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이 계절의 클래식
이지혜 지음 / 파람북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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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하루종일 클래식음악만 듣는다.

공부할 때나 책을 읽을 때 정말 엄청나게 집중할 때 빼고는 클래식을 틀어  놓는다.

머리 감을 때도 샤워를 할 때도 세수를 할 때도 항상 클래식을 틀어 놓는다.

내 방은 클래식이 항상 흘러나오는 상태이지만 클래식에 대한 정보나 지식은 거의 없다는게 아쉽다.

라흐마니노프의 3번 교향곡이 제일 끌리는 음악이다.

다른 가요나 팝송, 요즘에 트롯이 장난이 아니다.

그래서 들어 보니까 좋은 음악도 많았지만 그래도 클래식이 우선은 제일 좋다.

저자 이지혜는 학부에서 철학과 음악(바이올린)을 전공한 데 이어 음악교육학 석사학위와 경영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2020년부터 클래식음악 해설가로 마이크를 잡았다.

국내 유수 교향악단의 연주회에서 작품을 해설하거나 음악회를 진행하면서 청중의 이해를 돕고 클래식 음악에 대한 친밀감을 높이는 역할을 하고 있다.

아주 훌륭한 역할을 하고 있는 것 같다.

2010년 교육과학기술부 연수원에서 최우수 강사로 선정된 이후, 국가 공무원인재개발원 등의 공공기관 연수에 참여하여 예술의 효과를 널리 알리는 데 기여했다.

특히 기업에서 진행하는 그녀의 강의는 가장 만족도가 높은 강의로 손꼽힌다.

 그녀의 강의에서는 철학과 역사, 미술과 무용, 음악 등 예술 전반에 관한 이야기들이  통합되어 있다.

사람들은 살다 보면 필연적으로 겪는 일 중 하나가 실패의 경험이다.

실패는 유쾌하지 않다.

사소한 실수이든 큰 손실을 감당해야 하는 일이든 간에 실패와 좌절 없이 인생의 종착역에 도착하는 사람은 존재하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역경을 만난 이후의 태도다.

자고 나면 아무 일도 아닌 듯 금세 일상으로 돌아와 태연하게 하던 일을 계속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실패의 순간을 곱씹으며 헤어나지 못한 채 다시 그 일로 돌아가는 것을 두려워하는 이도 있다.

인생에서 장애물을 만나거나 실패를 경험했을 때, 그것에 대처하는 자세를 회복탄력성이라 한다.

마음의 근력이 지닌 탄력성, 즉 인생의 바닥에서 다시 튀어 오르는 힘이다.

흥미롭게도, 실패로 인해 밑바닥까지 떨어졌다가 회복하는 사람들은 원래 있었던 위치보다 더 높은 곳까지 올라간다고 한다.

크게 성공한 사람일수록 크게 실패해봤을 가능성이 크다는 뜻이다.

회복탄력성의 차이는 불행이나 역경에 대해 어떻게 의미를 부여하느냐에 달려 있다.

스스로의 감정과 충동을 조절하는 노력, 주변 사람과 건강한 인간관계를 맺는 대인관계 그리고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습관을 기른다면 누구든지 섬광과 성취를 맛볼 수 있다.

세르게아 라흐마니노프는 <교향곡 1>을 초연한 뒤 극심한 우울증을 앓았다.

심혈을 기울여 써낸 작품이 연주단과 지휘자의 연습 부족 등으로 형편없이 끝내 버린 것도 모자라 사정을 모르는 비평가들은 오로지 라흐마니노프를 향해 거친 비판들을 쏟아냈기 때문이다.

결국 그는 악몽 같은 기억에 발목이 잡혀 극심한 우울증에 걸려버렸고, 더 이상 작곡을 하지 못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그 아름다운 음악을 만들었던 라흐마니노프도 그런 시절이 있었구나,,

2여 년 동안 치료를 받으면서 간신히 우울증을 이겨낸 라흐마니노프는 1899년부터 <피아노 협주곡 2>을 쓰기 시작했다.

드디어 공식적인 초연으로 자신의 재기를 알렸다.

직접 피아노를 치면서 재기 무대를 마련한 그는 작품성과 연주력 모두 인정받으며 완전히 자신감을 회복할 수 있었다.

세르게아 라흐마니호프는 러시아 태생의 음악인이다.

모스크바에서는 작곡가와 지휘자로, 미국 망명 후에는 피아니스트로 이름을 날렸다.

대표적인 러시아적 감성하면 광활한 설원 위를 내달리는 장면이나 독주를 마시면서 추는 민속춤의 격한 몸짓들이 떠오른다.

러시아 문학에는 열정만큼의 광기와 서늘한 비극성이 혼재된 경우가 많다.

라흐마니노프가 여기에 보탠 것은 신선한 낭만성 내지는 우울감이다.

그의 음악에서 흘러나오는 울적함이란 도리어 로맨틱한 감성을 더욱 자극 한다.

특유의 우울감은 서정성과 박력과 쌍벽을 이루며 청중의 마음을 파고든다.

아버지 바실리 라흐마니노프는 장군 가문의 후손으로 상속받은 거대한 영지를 소유하고 있었는데, 귀족 집안의 아내와 결혼하면서 더욱 부유한 귀족 가족이 되었다.

그러나 바실리는 무책임한 가장이었다.

허세와 낭비가 심했고, 계속되는 놀음과 여자 문제 등으로 재산을 탕진했다.

급기야 세르게이가 아홉 살 무렵 상트페테르부르크의 서민 아파트로 이주해야 할 정도로 몰락했다.

결국 부부는 파경을 맞았고, 이후 아버지는 어딘가로 사라져 다시는 만나지 못했다.

1870년대 러시아 귀족 계급이 겪었던 전형적인 단편이지만, 라흐마니노프에게는 선택의 여지없이 주어지는 고통스런 시간들이었을 것이다.

상트페테르부르크의 아파트에 사는 동안, 그는 두 명의 형제마저 잃었다.

정신적 충격이 더해지면서 라흐마니노프는 점점 더 침울하고 내성적인 성격으로 변해갔다.

다행히 그에게는 피아노가 있었다.

네 살 무렵 시작한 피아노는 부모의 이혼 뒤에도 계속 이어갈 수 있었다.

모스크바음악원에 진학한 뒤에는 작곡 공부도 열심히 해서 졸업하던 해에 첫 작품으로 <피아노 협주곡1>를 발표했다.

<교향곡 1>이 실패로 끝나긴 했지만, <피아노 협주곡2>으로 재기한 이듬해에 결혼식을 올리고 볼쇼이 극장에 지휘자로 취임했다.

하지만 1905년 혁명과 총파업은 너무나 치열했다.

라흐마니노프는 문을 닫은 극장을 그만두고, 아내와 딸을 데리고 이탈리아를 거쳐 독일 드레스덴으로 피신해 3년 정도 머물다 돌아갔다.

라흐마니노프는 부모 세대가 귀족이었다는 것이 문제가 될 것을 예견했다.

마침 스웨덴의 초청을 받았던 그는 스톡홀름에서 연주를 마친 이듬해, 가족을 데리고 미국으로 망명했다.

미국에 도착한 라흐마니노프는 마흔 다섯 살의 나이로 피아니스트로 활동했다.

하지만 혹독한 연주 스케줄에 시달리면서 요통과 관절염, 피로를 떨치지 못한 인생이기도 했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음악가가 그렇게 횜들었다니 더 동정과 연민이 가면서 더 끌린다.

고향을 그리워하는 불치의 향수병까지 더해 그의 우울은 영원히 그의 삶 속에 머물렀다.

라흐마니노프는 미국에서 러시아계 미국인 파아니스트로 살다 세상을 떠났다.















최고이자 유일한 전 유럽에 악명을 떨치던 이탈리아 출신의 어느 바이올리스트에 관한 이야기는 그의 생전에도 그리고 사후에도 온갖 괴담들로 가득하다.

바이올린이 귀재이자 명연주가 파가니니를 사람들은 악마의 바이올리니스트라고 불렀다.

천사도 아니고 하필이면 왜 악마일까,,​

단지 놀라운 연주 솜씨에 대한 극찬이라기에 너무나 괴기스럽다.

파가니니가 자신의 별명을 달가워했는지는 알수 없다.

비쩍 마르고 병색이 짙은 모습으로 무대에 등장해 현란한 연주를 펼친 뒤 홀연히 사라지곤 했다는 파니니, 그는 과연 어떤 바이올린 소리를 들려주었던 것일까,,

<24개의 카프리스>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바이올린 테크닉을 총망라한 작품집이다.

1809-1817년 사이에 작곡한 것으로 추진되는 데 자신의 테크닉 공개를 지독하게 꺼리던 파가니니가 생전에 출판한 유일한 작품집이다.

파가니니가 바이올린으로 선보인 대부분의 기교가 들어 있는 만큼, 그 어떤 작품보다도 기교적 난이도가 높다.

사정이 이러하니 후대 음악가들에게 영감을 일깨운 작품집이면서 바이올린 연주자들에게는 좌절을 안기기로 악명이 높다.

무반주로 작곡했지만 피아노나 오케스트라 반주를 붙여 연주하기도 한다.

니콜로 파가니니는 이탈리아 제노바 태생의 바이올리니스트 겸 작곡가다.

파가니니 형제는 어렸을 적에 아버지의 권유로 바이올린을 시작했다.

​파가니니는 비범한 재능을 보였다.

그는 1794년 열두 살이 되던 해부터 연주 인생을 시작했다.

고향 제노바를 시작으로 이탈리아의 여러 도시를 돌며 이름을 알렸다.

관객들에게는 파가니니의 연주뿐 아니라 외모, 무대 뒤의 모습 등도 흥미로운 얘깃거리였다.

우뚝 선 메부리코, 항상 충혈된 눈은 기인의 전형처럼 받아들여졌다.

연주 직전 줄 담배를 피우고 서성이면서 신경과민 증세를 보이기도 했는데 1시간 이상 연주 시작이 늦춰져도 관객들은 웅성거릴 분 그를 기다렸다.

아이러니하게도 소름 끼치는 소문이 돌수록 파가니니의 인기는 더욱 높아지고 그를 보고 싶어 안달하는 사람들은 더 많아졌다.

엘리자 나폴레옹은 루카 지방의 새로운 군주가 된 직후 파가니니를 궁정 음악가로 임명했다.

그녀는 나폴레옹의 여동생이다.

1805년부터 1809년까지 엘리자는 수시로 파가니니의 연주를 청해 들었으며 그녀가 파가니니의 바이올린 소리에 실신했다는 소문이 나돌기도 했다.

두 사람 사이에는 아직도 확인되지 않은 염문설이 있을 뿐이다.

루카 궁정을 나온 뒤, 파가니니는 이탈리아 전역에 순회 연주를 다녔다.

경제력을 확보하는 데 주력했던 시기다.

점점 건강이 나빠지고 있었지만, 그럴수록 그는 홀로 남겨질 어린 아들을 위해 연주에 매달렸다.

1828년부터는 해외 활동에도 공을 들였다.

오스트리아 빈에서 시작해 체코 프라하, 독일의 드레스덴과 베를린, 그리고 파리와 런던까지 가는 곳마다 파란을 일으키며 큰돈을 벌어들였다.

그의 연주회 티켓은 매우 비싼 가격에도 매진되기 일쑤였다.

암표 값이 10배 이상 치솟아 연주회를 잠정 연기해야 할 만큼 엄청난 인기를 누렸다.

파가니니는 죽음을 목전에 두고 있었다.

임종 기도를 위해 방문한 사제는 악마가 씌였다는 소문이 맞느냐며 몰아세웠다. 후두암의 고통 속에서 몸부림치던 파가니니는 신경질적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 순간 그를 위한 모든 기도는 멈췄다.

고통 곳에서 삶을 마감한 파가니니는 자그마치 36년 동안이나 땅에 묻히지 못한 채 떠도는 불행을 겪었다.

제노바의 교회 묘지에 안장 되었던 열네 살이던 아들은 50세가 되어서 아버지를 고향 땅에 묻을 수 있었다.

1896년 파가니니는 파르마의 묘지에서 영원한 안식을 누리고 있다.

파가니니에 대한 영화가 있는 걸 아는데 아직 보지는 못했다.

그의 인생을 예습도 했고 영화에 연주도 나올테니까 언젠가는 볼 생각이다.

관심있는 음악가들에 대해서 읽어 보는데 평범하지는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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있는 그대로의 글쓰기
니콜 굴로타 지음, 김후 옮김 / 안타레스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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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저자 니콜 굴로타는 자신이 쓴 글이 있는 그대로의 삶에서 있는 그대로의 행복을 발견하는 데 도움이 되기를 바라는 작가이자 칼럼니스트, 강연자, 블로거, 콘텐츠 개발자, 요리 레시피 연구자, 녹차 애호가이며, 매일매일 손수 빵을 구워 저녁 식탁을 차리고 싶지만 그러지 못해서 때때로 우울해하는 아내이자 엄마다.

​저자는 바다를 사랑하며, 오래된 책 냄새를 좋아하고, 비 오는 날 뜨거운 차 한 잔에 책 한 권이면 금세 행복해하는 사람이다.

미국 캘리포니아 남부에서 나고 자라 캘리포니아대학교 센타바버라 캠퍼스에서 문학과 미술사를 전공한 뒤 버몬트예술대학원에서 시문학 석사학위를 받았다.

음식과 글쓰기를 융합한 첫 번째 책 <이 시를 먹어라, 시에서 영감을 얻은 레시피로 차린 문학의 향연 >을 써서 좋은 평가를 받았고, 이 책 <있는 그대로 글쓰기>의 바탕이 된 글쓰기 커뮤니티 와일드워즈를 만들어 작가로서의 삶을 살고자 하는 삶들의 내적, 외적 성장을 돕고 있다.

남편 앤드루와 아들 헨리 그리고 반려견 프렌치 불독과 함께 노스캐롤라이나 롤라에서 살고 있다.

저자는 ​아침에 날이 밝았을 때 고양이가 돌아다니는 단순한 풍경을 정말 아름답게 묘사한다.

잠에서 깬 고양이가 기지개를 하더니 파란 그릇에 담긴 우유를 마신다.

고양이가 ​유유히 정원에 나가 잔디밭을 거닐다가 앉는다.

저자는 ​있는 그대로의 말로써 표현하는 것말고는 다른 것을 더할 필요가 없다고 한다.

저자는 언제나 작가가 되기를 바랐지만, 이 책을 쓰면서  말할 수 있는 것은 그때 저자는 다시 이 일을 하지 못할까 봐 겁을 잔뜩 먹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머리 감고 드라이할 시간도 없이 3시간 단위로 아이에게 계속 젖을 먹여야 하는 저자는 어떻게 책을 쓸 수 있을까라는 생각을 했다.

저자는  삶은 돌이킬 수 없이 변해버렸는데, 기저귀 갈고 육아 책읽고 아이의 배변 기록을 스마트폰 앱에 입력하는 이런 모든 것들을 하면서 계속 책을 쓸 수 있을지 두려웠다고 한다.

저자의 ​고단한 삶은 그저 이어지고 또 이어질 뿐이었다.

​저자는 글쓰기를 원하는 이상  작가이므로, 여의치 않다면 하루에 한 번, 한 번에 한 단어씩이라도 쓰면서 앞으로 나아가야 했다.

다른 방법을 알지 못한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다시 시작하는 것 말고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고 한다.

글을 쓰게 되면 주변 환경이 어떻든 계속할 수밖에 없었고 환경 변화는 늘 저자를 불편하게 만들었지만, 역설적이게도 글쓰기라는 행위 자체가 큰 위안이 되었다.

아이를 갖기 전에도 글을 쓰는 삶에서 좌절을 맛봤지만, 지금 와서 헤아려보면 그나마 통제가 가능했던 것 같다고 한다.

 저자의 상황이 많이 좋아진 지금은 시간 융통성 있게 사용할 수 있게 되었다고 한다.

저자의 ​아들도 막 두 살이 지났다고 한다.

 저자는 달라진 일상과 글쓰기 작업이 공존하는 새로운 생활방식에 정착하고, 각각의 계절에 따른 접근 방식을 받아들여 창작력을 발휘한다면 모든 것을 바꿀 수 있다고 확신한다.

저자가 얻을 수 있는 가치 있는 것들 대부분은 사람들에게 지속적으로  글쓰기 방법을 전파하면서, 글쓰기야 말로 그 시간을 명예롭게 만들 수 있는 가장 품위 있는 방식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도와주는거라고 한다.

교육자이자 저술가인 L.L. 바개트는 오늘 준비된 이야기를 지금의 이야기라고 불렀다.

다른 이야기들도 있겠지만 마치 8월이 되어야 잘 익은 복숭아 꼭지를 비틀어 나뭇가지로부터 그 탐나는 과일을 따내듯이, 완전한 준비가 되기 전까지는 그대로 두어야 한다.

​자신의 생각을 적어서 펼쳐놓으면 그 생각들 역시 자신을 응시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될 것이다.

그 가운데 어떤 것에는 동그라미, 또 어떤 것에는 가위표, 다른 것에는 밑줄을 그어본다.

이렇게 해서 표식을 얻은 것들이 바로 한 시즌 동안 자신과 함께할 키워드다.

한편으로는 그저 바로 그 순간 어느 것이 가장 큰 목소리를 낼 것인지의 문제일 수 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자신이 앞으로 1년이나 2년 또는 그보다 오랜 시간 동안 탐구해나가기를 바라고 있는 것일 수도 있다.

영양분을 잘 공급해준다면 자신이 성장할 수 있도록 도와줄 생각들이 떠오를 수 있다.

걸림돌에 대해 지나치게 집착하면 스스로 글쓰기를 포기하게 될지도 모르지만, 자신의 내면이 말하는 이야기에 귀를 기울인다면 앞으로 나아가게 될 것이다.

그것이 바로 자신이 향해야 하는 유일한 방향이다.

설령 자신이 아직 작가로서 이름을 얻지는 못했더라도 이미 이런 식으로 글을 쓰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저자는 다른 일 때문에 주의력이 분산되는 날이나 두 걸음 정도 물러나 있는 것처럼 느끼는 날이 워낙 많아서 글쓰기를 공식 일정으로 만들어두는 것을 선호하는 편이다.

그렇게함으로써 ​몇 년에 걸쳐서 한계 상황에서의 글쓰기에 정착할 수 있었고, 세 문장에 불과한 글이 어떻게 해서 세 구절로 바뀌어 갔는지 잘 기억하고 있다.

씨앗에서 싹이 솟아 나기까지 얼마나 많은 시간이 걸리는지 생각해보고 초고를 쓰는 데는 시간이 어느 정도 필요한지도 생각해본다.

아마도 씨앗이 어떤 식물인가에 따라서, 그리고 영양분을 얼마나 공급했는가에 따라서 달라질 것이다.

당연하게도 꽃을 잘 피우기위해서는 매일 또 매주 단위로 잘 돌봐야 한다.

글쓰기도 또한 이런 식으로 해나가야 한다는 사실을 염두에 두려고 애쓰며, 한 번에 단 한 문장이라도 쓰면 그것으로도 충분하다는 믿음을 버리지 않는다.

​저자는 처음에는 너무 간단하게 보여서 별것 아니라고 생각했지만 놀라울 정도로 효과적이었다.

깊게 생각하지 말고 첫 문장을 쓴 다음 다섯 가지 문장으로 바꿔본다.

중간에 문장이 막히는 경우에도 같은 방법을 시도해본다.

저자는 ​지금도 수시로 이 방식을 실행하고 있다.

자신을 일컬어 작가라고 부르는 것은 간단하게 보이지만 공개적으로는 꽤 복잡한 일이다.

대부분 기본적으로 직업을 갖고 있으며,미팅이나 회의자리에서 모두 직함을 말하고 직함으로 불린다.

물론 이런 관행이 이상한 것은 아니다.

사회생활을 하는 인간에게 자연스러운 일이다.

​자신이 스스로 작가라고 부를 기회를 찾으라는 것이다.

표지에 자신 이름이 적힌 책을 서가에서 몇 종이나 가져올 수 있는지의 여부는 중요하지 않다.

글을 쓰는 작가라고 자신을 소개해본다.

저자가 대중 앞에서 당당한 목소리로 자신을  작가라고 소개한 때는 글을 쓰기 시작한 지 20년이 넘은 시점이었다.

그만큼 용기가 필요했다.


저자는 아들 앤드루와 함께 남편과 한 비영리 단체의 자선 바자회 만찬에 참석한 적이 있다.

당시 임신 6개월이었다.

펑퍼짐한 푸른색 드레스를 입고 혼자서만 무알콜 소다수를 홀짝거리면서 바자회에 나온 물건들을 살펴보고 있었다. 그때 누군가 우리에게 인사했고, 저자에게 어떤 일을 하느냐고 묻기에 작가라고 대답했다.

그렇지 않아도 지역 단체에 관한 칼럼을 쓰고 있었기에 합리적인 답변이라고 생각했다.

어떤 일을 하든 단지 작가였고 그 사실에 만족했다.

자신의 이야기가 담겼던 글쓰기 기억과 경험을 기억하는 모든 작가로서의 삶에 매우 유용한 연습이다.

중요한 무언가를 기억하고자 할 때 자신이 호수 앞에 서 있다고 상상한다.

늦은 여름, 한쪽 눈을 손으로 가린 채 수평선을 응시해본다.

바람이 자기 머리카락을 휘감아 목덜미를 간지럽힌다.

​자신의  마음속의  이 호수는 시원하고 깊다.

 천천히 호수로 걸어 들어가 발목으로 차오르는 시원한 호숫물을 느껴본다.

호수 표면이 바람에 흔들리고, 저 멀리서 자신의 기억이 어렴풋이 흔들리고 있다고 상상한다.

편안하게 두 눈을 지그시 감고 자신만의 호수를 찾아본다.

만나고 싶은 기억을 떠올려  본다.

마음의 호수가 바람에 응답해주었다면 그것을 있는 그대로 자유롭게 적어본다.

저자는 17세 때부터 시를 쓰기 시작했다.

저자는 ​글쓰기를 단 하루라도 멈춘다면 영영 글을 쓰는 능력을 잃게 되리라는 본능적인 두려움을 품게 되었다.

저자에게 ​그동안의 창작 과정이 어땠느냐고 묻는다면 쓰고, 또 썼다고 대답할 것이다.

마땅한 종이가 없으면 냅킨이나 전단지에도 떠올린 것들을 적곤 했다.

모든 감정을 추적해 모든 단어를 붙잡으려고 안간힘을 다했다.

기다림과 믿음의 시간도 있어야 한다는 사실을 이해할 만큼 자신의 창의성에 대해 알지 못했으므로 그저 매일같이 맹렬히 무엇이든 채워 넣었다.

기억의 계절은 다른 계절과 다르다.

이 계절은 외부적 환경의 영향을 받지도 않고 인생에서 벌어지는 어떤 사건들에 의해 찾아오지도 않는다.

다분히 의도적이고 의식적으로 찾아 들어가는 계절이다.

자신의 의지가 어디로도 떠나지 않았다는 사실을 상기해줄 것이다.

있는 그대로 자신의 이야기쓰기를 해본다.

자신의 기억을 찾아냈고 용기 있게 자신의 이야기를 공개할 준비가 되었다면, 있는 그대로 자기 이야기를 쓰는 연습을 저자는 알려준다.

1단계는 자신의 창작 역사에 대한 글쓰기이다.

2단계는 타이머를 분에 맞춘다.

아무것도 쓰지 않은 백지에서 시작해 제한 시간 안에 자신이 쓸 수 있는 최대의 길이로 써본다.

3단계는 기억이 확장될 때까지 이 연습을 두 세 번 반복한다.

4단계에는 충분한 분량의 글을 쓰는 데 성공했다면 개인적으로 저장해 두거나, 잘 다듬어서 블로그 등에 포스팅해둔다.

 책을 낼 정도라면 출판사에 투고해 볼 수도 있다.

어쨌든 잃어버렸던 이야기를 되찾아서 기분이 좋을 때도 있다.

저자는 ​용기를 북돋아주는 고마운 쪽지들을 받곤 했는데, 실제로 많은 힘을 얻었고 지속적인 노력이 언젠가는 결국 출판에 이르게 되리라는 믿음을 갖게 했다고 한다.


​저자는 글쓰기를 고등학교와 대학 시절 내내 일상으로 지켜왔으며, 작가로 사는 삶의 또 다른 측면을 연습하는 데 도움이 되었다.

또 다른 측면이란 다름 아닌 공유하고, 기다리며, 저자 손을 떠난 작품과 분리되는 것이었다.

​자신의 글을 몇십 명이 몇만 명이 읽든, 자신만이 쓸 수 있는 글을 읽음으로써 유익함을 얻는 사람들이 분명히 있다. 글쓰기는 그들과의 소통이다.

이처럼 눈뜸의 계절에서 활약하기 위해서는 용기도 필요하지만  자신의 이야기에서 자신을 분리하는 것도 필요하다. 자신은 자신의 이야기를 공개하고 반복해달라는 요청을 받을 것이다.

그렇게 바깥세상으로 나아갈 때면 스스로 자신의 내면도 잘 돌봐야 한다.

오프라인 모임에서 어떤 한 사람에 의해 자신의 자아가 고통 받을 수도 있고, 온라인 커뮤니티에 올라온 댓글 하나 대문에 정신이 산산조각 날 수도 있다.

​자신의 있는 그대로의 이야기가 있는 그대로의 세상에서 나오는 순간 몸과 마음을 굳건히 다잡아야 한다.

본격적으로 자신이 한해에 대한 의지를 다지거나, 결심을 굳히거나 꿈을 꾸고 있다면, 거기에 전문 작가로서의 삶도 포함해야 할 것이다.

얼마간 시간을 할애해 글쓰기와 관련해서 하고 싶은 일 몇 가지와 자신에게 적합한 성장 기회를 찾아보고 정리한다.

집에서 하루 이틀 정도 떨어져 글을 써본다.

지역의 글쓰기 커뮤니티에 가입한다.

컨퍼런스나 워크숍에 참여한다.

온라인 강좌를 수강한다.

친구와 함께 시 낭송회에 간다.

에세이를 다듬을 수 있는 편집자를 구한다.

도서관 출입증을 받고 사용한다.

작가 웹사이트를 개설한다.

블로그를 시작한다.

새로운 문학잡지를 구독한다.

작가 한 사람을 선정해 작품 모두를 읽는다.

그런 다음 자신이 실행하기로 결정한 항목을 일정표에 추가한다.

시간을 들여야 하는 활동은 기존 일정을 조정해야 한다.

그렇게 하는 건 전문적인 작가가 되기로 결심하고 자신의 내면을 돌보는 데 힘이 될 것이다.

잠재 독자를 확보하는 방법도 필요하다.

물론 글을 쓰는 데 대부분의 시간을 투입해야 한다.

하지만 커뮤니티를 만드는 것도 필요하다.

결국 모든 것은 누가 자신의 책을 사고, 누가 자신의 글을 읽으며, 누가 자신이 참여하는 워크숍에 오느냐로 귀결된다.

수행할 수 있는 방법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독자를 확보하는 방법에 관한 책들도 출간되어 있지만, 자신이 보기에 정말로 효과가 있는 것들은 자신과 같은 여정을 함께하고 있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주간 뉴스레터를 만들어 전송하는 것이다.

뉴스레터든 블로그든 모두 도구다.

자신의 글을 독자들과 만나게 해주는 고마운 도구다.

소셜 미디어의 경우, 넓은 의미에서 블로그나 뉴스레터도 여기에 속하긴 하지만, 통상적으로 SNS라 불리는일상의 필수 활동들이 있다.

이와 관련해서 조금만 검색해보면 어디서든 상당히 많이 해야 할 일이 언급되는 것을 알 수 있다.

작가라면 당연히 페이스북페이지를 갖고 있어야 하고, 하루에 몇 번씩 인스타그램에 게시물을 올려 자신의 영혼을 드러내야 하며, 핀터레스트 그래픽을 만들어 블로그에 삽입해야 한다고  말하기도 한다.

저자의  입장은 성공적인 작가가 되고자 모든 소셜미디어에서 존재감을 내뿜어야 하는 것은 아니라고 한다.

우리 주변에는 자칭 작가라고 하면서도 인스타 그램 팔로워 수만 많을 뿐 정작 자신의 글쓰기 결과물은 없는 사람들이 많다고 한다.

 우선순위가 바뀌어서는 안 된다.

더 많은 좋아요나 댓글에 연연 하지 말고 진심으로 다른 사람들과 소통하는 데 중점을 두는 것이 긍극적으로 옳은 방식이며, 자신의 경계를 유지하는 데에도 도움된다.      

저자는 글을 계속 쓰고 SNS도 잘 활용을 하라고 하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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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는 팩트에 끌리지 않는다 - 사실보다 거짓에 좌지우지되는 세상 속 설득의 심리학
리 하틀리 카터 지음, 이영래 옮김 / 비즈니스북스 / 2020년 10월
평점 :
절판


저자인  리 하틀리 카터는 미국 뉴욕에 있는 커뮤니케이션 전략컨설팅 기업 마슬란스키 앤드 파트너스의 사장이자 커뮤니케이션 전략가다.

저자는 중요한 것은 자신이 무슨 말을 하는가가 아니라 사람들이 무엇을 듣는 가다를 모토로 20년 넘게 홍보와 전략적 커뮤니케이션 영역에서 일해오고 있다.

마이크로 소프트, 스타박스, 비자, 페덱스 등 포춘 500대 기업 및 미국과 글로벌 비영리 단체들을 대상으로 다양한 홍보 마케팅 커뮤니케이션 전략을 성공적으로 컨설팅해 명성을 쌓았다.

대중 심리에 대한 예리한 해석으로 유명한 저자는 현재 미국 폭스뉴스, CNBC, 야후 파이낸스 등에서 정치 논쟁과 여론조사 분석 전문가로도 활약 중이다.

그는 전통적인 여론조사 분석 방식과 달리 유권자의 정치적 반응을 토대로 상황을 해석해 설명한다.

그의 분석 스타일은 사람들의 정치 참여 성향과 여론에 대해 보다 객관적이고 심도 있는 이해를 돕는다는 평을 얻고 있다.

실제로 2016년 미국대선 당시 그는 거의 유일하게 도널드 트럼프의 당선을 예측해 크게 화제가 됐다.

힐러리 클린턴을 이긴 트럼프의 설득 방식에 관한 그의 논평은  미국을 위한 힐러리는 우리가 아닌 그녀 자신을 이야기하고 있었다.

그러나 트럼프의 다시 한 번 위대한 미국을은 우리의 삶을 더 나은 삶으로 바꿔줄 것을 이야기했다고 한다.

이 단순하고 강력한 서사는 이기기 거의 불가능한 것을 이기게 했다.

​저자는 미국 퍼만대학교에서 역사학, 사회학을 전공하였으며 런던대학교에서 연극과 건축학을 공부했다.

어렸을 때부터 언어의 매력에 강하게 끌렸던 그는 커뮤니케이션 전략가로 사는 지금의 삶을 택했다.

이 책은 자신의 성공 노하우를 바탕으로 다채로운 사례와 심도 있는 과학적 근거를 통해 최고의 설득 전략이 무엇인가를 보여주는 그의 첫 번째 저서다.

이 책에는 효과적인 커뮤니케이션에 대한 내용이 담겨 있다.

설득을 하려면 우선은 자신이 달성하고자 하는 바가 무엇인지 정확히 알아야 한다.

현실이거나 바로 손에 넣을 수 있는 어떤 목표가 아니라 정말로 달성하고 싶은 목표는 무엇인지 알아야 한다.

다른 사람들이 자신에게 바라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자신에게 바라는 것이어야 한다.


​저자는 프로젝트를 시작하기 위해 클라이언트와 마주 앉았을 때 처음 하는 질문은  자신이 달성하고자 하는 것은 무엇이냐인 것이다.

물론 저자 뿐 아니라 모든 질문자는 다 그런 질문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설득의 성공은 구체성에 달려 있다.

최대한 상세함을 원한다.

​저자는 성공이 어떤 모습인지 정확하게 그려낼 수 있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소셜 미디어의 시대에는 인기든 악명이든 쉽게 얻을 수 있다.

그런데 그런 인기가 실제로는 자신의 제품이 전혀 필요치 않은 고객 기반에서 나왔다면,,

시장 점유율은 높아졌지만 제품 자체의 비용 효율이 낮다면,,

연봉 인상은 따라오지 않은 승진을 하는 사람들은 또 얼마나 많은가,,

이런 예들은 수도 없이 많다.

목표를 명확히 하는 것, 단순한 바람의 수준을 넘어서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이해하는 일이 바로 성공의 시작이다.

우선 이런 저자의 질문들에 답을 하려면 시간이 필요하다는 점을 알아야  한다.

이것이 클라이언트와의 첫 만남에서 당장에 해결할 수 있는 종류의 문제가 아니다.

생각이 필요하고, 심사숙고가 필요하며, 구체적이 될 필요가 있다.

구체적이지 못하면 자신은 자신에게 필요한 것을 파악하지 못하고 자신 팀은 자신이 어디로 향하고 있는지 파악하지못하여 성공이 어떤 모습인지 보고도 모를 가능성이 높아진다.

모든 설득은 공감이다.

사람들이 왜 자신과 똑같이 생각하지 않는지 도무지 짐작할 수 없을 수 있다.

거기에서 자신이 경험하는 것이 바로 공감의 간극이다.

모든 중대하고 결정적인 사안에서 공감의 간극이 나타난다.

기후변화 입안을 지지하는 사람들은 어떻게 이걸 거부하는 멍청한 짓을 할 수 있는 거지라고 생각할 수 있다.

엄연히 과학이 뒷받침을 하고 있는데 라고말이다.

총기 규제나 낙태도 마찬가지이다.

이런 대화에 빠져 있는 것이 하나 바로 공감이다
 

대화를 할 때 귀를 기울이고 존중하는 태도가 필요하다.

모든 설득 계획의 의견이 정반대인 사람들과 관계를 맺으려 노력하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우리는 대부분 다른 관점을 가진 사람들과 교감하려 노력하기 때문이다.

반대 관점을 무시하고 고려하지 않는다면 연결의 기회는 사라지고 설득은 불가능해질 것이다.

우리는 공감, 신경과학, 커뮤니케이션 분야의 전문가들이 어떤 이야기를 하든지 듣고 친밀감과 존중의 마음으로, 심지어는 애정을 가지고 고객을 이해하는 방법을 배우게 될 것이다.

​저자는 능동적 공감이라고 부르는 것도 알려준다.

능동적 공감은 사람들과 접촉하고 사람들을 설득하는 데  효과적이다.

설득시키려는 상대가 어떤 사람들이고 그들이 어떤 도움을 어떻게 받고자 하는지 완벽하게 이해하기 전까지는 그들에게 도움을 줄 수 없다.

설득의 기술에 통달한 나이키, 애플, 스타박스와 같은 브랜드들은 이런 서비스적 사고방식을 잘 이해하는 기업들이다.

​자신을 기억하게 만들 세 개의 기둥을 세워야 한다.

설득의 과정을 거치다 보면 불가피하게 벽에 부딪히는 때가 분명 온다.

그 벽이 ​감정이기 되기도 하고 곁길로 새기도 한다.

이때 필요한 설득의 다음 단계는 주장의 토대를 마련하는 것이다.

어떤 역풍이 불어도 날아가지 않는 방식이 필요하다.

 토대가 갖춰지면 사람들이 자신과 자신이 주장하는 바를 기억할 때까지 계속해서 몇 번이고 반복할 수 있는 의견을 갖게 될 것이다.

이 과정에서 기억해야 할 중요한 부분은 작업에 기반을 둔다.

​자신에 대한 가장 큰 결정은 자신이 없는 자리에서 이루어진다.

고객이 어떤 제품을 카트에 넣을지, 회사가 누구를 새로 고용할지, 결정권자가 자신이 보낸 이메일을 읽을지, 유권자가 투표소에서 어떤 사람의 이름 위에 표시를 할지 최종적으로 결정하는 순간, 자신은 그 자리에 없다.

 거대 서사는 자신을 규정하고 자신을 다른 사람과 구분하는 매우 집중적인 메시지를 말한다.

기준을 찾으면  다른 모든 것은 그 메시지에 보조를 맞추게 된다.

이 모든 거대 서사가 타깃 대상이 스스로에 대해서 좋은 느낌을 갖도록 함으로써 설득력을 얻는다는 점에서 주목해야 한다.

소비자는 그냥 운동화를 사는 것이 아니야, 자신은 운동을 열심히 하는 사람이니까, 그냥 전구를 사는 것이 아니라 발전을 뒷받침하고 있어, 나는 가족을 위해 최선을 다하는 안목 있는 엄마야, 나는 내가 사랑하는 이 나라의 새로운 시작을 지지해, 그것이 이 과정에서 공감이 필수적인 이유이다.

상대방이 어떤 느낌을 받고자 하는지 진심으로 이해하지 못하면 그런 느낌을 주는 거대 서사를 만들 수도 없기 때문이다.

사실이 힘을 얻으려면 스토리가 필요하다.

설득에서 입증 사항과 그 역할을 파악하는 데 애를 먹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

입증 사항과 서사, 스토리를 혼동하기 때문에 생기는 일이다.

설득력이 있으려면 이 세 가지 요소가 빠짐없이 갖춰져야 한다.

​접근성은  소비자의 핵심 니즈에서 필요한 때 약을 구할 수 있고 살 수 있는 능력이었다.

신뢰를 되찾기 위해서 파마케어가 내세워야 하는 것이기도 했다.

​치유가 필요한 어떤  회사는 환자의 질병과 질환에 대한 치료법을 찾는 데 수백만 달러를 투자하고 있었다.

그들은 매일같이 소비자의 목숨을 구하려고 노력했다.

이 점이 환자들의 마음속에서 그들이 의미하는 것의 일부가 돼야  한다.

혁신이 필요한 파마케어는 알츠하이머, 진행성 고형 종양, HIV. 난소암, 전립선암, C형 간염과 같은 질병을 치료하는 약에 대한 임상 실험을 진행했다.

이 회사들이 일련의 입증 사항이 포함된 이 세 개의 기둥을 갖게 되자 이들을 기반으로 파마케어를 한마디로 설명해주는 거대 서사에 이를 수 있었다.

뇌는 말이 아닌 이미지에 끌린다.

설득력이 있는 스토리를 어떻게 만들고 전달하는지 이야기하기 전에  자신이 설득해야 하는 사람과 진심과 공감의 마음으로 파악하고 있어야 한다.

또한 자신은 자신의 주장에 대한 세 가지 기둥을 만들었고, 상대방으로 하여금 자신의 비전이 자기 문제의 해답이라는 느낌을 갖게 만드는 거대서사를  만들었다.

 뇌는 같은 단어도 다르게 인식할 수 있다.

우리는 왜 그 언어 전략이 효과가 없는지 논의하고 의사들의 마음의 문을 여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에 대해서 계속 이야기를 나눴다.

오랜 교육과 훈련 기간 덕분에, 의사들은 우리보다 많은 것을 알고 있는 듯 보였다.

의사가 아닌 우리 입장에서는 경험과 판단을 기반으로 공감을 자아내는 설득적 언어 전략을 만들기 힘든 상황이었다. 고민을 거듭하던 끝에 우리는 한 걸음 물러서서 의사들의 마음에 공감해보기로 했다.

왜 그들은 우리의 메시지를 듣지 않는 것일까?

어떤 부분이 그들의 마음을 돌리지 못하게 만들고 있을까?

우리는 의사들의 생각을 기반으로 메시지를 만들자는 결론을 내렸다.

그들에게 우리의 메시지를 강요할 수는 없었다.

우리는 칠판 앞으로 돌아가서, 호기심을 잃지 않도록 조심하면서, 새로 수집한 자료를 분석하기 시작했다.

갑자기 의사들이 새로운 시도에 두려움을 갖는 건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떠올랐다.

그리고 그것은 사실로 밝혀졌다.

의사들은 기존에 입증된 방법이 이미 존재한다면 새로운 방법을 굳이 시도하지 않는다.

자신에게 목숨을 맡긴 환자에게 위험할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내세우려고 했던 특성, 새로운 제품이 완전히 새롭고 혁신적이며, 획기적이라는 것은 의사들로 하여금 입증되지 않은 것이라는 생각을 갖게 만들었다.

우리는 새로운 언어를 시험해보았다.

의사들이 대단히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던 단어는 돌파구였다.

그 까닭을 알 수 없어 이후 이런 질문을 던졌다.

왜 돌파구적인 제품은 괜찮고 혁신적인 제품은 그렇지 않은 것인가?

우리는 페니실린이 전혀 새롭지 않은 약이지만 돌파구인 약으로 여겨진다는 것을 알게 됐다.

의학계의 경우 돌파구인 수술법이나 제품은 안전하다는 인식을 동시에 가질 수 있었다.

전혀 희망이 보이지 않는다고 생각되는 순간에도 포기하지 않고 호기심을 잃지 않는다면 열쇠를 찾을 수 있다 고 한다.                 

집중적으로 뇌에 대해서만 얘기한 게 아닌가보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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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수는 어떻게 살아남았나 - 영국 보수당 300년, 몰락과 재기의 역사
강원택 지음 / 21세기북스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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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강원택은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이다.

서울대를 나왔고 런던 정치경제대학에서 정치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저자는 우리 정치가 건강한  민주주의를 구현하며 나아갈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하고자 집필과 강연에  관심을 쏟고 있다.

아주 좋은 관심이다.

저자가 영국 보수당을 떠올린 것은 우리나라의 두 가지 계기때문이다.

2020년 총선을 통해 확인된 보수의 몰락이었다.

보수사람들과 같이 응원을 그렇게 했는데 참패를 했다.

한국의 보수정당은 2016년 국회의원 선거, 2017년 대통령 선거, 2018년 지방선거, 그리고 2020년 국회의원 선거에서 연달아 패배했다.

2020년 국회의원 선거에서는 의석수에서 큰 차이를 보이며 패배했을 뿐만 아니라 정치적으로 중요한 수도권에서 완패했다.

저자는 한국 보수의 무기력과 몰락을 보면서 오랜 시간 동안 강한 생명력을 유지하며 정치적으로 건재해온 영국 보수당을 떠올렸다고 한다.

이 책은 500페이지 정도가 되는데 거기서 보수가 살아 남는 방법만 찾아 오면 될 것 같다.

저자의 문체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문체이다.

너무 건조하지도 않고 너무 딱딱하지도 않고 적당히 논리적이고 적당히, 아주 조금 감정적이다.

보수당은 기존의 질서와 이해관계를 지키고 보존하기 위해 존재하는 정당이다.

현상 유지를 위한 정당인 것이다.

보수주의는 하나의 이념이라기보다는 경험, 상식과 같은 현실적 체험과 관찰에 의해 형성된 사고방식, 감정의 양태, 생활양식으로 봐야 한다.

적극적으로 새로운  시대정신을 추구하거나 지금과 다른 정치 질서를 꿈꾸는 것이 아니라 변화에 대한 거부와 저항이라는 수동적이고 대응적인 속성을 보수주의는 내포하고 있다.

보수주의는 구체적인 원칙이기보다 폭넓고 다양한 태도의 결합,  이념보다는 기질의 문제로 볼 수 있다.

영국의 보수당은 토리라는 이름으로 처음 시작했다.

영국의 보수당도 시련에 빠질 때가 많았고 그럴 때 운명을 회복시킨 사람이 있었다.

보수를 살리는데는 사람이 필요한 것이다.

벤저민 디즈레일리는 1846년 곡물법 파동 이후 1874년까지 자유당이 장기 집권으로 어려움을 겪던 보수당을 구하고 이후 1906년까지 약 30년간 보수당의 장기 집배라는 전성기를 열도록 한 인물이다.

디즈레일리는 이런 정치적 성공뿐만 아니라 당의 사회적 지지 기반을 넓혔고 당이 대표하는 이념적 지평도 확대시켜 오늘날의 보수당으로 성장할 수 있는 초석을 닦았다.

디즈레일리는 출신 성분이 보수당 주류와는 달랐다.

농촌에 넓은 토지를 소유한 귀족이 아니라 소설을 쓰는 작가였고 도시의 상인 출신이었다.

디즈레일리 이후에도 영국은 보수당이 선거에서 지기도 하고 이기기도 했다.

디즈레일리는 보수당만이 영국의 제도를 보존할 수 있고 대영제국을 수호할 수 있으며 일반 국민의 생활을 증진시킬 수 있다고 주장했다.

디즈레일리의 뛰어난 점은 자신이 처해 있는 시대의 특성을 정확하게 이해하고 시대의 요구를 읽어내고 그 이슈를 선점할 수 있었다는 점이다.




















디즈레일리의 리더십 하에서 자기 변화를 꾀한 보수당은 보궐선거에서 잇달아 승리하면서 권력 장악의 희망을 높였다.

랜돌프 처칠의 아들인 젊은 시절릐 윈스턴 처칠은 솔즈베리때문에 자기는 보수당, 보수당 사람들, 그들의 용어, 그들의 방법까지 다 싫다고 했다.

솔즈베리의 보수주의는 아일랜드 독립을 추구한 글래드스턴의 존재로 인해 그 가치가 부각될 수 있었다.

솔즈베리는 아일랜드 문제를 정통적인 보수당의 가치와 연관시켰다.

그는 아일랜드 독립은 국가 권위와 헌정 질서, 연합왕국과 대영제국이라는 체제의 유지, 법의 지배, 재산권의 보호와 같은 기본적인 질서를 위협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아일랜드의 독립을 막는 일은 국왕을 정점으로 하는 연합왕국의 기존 질서를 지키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일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아일랜드 독립 문제를 영국 사회의 질서를 지키기 위한 투쟁으로 변모시켰다.

솔즈베리는 새로운 사상을 보수당에 불어넣지는 못했지만 매우 뛰어난 전략가였다.

그러나 솔즈베리의 정치적 성공에 가장 중요한 기여는 자유당의 분열이었다.

그가 뛰어난 전략가라고 할 수 있는 점은 아일랜드 자치 문제로 인한 자유당의 내부 분열을 무자비하다고 할 만큼 적절하게 활용했다는 점이다.

여러 가지 정치적  마찰에도 불구하고 하팅턴과 체임벌린이 이끄는 연합파 자유당과의 협력 관계를 유지하면서 정치적 재편을 이뤄냈다.

현상 유지를 추구하는 솔즈베리가 아무리 내키지 않더라도 그 시대의 요구에는 눈감고 있을 수는 없다.

솔즈베리 하에서 이뤄진 개혁은 랜돌프 처칠, 처칠이 물러난 이후에는 리치, 연합파 자유당의 개혁적인 지도자인 체임벌린에 의해 주도되었다.

이것은 현실적인 필요에 의해 이뤄진 것이다.

1884년 개혁법은 농업 노동자를 포함해 많은 성인 남성에게 새로이 선거권을 부여했는데 자유당을 제치고 이들의 지지를 이끌어내기 위해서는 보수당이 이들에게 적극적으로 다가서야 했다.

또 다른 한편으로는 1896년까지 장기화된 경제 불황으로 인해 고통 받고 있는 많은 이를 지원해야 할 시급한  상황이었다.

애국주의적 전통을 갖는 보수당에 비해 자유당은 평화주의자와 전쟁 찬성파 간의 극심한 의견 차이가 있었다.

유리한 상황이 마련되자 솔즈베리는 의회를 해산하고 총선을 실시하기로 했다.

집권당이 유리한 시점에 의회를 해산하고 총선을 치러 재집권을 노리는 방식이 이때 처음 시도되었다.

솔즈베리의 총선 타이밍이  보수당의 유리한 결과를 낳았다.







영국 보수당은 과거를 지켜내는 것을 존재의 목적으로 한다.

보수당이 300년 동안 성공적으로 존속하고 있다.

보수당이 존속하고  있다고 성공적인게 아니라 그 긴 시간동안 정치적 생명을 유지해오고 있어서이다.

오랜 시간 동안 보수당은 권력을 장악하고 있었고 제 1야당으로 집권당에 가장 확실한 대안 세력으로 남아 있었다.

긴 세월 동안 보수당은 제3당의 지위로 떨어진 적이 없었다.

그것도 생각해보면 대단하다.

국민의 힘이라는 보수당은 김종인 할아버지때문에 몰락하고 있다.

김종인 할아버지가 국민의 힘에서 나와야 한다.

보수당과 비슷한 시기에 함께 등장한 자유당이 20세기 초 노동당의 등장으로 정치적인 몰락을 경험했던 것과 비교할 때 보수당의 건재는 대단한 것이다.

보수당의 성공적인 역사가 관심을 끄는 것은 보수당이 원래 대토지를 소유하고 있는 거대지주와 귀족계급의 정당이어서이다.

보수당은 급격한 정치적 환경의 변화 속에서도 정치적 경쟁력을 잃지 않고 살아남았다.

다른 나라에서 보수 세력이라면 변혁의 와중에 타도의 대상이 되거나 수구 반동으로 몰려 이미 사라졌을지도 모른다.

대중 민주주의와 복지국가가 등장했던 20세기에도 보수당은 지배적인 정당이었다.

영국 보수당의 성공적인 생존의 이유는 권력에 대한 열망이 매우 강해서이다.

권력을 열망하지 않는 정당은 없겠지만 부수당의 권력에 대한 의지는 매우 강하고 그 이유도 현실적이다.

보수당이 권력을 잡아야 하는 이유는 그것이 자신들의 이해관계를 지키고 급격한 변화를 막을 수 있는 좋은 방안이기 때문이다.

보수당은 자신들과 견해를 달리하는 경쟁 정당이 권력을 잡아 자신들이 감당할 수 없는 속도와 규모로 급격한 변화를 이끄는 것을 원치 않았다.

보수당은 선거 승리를 통해 권력을 유지하고 자신들의 이해관계를 지키기 위해 애썼다.

이를 위해서는 최대한 현실과 타협해야 했다.

교조적이고 이념적인 독단보다 이해관계를 지키기 위한 수구 반동적 태도보다는 변화하는 현실에 자신을 맞춰가려고 했다.

영국 보수당은 이념적 원칙이나 순수성보다 권력 장악이라는 실용성을 강조하는 정당이었다.

원칙이 아니라 집권이 우선인 것이다.

보수당은 다른 당에 권력을 뺏겼을때도 정치적 지지를 빠르게 회복하는 모습을 보였다.

보수당은 선거 승리를 위해 유권자의 요구에 맞추려는 노력을 잘했다.

국민의 힘은 유권자의 요구에 전혀 못 맞추고 있다.

빅 데이터를 돌려야 한다.
















보수당이 성공적인 역사를 가질 수 있었던 이유는  변화를 고집스럽게 거부하지 않고 유연해서이다.

보수당이 시대 변화에 적응력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은 현재의 이익을 있는 그대로 지키고자 하기보다는 영리하게 양보할 것은 양보함으로써 자신들의 기득권이 위협받지 않도록 했기 때문이다.

보수당이 기득권을 있는 그대로 지키려고만 했다면 영국 역시 프랑스 혁명과 같은 급격한 정치적 격변을 경험했을지 모른다.

보수당은 영국 사회에서 발생한 변화와 그로 인한 정치적 결과를 수용했다.

자유당이나 노동당이 추진한 정책도 필요하다고 판단되면 수용하고 모방했으며 이전 정부가 커다란 정치적 논란 뒤에 실행한 정책을 보수당이 그 뒤에 집권했더라도 이를 되돌리려고 하지 않았다.

영국 보수당은 9명의 지도자가 이끈 각각 다른 보수당이었다고 한다.

윌리엄 소 피트, 리버풀 경, 로버트 필, 벤저민 디즈레일리, 솔즈베리 경, 스탠리 볼드윈, 윈스턴 처칠, 해럴드 맥밀런, 마거릿 대처 등이 보수당을 이끈 위대한 지도자들이다.

영국 보수당은 배타적인 집단으로 남아 있는 것이 아니라 외연을 넓혀왔다.

토지 소유계급, 귀족의 집단으로 출발한 보수당은 산업혁명 이후 부를 축적하며 새로운 사회적 힘으로 떠오른 상공업자들을 끌어들였고 이들과 하나로 융합했다.

정치적으로 존속하기 위해 사회적으로 영향력을 갖는 새로운 세력을 당내에 수용했다.

보수당이 언제나 성공만 한 건 아니었다.

보수당을 어렵게 만들었던 것은 당내 갈등과 분열, 취약한 당 지도자의 리더십이었다.

영국 보수주의는 유럽 대륙으로부터의 영향력과 위협에 대한 대응의 성격도 지닌다.

로마 교황이 주도하는 가톨릭으로부터 성공회를 지키고 프랑스 혁명과 공화정으로부터 군주제를 지키고 사회주의로부터 재산권을 지키려고 하는 데서 보수당의 역할과 가치가 존재한다.

현재 보수당은 브렉시트로 인한 혼란과 환경의 변화는 보수당에게 새로운 도전이 되고 있다.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내느냐 하는 것이 향후 보수당의 정치적 미래에 영향을 미칠 것이다.

브렉시트 과정을 거치면서 생겨난 당내 분열 역시 보수당으로서는 풀어야 할 또 다른 과제이다.

보수당은 끓임없는 갈등과 내부 분열속에서도 그것이 분당이 자기 파멸로 이어지지 않고 궁극적으로 건강한 자기 혁신의 기회를 제공해주었다.

보수를 내세우는 정당이지만 시대의 변화에 대한 뛰어난 적응력을 가질 수 있었고 새로이 제기된 요구에 대해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었다.

그와 같은 끓임없는 자기 변신은 그 시대를 읽어내는 탁월한 지도자의 존재로 인해 가능했다.

그게 영국 보수당의 생존 비밀이다.

우리나라 보수당도 권력을 찾아오기 위한  강렬한 열망을 가져야 한다.

만약 윤석열 총장이 야권 후보로 나온다고 치면 박근혜 대통령을 탄핵시켰네 어쨌네,,

지금 그게 문제냐,,윤총장을 통해서 권력을 찾아 올 수 있다면 리더자로 세워야 한다.

과거의 프레임은 전부 벗겨내고 유연하게 모든 방법을 동원해서 권력만 뺏어오면 된다.

우리집은 택배기사 선생님들이 매일 오신다.

엄마랑 내가 서평도 하지만 그걸로는 부족해서 한달에 책을 몇 십만원씩 계속 사본다.

그래서 다양한 택배회사 선생님들이 오신다.

오늘은 택배기사선생님한테 커피를 드리니까 목이 너무 말랐는데 감사하다고 하면서 우리집에 가면 커피를 준다고 다들 얘기한다고 했다.

택배기사선생님들은 엄마에게 물량이 너무 많고 쉬는 시간이 있다고 해도 물량이 더 쌓여서 힘들다고  하소연을 하신다.

차도 고장이 자주 나고 다치기도 많이 다치고 사고도 많이 나서 너무 힘들다고 하셨다.

코로나로 사람들을 죽이더니 이젠 독감백신으로 사람들을 죽이는 것 같다.

보수는 힘든 국민들의 사정도 잘 들어야 하는 것 같다.

희망적인 것은 보수가 살기 위해서는  많은 사람이 필요한 것도 아니고 강력한 리더자 한 명만 있으면 되는 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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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로트 열풍 : 남인수에서 임영웅까지
유차영 지음 / 행복에너지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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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께서 유일하게 보시는 프로가 미스터 트롯 사람들이 나오는 프로이다.

그 프로는 10대부터 100대까지 즐기는 프로이다.

트롯은 뽕짝 비슷하고 평생 들어 본 적이 없다.

미스터 트롯에 나오는 노래들은 시같은 곡들도 많았다.

그리고 미스터 트롯 사람들이 노래를 정말 잘 부른다.

저자 유차영은 37년간 육군 장교로 복무한 예비역 베테랑이며, 문단에 등단한 수필가, 음유시인, 문화예술교육사다.

특히 한국근대사와 6,25전쟁, 베트남전쟁사의 편년궤적 위에 한국대중가요 100년 히트곡 사연을 연대, 연도별로 행렬하여 르포에세이로 스토리텔링 하는 특이한 이력의 해설가다.

2020년에 트로트 르네상스 시대가 열렸다.

트로트 가수 팬들의 흥 바람 열풍이 불었다.

1930년대 작은 옹달샘에서 졸졸거리던 시냇물 같던 유행가는 인기가수 중심으로 불렸다.

나라를 빼앗긴 통분과 민족의 처절함을 대신했고, 대중들은 유행가를  따라 부르면서 울분을 달랬다.

나라에 살면서 남의 나라 통치를 받던 식민의 통곡< 나그네 설움>, <목포의 눈물>, < 홍도야 우지마라>, 이렇게 흘러 1950년 까지 잇는다.

<가거라 38>, <신라의 달밤>, < 굳세어라 금순아>, < 이별의 부산 정거장>, < 한많은 대동강>, < 꿈에 본 내 고향>, < 봄날은 간다>, 고복수, 남인수, 이난영, 황금심, 백설희, 백난아, 백년설, 진방남, 현인 등18번 시대의 시작이다.

1960년대 트로트라는 말이 우리 대중가요, 유행가의 한 갈래를 잡는다.

권위와 낭만의 충돌과 마찰, 그렇게 1980년대까지 이어온다.

<동백 아가씨>, <마포종점>, <배신자>, <돌아가는 삼각지>, <아침이슬>,<고향역>,<님과 함께>, < 왜 불러>, < 돌아와요 부산항에>, <곡예사의 첫사랑>, <낭만에 대하여>, <창밖의 여자>, <잃어버린 삼십년>, 이미자, 은방울 자매, 패티김, 배호, 양희은, 나훈아, 남진, 조용필, 송창식, 최백호 등 1990년대 보통사람 시대, 전통가요 부활의 꽃이 핀다.

트로트 무풍지대가 펼쳐진다.

신세대 트로트 가수들이 깃발을 흔들면서 세대 간의 갈등도 생기고 간극도 벌어진다.

심수봉, 혜은이, 주현미, 김연자, 현철, 송대관, 설운도 등이 박상철, 윤수일, 박구윤, 신유 등과 쌍방의 깃발을 흔든다.

<그때 그 사람>, <사랑만은 않겠어요>, <감수광>, <신사동 그 사람>, <아모르 파티>, <내 사랑 별과 같이>, <해뜰날>, <사랑의 트윗스트>, <황진이>, <어머나>, <뿐이고>, <시계바늘> 등 이러한 두 갈래의 깃발은 2012년을 기점으로 한 덩어리로 화한다.

싸이의 <강남스타일>, 조용필의 <헬로>, <바운스>가 분기점이다.

그렇게 2010년대 후반까지 이른다.

유행가 트로트가 오선지 밖으로 튀어나와 무대 위에서 광풍을 불러일으킨다.

공연장이나 안방에서나  사람들이 신나한다.

1956년 흑백TV에서 1980년 컬러TV 방영 이래 60여 년 만에 트로트가 계절을 가리지 않고 피는 꽃으로 진화되었다.

송가인, 정미애, 홍자, 정다경, 김나희, 임영웅, 영탁, 이찬원, 김호중, 정동원, 장민호, 김희재, 이들이 트로트 르네상스 주인공들이다. 노래는 세상과 통한다.

유행가, 트로트는 역사 속에서 사람들의 삶을 인류학적으로 빚어놓은 막사발이다.

역사 속에서 사람들의 삶을 씨줄 날줄로 얽은 돛단배다.

유행가는 탄생 시점을 현재로 보전하는 보물, 새로이 탄생하는 유행가는 온고지신의 산물, 그리움이 영글면 사랑이 되고, 사랑이 익으면 별이 된다.

이 별은 사랑이 식으면 은하수 물결을 지나 사라지고, 가슴속에는 한이 서린다.

유행가는 작사,  작곡, 가수, 대중, 시대사람, 사연을 요소로 하는 17재의 종합예술품이다.

한 곡 한 곡이 탄생시대의 융합물이고, 그 곡과 곡을 시대별로 얽어 가면 대하 역사물이 된다.

그래서 대중가요, 유행가를 풀어서 음유하면 역사의 타래가 되고, 그 타래 속에서 민족주의와 국가주의를 함의하는 신애국사상도 기와 혼 과 얼로 혼융된다.

또한 가삼 백만 인우다.

노래 300곡을 음유할 수 있으면, 모든 사람의 벗이 될 수 있다고 한다.

트로트는 시대와 세대를 아우른 절창이다.

이 절창은 히트곡, 인기곡, 명곡보다는 대중성, 통속성, 상업성 측면에서 민초들의 삶에 더 근접해 있다.

따라서 트로트는 시대와 세대를 넘기도 하고, 이어주기도 하는 소통의 매체로서, 세월을 더해 가면서 그 노래를 낳은 시대 이성과 감성은 안고 대중들에게 회창된다.

그래서 유행가라는 말을 쓴다.

세월의 바다 위에 사람들의 습생을 따라 흐르는 가사와 가락, 트로트는 유행가를 대표하는 장르다.

유행가의 매력과 마력은 가슴속에 맺힌 한을 흥의 어울림으로 공명시켜서 신바람으로 전이 시키는 것이다.

2020년 트로트 르네상스, 대한민국을 신바람으로 울렁거리게 한다. < 희가>2020년 기준으로 탄생 연세가 100세인 노래다.

이 노래를 14세 정동원의 목청에 걸렸다.

시대와 세대 초탈의 푯대 같은 절창이었다.

가녀린 정동원의 얼굴과 물 머금은 빨랫줄처럼 휘늘어지는 음률은 금세 많은 시청자를 눈물에 젖게 했다.

1955<추억의 소야곡>을 발표할 당시 37세 남인수 고향 진주 비봉산 기슭 디벼리에서 폐병진료를 위한 요양 중이었다.

어느날 작곡가 백영호가 악보를 들고 진주로 달려온다.

남인수는 건강을 이유로 노래 녹음을 거절하지만 작곡가는 아랑곳하지 않는다.

이러한 시대 상황을 유명 대중가수를 푯대로 사망 노래를 만들었던 것, 남인수가 피를 토하면서도 녹음을 한 이유는 첫 소설, 그 얼굴 때문이다.

백영호의 설명을 듣고서 첫사랑 이난영에 대한 비련의 사랑 오기가 되살아났던 것이었다.

44세 남인수가 타계하자, 신문에는 노장 남인수 타계라고 대서 특필한다.

44세는 청년 취급을 받는 오늘날에 비추어 보면 격세지감이다.

그의 음색은 백년만에 한 명 태어날 정도이며, 음역이 넓고 감정도 풍부하다.

미성에 음정, 발음이 정확하며 고음역도 타의 불허할 만큼절창이었던 터라 그가 떠난 빈자리는 유별났다.

2020314일 토요일 저녁 8, TV조선은 영웅을 탄생시켰다.

이곡은 1969년 가수 도성이 부른 <사랑의 배신자>, 같은 해 <배신자>제목으로 배호가 불렀다.

202012, 대한민국 국민들의 한 흥으로 발전시키는 내일은 미스트롯프로그램이 시동을 걸었었다.

이 유행가 함대는 국민감흥의 바다 위에 정지했고, 314일 최종 발표를 했다.

그날 영웅이 영웅으로 거듭났다.

대한민국 최초의 오디션을 통한 트로트 황제에 등극한 것, 임영웅, 미스터트롯 1위 진예선 시작부터 우승 후보로 꼽혔던 임영웅은 최고의 점수로 진에 선정됐다.

심사위원 마스터 총점, 대국민투표를 합산한 중간점수에서, 찬또배기 이찬원에 이어 2위를 달렸던 그는 실시간 국민투표에서 최고의 점수를 얻었다.

상금1억원, 수제화200컬레, 대형 SUV,승용차와 안마 의자, 조영수작곡가의 신곡 등의 부상도 차지했다.

이세상은 정말 공평하지 못한 것 같다.

일등만 살아 남는 것인가, 모든 상은 일등에게 다 돌아갔다.

결승전에서 어린 시절 돌아가신 아버지를 그리워하며 <배신자>를 불렀다.

이 노래는, 임영웅 아버지가 어머니에게 불러주던 애창곡, 무대에서 노래를 절창한 가수도 울고, 홀로 외아들을 키운 미용사 엄마도 울고, 심사위원도 울고, 시청자도 울었다. 결승전 진출한 TOP7은 장민호, 김희재, 김호중, 정동원, 영탁, 임영웅, 선은 영탁, 미는 이찬원이었다.

이어 4위 김호중, 5위 정동원, 6위 장민호, 7위 김희재였다.

이찬원은 미스터트롯 결선진출자 7명 중에서 중간집계 1위서 최종 3위로 선정되었다.

1983년 우리나라의 총각들은 너 나 할 것 없이 ‘18세 순이’를  찾아 나섰었다.

스스로 노래 스타일에 일대 변곡점을 찍었던 나훈아의 순이는 누구였을까.

2020년 미스터트롯 결승전에서 5위를 한 정동원이 나훈아의 <사랑은 눈물의 씨앗>을 불러서 14세의 미소년이 불혹의 감흥으로 시청자들의 가슴속을 갈기갈기 찢어놓았었다.

유행가를 말할 때, 유행가를 부를 때, 유행가를 들을 때, 고향, 나이, 학력을 묻지 마라, 유행가는 통속적인 것, 클래식은 선민적인 것이 아니라 그냥 저마다의 취향으로 존중해야 하는 것 같다.


김희재는 1995년 울산 출생, ‘울산 이미자로 불린다.

2020년 내일은 미스터트롯결승전에서 7위를 했다.

진 임영웅, 선 영탁, 미 이찬원, 4위 김호중, 5위 정동원, 6위 장민호, 김희재는 2020317일 해군병장으로 전역을 했다.

한국예술고등학교와 명지전문대에서 실용음악을 공부한 그는 별명도 많다.

울산 이미자, 히재, 트롯신동, 춤희재. 희욘새. 돌리도좌. 야박히, 희타,  아기치타, 트롯요정, 조신희재, 유교보이, 한줌발목, 갓바디, 칼음정칼박자, 알감자, 물만두, 밥통 기미재, 울희재, 공손희재 등등 별명이 정말 많은 것 같다.

그는 13세살에 놀라운 대회 스타킹에 트롯트 신동으로 출연했었다. 당시 이미자 노래를 완벽하게 소화하며 울산 이미자라는 타이틀을 얻었다.

한국예술고등학교 출신 방탄소년단 뷔, 오마이걸 승희와 동창이다. 미스트롯에서, 100인 예선에서는 서지오< 돌리도>, 본선 1차전 장르별 팀 미션에서 현철의 <내 마음 별과 같이>, 자원사격에서는 최석준의 <꽃을 든 남자>, 본선 3차 기부금 팀 미션트롯에이드에서는 장윤정의 <사랑아>와 박윤의 <나무꾼>, 사랑과 정열에서는 태진아의 <옥경이>와 박현빈의 <오빠만 믿어>, 준결승 레전드 미션 1라운드 개인전에서 설운도의 <나만의 여인>, 결승전 제1라은드 11 한곡 대결에서는 김진룡<나는 남자다>2라운드 나의 인생곡 미션에서는 김수희의 <잃어버린 정>을 절창했다.

<어느 60대 노부부의 이야기>를 잔잔한 멜로디에 맞춰 짙은 감성을 녹여낸 임영웅의 가창력에 관객과 MC김성주, 참가자, 황윤성, 류지광 등이 눈물을 흘렸다.

장민호는 짐 싸러 간다며 패배를 예견해 웃음을 자아냈다.

남자라는 이유 때문에 울지도 못한다.

가슴속에 생채가 난 사연도 묻어두고 산다.

마음 후련하게 울지도 못한다.

1997년 조항조가 부른 <남자라는 이유로>는 이미자가 부른 <여자의 일생>과 대칭되는 이성의 삶을 대변한다.

2020312일 미스터트롯 결승전에서 장민호가 인생곡 미션으로 불렀다.

돌아가신 아버지를 향한 구슬픈 애절함의 폭발이었다.

그날 TOP7 장민호, 김희재, 김호중, 정동원, 영탁, 이찬원, 임영웅의 결승전이 펼쳐졌다.

이 경연에 앞서 장민호는 돌아가신 아버지의 영정을 만나러 갔다.

그는 아버지께 트로트를 부르는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던 것에 아쉬움을 느끼며 눈물을 보였다.

장민호는 잔잔한 감성을 노래했다.

아버지를 향한 그리움과 함께 애절한 감성, 깊은 울림이 담긴 그의 목청은 시청자들으 눈물을 자아냈다.

남자가 남자를 울리는 노래는 <남자라는 이유로><사나이눈물> 이다.

이 두 곡은 중년 남자들의 인기 1위 곡이다.

이 곡은 오랜 기간을 무명으로 지낸 조항조를 인기가수 반열에 오르게 한 곡이다.

조항조의 나이 38세였다.

이 나이에 남자라는 이유를 알았으니, 철이 무척이나 빨리 든 것이다.

이 노래는 1994년 박우철이 먼저 불렀던 곡이다.

본명 홍원표, 조항조는 1959년 경주에서 출생, 197213세살에 미8군 무대를 통해 음악 인생을 시작했다.

참 기특한 출발이다.

홍원표는 13세에 남자가 되었다.

이후 김지훈이란 예명으로 활동을 하다가 1986년에 가요계를 떠나 미국으로 건너갔다가 1989년 귀국하여 예명도 조항조라고 바꾸고 트로트 가수로 컴백했다.

1997년 <남자라는 이유로>로 크게 히트 하면서 다시 인기를 얻기 시작하였고 여러곡을 히트했다.

텔레비전을 끓었었는데 미스터트롯때문에 쉬는 시간에는 다시 TV조선을 켜게 된다.

나랑 엄마는 정동원을 가장 좋아한다.

어떻게 그 나이에 그런 가창력과 감성을 가지고 있는지  너무 신기하다.

      

 

리뷰어스 클럽의 소개로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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