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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수는 어떻게 살아남았나 - 영국 보수당 300년, 몰락과 재기의 역사
강원택 지음 / 21세기북스 / 2020년 9월
평점 :

저자 강원택은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이다.
서울대를 나왔고 런던 정치경제대학에서 정치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저자는 우리 정치가 건강한 민주주의를 구현하며 나아갈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하고자 집필과 강연에 관심을 쏟고 있다.
아주 좋은 관심이다.
저자가 영국 보수당을 떠올린 것은 우리나라의 두 가지 계기때문이다.
2020년 총선을 통해 확인된 보수의 몰락이었다.
보수사람들과 같이 응원을 그렇게 했는데 참패를 했다.
한국의 보수정당은 2016년 국회의원 선거, 2017년 대통령 선거, 2018년 지방선거, 그리고 2020년 국회의원 선거에서 연달아 패배했다.
2020년 국회의원 선거에서는 의석수에서 큰 차이를 보이며 패배했을 뿐만 아니라 정치적으로 중요한 수도권에서 완패했다.
저자는 한국 보수의 무기력과 몰락을 보면서 오랜 시간 동안 강한 생명력을 유지하며 정치적으로 건재해온 영국 보수당을 떠올렸다고 한다.
이 책은 500페이지 정도가 되는데 거기서 보수가 살아 남는 방법만 찾아 오면 될 것 같다.
저자의 문체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문체이다.
너무 건조하지도 않고 너무 딱딱하지도 않고 적당히 논리적이고 적당히, 아주 조금 감정적이다.
보수당은 기존의 질서와 이해관계를 지키고 보존하기 위해 존재하는 정당이다.
현상 유지를 위한 정당인 것이다.
보수주의는 하나의 이념이라기보다는 경험, 상식과 같은 현실적 체험과 관찰에 의해 형성된 사고방식, 감정의 양태, 생활양식으로 봐야 한다.
적극적으로 새로운 시대정신을 추구하거나 지금과 다른 정치 질서를 꿈꾸는 것이 아니라 변화에 대한 거부와 저항이라는 수동적이고 대응적인 속성을 보수주의는 내포하고 있다.
보수주의는 구체적인 원칙이기보다 폭넓고 다양한 태도의 결합, 이념보다는 기질의 문제로 볼 수 있다.
영국의 보수당은 토리라는 이름으로 처음 시작했다.
영국의 보수당도 시련에 빠질 때가 많았고 그럴 때 운명을 회복시킨 사람이 있었다.
보수를 살리는데는 사람이 필요한 것이다.
벤저민 디즈레일리는 1846년 곡물법 파동 이후 1874년까지 자유당이 장기 집권으로 어려움을 겪던 보수당을 구하고 이후 1906년까지 약 30년간 보수당의 장기 집배라는 전성기를 열도록 한 인물이다.
디즈레일리는 이런 정치적 성공뿐만 아니라 당의 사회적 지지 기반을 넓혔고 당이 대표하는 이념적 지평도 확대시켜 오늘날의 보수당으로 성장할 수 있는 초석을 닦았다.
디즈레일리는 출신 성분이 보수당 주류와는 달랐다.
농촌에 넓은 토지를 소유한 귀족이 아니라 소설을 쓰는 작가였고 도시의 상인 출신이었다.
디즈레일리 이후에도 영국은 보수당이 선거에서 지기도 하고 이기기도 했다.
디즈레일리는 보수당만이 영국의 제도를 보존할 수 있고 대영제국을 수호할 수 있으며 일반 국민의 생활을 증진시킬 수 있다고 주장했다.
디즈레일리의 뛰어난 점은 자신이 처해 있는 시대의 특성을 정확하게 이해하고 시대의 요구를 읽어내고 그 이슈를 선점할 수 있었다는 점이다.
디즈레일리의 리더십 하에서 자기 변화를 꾀한 보수당은 보궐선거에서 잇달아 승리하면서 권력 장악의 희망을 높였다.
랜돌프 처칠의 아들인 젊은 시절릐 윈스턴 처칠은 솔즈베리때문에 자기는 보수당, 보수당 사람들, 그들의 용어, 그들의 방법까지 다 싫다고 했다.
솔즈베리의 보수주의는 아일랜드 독립을 추구한 글래드스턴의 존재로 인해 그 가치가 부각될 수 있었다.
솔즈베리는 아일랜드 문제를 정통적인 보수당의 가치와 연관시켰다.
그는 아일랜드 독립은 국가 권위와 헌정 질서, 연합왕국과 대영제국이라는 체제의 유지, 법의 지배, 재산권의 보호와 같은 기본적인 질서를 위협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아일랜드의 독립을 막는 일은 국왕을 정점으로 하는 연합왕국의 기존 질서를 지키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일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아일랜드 독립 문제를 영국 사회의 질서를 지키기 위한 투쟁으로 변모시켰다.
솔즈베리는 새로운 사상을 보수당에 불어넣지는 못했지만 매우 뛰어난 전략가였다.
그러나 솔즈베리의 정치적 성공에 가장 중요한 기여는 자유당의 분열이었다.
그가 뛰어난 전략가라고 할 수 있는 점은 아일랜드 자치 문제로 인한 자유당의 내부 분열을 무자비하다고 할 만큼 적절하게 활용했다는 점이다.
여러 가지 정치적 마찰에도 불구하고 하팅턴과 체임벌린이 이끄는 연합파 자유당과의 협력 관계를 유지하면서 정치적 재편을 이뤄냈다.
현상 유지를 추구하는 솔즈베리가 아무리 내키지 않더라도 그 시대의 요구에는 눈감고 있을 수는 없다.
솔즈베리 하에서 이뤄진 개혁은 랜돌프 처칠, 처칠이 물러난 이후에는 리치, 연합파 자유당의 개혁적인 지도자인 체임벌린에 의해 주도되었다.
이것은 현실적인 필요에 의해 이뤄진 것이다.
1884년 개혁법은 농업 노동자를 포함해 많은 성인 남성에게 새로이 선거권을 부여했는데 자유당을 제치고 이들의 지지를 이끌어내기 위해서는 보수당이 이들에게 적극적으로 다가서야 했다.
또 다른 한편으로는 1896년까지 장기화된 경제 불황으로 인해 고통 받고 있는 많은 이를 지원해야 할 시급한 상황이었다.
애국주의적 전통을 갖는 보수당에 비해 자유당은 평화주의자와 전쟁 찬성파 간의 극심한 의견 차이가 있었다.
유리한 상황이 마련되자 솔즈베리는 의회를 해산하고 총선을 실시하기로 했다.
집권당이 유리한 시점에 의회를 해산하고 총선을 치러 재집권을 노리는 방식이 이때 처음 시도되었다.
솔즈베리의 총선 타이밍이 보수당의 유리한 결과를 낳았다.

영국 보수당은 과거를 지켜내는 것을 존재의 목적으로 한다.
보수당이 300년 동안 성공적으로 존속하고 있다.
보수당이 존속하고 있다고 성공적인게 아니라 그 긴 시간동안 정치적 생명을 유지해오고 있어서이다.
오랜 시간 동안 보수당은 권력을 장악하고 있었고 제 1야당으로 집권당에 가장 확실한 대안 세력으로 남아 있었다.
긴 세월 동안 보수당은 제3당의 지위로 떨어진 적이 없었다.
그것도 생각해보면 대단하다.
국민의 힘이라는 보수당은 김종인 할아버지때문에 몰락하고 있다.
김종인 할아버지가 국민의 힘에서 나와야 한다.
보수당과 비슷한 시기에 함께 등장한 자유당이 20세기 초 노동당의 등장으로 정치적인 몰락을 경험했던 것과 비교할 때 보수당의 건재는 대단한 것이다.
보수당의 성공적인 역사가 관심을 끄는 것은 보수당이 원래 대토지를 소유하고 있는 거대지주와 귀족계급의 정당이어서이다.
보수당은 급격한 정치적 환경의 변화 속에서도 정치적 경쟁력을 잃지 않고 살아남았다.
다른 나라에서 보수 세력이라면 변혁의 와중에 타도의 대상이 되거나 수구 반동으로 몰려 이미 사라졌을지도 모른다.
대중 민주주의와 복지국가가 등장했던 20세기에도 보수당은 지배적인 정당이었다.
영국 보수당의 성공적인 생존의 이유는 권력에 대한 열망이 매우 강해서이다.
권력을 열망하지 않는 정당은 없겠지만 부수당의 권력에 대한 의지는 매우 강하고 그 이유도 현실적이다.
보수당이 권력을 잡아야 하는 이유는 그것이 자신들의 이해관계를 지키고 급격한 변화를 막을 수 있는 좋은 방안이기 때문이다.
보수당은 자신들과 견해를 달리하는 경쟁 정당이 권력을 잡아 자신들이 감당할 수 없는 속도와 규모로 급격한 변화를 이끄는 것을 원치 않았다.
보수당은 선거 승리를 통해 권력을 유지하고 자신들의 이해관계를 지키기 위해 애썼다.
이를 위해서는 최대한 현실과 타협해야 했다.
교조적이고 이념적인 독단보다 이해관계를 지키기 위한 수구 반동적 태도보다는 변화하는 현실에 자신을 맞춰가려고 했다.
영국 보수당은 이념적 원칙이나 순수성보다 권력 장악이라는 실용성을 강조하는 정당이었다.
원칙이 아니라 집권이 우선인 것이다.
보수당은 다른 당에 권력을 뺏겼을때도 정치적 지지를 빠르게 회복하는 모습을 보였다.
보수당은 선거 승리를 위해 유권자의 요구에 맞추려는 노력을 잘했다.
국민의 힘은 유권자의 요구에 전혀 못 맞추고 있다.
빅 데이터를 돌려야 한다.
보수당이 성공적인 역사를 가질 수 있었던 이유는 변화를 고집스럽게 거부하지 않고 유연해서이다.
보수당이 시대 변화에 적응력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은 현재의 이익을 있는 그대로 지키고자 하기보다는 영리하게 양보할 것은 양보함으로써 자신들의 기득권이 위협받지 않도록 했기 때문이다.
보수당이 기득권을 있는 그대로 지키려고만 했다면 영국 역시 프랑스 혁명과 같은 급격한 정치적 격변을 경험했을지 모른다.
보수당은 영국 사회에서 발생한 변화와 그로 인한 정치적 결과를 수용했다.
자유당이나 노동당이 추진한 정책도 필요하다고 판단되면 수용하고 모방했으며 이전 정부가 커다란 정치적 논란 뒤에 실행한 정책을 보수당이 그 뒤에 집권했더라도 이를 되돌리려고 하지 않았다.
영국 보수당은 9명의 지도자가 이끈 각각 다른 보수당이었다고 한다.
윌리엄 소 피트, 리버풀 경, 로버트 필, 벤저민 디즈레일리, 솔즈베리 경, 스탠리 볼드윈, 윈스턴 처칠, 해럴드 맥밀런, 마거릿 대처 등이 보수당을 이끈 위대한 지도자들이다.
영국 보수당은 배타적인 집단으로 남아 있는 것이 아니라 외연을 넓혀왔다.
토지 소유계급, 귀족의 집단으로 출발한 보수당은 산업혁명 이후 부를 축적하며 새로운 사회적 힘으로 떠오른 상공업자들을 끌어들였고 이들과 하나로 융합했다.
정치적으로 존속하기 위해 사회적으로 영향력을 갖는 새로운 세력을 당내에 수용했다.
보수당이 언제나 성공만 한 건 아니었다.
보수당을 어렵게 만들었던 것은 당내 갈등과 분열, 취약한 당 지도자의 리더십이었다.
영국 보수주의는 유럽 대륙으로부터의 영향력과 위협에 대한 대응의 성격도 지닌다.
로마 교황이 주도하는 가톨릭으로부터 성공회를 지키고 프랑스 혁명과 공화정으로부터 군주제를 지키고 사회주의로부터 재산권을 지키려고 하는 데서 보수당의 역할과 가치가 존재한다.
현재 보수당은 브렉시트로 인한 혼란과 환경의 변화는 보수당에게 새로운 도전이 되고 있다.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내느냐 하는 것이 향후 보수당의 정치적 미래에 영향을 미칠 것이다.
브렉시트 과정을 거치면서 생겨난 당내 분열 역시 보수당으로서는 풀어야 할 또 다른 과제이다.
보수당은 끓임없는 갈등과 내부 분열속에서도 그것이 분당이 자기 파멸로 이어지지 않고 궁극적으로 건강한 자기 혁신의 기회를 제공해주었다.
보수를 내세우는 정당이지만 시대의 변화에 대한 뛰어난 적응력을 가질 수 있었고 새로이 제기된 요구에 대해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었다.
그와 같은 끓임없는 자기 변신은 그 시대를 읽어내는 탁월한 지도자의 존재로 인해 가능했다.
그게 영국 보수당의 생존 비밀이다.
우리나라 보수당도 권력을 찾아오기 위한 강렬한 열망을 가져야 한다.
만약 윤석열 총장이 야권 후보로 나온다고 치면 박근혜 대통령을 탄핵시켰네 어쨌네,,
지금 그게 문제냐,,윤총장을 통해서 권력을 찾아 올 수 있다면 리더자로 세워야 한다.
과거의 프레임은 전부 벗겨내고 유연하게 모든 방법을 동원해서 권력만 뺏어오면 된다.
우리집은 택배기사 선생님들이 매일 오신다.
엄마랑 내가 서평도 하지만 그걸로는 부족해서 한달에 책을 몇 십만원씩 계속 사본다.
그래서 다양한 택배회사 선생님들이 오신다.
오늘은 택배기사선생님한테 커피를 드리니까 목이 너무 말랐는데 감사하다고 하면서 우리집에 가면 커피를 준다고 다들 얘기한다고 했다.
택배기사선생님들은 엄마에게 물량이 너무 많고 쉬는 시간이 있다고 해도 물량이 더 쌓여서 힘들다고 하소연을 하신다.
차도 고장이 자주 나고 다치기도 많이 다치고 사고도 많이 나서 너무 힘들다고 하셨다.
코로나로 사람들을 죽이더니 이젠 독감백신으로 사람들을 죽이는 것 같다.
보수는 힘든 국민들의 사정도 잘 들어야 하는 것 같다.
희망적인 것은 보수가 살기 위해서는 많은 사람이 필요한 것도 아니고 강력한 리더자 한 명만 있으면 되는 거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