있는 그대로의 글쓰기
니콜 굴로타 지음, 김후 옮김 / 안타레스 / 2020년 9월
평점 :
절판


저자 니콜 굴로타는 자신이 쓴 글이 있는 그대로의 삶에서 있는 그대로의 행복을 발견하는 데 도움이 되기를 바라는 작가이자 칼럼니스트, 강연자, 블로거, 콘텐츠 개발자, 요리 레시피 연구자, 녹차 애호가이며, 매일매일 손수 빵을 구워 저녁 식탁을 차리고 싶지만 그러지 못해서 때때로 우울해하는 아내이자 엄마다.

​저자는 바다를 사랑하며, 오래된 책 냄새를 좋아하고, 비 오는 날 뜨거운 차 한 잔에 책 한 권이면 금세 행복해하는 사람이다.

미국 캘리포니아 남부에서 나고 자라 캘리포니아대학교 센타바버라 캠퍼스에서 문학과 미술사를 전공한 뒤 버몬트예술대학원에서 시문학 석사학위를 받았다.

음식과 글쓰기를 융합한 첫 번째 책 <이 시를 먹어라, 시에서 영감을 얻은 레시피로 차린 문학의 향연 >을 써서 좋은 평가를 받았고, 이 책 <있는 그대로 글쓰기>의 바탕이 된 글쓰기 커뮤니티 와일드워즈를 만들어 작가로서의 삶을 살고자 하는 삶들의 내적, 외적 성장을 돕고 있다.

남편 앤드루와 아들 헨리 그리고 반려견 프렌치 불독과 함께 노스캐롤라이나 롤라에서 살고 있다.

저자는 ​아침에 날이 밝았을 때 고양이가 돌아다니는 단순한 풍경을 정말 아름답게 묘사한다.

잠에서 깬 고양이가 기지개를 하더니 파란 그릇에 담긴 우유를 마신다.

고양이가 ​유유히 정원에 나가 잔디밭을 거닐다가 앉는다.

저자는 ​있는 그대로의 말로써 표현하는 것말고는 다른 것을 더할 필요가 없다고 한다.

저자는 언제나 작가가 되기를 바랐지만, 이 책을 쓰면서  말할 수 있는 것은 그때 저자는 다시 이 일을 하지 못할까 봐 겁을 잔뜩 먹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머리 감고 드라이할 시간도 없이 3시간 단위로 아이에게 계속 젖을 먹여야 하는 저자는 어떻게 책을 쓸 수 있을까라는 생각을 했다.

저자는  삶은 돌이킬 수 없이 변해버렸는데, 기저귀 갈고 육아 책읽고 아이의 배변 기록을 스마트폰 앱에 입력하는 이런 모든 것들을 하면서 계속 책을 쓸 수 있을지 두려웠다고 한다.

저자의 ​고단한 삶은 그저 이어지고 또 이어질 뿐이었다.

​저자는 글쓰기를 원하는 이상  작가이므로, 여의치 않다면 하루에 한 번, 한 번에 한 단어씩이라도 쓰면서 앞으로 나아가야 했다.

다른 방법을 알지 못한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다시 시작하는 것 말고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고 한다.

글을 쓰게 되면 주변 환경이 어떻든 계속할 수밖에 없었고 환경 변화는 늘 저자를 불편하게 만들었지만, 역설적이게도 글쓰기라는 행위 자체가 큰 위안이 되었다.

아이를 갖기 전에도 글을 쓰는 삶에서 좌절을 맛봤지만, 지금 와서 헤아려보면 그나마 통제가 가능했던 것 같다고 한다.

 저자의 상황이 많이 좋아진 지금은 시간 융통성 있게 사용할 수 있게 되었다고 한다.

저자의 ​아들도 막 두 살이 지났다고 한다.

 저자는 달라진 일상과 글쓰기 작업이 공존하는 새로운 생활방식에 정착하고, 각각의 계절에 따른 접근 방식을 받아들여 창작력을 발휘한다면 모든 것을 바꿀 수 있다고 확신한다.

저자가 얻을 수 있는 가치 있는 것들 대부분은 사람들에게 지속적으로  글쓰기 방법을 전파하면서, 글쓰기야 말로 그 시간을 명예롭게 만들 수 있는 가장 품위 있는 방식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도와주는거라고 한다.

교육자이자 저술가인 L.L. 바개트는 오늘 준비된 이야기를 지금의 이야기라고 불렀다.

다른 이야기들도 있겠지만 마치 8월이 되어야 잘 익은 복숭아 꼭지를 비틀어 나뭇가지로부터 그 탐나는 과일을 따내듯이, 완전한 준비가 되기 전까지는 그대로 두어야 한다.

​자신의 생각을 적어서 펼쳐놓으면 그 생각들 역시 자신을 응시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될 것이다.

그 가운데 어떤 것에는 동그라미, 또 어떤 것에는 가위표, 다른 것에는 밑줄을 그어본다.

이렇게 해서 표식을 얻은 것들이 바로 한 시즌 동안 자신과 함께할 키워드다.

한편으로는 그저 바로 그 순간 어느 것이 가장 큰 목소리를 낼 것인지의 문제일 수 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자신이 앞으로 1년이나 2년 또는 그보다 오랜 시간 동안 탐구해나가기를 바라고 있는 것일 수도 있다.

영양분을 잘 공급해준다면 자신이 성장할 수 있도록 도와줄 생각들이 떠오를 수 있다.

걸림돌에 대해 지나치게 집착하면 스스로 글쓰기를 포기하게 될지도 모르지만, 자신의 내면이 말하는 이야기에 귀를 기울인다면 앞으로 나아가게 될 것이다.

그것이 바로 자신이 향해야 하는 유일한 방향이다.

설령 자신이 아직 작가로서 이름을 얻지는 못했더라도 이미 이런 식으로 글을 쓰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저자는 다른 일 때문에 주의력이 분산되는 날이나 두 걸음 정도 물러나 있는 것처럼 느끼는 날이 워낙 많아서 글쓰기를 공식 일정으로 만들어두는 것을 선호하는 편이다.

그렇게함으로써 ​몇 년에 걸쳐서 한계 상황에서의 글쓰기에 정착할 수 있었고, 세 문장에 불과한 글이 어떻게 해서 세 구절로 바뀌어 갔는지 잘 기억하고 있다.

씨앗에서 싹이 솟아 나기까지 얼마나 많은 시간이 걸리는지 생각해보고 초고를 쓰는 데는 시간이 어느 정도 필요한지도 생각해본다.

아마도 씨앗이 어떤 식물인가에 따라서, 그리고 영양분을 얼마나 공급했는가에 따라서 달라질 것이다.

당연하게도 꽃을 잘 피우기위해서는 매일 또 매주 단위로 잘 돌봐야 한다.

글쓰기도 또한 이런 식으로 해나가야 한다는 사실을 염두에 두려고 애쓰며, 한 번에 단 한 문장이라도 쓰면 그것으로도 충분하다는 믿음을 버리지 않는다.

​저자는 처음에는 너무 간단하게 보여서 별것 아니라고 생각했지만 놀라울 정도로 효과적이었다.

깊게 생각하지 말고 첫 문장을 쓴 다음 다섯 가지 문장으로 바꿔본다.

중간에 문장이 막히는 경우에도 같은 방법을 시도해본다.

저자는 ​지금도 수시로 이 방식을 실행하고 있다.

자신을 일컬어 작가라고 부르는 것은 간단하게 보이지만 공개적으로는 꽤 복잡한 일이다.

대부분 기본적으로 직업을 갖고 있으며,미팅이나 회의자리에서 모두 직함을 말하고 직함으로 불린다.

물론 이런 관행이 이상한 것은 아니다.

사회생활을 하는 인간에게 자연스러운 일이다.

​자신이 스스로 작가라고 부를 기회를 찾으라는 것이다.

표지에 자신 이름이 적힌 책을 서가에서 몇 종이나 가져올 수 있는지의 여부는 중요하지 않다.

글을 쓰는 작가라고 자신을 소개해본다.

저자가 대중 앞에서 당당한 목소리로 자신을  작가라고 소개한 때는 글을 쓰기 시작한 지 20년이 넘은 시점이었다.

그만큼 용기가 필요했다.


저자는 아들 앤드루와 함께 남편과 한 비영리 단체의 자선 바자회 만찬에 참석한 적이 있다.

당시 임신 6개월이었다.

펑퍼짐한 푸른색 드레스를 입고 혼자서만 무알콜 소다수를 홀짝거리면서 바자회에 나온 물건들을 살펴보고 있었다. 그때 누군가 우리에게 인사했고, 저자에게 어떤 일을 하느냐고 묻기에 작가라고 대답했다.

그렇지 않아도 지역 단체에 관한 칼럼을 쓰고 있었기에 합리적인 답변이라고 생각했다.

어떤 일을 하든 단지 작가였고 그 사실에 만족했다.

자신의 이야기가 담겼던 글쓰기 기억과 경험을 기억하는 모든 작가로서의 삶에 매우 유용한 연습이다.

중요한 무언가를 기억하고자 할 때 자신이 호수 앞에 서 있다고 상상한다.

늦은 여름, 한쪽 눈을 손으로 가린 채 수평선을 응시해본다.

바람이 자기 머리카락을 휘감아 목덜미를 간지럽힌다.

​자신의  마음속의  이 호수는 시원하고 깊다.

 천천히 호수로 걸어 들어가 발목으로 차오르는 시원한 호숫물을 느껴본다.

호수 표면이 바람에 흔들리고, 저 멀리서 자신의 기억이 어렴풋이 흔들리고 있다고 상상한다.

편안하게 두 눈을 지그시 감고 자신만의 호수를 찾아본다.

만나고 싶은 기억을 떠올려  본다.

마음의 호수가 바람에 응답해주었다면 그것을 있는 그대로 자유롭게 적어본다.

저자는 17세 때부터 시를 쓰기 시작했다.

저자는 ​글쓰기를 단 하루라도 멈춘다면 영영 글을 쓰는 능력을 잃게 되리라는 본능적인 두려움을 품게 되었다.

저자에게 ​그동안의 창작 과정이 어땠느냐고 묻는다면 쓰고, 또 썼다고 대답할 것이다.

마땅한 종이가 없으면 냅킨이나 전단지에도 떠올린 것들을 적곤 했다.

모든 감정을 추적해 모든 단어를 붙잡으려고 안간힘을 다했다.

기다림과 믿음의 시간도 있어야 한다는 사실을 이해할 만큼 자신의 창의성에 대해 알지 못했으므로 그저 매일같이 맹렬히 무엇이든 채워 넣었다.

기억의 계절은 다른 계절과 다르다.

이 계절은 외부적 환경의 영향을 받지도 않고 인생에서 벌어지는 어떤 사건들에 의해 찾아오지도 않는다.

다분히 의도적이고 의식적으로 찾아 들어가는 계절이다.

자신의 의지가 어디로도 떠나지 않았다는 사실을 상기해줄 것이다.

있는 그대로 자신의 이야기쓰기를 해본다.

자신의 기억을 찾아냈고 용기 있게 자신의 이야기를 공개할 준비가 되었다면, 있는 그대로 자기 이야기를 쓰는 연습을 저자는 알려준다.

1단계는 자신의 창작 역사에 대한 글쓰기이다.

2단계는 타이머를 분에 맞춘다.

아무것도 쓰지 않은 백지에서 시작해 제한 시간 안에 자신이 쓸 수 있는 최대의 길이로 써본다.

3단계는 기억이 확장될 때까지 이 연습을 두 세 번 반복한다.

4단계에는 충분한 분량의 글을 쓰는 데 성공했다면 개인적으로 저장해 두거나, 잘 다듬어서 블로그 등에 포스팅해둔다.

 책을 낼 정도라면 출판사에 투고해 볼 수도 있다.

어쨌든 잃어버렸던 이야기를 되찾아서 기분이 좋을 때도 있다.

저자는 ​용기를 북돋아주는 고마운 쪽지들을 받곤 했는데, 실제로 많은 힘을 얻었고 지속적인 노력이 언젠가는 결국 출판에 이르게 되리라는 믿음을 갖게 했다고 한다.


​저자는 글쓰기를 고등학교와 대학 시절 내내 일상으로 지켜왔으며, 작가로 사는 삶의 또 다른 측면을 연습하는 데 도움이 되었다.

또 다른 측면이란 다름 아닌 공유하고, 기다리며, 저자 손을 떠난 작품과 분리되는 것이었다.

​자신의 글을 몇십 명이 몇만 명이 읽든, 자신만이 쓸 수 있는 글을 읽음으로써 유익함을 얻는 사람들이 분명히 있다. 글쓰기는 그들과의 소통이다.

이처럼 눈뜸의 계절에서 활약하기 위해서는 용기도 필요하지만  자신의 이야기에서 자신을 분리하는 것도 필요하다. 자신은 자신의 이야기를 공개하고 반복해달라는 요청을 받을 것이다.

그렇게 바깥세상으로 나아갈 때면 스스로 자신의 내면도 잘 돌봐야 한다.

오프라인 모임에서 어떤 한 사람에 의해 자신의 자아가 고통 받을 수도 있고, 온라인 커뮤니티에 올라온 댓글 하나 대문에 정신이 산산조각 날 수도 있다.

​자신의 있는 그대로의 이야기가 있는 그대로의 세상에서 나오는 순간 몸과 마음을 굳건히 다잡아야 한다.

본격적으로 자신이 한해에 대한 의지를 다지거나, 결심을 굳히거나 꿈을 꾸고 있다면, 거기에 전문 작가로서의 삶도 포함해야 할 것이다.

얼마간 시간을 할애해 글쓰기와 관련해서 하고 싶은 일 몇 가지와 자신에게 적합한 성장 기회를 찾아보고 정리한다.

집에서 하루 이틀 정도 떨어져 글을 써본다.

지역의 글쓰기 커뮤니티에 가입한다.

컨퍼런스나 워크숍에 참여한다.

온라인 강좌를 수강한다.

친구와 함께 시 낭송회에 간다.

에세이를 다듬을 수 있는 편집자를 구한다.

도서관 출입증을 받고 사용한다.

작가 웹사이트를 개설한다.

블로그를 시작한다.

새로운 문학잡지를 구독한다.

작가 한 사람을 선정해 작품 모두를 읽는다.

그런 다음 자신이 실행하기로 결정한 항목을 일정표에 추가한다.

시간을 들여야 하는 활동은 기존 일정을 조정해야 한다.

그렇게 하는 건 전문적인 작가가 되기로 결심하고 자신의 내면을 돌보는 데 힘이 될 것이다.

잠재 독자를 확보하는 방법도 필요하다.

물론 글을 쓰는 데 대부분의 시간을 투입해야 한다.

하지만 커뮤니티를 만드는 것도 필요하다.

결국 모든 것은 누가 자신의 책을 사고, 누가 자신의 글을 읽으며, 누가 자신이 참여하는 워크숍에 오느냐로 귀결된다.

수행할 수 있는 방법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독자를 확보하는 방법에 관한 책들도 출간되어 있지만, 자신이 보기에 정말로 효과가 있는 것들은 자신과 같은 여정을 함께하고 있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주간 뉴스레터를 만들어 전송하는 것이다.

뉴스레터든 블로그든 모두 도구다.

자신의 글을 독자들과 만나게 해주는 고마운 도구다.

소셜 미디어의 경우, 넓은 의미에서 블로그나 뉴스레터도 여기에 속하긴 하지만, 통상적으로 SNS라 불리는일상의 필수 활동들이 있다.

이와 관련해서 조금만 검색해보면 어디서든 상당히 많이 해야 할 일이 언급되는 것을 알 수 있다.

작가라면 당연히 페이스북페이지를 갖고 있어야 하고, 하루에 몇 번씩 인스타그램에 게시물을 올려 자신의 영혼을 드러내야 하며, 핀터레스트 그래픽을 만들어 블로그에 삽입해야 한다고  말하기도 한다.

저자의  입장은 성공적인 작가가 되고자 모든 소셜미디어에서 존재감을 내뿜어야 하는 것은 아니라고 한다.

우리 주변에는 자칭 작가라고 하면서도 인스타 그램 팔로워 수만 많을 뿐 정작 자신의 글쓰기 결과물은 없는 사람들이 많다고 한다.

 우선순위가 바뀌어서는 안 된다.

더 많은 좋아요나 댓글에 연연 하지 말고 진심으로 다른 사람들과 소통하는 데 중점을 두는 것이 긍극적으로 옳은 방식이며, 자신의 경계를 유지하는 데에도 도움된다.      

저자는 글을 계속 쓰고 SNS도 잘 활용을 하라고 하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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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는 팩트에 끌리지 않는다 - 사실보다 거짓에 좌지우지되는 세상 속 설득의 심리학
리 하틀리 카터 지음, 이영래 옮김 / 비즈니스북스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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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저자인  리 하틀리 카터는 미국 뉴욕에 있는 커뮤니케이션 전략컨설팅 기업 마슬란스키 앤드 파트너스의 사장이자 커뮤니케이션 전략가다.

저자는 중요한 것은 자신이 무슨 말을 하는가가 아니라 사람들이 무엇을 듣는 가다를 모토로 20년 넘게 홍보와 전략적 커뮤니케이션 영역에서 일해오고 있다.

마이크로 소프트, 스타박스, 비자, 페덱스 등 포춘 500대 기업 및 미국과 글로벌 비영리 단체들을 대상으로 다양한 홍보 마케팅 커뮤니케이션 전략을 성공적으로 컨설팅해 명성을 쌓았다.

대중 심리에 대한 예리한 해석으로 유명한 저자는 현재 미국 폭스뉴스, CNBC, 야후 파이낸스 등에서 정치 논쟁과 여론조사 분석 전문가로도 활약 중이다.

그는 전통적인 여론조사 분석 방식과 달리 유권자의 정치적 반응을 토대로 상황을 해석해 설명한다.

그의 분석 스타일은 사람들의 정치 참여 성향과 여론에 대해 보다 객관적이고 심도 있는 이해를 돕는다는 평을 얻고 있다.

실제로 2016년 미국대선 당시 그는 거의 유일하게 도널드 트럼프의 당선을 예측해 크게 화제가 됐다.

힐러리 클린턴을 이긴 트럼프의 설득 방식에 관한 그의 논평은  미국을 위한 힐러리는 우리가 아닌 그녀 자신을 이야기하고 있었다.

그러나 트럼프의 다시 한 번 위대한 미국을은 우리의 삶을 더 나은 삶으로 바꿔줄 것을 이야기했다고 한다.

이 단순하고 강력한 서사는 이기기 거의 불가능한 것을 이기게 했다.

​저자는 미국 퍼만대학교에서 역사학, 사회학을 전공하였으며 런던대학교에서 연극과 건축학을 공부했다.

어렸을 때부터 언어의 매력에 강하게 끌렸던 그는 커뮤니케이션 전략가로 사는 지금의 삶을 택했다.

이 책은 자신의 성공 노하우를 바탕으로 다채로운 사례와 심도 있는 과학적 근거를 통해 최고의 설득 전략이 무엇인가를 보여주는 그의 첫 번째 저서다.

이 책에는 효과적인 커뮤니케이션에 대한 내용이 담겨 있다.

설득을 하려면 우선은 자신이 달성하고자 하는 바가 무엇인지 정확히 알아야 한다.

현실이거나 바로 손에 넣을 수 있는 어떤 목표가 아니라 정말로 달성하고 싶은 목표는 무엇인지 알아야 한다.

다른 사람들이 자신에게 바라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자신에게 바라는 것이어야 한다.


​저자는 프로젝트를 시작하기 위해 클라이언트와 마주 앉았을 때 처음 하는 질문은  자신이 달성하고자 하는 것은 무엇이냐인 것이다.

물론 저자 뿐 아니라 모든 질문자는 다 그런 질문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설득의 성공은 구체성에 달려 있다.

최대한 상세함을 원한다.

​저자는 성공이 어떤 모습인지 정확하게 그려낼 수 있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소셜 미디어의 시대에는 인기든 악명이든 쉽게 얻을 수 있다.

그런데 그런 인기가 실제로는 자신의 제품이 전혀 필요치 않은 고객 기반에서 나왔다면,,

시장 점유율은 높아졌지만 제품 자체의 비용 효율이 낮다면,,

연봉 인상은 따라오지 않은 승진을 하는 사람들은 또 얼마나 많은가,,

이런 예들은 수도 없이 많다.

목표를 명확히 하는 것, 단순한 바람의 수준을 넘어서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이해하는 일이 바로 성공의 시작이다.

우선 이런 저자의 질문들에 답을 하려면 시간이 필요하다는 점을 알아야  한다.

이것이 클라이언트와의 첫 만남에서 당장에 해결할 수 있는 종류의 문제가 아니다.

생각이 필요하고, 심사숙고가 필요하며, 구체적이 될 필요가 있다.

구체적이지 못하면 자신은 자신에게 필요한 것을 파악하지 못하고 자신 팀은 자신이 어디로 향하고 있는지 파악하지못하여 성공이 어떤 모습인지 보고도 모를 가능성이 높아진다.

모든 설득은 공감이다.

사람들이 왜 자신과 똑같이 생각하지 않는지 도무지 짐작할 수 없을 수 있다.

거기에서 자신이 경험하는 것이 바로 공감의 간극이다.

모든 중대하고 결정적인 사안에서 공감의 간극이 나타난다.

기후변화 입안을 지지하는 사람들은 어떻게 이걸 거부하는 멍청한 짓을 할 수 있는 거지라고 생각할 수 있다.

엄연히 과학이 뒷받침을 하고 있는데 라고말이다.

총기 규제나 낙태도 마찬가지이다.

이런 대화에 빠져 있는 것이 하나 바로 공감이다
 

대화를 할 때 귀를 기울이고 존중하는 태도가 필요하다.

모든 설득 계획의 의견이 정반대인 사람들과 관계를 맺으려 노력하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우리는 대부분 다른 관점을 가진 사람들과 교감하려 노력하기 때문이다.

반대 관점을 무시하고 고려하지 않는다면 연결의 기회는 사라지고 설득은 불가능해질 것이다.

우리는 공감, 신경과학, 커뮤니케이션 분야의 전문가들이 어떤 이야기를 하든지 듣고 친밀감과 존중의 마음으로, 심지어는 애정을 가지고 고객을 이해하는 방법을 배우게 될 것이다.

​저자는 능동적 공감이라고 부르는 것도 알려준다.

능동적 공감은 사람들과 접촉하고 사람들을 설득하는 데  효과적이다.

설득시키려는 상대가 어떤 사람들이고 그들이 어떤 도움을 어떻게 받고자 하는지 완벽하게 이해하기 전까지는 그들에게 도움을 줄 수 없다.

설득의 기술에 통달한 나이키, 애플, 스타박스와 같은 브랜드들은 이런 서비스적 사고방식을 잘 이해하는 기업들이다.

​자신을 기억하게 만들 세 개의 기둥을 세워야 한다.

설득의 과정을 거치다 보면 불가피하게 벽에 부딪히는 때가 분명 온다.

그 벽이 ​감정이기 되기도 하고 곁길로 새기도 한다.

이때 필요한 설득의 다음 단계는 주장의 토대를 마련하는 것이다.

어떤 역풍이 불어도 날아가지 않는 방식이 필요하다.

 토대가 갖춰지면 사람들이 자신과 자신이 주장하는 바를 기억할 때까지 계속해서 몇 번이고 반복할 수 있는 의견을 갖게 될 것이다.

이 과정에서 기억해야 할 중요한 부분은 작업에 기반을 둔다.

​자신에 대한 가장 큰 결정은 자신이 없는 자리에서 이루어진다.

고객이 어떤 제품을 카트에 넣을지, 회사가 누구를 새로 고용할지, 결정권자가 자신이 보낸 이메일을 읽을지, 유권자가 투표소에서 어떤 사람의 이름 위에 표시를 할지 최종적으로 결정하는 순간, 자신은 그 자리에 없다.

 거대 서사는 자신을 규정하고 자신을 다른 사람과 구분하는 매우 집중적인 메시지를 말한다.

기준을 찾으면  다른 모든 것은 그 메시지에 보조를 맞추게 된다.

이 모든 거대 서사가 타깃 대상이 스스로에 대해서 좋은 느낌을 갖도록 함으로써 설득력을 얻는다는 점에서 주목해야 한다.

소비자는 그냥 운동화를 사는 것이 아니야, 자신은 운동을 열심히 하는 사람이니까, 그냥 전구를 사는 것이 아니라 발전을 뒷받침하고 있어, 나는 가족을 위해 최선을 다하는 안목 있는 엄마야, 나는 내가 사랑하는 이 나라의 새로운 시작을 지지해, 그것이 이 과정에서 공감이 필수적인 이유이다.

상대방이 어떤 느낌을 받고자 하는지 진심으로 이해하지 못하면 그런 느낌을 주는 거대 서사를 만들 수도 없기 때문이다.

사실이 힘을 얻으려면 스토리가 필요하다.

설득에서 입증 사항과 그 역할을 파악하는 데 애를 먹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

입증 사항과 서사, 스토리를 혼동하기 때문에 생기는 일이다.

설득력이 있으려면 이 세 가지 요소가 빠짐없이 갖춰져야 한다.

​접근성은  소비자의 핵심 니즈에서 필요한 때 약을 구할 수 있고 살 수 있는 능력이었다.

신뢰를 되찾기 위해서 파마케어가 내세워야 하는 것이기도 했다.

​치유가 필요한 어떤  회사는 환자의 질병과 질환에 대한 치료법을 찾는 데 수백만 달러를 투자하고 있었다.

그들은 매일같이 소비자의 목숨을 구하려고 노력했다.

이 점이 환자들의 마음속에서 그들이 의미하는 것의 일부가 돼야  한다.

혁신이 필요한 파마케어는 알츠하이머, 진행성 고형 종양, HIV. 난소암, 전립선암, C형 간염과 같은 질병을 치료하는 약에 대한 임상 실험을 진행했다.

이 회사들이 일련의 입증 사항이 포함된 이 세 개의 기둥을 갖게 되자 이들을 기반으로 파마케어를 한마디로 설명해주는 거대 서사에 이를 수 있었다.

뇌는 말이 아닌 이미지에 끌린다.

설득력이 있는 스토리를 어떻게 만들고 전달하는지 이야기하기 전에  자신이 설득해야 하는 사람과 진심과 공감의 마음으로 파악하고 있어야 한다.

또한 자신은 자신의 주장에 대한 세 가지 기둥을 만들었고, 상대방으로 하여금 자신의 비전이 자기 문제의 해답이라는 느낌을 갖게 만드는 거대서사를  만들었다.

 뇌는 같은 단어도 다르게 인식할 수 있다.

우리는 왜 그 언어 전략이 효과가 없는지 논의하고 의사들의 마음의 문을 여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에 대해서 계속 이야기를 나눴다.

오랜 교육과 훈련 기간 덕분에, 의사들은 우리보다 많은 것을 알고 있는 듯 보였다.

의사가 아닌 우리 입장에서는 경험과 판단을 기반으로 공감을 자아내는 설득적 언어 전략을 만들기 힘든 상황이었다. 고민을 거듭하던 끝에 우리는 한 걸음 물러서서 의사들의 마음에 공감해보기로 했다.

왜 그들은 우리의 메시지를 듣지 않는 것일까?

어떤 부분이 그들의 마음을 돌리지 못하게 만들고 있을까?

우리는 의사들의 생각을 기반으로 메시지를 만들자는 결론을 내렸다.

그들에게 우리의 메시지를 강요할 수는 없었다.

우리는 칠판 앞으로 돌아가서, 호기심을 잃지 않도록 조심하면서, 새로 수집한 자료를 분석하기 시작했다.

갑자기 의사들이 새로운 시도에 두려움을 갖는 건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떠올랐다.

그리고 그것은 사실로 밝혀졌다.

의사들은 기존에 입증된 방법이 이미 존재한다면 새로운 방법을 굳이 시도하지 않는다.

자신에게 목숨을 맡긴 환자에게 위험할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내세우려고 했던 특성, 새로운 제품이 완전히 새롭고 혁신적이며, 획기적이라는 것은 의사들로 하여금 입증되지 않은 것이라는 생각을 갖게 만들었다.

우리는 새로운 언어를 시험해보았다.

의사들이 대단히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던 단어는 돌파구였다.

그 까닭을 알 수 없어 이후 이런 질문을 던졌다.

왜 돌파구적인 제품은 괜찮고 혁신적인 제품은 그렇지 않은 것인가?

우리는 페니실린이 전혀 새롭지 않은 약이지만 돌파구인 약으로 여겨진다는 것을 알게 됐다.

의학계의 경우 돌파구인 수술법이나 제품은 안전하다는 인식을 동시에 가질 수 있었다.

전혀 희망이 보이지 않는다고 생각되는 순간에도 포기하지 않고 호기심을 잃지 않는다면 열쇠를 찾을 수 있다 고 한다.                 

집중적으로 뇌에 대해서만 얘기한 게 아닌가보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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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수는 어떻게 살아남았나 - 영국 보수당 300년, 몰락과 재기의 역사
강원택 지음 / 21세기북스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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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강원택은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이다.

서울대를 나왔고 런던 정치경제대학에서 정치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저자는 우리 정치가 건강한  민주주의를 구현하며 나아갈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하고자 집필과 강연에  관심을 쏟고 있다.

아주 좋은 관심이다.

저자가 영국 보수당을 떠올린 것은 우리나라의 두 가지 계기때문이다.

2020년 총선을 통해 확인된 보수의 몰락이었다.

보수사람들과 같이 응원을 그렇게 했는데 참패를 했다.

한국의 보수정당은 2016년 국회의원 선거, 2017년 대통령 선거, 2018년 지방선거, 그리고 2020년 국회의원 선거에서 연달아 패배했다.

2020년 국회의원 선거에서는 의석수에서 큰 차이를 보이며 패배했을 뿐만 아니라 정치적으로 중요한 수도권에서 완패했다.

저자는 한국 보수의 무기력과 몰락을 보면서 오랜 시간 동안 강한 생명력을 유지하며 정치적으로 건재해온 영국 보수당을 떠올렸다고 한다.

이 책은 500페이지 정도가 되는데 거기서 보수가 살아 남는 방법만 찾아 오면 될 것 같다.

저자의 문체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문체이다.

너무 건조하지도 않고 너무 딱딱하지도 않고 적당히 논리적이고 적당히, 아주 조금 감정적이다.

보수당은 기존의 질서와 이해관계를 지키고 보존하기 위해 존재하는 정당이다.

현상 유지를 위한 정당인 것이다.

보수주의는 하나의 이념이라기보다는 경험, 상식과 같은 현실적 체험과 관찰에 의해 형성된 사고방식, 감정의 양태, 생활양식으로 봐야 한다.

적극적으로 새로운  시대정신을 추구하거나 지금과 다른 정치 질서를 꿈꾸는 것이 아니라 변화에 대한 거부와 저항이라는 수동적이고 대응적인 속성을 보수주의는 내포하고 있다.

보수주의는 구체적인 원칙이기보다 폭넓고 다양한 태도의 결합,  이념보다는 기질의 문제로 볼 수 있다.

영국의 보수당은 토리라는 이름으로 처음 시작했다.

영국의 보수당도 시련에 빠질 때가 많았고 그럴 때 운명을 회복시킨 사람이 있었다.

보수를 살리는데는 사람이 필요한 것이다.

벤저민 디즈레일리는 1846년 곡물법 파동 이후 1874년까지 자유당이 장기 집권으로 어려움을 겪던 보수당을 구하고 이후 1906년까지 약 30년간 보수당의 장기 집배라는 전성기를 열도록 한 인물이다.

디즈레일리는 이런 정치적 성공뿐만 아니라 당의 사회적 지지 기반을 넓혔고 당이 대표하는 이념적 지평도 확대시켜 오늘날의 보수당으로 성장할 수 있는 초석을 닦았다.

디즈레일리는 출신 성분이 보수당 주류와는 달랐다.

농촌에 넓은 토지를 소유한 귀족이 아니라 소설을 쓰는 작가였고 도시의 상인 출신이었다.

디즈레일리 이후에도 영국은 보수당이 선거에서 지기도 하고 이기기도 했다.

디즈레일리는 보수당만이 영국의 제도를 보존할 수 있고 대영제국을 수호할 수 있으며 일반 국민의 생활을 증진시킬 수 있다고 주장했다.

디즈레일리의 뛰어난 점은 자신이 처해 있는 시대의 특성을 정확하게 이해하고 시대의 요구를 읽어내고 그 이슈를 선점할 수 있었다는 점이다.




















디즈레일리의 리더십 하에서 자기 변화를 꾀한 보수당은 보궐선거에서 잇달아 승리하면서 권력 장악의 희망을 높였다.

랜돌프 처칠의 아들인 젊은 시절릐 윈스턴 처칠은 솔즈베리때문에 자기는 보수당, 보수당 사람들, 그들의 용어, 그들의 방법까지 다 싫다고 했다.

솔즈베리의 보수주의는 아일랜드 독립을 추구한 글래드스턴의 존재로 인해 그 가치가 부각될 수 있었다.

솔즈베리는 아일랜드 문제를 정통적인 보수당의 가치와 연관시켰다.

그는 아일랜드 독립은 국가 권위와 헌정 질서, 연합왕국과 대영제국이라는 체제의 유지, 법의 지배, 재산권의 보호와 같은 기본적인 질서를 위협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아일랜드의 독립을 막는 일은 국왕을 정점으로 하는 연합왕국의 기존 질서를 지키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일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아일랜드 독립 문제를 영국 사회의 질서를 지키기 위한 투쟁으로 변모시켰다.

솔즈베리는 새로운 사상을 보수당에 불어넣지는 못했지만 매우 뛰어난 전략가였다.

그러나 솔즈베리의 정치적 성공에 가장 중요한 기여는 자유당의 분열이었다.

그가 뛰어난 전략가라고 할 수 있는 점은 아일랜드 자치 문제로 인한 자유당의 내부 분열을 무자비하다고 할 만큼 적절하게 활용했다는 점이다.

여러 가지 정치적  마찰에도 불구하고 하팅턴과 체임벌린이 이끄는 연합파 자유당과의 협력 관계를 유지하면서 정치적 재편을 이뤄냈다.

현상 유지를 추구하는 솔즈베리가 아무리 내키지 않더라도 그 시대의 요구에는 눈감고 있을 수는 없다.

솔즈베리 하에서 이뤄진 개혁은 랜돌프 처칠, 처칠이 물러난 이후에는 리치, 연합파 자유당의 개혁적인 지도자인 체임벌린에 의해 주도되었다.

이것은 현실적인 필요에 의해 이뤄진 것이다.

1884년 개혁법은 농업 노동자를 포함해 많은 성인 남성에게 새로이 선거권을 부여했는데 자유당을 제치고 이들의 지지를 이끌어내기 위해서는 보수당이 이들에게 적극적으로 다가서야 했다.

또 다른 한편으로는 1896년까지 장기화된 경제 불황으로 인해 고통 받고 있는 많은 이를 지원해야 할 시급한  상황이었다.

애국주의적 전통을 갖는 보수당에 비해 자유당은 평화주의자와 전쟁 찬성파 간의 극심한 의견 차이가 있었다.

유리한 상황이 마련되자 솔즈베리는 의회를 해산하고 총선을 실시하기로 했다.

집권당이 유리한 시점에 의회를 해산하고 총선을 치러 재집권을 노리는 방식이 이때 처음 시도되었다.

솔즈베리의 총선 타이밍이  보수당의 유리한 결과를 낳았다.







영국 보수당은 과거를 지켜내는 것을 존재의 목적으로 한다.

보수당이 300년 동안 성공적으로 존속하고 있다.

보수당이 존속하고  있다고 성공적인게 아니라 그 긴 시간동안 정치적 생명을 유지해오고 있어서이다.

오랜 시간 동안 보수당은 권력을 장악하고 있었고 제 1야당으로 집권당에 가장 확실한 대안 세력으로 남아 있었다.

긴 세월 동안 보수당은 제3당의 지위로 떨어진 적이 없었다.

그것도 생각해보면 대단하다.

국민의 힘이라는 보수당은 김종인 할아버지때문에 몰락하고 있다.

김종인 할아버지가 국민의 힘에서 나와야 한다.

보수당과 비슷한 시기에 함께 등장한 자유당이 20세기 초 노동당의 등장으로 정치적인 몰락을 경험했던 것과 비교할 때 보수당의 건재는 대단한 것이다.

보수당의 성공적인 역사가 관심을 끄는 것은 보수당이 원래 대토지를 소유하고 있는 거대지주와 귀족계급의 정당이어서이다.

보수당은 급격한 정치적 환경의 변화 속에서도 정치적 경쟁력을 잃지 않고 살아남았다.

다른 나라에서 보수 세력이라면 변혁의 와중에 타도의 대상이 되거나 수구 반동으로 몰려 이미 사라졌을지도 모른다.

대중 민주주의와 복지국가가 등장했던 20세기에도 보수당은 지배적인 정당이었다.

영국 보수당의 성공적인 생존의 이유는 권력에 대한 열망이 매우 강해서이다.

권력을 열망하지 않는 정당은 없겠지만 부수당의 권력에 대한 의지는 매우 강하고 그 이유도 현실적이다.

보수당이 권력을 잡아야 하는 이유는 그것이 자신들의 이해관계를 지키고 급격한 변화를 막을 수 있는 좋은 방안이기 때문이다.

보수당은 자신들과 견해를 달리하는 경쟁 정당이 권력을 잡아 자신들이 감당할 수 없는 속도와 규모로 급격한 변화를 이끄는 것을 원치 않았다.

보수당은 선거 승리를 통해 권력을 유지하고 자신들의 이해관계를 지키기 위해 애썼다.

이를 위해서는 최대한 현실과 타협해야 했다.

교조적이고 이념적인 독단보다 이해관계를 지키기 위한 수구 반동적 태도보다는 변화하는 현실에 자신을 맞춰가려고 했다.

영국 보수당은 이념적 원칙이나 순수성보다 권력 장악이라는 실용성을 강조하는 정당이었다.

원칙이 아니라 집권이 우선인 것이다.

보수당은 다른 당에 권력을 뺏겼을때도 정치적 지지를 빠르게 회복하는 모습을 보였다.

보수당은 선거 승리를 위해 유권자의 요구에 맞추려는 노력을 잘했다.

국민의 힘은 유권자의 요구에 전혀 못 맞추고 있다.

빅 데이터를 돌려야 한다.
















보수당이 성공적인 역사를 가질 수 있었던 이유는  변화를 고집스럽게 거부하지 않고 유연해서이다.

보수당이 시대 변화에 적응력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은 현재의 이익을 있는 그대로 지키고자 하기보다는 영리하게 양보할 것은 양보함으로써 자신들의 기득권이 위협받지 않도록 했기 때문이다.

보수당이 기득권을 있는 그대로 지키려고만 했다면 영국 역시 프랑스 혁명과 같은 급격한 정치적 격변을 경험했을지 모른다.

보수당은 영국 사회에서 발생한 변화와 그로 인한 정치적 결과를 수용했다.

자유당이나 노동당이 추진한 정책도 필요하다고 판단되면 수용하고 모방했으며 이전 정부가 커다란 정치적 논란 뒤에 실행한 정책을 보수당이 그 뒤에 집권했더라도 이를 되돌리려고 하지 않았다.

영국 보수당은 9명의 지도자가 이끈 각각 다른 보수당이었다고 한다.

윌리엄 소 피트, 리버풀 경, 로버트 필, 벤저민 디즈레일리, 솔즈베리 경, 스탠리 볼드윈, 윈스턴 처칠, 해럴드 맥밀런, 마거릿 대처 등이 보수당을 이끈 위대한 지도자들이다.

영국 보수당은 배타적인 집단으로 남아 있는 것이 아니라 외연을 넓혀왔다.

토지 소유계급, 귀족의 집단으로 출발한 보수당은 산업혁명 이후 부를 축적하며 새로운 사회적 힘으로 떠오른 상공업자들을 끌어들였고 이들과 하나로 융합했다.

정치적으로 존속하기 위해 사회적으로 영향력을 갖는 새로운 세력을 당내에 수용했다.

보수당이 언제나 성공만 한 건 아니었다.

보수당을 어렵게 만들었던 것은 당내 갈등과 분열, 취약한 당 지도자의 리더십이었다.

영국 보수주의는 유럽 대륙으로부터의 영향력과 위협에 대한 대응의 성격도 지닌다.

로마 교황이 주도하는 가톨릭으로부터 성공회를 지키고 프랑스 혁명과 공화정으로부터 군주제를 지키고 사회주의로부터 재산권을 지키려고 하는 데서 보수당의 역할과 가치가 존재한다.

현재 보수당은 브렉시트로 인한 혼란과 환경의 변화는 보수당에게 새로운 도전이 되고 있다.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내느냐 하는 것이 향후 보수당의 정치적 미래에 영향을 미칠 것이다.

브렉시트 과정을 거치면서 생겨난 당내 분열 역시 보수당으로서는 풀어야 할 또 다른 과제이다.

보수당은 끓임없는 갈등과 내부 분열속에서도 그것이 분당이 자기 파멸로 이어지지 않고 궁극적으로 건강한 자기 혁신의 기회를 제공해주었다.

보수를 내세우는 정당이지만 시대의 변화에 대한 뛰어난 적응력을 가질 수 있었고 새로이 제기된 요구에 대해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었다.

그와 같은 끓임없는 자기 변신은 그 시대를 읽어내는 탁월한 지도자의 존재로 인해 가능했다.

그게 영국 보수당의 생존 비밀이다.

우리나라 보수당도 권력을 찾아오기 위한  강렬한 열망을 가져야 한다.

만약 윤석열 총장이 야권 후보로 나온다고 치면 박근혜 대통령을 탄핵시켰네 어쨌네,,

지금 그게 문제냐,,윤총장을 통해서 권력을 찾아 올 수 있다면 리더자로 세워야 한다.

과거의 프레임은 전부 벗겨내고 유연하게 모든 방법을 동원해서 권력만 뺏어오면 된다.

우리집은 택배기사 선생님들이 매일 오신다.

엄마랑 내가 서평도 하지만 그걸로는 부족해서 한달에 책을 몇 십만원씩 계속 사본다.

그래서 다양한 택배회사 선생님들이 오신다.

오늘은 택배기사선생님한테 커피를 드리니까 목이 너무 말랐는데 감사하다고 하면서 우리집에 가면 커피를 준다고 다들 얘기한다고 했다.

택배기사선생님들은 엄마에게 물량이 너무 많고 쉬는 시간이 있다고 해도 물량이 더 쌓여서 힘들다고  하소연을 하신다.

차도 고장이 자주 나고 다치기도 많이 다치고 사고도 많이 나서 너무 힘들다고 하셨다.

코로나로 사람들을 죽이더니 이젠 독감백신으로 사람들을 죽이는 것 같다.

보수는 힘든 국민들의 사정도 잘 들어야 하는 것 같다.

희망적인 것은 보수가 살기 위해서는  많은 사람이 필요한 것도 아니고 강력한 리더자 한 명만 있으면 되는 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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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로트 열풍 : 남인수에서 임영웅까지
유차영 지음 / 행복에너지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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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께서 유일하게 보시는 프로가 미스터 트롯 사람들이 나오는 프로이다.

그 프로는 10대부터 100대까지 즐기는 프로이다.

트롯은 뽕짝 비슷하고 평생 들어 본 적이 없다.

미스터 트롯에 나오는 노래들은 시같은 곡들도 많았다.

그리고 미스터 트롯 사람들이 노래를 정말 잘 부른다.

저자 유차영은 37년간 육군 장교로 복무한 예비역 베테랑이며, 문단에 등단한 수필가, 음유시인, 문화예술교육사다.

특히 한국근대사와 6,25전쟁, 베트남전쟁사의 편년궤적 위에 한국대중가요 100년 히트곡 사연을 연대, 연도별로 행렬하여 르포에세이로 스토리텔링 하는 특이한 이력의 해설가다.

2020년에 트로트 르네상스 시대가 열렸다.

트로트 가수 팬들의 흥 바람 열풍이 불었다.

1930년대 작은 옹달샘에서 졸졸거리던 시냇물 같던 유행가는 인기가수 중심으로 불렸다.

나라를 빼앗긴 통분과 민족의 처절함을 대신했고, 대중들은 유행가를  따라 부르면서 울분을 달랬다.

나라에 살면서 남의 나라 통치를 받던 식민의 통곡< 나그네 설움>, <목포의 눈물>, < 홍도야 우지마라>, 이렇게 흘러 1950년 까지 잇는다.

<가거라 38>, <신라의 달밤>, < 굳세어라 금순아>, < 이별의 부산 정거장>, < 한많은 대동강>, < 꿈에 본 내 고향>, < 봄날은 간다>, 고복수, 남인수, 이난영, 황금심, 백설희, 백난아, 백년설, 진방남, 현인 등18번 시대의 시작이다.

1960년대 트로트라는 말이 우리 대중가요, 유행가의 한 갈래를 잡는다.

권위와 낭만의 충돌과 마찰, 그렇게 1980년대까지 이어온다.

<동백 아가씨>, <마포종점>, <배신자>, <돌아가는 삼각지>, <아침이슬>,<고향역>,<님과 함께>, < 왜 불러>, < 돌아와요 부산항에>, <곡예사의 첫사랑>, <낭만에 대하여>, <창밖의 여자>, <잃어버린 삼십년>, 이미자, 은방울 자매, 패티김, 배호, 양희은, 나훈아, 남진, 조용필, 송창식, 최백호 등 1990년대 보통사람 시대, 전통가요 부활의 꽃이 핀다.

트로트 무풍지대가 펼쳐진다.

신세대 트로트 가수들이 깃발을 흔들면서 세대 간의 갈등도 생기고 간극도 벌어진다.

심수봉, 혜은이, 주현미, 김연자, 현철, 송대관, 설운도 등이 박상철, 윤수일, 박구윤, 신유 등과 쌍방의 깃발을 흔든다.

<그때 그 사람>, <사랑만은 않겠어요>, <감수광>, <신사동 그 사람>, <아모르 파티>, <내 사랑 별과 같이>, <해뜰날>, <사랑의 트윗스트>, <황진이>, <어머나>, <뿐이고>, <시계바늘> 등 이러한 두 갈래의 깃발은 2012년을 기점으로 한 덩어리로 화한다.

싸이의 <강남스타일>, 조용필의 <헬로>, <바운스>가 분기점이다.

그렇게 2010년대 후반까지 이른다.

유행가 트로트가 오선지 밖으로 튀어나와 무대 위에서 광풍을 불러일으킨다.

공연장이나 안방에서나  사람들이 신나한다.

1956년 흑백TV에서 1980년 컬러TV 방영 이래 60여 년 만에 트로트가 계절을 가리지 않고 피는 꽃으로 진화되었다.

송가인, 정미애, 홍자, 정다경, 김나희, 임영웅, 영탁, 이찬원, 김호중, 정동원, 장민호, 김희재, 이들이 트로트 르네상스 주인공들이다. 노래는 세상과 통한다.

유행가, 트로트는 역사 속에서 사람들의 삶을 인류학적으로 빚어놓은 막사발이다.

역사 속에서 사람들의 삶을 씨줄 날줄로 얽은 돛단배다.

유행가는 탄생 시점을 현재로 보전하는 보물, 새로이 탄생하는 유행가는 온고지신의 산물, 그리움이 영글면 사랑이 되고, 사랑이 익으면 별이 된다.

이 별은 사랑이 식으면 은하수 물결을 지나 사라지고, 가슴속에는 한이 서린다.

유행가는 작사,  작곡, 가수, 대중, 시대사람, 사연을 요소로 하는 17재의 종합예술품이다.

한 곡 한 곡이 탄생시대의 융합물이고, 그 곡과 곡을 시대별로 얽어 가면 대하 역사물이 된다.

그래서 대중가요, 유행가를 풀어서 음유하면 역사의 타래가 되고, 그 타래 속에서 민족주의와 국가주의를 함의하는 신애국사상도 기와 혼 과 얼로 혼융된다.

또한 가삼 백만 인우다.

노래 300곡을 음유할 수 있으면, 모든 사람의 벗이 될 수 있다고 한다.

트로트는 시대와 세대를 아우른 절창이다.

이 절창은 히트곡, 인기곡, 명곡보다는 대중성, 통속성, 상업성 측면에서 민초들의 삶에 더 근접해 있다.

따라서 트로트는 시대와 세대를 넘기도 하고, 이어주기도 하는 소통의 매체로서, 세월을 더해 가면서 그 노래를 낳은 시대 이성과 감성은 안고 대중들에게 회창된다.

그래서 유행가라는 말을 쓴다.

세월의 바다 위에 사람들의 습생을 따라 흐르는 가사와 가락, 트로트는 유행가를 대표하는 장르다.

유행가의 매력과 마력은 가슴속에 맺힌 한을 흥의 어울림으로 공명시켜서 신바람으로 전이 시키는 것이다.

2020년 트로트 르네상스, 대한민국을 신바람으로 울렁거리게 한다. < 희가>2020년 기준으로 탄생 연세가 100세인 노래다.

이 노래를 14세 정동원의 목청에 걸렸다.

시대와 세대 초탈의 푯대 같은 절창이었다.

가녀린 정동원의 얼굴과 물 머금은 빨랫줄처럼 휘늘어지는 음률은 금세 많은 시청자를 눈물에 젖게 했다.

1955<추억의 소야곡>을 발표할 당시 37세 남인수 고향 진주 비봉산 기슭 디벼리에서 폐병진료를 위한 요양 중이었다.

어느날 작곡가 백영호가 악보를 들고 진주로 달려온다.

남인수는 건강을 이유로 노래 녹음을 거절하지만 작곡가는 아랑곳하지 않는다.

이러한 시대 상황을 유명 대중가수를 푯대로 사망 노래를 만들었던 것, 남인수가 피를 토하면서도 녹음을 한 이유는 첫 소설, 그 얼굴 때문이다.

백영호의 설명을 듣고서 첫사랑 이난영에 대한 비련의 사랑 오기가 되살아났던 것이었다.

44세 남인수가 타계하자, 신문에는 노장 남인수 타계라고 대서 특필한다.

44세는 청년 취급을 받는 오늘날에 비추어 보면 격세지감이다.

그의 음색은 백년만에 한 명 태어날 정도이며, 음역이 넓고 감정도 풍부하다.

미성에 음정, 발음이 정확하며 고음역도 타의 불허할 만큼절창이었던 터라 그가 떠난 빈자리는 유별났다.

2020314일 토요일 저녁 8, TV조선은 영웅을 탄생시켰다.

이곡은 1969년 가수 도성이 부른 <사랑의 배신자>, 같은 해 <배신자>제목으로 배호가 불렀다.

202012, 대한민국 국민들의 한 흥으로 발전시키는 내일은 미스트롯프로그램이 시동을 걸었었다.

이 유행가 함대는 국민감흥의 바다 위에 정지했고, 314일 최종 발표를 했다.

그날 영웅이 영웅으로 거듭났다.

대한민국 최초의 오디션을 통한 트로트 황제에 등극한 것, 임영웅, 미스터트롯 1위 진예선 시작부터 우승 후보로 꼽혔던 임영웅은 최고의 점수로 진에 선정됐다.

심사위원 마스터 총점, 대국민투표를 합산한 중간점수에서, 찬또배기 이찬원에 이어 2위를 달렸던 그는 실시간 국민투표에서 최고의 점수를 얻었다.

상금1억원, 수제화200컬레, 대형 SUV,승용차와 안마 의자, 조영수작곡가의 신곡 등의 부상도 차지했다.

이세상은 정말 공평하지 못한 것 같다.

일등만 살아 남는 것인가, 모든 상은 일등에게 다 돌아갔다.

결승전에서 어린 시절 돌아가신 아버지를 그리워하며 <배신자>를 불렀다.

이 노래는, 임영웅 아버지가 어머니에게 불러주던 애창곡, 무대에서 노래를 절창한 가수도 울고, 홀로 외아들을 키운 미용사 엄마도 울고, 심사위원도 울고, 시청자도 울었다. 결승전 진출한 TOP7은 장민호, 김희재, 김호중, 정동원, 영탁, 임영웅, 선은 영탁, 미는 이찬원이었다.

이어 4위 김호중, 5위 정동원, 6위 장민호, 7위 김희재였다.

이찬원은 미스터트롯 결선진출자 7명 중에서 중간집계 1위서 최종 3위로 선정되었다.

1983년 우리나라의 총각들은 너 나 할 것 없이 ‘18세 순이’를  찾아 나섰었다.

스스로 노래 스타일에 일대 변곡점을 찍었던 나훈아의 순이는 누구였을까.

2020년 미스터트롯 결승전에서 5위를 한 정동원이 나훈아의 <사랑은 눈물의 씨앗>을 불러서 14세의 미소년이 불혹의 감흥으로 시청자들의 가슴속을 갈기갈기 찢어놓았었다.

유행가를 말할 때, 유행가를 부를 때, 유행가를 들을 때, 고향, 나이, 학력을 묻지 마라, 유행가는 통속적인 것, 클래식은 선민적인 것이 아니라 그냥 저마다의 취향으로 존중해야 하는 것 같다.


김희재는 1995년 울산 출생, ‘울산 이미자로 불린다.

2020년 내일은 미스터트롯결승전에서 7위를 했다.

진 임영웅, 선 영탁, 미 이찬원, 4위 김호중, 5위 정동원, 6위 장민호, 김희재는 2020317일 해군병장으로 전역을 했다.

한국예술고등학교와 명지전문대에서 실용음악을 공부한 그는 별명도 많다.

울산 이미자, 히재, 트롯신동, 춤희재. 희욘새. 돌리도좌. 야박히, 희타,  아기치타, 트롯요정, 조신희재, 유교보이, 한줌발목, 갓바디, 칼음정칼박자, 알감자, 물만두, 밥통 기미재, 울희재, 공손희재 등등 별명이 정말 많은 것 같다.

그는 13세살에 놀라운 대회 스타킹에 트롯트 신동으로 출연했었다. 당시 이미자 노래를 완벽하게 소화하며 울산 이미자라는 타이틀을 얻었다.

한국예술고등학교 출신 방탄소년단 뷔, 오마이걸 승희와 동창이다. 미스트롯에서, 100인 예선에서는 서지오< 돌리도>, 본선 1차전 장르별 팀 미션에서 현철의 <내 마음 별과 같이>, 자원사격에서는 최석준의 <꽃을 든 남자>, 본선 3차 기부금 팀 미션트롯에이드에서는 장윤정의 <사랑아>와 박윤의 <나무꾼>, 사랑과 정열에서는 태진아의 <옥경이>와 박현빈의 <오빠만 믿어>, 준결승 레전드 미션 1라운드 개인전에서 설운도의 <나만의 여인>, 결승전 제1라은드 11 한곡 대결에서는 김진룡<나는 남자다>2라운드 나의 인생곡 미션에서는 김수희의 <잃어버린 정>을 절창했다.

<어느 60대 노부부의 이야기>를 잔잔한 멜로디에 맞춰 짙은 감성을 녹여낸 임영웅의 가창력에 관객과 MC김성주, 참가자, 황윤성, 류지광 등이 눈물을 흘렸다.

장민호는 짐 싸러 간다며 패배를 예견해 웃음을 자아냈다.

남자라는 이유 때문에 울지도 못한다.

가슴속에 생채가 난 사연도 묻어두고 산다.

마음 후련하게 울지도 못한다.

1997년 조항조가 부른 <남자라는 이유로>는 이미자가 부른 <여자의 일생>과 대칭되는 이성의 삶을 대변한다.

2020312일 미스터트롯 결승전에서 장민호가 인생곡 미션으로 불렀다.

돌아가신 아버지를 향한 구슬픈 애절함의 폭발이었다.

그날 TOP7 장민호, 김희재, 김호중, 정동원, 영탁, 이찬원, 임영웅의 결승전이 펼쳐졌다.

이 경연에 앞서 장민호는 돌아가신 아버지의 영정을 만나러 갔다.

그는 아버지께 트로트를 부르는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던 것에 아쉬움을 느끼며 눈물을 보였다.

장민호는 잔잔한 감성을 노래했다.

아버지를 향한 그리움과 함께 애절한 감성, 깊은 울림이 담긴 그의 목청은 시청자들으 눈물을 자아냈다.

남자가 남자를 울리는 노래는 <남자라는 이유로><사나이눈물> 이다.

이 두 곡은 중년 남자들의 인기 1위 곡이다.

이 곡은 오랜 기간을 무명으로 지낸 조항조를 인기가수 반열에 오르게 한 곡이다.

조항조의 나이 38세였다.

이 나이에 남자라는 이유를 알았으니, 철이 무척이나 빨리 든 것이다.

이 노래는 1994년 박우철이 먼저 불렀던 곡이다.

본명 홍원표, 조항조는 1959년 경주에서 출생, 197213세살에 미8군 무대를 통해 음악 인생을 시작했다.

참 기특한 출발이다.

홍원표는 13세에 남자가 되었다.

이후 김지훈이란 예명으로 활동을 하다가 1986년에 가요계를 떠나 미국으로 건너갔다가 1989년 귀국하여 예명도 조항조라고 바꾸고 트로트 가수로 컴백했다.

1997년 <남자라는 이유로>로 크게 히트 하면서 다시 인기를 얻기 시작하였고 여러곡을 히트했다.

텔레비전을 끓었었는데 미스터트롯때문에 쉬는 시간에는 다시 TV조선을 켜게 된다.

나랑 엄마는 정동원을 가장 좋아한다.

어떻게 그 나이에 그런 가창력과 감성을 가지고 있는지  너무 신기하다.

      

 

리뷰어스 클럽의 소개로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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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아두면 쓸모 있는 클래식 잡학사전 클래식 잡학사전 1
정은주 지음 / 42미디어콘텐츠 / 2020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저자 정은주는 클래식 음악을 글로 소개하는 일을 한다.

AI음악가에 반대하지만, 미래 인류가 클래식 음악을 박물관에 처박아두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저자는 ​모차르트와 쇼팽, 특히 바흐를 존경한다.

저자는 ​현재 클래식 음악 칼럼니스트로 활동하며, ‘정은주의 클래식, 음악 여행의 클래식 수다, 정은주의 발칙한 클래식 등에 칼럼을 연재 중이다.

이 책은 ​나른한 오후에  커피 한잔 마시면서 읽기에 좋은  클래식 음악 입문서이자, 클래식 음악을 더 심도 있게 느끼게 하는 좋은 길잡이 책이다.

이 책을 읽으면 ​타임머신을 타고 음악 여행을 떠난 기분이 든다.

그 시대의 ​생동감이 느껴진다.

그때 그 시간의 역사가 드라마틱하게 다가오는 느낌을 강하게 받는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음악은 우리의 영원한 안식처이다.

난 하루종일 클래식방송을 틀어 놓고 있어서 잘 몰라도 그냥 익숙하다.

익숙하게 들으면서 공부나 책을 읽다가 마음에 쏙 드는 음악을 만날 때가 있다.

그러면 누구의 음악인지 집중해서 듣게 된다.

그러다가 누구의 음악인지 파악한 다음 클래식에 대한 책을 찾아 본다.

검색을 해도 되지만 검색보다는 책으로 찾는게 항상 좋다.

책은 내 손에 잡히고 촉감이 있고 실체가 있으니까 그게 좋다.

모리스 라벨에 대해 잠깐 관심을 가진 건 나처럼 고양이를 좋아한다고 해서이다.

라벨의 음악은 경쾌하고 따뜻하고 낭만적인 느낌이 난다.

라벨은 배고프고 가여운 고양이에게 먹을 것을 나누어주는 일만큼 멋진 일도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작은 도움일지라도 그것이 필요했던 고양이, 아니 사람에게는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감사로 남는다는 것도 알았다.

고양이에게 먹을 것을 주면 그 고양이는 나를 따라오게 되고 내 창문앞에 버티고 앉아 있는다.

라벨은 프랑스를 대표하는 음악가이자 파리지앵이다.

또 프랑스네,,

 그는 반려묘와 행복한 삶을 꾸려간 음악가 였다.

오페라 어린이 마법에 실제 고양이의 음성을 듣는 듯한 야웅 듀엣을 담았다.

바스크에서 태어난 음악 천재 라벨은 프랑스 시골 마을 시부르에서 태어났다.

 이 지역은 바스크의 땅이다.

프랑스와 스페인 사이의 땅이지만 바스크자치구이다.

바스크라는 건 처음 들었는데 스페인에 독립을 요구했다가  과거에는 처형을 당하기도 했다고 한다.

​바스크에서는 프랑스어나 스페인어로 말해도 되고 바스크어로 말해도 되는 곳이다.

바스크어는 스페인어와 언어체계가 또 완전히 다르다고 한다.

라벨의 아버지는 스위스 사람이고 어머니는 바스크계 여인이었다.

그는 태어난 지 석 달 후에 부모님을 따라 파리로 이사를 갔기 때문에 사실 파리지앵으로 자랐다.

​프랑스남서부 시부르는 위대한 작곡가의 고향임을 무척이나 자랑스러워했다.

지금도 시부르에는 라벨 생가가 잘 보전되어 있고 라벨의 이름을 딴 공원과 거리도 조성되어 있다.

파리로 이사 간 덕분에 그는 14세에 뛰어난 음악 실력은 인정받고 파리 국립 음악원에 입학했다.

당시 유명한 가브리 엘 포레에게 음악을 배웠다.

그는 특히 피아노와 작곡에 특별한 재능을 보였는데<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 등을 이 시기에 작곡했다.

파반은 무곡을 말하는 거고 무곡은 거기에 맞춰서 춤을 출 수 있다.

파리 국립 음악원에서 작곡을 배우던 학생들은 로마 대상을 타고 싶어 했다.

물론 라벨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부정 심사 사건에 휘말려 라벨은 뛰어난 실력에도 불구하고 로마 대상을 수상하지 못했다.

이에 충격을 받고 음악원을 떠났다.

그때든 지금이든 있을 법한 안타까운 사건이지만 라벨, 그의 음악은 지금 더 인기 있으니 괜찮은 것이다.

그 당시 라벨 대신 상을 탔던 사람은 이름조차 아무도 모른다.

나도 학교다닐 때 전교생앞에서는 상을 받았지만 반에 들어오면 선생님은 다른 애한테 내 상을 줬다.

그 이유는 엄마가 선생님한테 촌지를 주지 않아서였다.

내가 그린 그림도 미술선생님이 자신의 직인을 찍어서 자기가 그렸다고 거짓말로 전시를 하기도 했다.

발명품대회에 나갔을 때도 내가 전부 한건데 선생님은 서울공대 다니는 삼촌이 해준거지라고 하면서 촌지를 요구했고 그림대회에 나갔을 때도 홍대나온 삼촌이 해준거지라면서 촌지를 요구했다.

상을 받으려면 선생님들한테 식사대접을 해야 한다고 엄마한테 얘기했고 엄마는 거부했다.

그러면 전교생앞에서 내 이름은 불리지만 내 손에 상은 주어지지 않았다.

그래서 난 이름만 있고 실체가 없는 허상은 싫어한다.

원래 선생님들은 싫어하는데 요즘은 전교조까지 나와서 미래의 아이들을 망치고 있다.

라벨도 그런 식으로 당했을거다.

 1900년부터 라벨은 젊은 예술가, 시인, 비평가, 음악가들과 함께 공식적인 모임을 가졌다.

자신들은 예술의 소외자라 부르며 다양한 예술에의 방법을 모색했는데, 이들은 세계1차 대전이 발발하기 전까지 정기적으로 모임을 열었다.

이 모임에는 이고르 스트라빈스키, 마누엘 데 파야 등도 참석했다.

이들은 하나같이 당대 최고의 음악가이던 드뷔시에게 강렬한 인상을 받았다.

라벨도 마찬가지였다.

당시 그들은 프랑스 인상주의를 대표하는 음악가로 드뷔시를 꼽았다.

라벨은 드뷔시는 자신을 자유롭게 표현하면서도 프랑스 전통과 어울리는 고유의 규칙을 만들었다라고 하며 드뷔시의 음악을 극찬하기도 했다.

라벨은 늘 사랑에 빠져 지냈으나  베토벤처럼 평생 결혼을 하지 않았다.

그는 여성과 남성 모두와 연애를 했던 것으로 보인다.

 파리의 사창가를 자주 드나들었다는 기록과 오랜 연인이었던 남자에 대한 이야기가 전해진다.

양성애자네,,

책을 읽다보니까 ​ 소크라테스, 레오나르도 다빈치, 이젠 라벨까지 동성애를 했었다는 걸 알게 됐다.

앞으로 얼마나 더 동성애자들인 걸 알게 될까,,

은연중에 사회주의책도 많이 읽게 되고말이다.

소크라테스의 아내가 악처라고 하는데 아내가 악처라서 소크라테스가 동성애가 된건지 그가 동성애라서 아내가 악처가 된 건지 모르겠다.

저번에 읽은 책에서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67세까지 살았던데 이상한 병에 안 걸렸는지 모르겠다.

미켈란젤로랑도 사이가 엄청나게 안 좋았었다.

정상적이지 않으니까 성격도 안 좋은 것 같다.

이 세상의 주인이신 하나님이 동성애를 하지 말라시쟎아,,

좀 안하면 안되겠니,,

요즘엔  졸기만 해도 나한테 얘기를 하셔,,

이 세상에 인간이 이렇게나 많은데 얼마나 얘기할데가 없고 외로우면 잘 때뿐만 아니라 졸기면 해도 얘기를 하시겠어,,

하나님 얘기 좀 들어드려,,

라벨은 유난히도 고양이를 사랑했다.

여러 고양이 가운데서도 샴 고양이만 길렀다고 한다.

고양이를 몹시 아낀 그는 고양이의 말을 이해하고 할 줄도 알았다고  한다.

누군가의 거짓말이겠지만 라벨은 고양이 울음소리의 높낮이를 일정 신호로 나누고 그 의미를 찾았다고 한다.

1916년 그는 프랑스의 작가 시도니 가브리엘 콜레트에게 동화를 주제로 한 오페라의 음악을 청탁받았다.

결혼은 하지 않았지만 어린이를 좋아했던 라벨은 흔쾌히 승낙했다.

요즘엔 어린이를 좋아한다고 하면 소아성애자일까봐 무섭다.그 후로 9년이 지난 1925321일에 콜레트의 대본과 라벨의 음악이 한 무대에 올랐다.

모나코의 몬테카를로 극장에서 판타지 오페라<어린이의 마법>이 세상에 처음 공개된 것이다.

이 오페라는 공부하기가 싫어서  말썽을 부리던 아이가 온갖 사물과 동물, 식물로부터 공격 아닌 공격을 당하게 되는 이야기다.

오페라의 인기 아리아인 야옹 듀엣'은 고양이를 사랑하는 라벨의 마음이 듬뿍 담긴 노래이다.

1막 마지막 즈음에 검은 수고양이와 하얀 암코양이가 등장하여 함께 부르는 이중창이 야옹 듀엣이다.

한번 이 아리아를 들어보면 깜짝 놀란다.

실제로 고양이의 울음소리를 듣는 것 같다.

들어보니까 놀라는게 아니라 성악으로 장난을 친 것은데,,

미야옹거리다가 끝난다.

이 곡을 부르면 관중석에 앉아 있는 사람들이 전부 다 웃는다.

나도 웃고 옆에 있던 엄마도 웃는다.

내가 사랑하는 고양이를 모독하는 노래같다.

샴고양이들과 즐거운 한때를 보내던 라벨의 모습이 보인다고 한다.

암튼 정상은 아니다.

라벨의 아름다운 피아노곡을 들으면 음악에 몰입하지 못하고 양성애자, 양성애자, 양성애자, 동성애자, 동성애자만 자꾸 떠오를 것 같다. 

​난 평안한 전원이 떠오르는 어떤 곡을 들으면서 저 곡을 만든 사람이 누구인지가 궁금했다.

그 사람은 라흐마니노프였다.

아메리카 드림을 이룬 모스크바 신사, 라흐마니노프는 그 어떤 존재로도 대체할 수 없는 위인이다.

클래식 음악사를 빛낸 독보적인 작품들을 쏟아낸 작곡가다.

그가 남긴 여러 작품들은 음악학도가 반드시 공부해야 하는 과제이기도 하다.

그러나 연주자가 즐겨 연주하는 작품이라고는 말할 수 없다.

솔직히 연주하기에는 매우 어렵다고 한다.

조성진이 연주하는 걸 듣는데 손가락이 움직이는 걸 보기만해도 어려워 보인다.

라흐마니노프의 작품이 무대에 오르는 일은 앞으로도 많겠지만 모차르트나 슈만에 비해서는 아닐 것이다.

연주하기가 너무 어렵고 많은 연습 시간이 들기 때문이다.

나도 중고등학교때까지 교회에서 피아노반주를 했는데 얼마전에 피아노를 치려고 하니까 더듬더듬 치고 있었다.

피아노는 계속 많이  안 치면 안되는 것 같다.

그는 20세기 초 유럽과 미국에서 대단한 팬덤을 몰고 다녔던 피아니스트이기도 하다.  

그가 묵는 호텔 로비는 그를 만나려는 팬들로 북새통을 이루곤 했다.

한마디로 그는 완벽한 클래식 음악가의 상징이었다.

예술적인 면에서도 훌륭했고 거기에 상응하는 팬덤과 재력까지 얻을 수 있었다.

 라흐마니노프는 러시아 왕실과 친척 관계인 귀족 가문에서 태어났다.

당시 귀족은 자녀에게 반드시 음악을 가르쳤다.

악보를 읽을 수 있고 악기를 연주하는 것 그리고 음악을 즐길 수 있는 취미는 귀족이 갖춰야 할 에티켓 중 하나였다.

마찬가지로 라흐마니노프도 유복한 환경에서 음악을 배우며 자랐다.

네 살부터 피아노 연주를 했던 음악 신동인 그는 1892년에 모스크바 콘서바토리를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했다.

라흐마니노프는 꽤 미남형이었다.

체구도 좋은 편이었다.

키가 무려 192cm였다.

신장뿐만 아니라 손가락도 엄청 긴 편이었다.

피아니스트로서 할 수 있는 일이 더 많았을 것이다.

이러한 신체적 특징으로 그는 당대 굉장한 인기를 누리는 피아니스트로 살았다.

라흐마니노프를 한창 듣고 있는데 같이 로펌에서 인턴했던 애한테 연락이 왔다.

변호사가 되고 책을 냈다고 했다.

요즘엔 그런 전화를 받아도 담담하다.

나도 될거니까,,

오늘날에도 라흐마니노프가 남긴 피아노 작품은 여전히 연주하기 어려운 작품이다.

피아니스트의 독주회 레퍼토리로 인기가 없는 것도 어려운 것 때문일 것이다.

연주 레퍼토리로 인기가 없는 현상이 라흐마니노프의 손가락 길이와 관계가 없다고는  할 수 없다.

이렇게 승승장구하던 라흐마니노프의 인생도 늘 좋았던 것만은 아니다.

300년 가까이 러시아를 지배하던 로마노프 왕가가 몰락하자 그 또한 전 재산을 볼셰비키에게 몰수당했다.

또 공산주의는 사람들의 불행과 함께 나타난다.

왕가의 친척이었으니 왕가의 운명과 쇠락을 함께 맞이한 것이다.

그동안 누려왔던 모든 특권과 계급이 하루아침에 사라졌다.

러시아 사람인 그는 셈에 아주 빨랐다.

유럽에서 누리던 인기에 힘입어 다음 해 111일 오슬로에서 뉴욕으로 출발하는 배에 탑승했다.  

미국의 따뜻한 환대를 받으며 미국인처럼 살다가 시민권도 획득했다.

또 스타인웨이 아티스트로 여러 혜택도 누렸다.

안정적으로 미국에 정착한 그는 미국 신시내티 심포니 오케스트라의 지휘자로도 활동했다.

보스턴 심포니 오케스트라를 위해 30주 동안 110번 지휘자로도 활동했다.

무엇보다 당시 사람들은 그의 피아노 연주에 열광했다.

손가락도 길고 키도 큰 러시아 출신 스타 음악가가 펼쳐 보이는 기교의 향연에서 대단한 희열을 느꼈을 것이다.

그때도 키 큰 건 먹히는구나.

라흐마니노프는 작곡가로도 활발한 활동을 했는데 그럼에도 그는 언제나 자신은 피아니스트라고 소개했다.

아내의 폭로로 알게 된 것도 있다.

라흐마니노프의 부모님은 귀에 못이 박히게 주의를 했던 말이 있다.

그가 거짓말을 입에 달고 살았거나 혹은 거짓말을 꽤 자주 했던 사람이라고 했다.

그래서 부모님의 주의를 자주 들었던 것이다.

​저자의 지인중에  미국 유학을 마치고 돌아 온 강사께서 강의 시간에 라흐마니노프의 다큐멘터리 비디오테이프를 틀어주었는데 정말 인상적인 내용이었다.

바로 라흐마니노프의 거짓말에 대한 부분이었다.

라흐마니노프가 세상을 떠난 후 그의 아내인 나탈리아가 한 방송사와 인터뷰를 한 장면을 담았는데, 나탈리아는 아주 재미있는 이야기를 했다.

바로 라흐마니노프가 평소 연습을 거의 하지 않는다고 사람들에게 거짓말을 했다는 내용이다.

나탈리아는 라흐마니노프는 연습하는 작품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잠도 안자는 스타일이었다고 했다.

그는 매일 두세 시간씩 연습한 것이 아니라 그는 스스로 원하는 경지에 이를 때까지 오직 연습만 했던 사람이라는 말을 남겼다.

라흐마니노프는 손가락이 길어서 대단한 기교를 부릴 수 있었던 것이 아니었다.

오직 피나는 노력을 통해 연주 실력을 갈고 닦았던 노력파였다.

하루에 두세 시간만 연습하는 것이 아니라 두세 시간밖에 안자며 연습에 매진했던 집념의 러시아 사람이었던 것이었다.

나 시험공부 하나도 못 했어!”하며 백 점 맞고 장학금 받던 친구들 한 두 명은 알고 있다.

내 주변에는 그런 친구가 없다.

난 지방에서 고등학교를 나왔는데 내가 나온 대학이나 과를 가려면 전교 5등안에  들고 반에서는 2등안에 어야 갈 수 있었다.

우린 서울애들은 공부를 엄청 잘할거라고 생각을 하고 쉬는 시간, 점심시간, 체육시간에도 공부만 했다.

시험공부를 하나도 안 했어가 아니라 우린 서울로 가려면 공부만 죽어라 해야한다는 얘기를 주문처럼 했다.

어딘지 모르게 라흐마니노프가 친근하게 느껴지는 기분이다.

연습을 많이 하고도 안 한척 한 것은 천재라는 소리를 듣고 싶어서라고 했다.

그런 음악을 만드는 건 천재지 뭘그렇게 거짓말을 했는지 웃픈 음악가다.

이 책을 읽고 나서 라벨은 버리고 라흐마니노프는 계속 데리고 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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