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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아두면 쓸모 있는 클래식 잡학사전 ㅣ 클래식 잡학사전 1
정은주 지음 / 42미디어콘텐츠 / 2020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저자 정은주는 클래식 음악을 글로 소개하는 일을 한다.
AI음악가에 반대하지만, 미래 인류가 클래식 음악을 박물관에 처박아두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저자는 모차르트와 쇼팽, 특히 바흐를 존경한다.
저자는 현재 클래식 음악 칼럼니스트로 활동하며, ‘정은주’의 클래식, 음악 여행의 클래식 수다, 정은주의 발칙한 클래식 등에 칼럼을 연재 중이다.
이 책은 나른한 오후에 커피 한잔 마시면서 읽기에 좋은 클래식 음악 입문서이자, 클래식 음악을 더 심도 있게 느끼게 하는 좋은 길잡이 책이다.
이 책을 읽으면 타임머신을 타고 음악 여행을 떠난 기분이 든다.
그 시대의 생동감이 느껴진다.
그때 그 시간의 역사가 드라마틱하게 다가오는 느낌을 강하게 받는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음악은 우리의 영원한 안식처이다.
난 하루종일 클래식방송을 틀어 놓고 있어서 잘 몰라도 그냥 익숙하다.
익숙하게 들으면서 공부나 책을 읽다가 마음에 쏙 드는 음악을 만날 때가 있다.
그러면 누구의 음악인지 집중해서 듣게 된다.
그러다가 누구의 음악인지 파악한 다음 클래식에 대한 책을 찾아 본다.
검색을 해도 되지만 검색보다는 책으로 찾는게 항상 좋다.
책은 내 손에 잡히고 촉감이 있고 실체가 있으니까 그게 좋다.
모리스 라벨에 대해 잠깐 관심을 가진 건 나처럼 고양이를 좋아한다고 해서이다.
라벨의 음악은 경쾌하고 따뜻하고 낭만적인 느낌이 난다.
라벨은 배고프고 가여운 고양이에게 먹을 것을 나누어주는 일만큼 멋진 일도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작은 도움일지라도 그것이 필요했던 고양이, 아니 사람에게는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감사로 남는다는 것도 알았다.
고양이에게 먹을 것을 주면 그 고양이는 나를 따라오게 되고 내 창문앞에 버티고 앉아 있는다.
라벨은 프랑스를 대표하는 음악가이자 파리지앵이다.
또 프랑스네,,
그는 반려묘와 행복한 삶을 꾸려간 음악가 였다.
오페라 어린이 마법에 실제 고양이의 음성을 듣는 듯한 ‘야웅 듀엣’을 담았다.
바스크에서 태어난 음악 천재 라벨은 프랑스 시골 마을 시부르에서 태어났다.
이 지역은 바스크의 땅이다.
프랑스와 스페인 사이의 땅이지만 바스크자치구이다.
바스크라는 건 처음 들었는데 스페인에 독립을 요구했다가 과거에는 처형을 당하기도 했다고 한다.
바스크에서는 프랑스어나 스페인어로 말해도 되고 바스크어로 말해도 되는 곳이다.
바스크어는 스페인어와 언어체계가 또 완전히 다르다고 한다.
라벨의 아버지는 스위스 사람이고 어머니는 바스크계 여인이었다.
그는 태어난 지 석 달 후에 부모님을 따라 파리로 이사를 갔기 때문에 사실 파리지앵으로 자랐다.
프랑스남서부 시부르는 위대한 작곡가의 고향임을 무척이나 자랑스러워했다.
지금도 시부르에는 라벨 생가가 잘 보전되어 있고 라벨의 이름을 딴 공원과 거리도 조성되어 있다.
파리로 이사 간 덕분에 그는 14세에 뛰어난 음악 실력은 인정받고 파리 국립 음악원에 입학했다.
당시 유명한 가브리 엘 포레에게 음악을 배웠다.
그는 특히 피아노와 작곡에 특별한 재능을 보였는데<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 등을 이 시기에 작곡했다.
파반은 무곡을 말하는 거고 무곡은 거기에 맞춰서 춤을 출 수 있다.
파리 국립 음악원에서 작곡을 배우던 학생들은 로마 대상을 타고 싶어 했다.
물론 라벨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부정 심사 사건에 휘말려 라벨은 뛰어난 실력에도 불구하고 로마 대상을 수상하지 못했다.
이에 충격을 받고 음악원을 떠났다.
그때든 지금이든 있을 법한 안타까운 사건이지만 라벨, 그의 음악은 지금 더 인기 있으니 괜찮은 것이다.
그 당시 라벨 대신 상을 탔던 사람은 이름조차 아무도 모른다.
나도 학교다닐 때 전교생앞에서는 상을 받았지만 반에 들어오면 선생님은 다른 애한테 내 상을 줬다.
그 이유는 엄마가 선생님한테 촌지를 주지 않아서였다.
내가 그린 그림도 미술선생님이 자신의 직인을 찍어서 자기가 그렸다고 거짓말로 전시를 하기도 했다.
발명품대회에 나갔을 때도 내가 전부 한건데 선생님은 서울공대 다니는 삼촌이 해준거지라고 하면서 촌지를 요구했고 그림대회에 나갔을 때도 홍대나온 삼촌이 해준거지라면서 촌지를 요구했다.
상을 받으려면 선생님들한테 식사대접을 해야 한다고 엄마한테 얘기했고 엄마는 거부했다.
그러면 전교생앞에서 내 이름은 불리지만 내 손에 상은 주어지지 않았다.
그래서 난 이름만 있고 실체가 없는 허상은 싫어한다.
원래 선생님들은 싫어하는데 요즘은 전교조까지 나와서 미래의 아이들을 망치고 있다.
라벨도 그런 식으로 당했을거다.
1900년부터 라벨은 젊은 예술가, 시인, 비평가, 음악가들과 함께 공식적인 모임을 가졌다.

자신들은 예술의 소외자라 부르며 다양한 예술에의 방법을 모색했는데, 이들은 세계1차 대전이 발발하기 전까지 정기적으로 모임을 열었다.
이 모임에는 이고르 스트라빈스키, 마누엘 데 파야 등도 참석했다.
이들은 하나같이 당대 최고의 음악가이던 드뷔시에게 강렬한 인상을 받았다.
라벨도 마찬가지였다.
당시 그들은 프랑스 인상주의를 대표하는 음악가로 드뷔시를 꼽았다.
라벨은 드뷔시는 자신을 자유롭게 표현하면서도 프랑스 전통과 어울리는 고유의 규칙을 만들었다라고 하며 드뷔시의 음악을 극찬하기도 했다.
라벨은 늘 사랑에 빠져 지냈으나 베토벤처럼 평생 결혼을 하지 않았다.
그는 여성과 남성 모두와 연애를 했던 것으로 보인다.
파리의 사창가를 자주 드나들었다는 기록과 오랜 연인이었던 남자에 대한 이야기가 전해진다.
양성애자네,,
책을 읽다보니까 소크라테스, 레오나르도 다빈치, 이젠 라벨까지 동성애를 했었다는 걸 알게 됐다.
앞으로 얼마나 더 동성애자들인 걸 알게 될까,,
은연중에 사회주의책도 많이 읽게 되고말이다.
소크라테스의 아내가 악처라고 하는데 아내가 악처라서 소크라테스가 동성애가 된건지 그가 동성애라서 아내가 악처가 된 건지 모르겠다.
저번에 읽은 책에서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67세까지 살았던데 이상한 병에 안 걸렸는지 모르겠다.
미켈란젤로랑도 사이가 엄청나게 안 좋았었다.
정상적이지 않으니까 성격도 안 좋은 것 같다.
이 세상의 주인이신 하나님이 동성애를 하지 말라시쟎아,,
좀 안하면 안되겠니,,
요즘엔 졸기만 해도 나한테 얘기를 하셔,,
이 세상에 인간이 이렇게나 많은데 얼마나 얘기할데가 없고 외로우면 잘 때뿐만 아니라 졸기면 해도 얘기를 하시겠어,,
하나님 얘기 좀 들어드려,,
라벨은 유난히도 고양이를 사랑했다.
여러 고양이 가운데서도 샴 고양이만 길렀다고 한다.
고양이를 몹시 아낀 그는 고양이의 말을 이해하고 할 줄도 알았다고 한다.
누군가의 거짓말이겠지만 라벨은 고양이 울음소리의 높낮이를 일정 신호로 나누고 그 의미를 찾았다고 한다.
1916년 그는 프랑스의 작가 시도니 가브리엘 콜레트에게 동화를 주제로 한 오페라의 음악을 청탁받았다.
결혼은 하지 않았지만 어린이를 좋아했던 라벨은 흔쾌히 승낙했다.
요즘엔 어린이를 좋아한다고 하면 소아성애자일까봐 무섭다.그 후로 9년이 지난 1925년 3월 21일에 콜레트의 대본과 라벨의 음악이 한 무대에 올랐다.
모나코의 몬테카를로 극장에서 판타지 오페라<어린이의 마법>이 세상에 처음 공개된 것이다.
이 오페라는 공부하기가 싫어서 말썽을 부리던 아이가 온갖 사물과 동물, 식물로부터 공격 아닌 공격을 당하게 되는 이야기다.
오페라의 인기 아리아인 ‘야옹 듀엣'은 고양이를 사랑하는 라벨의 마음이 듬뿍 담긴 노래이다.
1막 마지막 즈음에 검은 수고양이와 하얀 암코양이가 등장하여 함께 부르는 이중창이 ‘야옹 듀엣’이다.
한번 이 아리아를 들어보면 깜짝 놀란다.
실제로 고양이의 울음소리를 듣는 것 같다.
들어보니까 놀라는게 아니라 성악으로 장난을 친 것은데,,
미야옹거리다가 끝난다.
이 곡을 부르면 관중석에 앉아 있는 사람들이 전부 다 웃는다.
나도 웃고 옆에 있던 엄마도 웃는다.
내가 사랑하는 고양이를 모독하는 노래같다.
샴고양이들과 즐거운 한때를 보내던 라벨의 모습이 보인다고 한다.
암튼 정상은 아니다.
라벨의 아름다운 피아노곡을 들으면 음악에 몰입하지 못하고 양성애자, 양성애자, 양성애자, 동성애자, 동성애자만 자꾸 떠오를 것 같다.
난 평안한 전원이 떠오르는 어떤 곡을 들으면서 저 곡을 만든 사람이 누구인지가 궁금했다.
그 사람은 라흐마니노프였다.
아메리카 드림을 이룬 모스크바 신사, 라흐마니노프는 그 어떤 존재로도 대체할 수 없는 위인이다.
클래식 음악사를 빛낸 독보적인 작품들을 쏟아낸 작곡가다.
그가 남긴 여러 작품들은 음악학도가 반드시 공부해야 하는 과제이기도 하다.
그러나 연주자가 즐겨 연주하는 작품이라고는 말할 수 없다.
솔직히 연주하기에는 매우 어렵다고 한다.
조성진이 연주하는 걸 듣는데 손가락이 움직이는 걸 보기만해도 어려워 보인다.
라흐마니노프의 작품이 무대에 오르는 일은 앞으로도 많겠지만 모차르트나 슈만에 비해서는 아닐 것이다.
연주하기가 너무 어렵고 많은 연습 시간이 들기 때문이다.
나도 중고등학교때까지 교회에서 피아노반주를 했는데 얼마전에 피아노를 치려고 하니까 더듬더듬 치고 있었다.
피아노는 계속 많이 안 치면 안되는 것 같다.
그는 20세기 초 유럽과 미국에서 대단한 팬덤을 몰고 다녔던 피아니스트이기도 하다.
그가 묵는 호텔 로비는 그를 만나려는 팬들로 북새통을 이루곤 했다.
한마디로 그는 완벽한 클래식 음악가의 상징이었다.
예술적인 면에서도 훌륭했고 거기에 상응하는 팬덤과 재력까지 얻을 수 있었다.
라흐마니노프는 러시아 왕실과 친척 관계인 귀족 가문에서 태어났다.
당시 귀족은 자녀에게 반드시 음악을 가르쳤다.
악보를 읽을 수 있고 악기를 연주하는 것 그리고 음악을 즐길 수 있는 취미는 귀족이 갖춰야 할 에티켓 중 하나였다.
마찬가지로 라흐마니노프도 유복한 환경에서 음악을 배우며 자랐다.
네 살부터 피아노 연주를 했던 음악 신동인 그는 1892년에 모스크바 콘서바토리를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했다.
라흐마니노프는 꽤 미남형이었다.
체구도 좋은 편이었다.
키가 무려 192cm였다.
신장뿐만 아니라 손가락도 엄청 긴 편이었다.
피아니스트로서 할 수 있는 일이 더 많았을 것이다.
이러한 신체적 특징으로 그는 당대 굉장한 인기를 누리는 피아니스트로 살았다.
라흐마니노프를 한창 듣고 있는데 같이 로펌에서 인턴했던 애한테 연락이 왔다.
변호사가 되고 책을 냈다고 했다.
요즘엔 그런 전화를 받아도 담담하다.
나도 될거니까,,
오늘날에도 라흐마니노프가 남긴 피아노 작품은 여전히 연주하기 어려운 작품이다.
피아니스트의 독주회 레퍼토리로 인기가 없는 것도 어려운 것 때문일 것이다.
연주 레퍼토리로 인기가 없는 현상이 라흐마니노프의 손가락 길이와 관계가 없다고는 할 수 없다.
이렇게 승승장구하던 라흐마니노프의 인생도 늘 좋았던 것만은 아니다.
300년 가까이 러시아를 지배하던 로마노프 왕가가 몰락하자 그 또한 전 재산을 볼셰비키에게 몰수당했다.
또 공산주의는 사람들의 불행과 함께 나타난다.
왕가의 친척이었으니 왕가의 운명과 쇠락을 함께 맞이한 것이다.
그동안 누려왔던 모든 특권과 계급이 하루아침에 사라졌다.
러시아 사람인 그는 셈에 아주 빨랐다.
유럽에서 누리던 인기에 힘입어 다음 해 11월 1일 오슬로에서 뉴욕으로 출발하는 배에 탑승했다.
미국의 따뜻한 환대를 받으며 미국인처럼 살다가 시민권도 획득했다.
또 스타인웨이 아티스트로 여러 혜택도 누렸다.
안정적으로 미국에 정착한 그는 미국 신시내티 심포니 오케스트라의 지휘자로도 활동했다.
보스턴 심포니 오케스트라를 위해 30주 동안 110번 지휘자로도 활동했다.
무엇보다 당시 사람들은 그의 피아노 연주에 열광했다.
손가락도 길고 키도 큰 러시아 출신 스타 음악가가 펼쳐 보이는 기교의 향연에서 대단한 희열을 느꼈을 것이다.
그때도 키 큰 건 먹히는구나.
라흐마니노프는 작곡가로도 활발한 활동을 했는데 그럼에도 그는 언제나 자신은 피아니스트라고 소개했다.
아내의 폭로로 알게 된 것도 있다.
라흐마니노프의 부모님은 귀에 못이 박히게 주의를 했던 말이 있다.
그가 거짓말을 입에 달고 살았거나 혹은 거짓말을 꽤 자주 했던 사람이라고 했다.
그래서 부모님의 주의를 자주 들었던 것이다.
저자의 지인중에 미국 유학을 마치고 돌아 온 강사께서 강의 시간에 라흐마니노프의 다큐멘터리 비디오테이프를 틀어주었는데 정말 인상적인 내용이었다.
바로 라흐마니노프의 거짓말에 대한 부분이었다.
라흐마니노프가 세상을 떠난 후 그의 아내인 나탈리아가 한 방송사와 인터뷰를 한 장면을 담았는데, 나탈리아는 아주 재미있는 이야기를 했다.
바로 라흐마니노프가 평소 연습을 거의 하지 않는다고 사람들에게 거짓말을 했다는 내용이다.
나탈리아는 라흐마니노프는 연습하는 작품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잠도 안자는 스타일이었다고 했다.
그는 매일 두세 시간씩 연습한 것이 아니라 그는 스스로 원하는 경지에 이를 때까지 오직 연습만 했던 사람이라는 말을 남겼다.
라흐마니노프는 손가락이 길어서 대단한 기교를 부릴 수 있었던 것이 아니었다.
오직 피나는 노력을 통해 연주 실력을 갈고 닦았던 노력파였다.
하루에 두세 시간만 연습하는 것이 아니라 두세 시간밖에 안자며 연습에 매진했던 집념의 러시아 사람이었던 것이었다.
“나 시험공부 하나도 못 했어!”하며 백 점 맞고 장학금 받던 친구들 한 두 명은 알고 있다.
내 주변에는 그런 친구가 없다.
난 지방에서 고등학교를 나왔는데 내가 나온 대학이나 과를 가려면 전교 5등안에 들고 반에서는 2등안에 들어야 갈 수 있었다.
우린 서울애들은 공부를 엄청 잘할거라고 생각을 하고 쉬는 시간, 점심시간, 체육시간에도 공부만 했다.
시험공부를 하나도 안 했어가 아니라 우린 서울로 가려면 공부만 죽어라 해야한다는 얘기를 주문처럼 했다.
어딘지 모르게 라흐마니노프가 친근하게 느껴지는 기분이다.
연습을 많이 하고도 안 한척 한 것은 천재라는 소리를 듣고 싶어서라고 했다.
그런 음악을 만드는 건 천재지 뭘그렇게 거짓말을 했는지 웃픈 음악가다.
이 책을 읽고 나서 라벨은 버리고 라흐마니노프는 계속 데리고 가야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