화성식민지 개척에 착수한다. 세계인구의 15%에 불과한, 한국을 포함한 30개의 부국이 재화와 서비스 생산의 85%를 차지할 만큼 빈곤의 괴리는 더욱 심해진다. 결국 2040년대 초 최악의 불황이 닥치고 굶주림으로 수억의 사람들이 죽어 갔고 더욱 심해진 온난화로 세계의 저지대 곳곳이 물속으로 가라앉는다. 유럽과 태평양 연안 국가들 만큼 부를 누리지 못하는 미국이 지구 국가 연합에서 탈퇴하고 지구국가연합 사령부와 미국간의 전쟁(제3차 세계 대전)이 발발한다. 그 후 세계 곳곳에서 약 1년간 벌어진 전쟁으로 북반구는 거의 초토화되고 70억이 넘는 사람들이 사망한다.

  북반구에 비해 덜 파괴된 남반구를 중심으로 살아남은 사람들은 세계당을 결성해서 지구를 하나의 체제 아래 편성시킨다. 국가와 민족의 개념을 없앤 1000여 개의 성으로 나누어지고 세계연방이라는 하나의 체제 아래 다스려진다. 세계연방은 지역 간의 경제적 불평등을 해소하고 개인간의 소득 격차도 2배를 넘지 못하게 함으로써 자본주의는 완전히 사라지고 이익을 위한 생산이 아니라 필요에 의한 생산이 원칙이 되고 모든 불평들이 사라진 안정된 사회로 진입해 간다. 대신 세계연방의 관료조직은 비대해지고 세계는 획일화되고 개인의 자유는 모든 면에서 제한된다.

  2100년을 전후로 해서 거대한 관료조직에 반대하는 목소리가 나오기 시작한다. 작은당, 순공산당, 존엄당 같은 작은 정당들이 등장하고 드디어 작은당의 주도 아래 세계연방은 와해되고 인구 천명, 2천명 정도의 작은 공동체에서부터 1000만 명 정도의 큰 공동체까지 4000내지 5000여 개의 공동체 (태양계에 있는 식민지 공동체까지 합해서)로 나뉘어진다. 각각의 공동체는 고도로 발달된 기술로 다른 공동체와의 물자교류 없이도 자급자족을 할 수 있는 정도였고 특별한 정치체제 없이 각각의 공동체가 원하는 방식대로 운영해 나간다.

  그 사이 인간은 유전자변형 인간을 끊임없이 만들어냄으로써 지적인면, 도덕적인 면, 신체적인 면 모두에서 우수한 인간형을 만들어냈고 인간의 수명은 200년으로 늘어났다. 수명 연장 뿐만 아니라 영원히 살 수 있는 기술도 인간의 손에 의해 만들어졌는데 복제한 인간에게 의식 전부를 옮김으로써 생명이 연장되는 식이다. 또한 태양계 곳곳에 식민지를 건설하고, 화성을 지구화시키는데 성공함으로써 또 다른 지구를 만들어내기도 하고, 우리 태양계 너머 다른 태양계 탐사를 통해 지구와 비슷한 환경이 있는 행성을 발견하기도 하고 우주를 향해 본격적으로 나아가게 된다. 

  과연 자본주의의 멸망이라든가, 세계 3차 대전으로 인한 70억 명의 죽음, 하나의 체제 아래 통일되는 세계연방, 그 후의 자치에 의한 다양한 공동체 같은 것들이 200여년 안에 나타날까. 다른 것은 제쳐두고라도 저자가 말한 것 같은 우주 식민지 개발이나 다른 태양계로의 진출 같은 우주 개발은 이루어지지 않을 것 같다. 워낙 빠르게 변하는 시대이긴 하지만 지금의 과학이 인간이 살만한 우주 식민지 개발을 가능하게 할 만큼 급속도로 발달하진 않을 것 같다. 인류의 미래사라는 이름답게 어쩌면 가능할지도 모르는 미래를 예측하고 있지만 과학소설을 읽거나 미래를 조금이나마 엿본다는 느낌으로 재미있게 읽으면 될 것 같다. 굳이 단점을 찾자면 어느 한 나라나 일부 지역이 아니라 인류 전체의 이야기를 하려다 보니까 두루뭉술하게 넘어가는 부분이 많아서 그다지 생생하게 와 닿지 않는달까. 조금 산만한 느낌도 있고. 어쨌든 부피에 비해 쉽게 잘 넘어가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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