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이 쉬워지는 책 - 맥락과 흐름만 잡아도 성경 쉽게 읽을 수 있다
존 팀머 지음 / 터치북스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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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당 서평은 출판사에서 제공받은 도서를 읽고 작성되었습니다.



난 매일 성경을 읽는다. 나에게 있어서 성경은 그냥 책이 아니라 하나님 그 자체이다. 책을 많이 읽었지만 다른 책들은 지식을 얻는 책이지만 성경은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나고 실존하고 실체가 있고 그대로 지켜야 하는 말씀이다. 하나님은 말씀으로 이 세상을 창조하셨다. 난 오로지 말씀만 믿는다. 이 책을 읽고 성경을 더 깊이 이해할 수 있으면 족한 것 같다. 맥락과 흐름만 잡아도 성경을 쉽게 읽을 수 있다. 성경의 일관된 흐름과 관통으로 주제를 파악하며 성경 전체를 쉽게 이해하면 성경읽기와 묵상이 즐거워진다.

저자 존 팀머는 여러 세대에 걸쳐 말씀의 씨앗을 다음 세대에게 충실하게 심어 온 가정에서 태어났다. 네델란드 하클렘에서 태어난 그의 12세에 나치는 네델란드를 침공했으며, 청소년기를 추위, 굶주림, 위험, 두려움과 함께 보냈다. 거리 전도와 YFC에 참여해 신앙생활의 열심을 냈다. 1952년 미국으로 이주해 칼빈신학교와 하트퍼신학교 졸업 후 암스테르담의 자유대학교에서 신약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14년 동안 일본 선교사로 기독개혁교회(CRC교단)를 섬겼고, 미국으로 돌아온 후 리지우드기독개혁교회와 우드론 기독개혁교회에서 목회를 한 뒤 1995년에 은퇴했다. 유머 감각이 뛰어난 스토리 텔러인 그는 2009년 칼빈신학교 우수동문상을 수상했고, 그의 설교는 신선함과 깊이 그리고 언어적 경제성으로 유명하여 신학생들의 모델이자 설교자들의 참고자료로 활용된다.

교회 장년부 교육이라고 하면 대개 성경 본문을 정해 놓고 공부하는 방식을 떠올린다. 교회에서는 오랫동안 장년주일학교를 이런 방식으로 운영해 왔다. 물론 이런 형식도 적절치 못한 것은 아니다. 성경은 기독교 신앙의 유일한 근원이자 그리스도인들에게는 평생의 지침서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교회 교육에는 기독교 교리, 교회사, 교회행정, 기도, 기독교 윤리 등 다양한 과정이 포함되며, 그럼에도 각 과정은 주제에 대한 성경의 가르침에 기초한다.

이것은 우리가 성경신학 공부로 돌아가기 위한 이유이기도 하다. 성경신학이야말로 그리스도가 주인되시는 모든 교회교육의 열쇠이다. 『성경이 쉬워지는 책』은 하나의 맥락을 중심으로 성경을 흝어보는 책이다. 이 책은 성경에 대한 개관을 대략 날짜, 이름, 사건 등을 역사적 순서대로 개관하면서 성경의 숲을 본다.



중요한 가르침과 사건들의 연관성을 짚어보면서 이야기의 기본 뼈대를 세워간다. 성경을 관통하는 전체 의미를 살피면서 그 속에 담긴 정신과 의미를 파악하여 총체적으로 보는 방법이다. 우리가 성경을 읽거나 공부할 때 한 본문, 한 단락, 한 장 나아가 크게는 한권 정도로 나누어 보는 경향이 있다. 성경은 한 분의 저자가 하나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한 권의 책이다. 우리는 성경을 하나님 말씀을 담은 한 권의 책으로 전체 맥락 가운데 살펴볼 필요가 있다.

성경의 전반을 살펴보면서 하나님의 말씀의 총체성이라는 맥락에서 공부해야 한다. 팀머의 선교사서 경험은 그가 성경 전체를 이해하는 데 분명하게 드러난다. 즉 성경은 아직 ‘내 백성’ 이 되지 않은 사람들과 하나님 나라가 확립되지 못한 땅 그리고 그 땅의 사람들을 향한 하나님의 은혜로운 언약이자 왕의 통치로 바라보고 있다. 사람들은 대부분 선별적으로 성경을 읽는다. 어떤 책은 즐겨 읽고 어떤 책은 좀처럼 손이 가지 않는다. 성경 전체가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입술로 고백하지만, 실제로는 성경 일부에만 관심을 제한하고 나머지는 무시한다.

그 결과는 매우 가치 있는 대부분 본문에는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다. 우리가 관심을 기울이는 성경 본문의 깊은 의미를 놓치는 경우가 많다. 성경 본문의 깊은 의미를 놓치는 경우가 많다. 앞으로 이어질 전체적인 맥락을 따로 분리하기 때문이다. 성경 본문의 의미를 재발견하고 성경을 묶음집이 아닌 하나의 이야기를 담은 한 권의 책으로 볼 수 있어야 한다. 창세기 1장을 신화로 보는 것이 유행이다. 하지만 창세기는 신화가 아니다. 신화란 신에 대한 사유나 표상이 반영된 이야기다. 그러나 창세기는 신화와는 정반대다.

옛사람들의 사유가 만들어낸 신화를 거부하고 반박하며 파괴한다. 창세기 1장은 이방종교들의 핵심을 망치로 깨부수고 있다. 하나님은 실제로 이렇게 말씀하신다. “나는 내 앞에 다른 모든 것들을 창조한 너의 주 하나님이다.” 그러므로 너는 내 앞에 다른 신을 두지 말라. 다른 신은 없기 때문이다. 이집트 사람, 바벨론 사람, 그리고 페르시아 사람들은 인간의 생사화복을 결정하는 신으로 태양, 달, 별 등을 신으로 섬겼다. 또 가나안 민족은 출산과 번식이라는 자연적 과정을 거룩하다고 믿었다.

창세기 1장의 주장은 이스라엘 주변 나라들이 신이라고 믿는 것들은 결코 신이 아니다. 그저 인간과 마찬가지로 다른 피조물일 뿐이다. 창조주라는 범주의 신은 오직 한 분 하나님만 있으며, 다른 모든 것은 만들어진 것이다. 이스라엘 민족은 반복적으로 주변의 정치적 강대국들이 믿는 신들의 공격을 받았다. 창세기 1장은 이스라엘 민족에게 피조물을 신적 위치까지 높이고 숭배하는 유혹에 대해 대적하라고 명령한다. 태초에는 새 하늘과 새 땅이 열리는 마지막과 마찬가지로 인간의 손으로 지어진 성전이 필요하지 않았다. 그러한 성전은 타락 이후에야 필요했다.

태초에 창조를 성전으로 묘사하고 있는 창세기 1장과 새 창조를 성전이 없는 거룩한 성으로 비유하는 요한 계시록 21장 사이에서 잃어버린 피조물을 인간의 역사 안으로 침투하시는 드라마가 펼쳐진다. 창조는 단지 태초에 하나님이 이 세상을 존재하도록 하셨다는 것만을 의미하진 않는다. 창조는 지속적인 혼돈의 위협에 대항해서 하나님이 계속 창조를 지탱하고 계심을 의미한다.

하늘과 땅을 창조하신 하나님은 ‘그의 영원하신 뜻과 섭리로 천지의 모든 것을 보존하시고 다스리신다.’ 하나님이 “빛이 있으라” 하셨을 때 공허한 흑암 속에서 세상을 빚어내는 일을 시작하셨다. 밤은 지금의 창조 가운데 일부로 남게 된 흑암의 흔적이라고 말할지 모른다. 매일 밤 피조물의 윤곽은 형태 없이 사라진다. 그래서 매일의, 아침은 일종의 새로운 창조를 의미한다. 밤은 이 세상에 혼돈의 어둠 같은 것을 다시 가져오기 때문이다.



빛이 형태 없는 흑암 속에서 피조물을 비추고 드러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밤이 요한계시록에서 표현하고 있는 새 창조의 일부가 될 순 없다. 세 창조에서는 하나님의 영광과 어린 양이 있기 때문이다. 해나 달의 비침이 쓸 데 없으니 이는 하나님의 영광이 비치고 어린 양이 그 등불이 되심이라(계21:23) 이제 창세기 1장에서 일곱 번 (3,6,9,14,20,24,26)절의 “하나님이 이르시되”라는 표현이 이스라엘의 역사와 어떤 관계가 있는지 알아야 한다.

이스라엘 역사는 한마디로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불순종의 역사였다. 창세기 1장은 하나님이 말씀하신 것의 제한을 넘어서면 안전하지 않고 오직 혼돈, 파괴 나아가 사망만이 있을 뿐임을 강조한다. 이 말은 우리의 삶에 오직 두 가지 선택이 있음을 제시한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할 것인가.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할 것인가, 혼돈의 권세에 굴복할 것인가? 이 선택은 궁극적으로 하나님의 백성과 열방에 어떤 일이 일어날지를 결정짓는다.

본문의 내용을 읽고나면 그 장의 내용을 공부하는 공간이 있다. ①창세기 1장의 중심 주제는 무엇인가? ②창조 이야기는 어떤 점에서 출애굽 사건과 닮았는가? ③저자는 우리가 성경을 읽을 때 어떤 실수를 저지르는지에 대해 언급했다. ④창세기 1장을 다룬 이 장에서는 많은 사람의 큰 관심거리, 곧 “그리스도인은 우주의 기운에 관한 과학적 설명과 창조에 대한 성경적 설명을 어떻게 조화 시킬 수 있는가”의 문제를 다루지 않고 있다. 이 문제를 다루어야 한다고 생각하는가? 저자는 왜 문제를 다루지 않았는가?

이스라엘 자손들아 너희는 내게 구스 족속 같지 아니아냐 내가 이스라엘을 애굽 땅에서, 블레셋 사람을 갑돌에서, 아람 사람을 기르에서 올라오게 하지 아니하였느냐 보라 주 여호와의 눈이 범죄한 나라를 주목하노니 내가 그것을 지면에서 멸하리라(암 9:7-8) 하나님은 모든 피조물을 “각기 종류대로” 창조하셨다. 그리고 우리도 동일하게 모두 특별하게 만드셨다. 우리를 창조하신 하나님의 평가는 “보시기에 좋았더라” 고 말씀하신다.

그런 우리를 자신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가? 나와 지체들이 “보시기에 좋았더라” 고 하신 이유를 말해보자고 한다. 인격적인 하나님은 인간에 의해 만들어진 다른 신들과 달리 당신의 형상을 따라 사람을 창조하시고 복을 주셨다.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은 자신은 하나님을 깨끗게 비추는 거울이 되어 하나님의 형상을 세상에 온전하게 반영하고 있는가? 내가 세상에 비추고 있는 형상은 무엇인가? 자신이 다 생각해봐야 한다.

일곱째 날에 일어난 ‘안식’은 “하나님이 그 일곱째 날을 복되게 하사 거룩하게 하셨으니”라는 말씀에 근거해 구약의 이스라엘 민족에게 주어진 안식일 제도가 신약 시대 이후 주일로 승화되었다. 하나님의 창조와 안식을 생각해 볼 때 주일은 자신에게 어떤 의미가 되어야 하는지 생각해본다. 시편 8편은 창조주께서 드리는 찬양이다. 배운 바에 대한 응답으로 시편 8편을 읽어 본다. 세상을 창조하고 유지하시는 하나님의 권능을 함께 익힐 수 있도록 본문을 읽고 저자의 질문에 답해본다. 아침과 밤이 새로운 창조의 시작이라는 얘기가 새롭고 와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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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그램 독서법 - 하루 10분 가볍게 시작하는 독서 루틴 만들기
박세영 지음 / 프롬북스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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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네이버 책과 콩나무 카페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주관적인 리뷰입니다.



독서를 매일 하지만 아직도 어떤 독서법이 가장 좋은지 모른다는 게 기적이다. 책을 많이 읽어도 모르는 게 이렇게 많고 어떤 인생 방향을 제시하지 못한다는 것도 신기하다. 아직도 읽을 책이 많다는 것도 너무 아이러니하다. 독서법도 끝없이 잘 모르고 공부해야 한다는 것도 의문이다. 이 책을 읽고 독서법을 또 업그레이드하고 싶어서 읽었다. 하루 10분 가볍게 시작하는 독서 루틴 만드는 게 중요하다. 책을 읽다 보면 인생이 달라진다.

저자 박세영은 초등학교 교사이자 도서 크리에이터로 활동하고 있다. 지금은 책에 푹 빠진 독서 예찬론이지만, 어릴 때는 읽기가 너무 싫어서 엄마 잔소리를 피해 도망 다녔다. 그러나 부모님과 선생님 말씀은 잘 들어 공부는 곧잘 했고, 결국 교육대학 졸업 후 초등학교 선생님이 되었다. 정년까지 공무원생활하며 월급 따박따박 받으면서 정해진 길로만 갈 줄 알았는데, 책이 끼어들었다. 아버지의 간호를 위해 병실을 지키던 중 무료함에 집어 든 책 한권이 인생을 송두리째 바꿔 버렸다.

저자는 ‘책을 읽는데 이렇게 흥분된다고?’ 심지어 무게 잡는 인문학이나 고전도 아니었다. 그렇게 책 맛을 알아버린 뒤 이제는 출근하면 교실에서 아이들과 독서 시간을 나누고, 퇴근하면 SNS를 통해 어른들과 독서의 가치를 나누고 있다. 14만 구독자의 오디오북 채널을 운영하고 있으며, ‘책 읽는 어른’ 이라는 브랜드의 유튜브 채널, 인스타그램, 블로그를 통해 도서 콘텐츠를 꾸준히 연재하고 있다.

저자는 워런 버핏, 빌 게이츠, 일론 머스크 등 독서로 세계를 이끌어가고 있는 사람들은 어떤 방법으로 책을 읽을지 궁금하다. 그들의 비법만 흡수하면 누구나 크게 성공할 수 있을텐데, 3대째 전해 내려오는 할머니 특급 요리 레시피처럼 독서에도 그런 특별한 독서법이라는 게 존재할까? 독서법에 관한 글을 쓰면서 도서관에서 관련 책을 숱하게 읽어봤다. 무지개를 쫓는 소년처럼 특별한 독서법을 찾고 싶겠지만, 그런 건 없다.

독서법이란 단지 우리의 일상에 독서가 조금 더 스며들어갈 수 있도록 도와주는 도구일 뿐이다. 독서가 먼저이고 좋은 문장을 만나도 노트에 필사하지 않았다. 포스트잇을 붙인 뒤 나중에 컴퓨터에 저장했다. 책을 읽지 못하는 날이 있어도 자신을 몰아세우지 않는 게 좋다. 누군가 쓴 서평을 읽으면서도 만족해 할 줄 알아야 한다. 저자는 하루라도 책을 읽지 않는 날은 찜찜했다. 그래서 조금씩이라도 읽었다.



자연의 섭리는 모르지만, 인간의 본성만큼 꿰뚫고 있는 한 가지가 있다. 사람은 가벼운 것에 끌린다. 어릴 때 읽었던 『이솝 우화』에도 나온다. 길을 가는 한 나그네에게 바람과 해님은 차례차례 도전을 한다. 나그네의 겉옷을 벗기는 내기였다. 바람은 힘을 주어 나그네의 겉옷을 벗기려 한다. 있는 힘 없는 힘 짜내며 거세게 몰아붙이지만 오히려 나그네는 필사적으로 겉옷을 움켜쥐고 몸을 웅크렸다. 해님은 바람과 다른 전략 썼다. 힘을 빼고 그저 나그네 곁에 있었다. 가벼움 무거움보다 강하다.

현실도 그렇다. 부모님의 결사반대를 무릅쓰고 연애해 본 경험이 있다면 이해하기 더 쉬울 거라 생각한다. 알다시피 부모가 반대하면 반대할수록 연인에게 더 끌리기 마련이다. 바람이 불면 불수록 겉옷이 날아갈까 세게 움켜잡았던 나그네처럼 말이다. 난 연애 경험이 없어서 그런지 부모님이 안 좋아하면 안 좋아할 것 같다. 독서에 성공과 실패를 나누는 기준을 없앤다. 실패는 없다. 한 달에 한 권을 읽었다고 실패는 아니다.

저자가 알고 있는 특별한 독서법은

첫째, 완벽한 하루를 보내기 위해 읽지 않는다.

둘째, 완벽하지 않은 하루를 채우는 맛에 읽는다.

셋째, 완벽한 사람이 되기 위해 읽지 않는다.

넷째, 빈틈 많은 나를 채우는 맛에 읽는다. 이렇게 힘을 빼고 읽으면 독서는 일상이 된다.

독서 알고리즘을 최적화한다. 쇼츠를 끓을 수 없는 이유 중에 하나가 고객 맞춤형 알고리즘 때문이다. 귀신 같이 내가 요즘 뭘 좋아하는지 잡아내어 보여준다. 굳이 애쓰지 않아도 내 입맛에 맞는 반찬들을 딱 차려주니 이보다 좋은 서비스가 없다. 가끔 부모님이 아이에게 잔소리하는 이유도 이와 같다. 책장에 이렇게 책이 많은 데 볼 책이 없다고 불평하는 아이의 말이 꼭 핑계같아서다. 곰곰이 생각해보면 책장은 아이가 꾸몄는지 부모가 꾸몄는지 말이다. 구글, 메타와 같은 공룡기업이 만들어 놓은 알고리즘과 싸우려면 책장 정도 스스로 챙겨야 한다.

책을 읽는 목적은 사람마다 다르다. 인문학을 읽으며 지식을 쌓고 싶은 사람, 비즈니스 책을 읽으며 실무에 적용하려는 사람, 성취감을 얻고 싶은 사람 등등이다. 저자는 3년 전에는 자기계발서를 주로 읽었다. ‘어떻게 하면 성공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을 하면서 계속 읽었다. 저자도 성공하리라 다짐하면서 말이다. 지금은 스스로에게 ‘Why’를 던지면서 읽는다. 저자는 가벼운 마음으로 책을 읽어도 몰입한다.

독서 습관을 들일 때 가끔은 독기도 필요하다. 이 책으로 인생을 바꾸겠다는 마음보다는 10분만큼은 책에 빠진다는 마음으로 읽는다. 『본능독서』를 보면 독서하는 순간만은 지금 읽고 있는 그 페이지에 마음이 있어야 한다. 하루 10분은 한 권을 읽기에는 부족한 시간이다. 주목해야 할 점은 시간의 양이 아닌 시간의 질이다. 매일 책을 읽다 보면 글씨를 쓰는 붓 자체가 달라진다. 100곱센티 면적을 채우려면 5년 전에는 100번을 왔다 갔다 해야 했지만, 지금은 10번이면 된다. 시간이 부족하다고 걱정하지 말고 지금 이 페이지에 마음을 둔다. 바로 읽고있는 그 페이지말이다.

독서에도 체력이 필요하다. 저자는 딸아이와 하루 종일 붙어 지내는 방학 기간이면 더욱 절실하게 느낀다. 저자는 어릴 때부터 약골이었다. 오죽하면 어머니께서 “아들은 공부 안 해도 돼, 건강하게만 자라다오”라고 하셨을까? 그렇게 특별대우 받고 자랐지만 어른이 된 후엔 결국 메니에르증후군까지 겪게 되었다. 코끼리를 30번 돈 것처럼 온 세상이 빙글빙글 돌아서 눈을 잠깐도 멈추지 않는, 생전 처음 들어 보는 병명이었다. 저자는 자신이 아플 때의 ‘자신’을 이해한다. 몸이 온전치 않으면 독서고 뭐고 다 물거품이 된다는 것을,



『울트라 셀프』의 이리엘 작가는 한 인터뷰에서 이런말을 남겼다. 아무리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떠올리고 싶어도 우울하거나 화가 난 상태에서는 쉽지 않다. 다시 말해 ‘좋은 생각이 나오지 않으면 이성이 아닌 감성을 돌아봐야 한다’는 뜻이다.

결국 독서를 잘하기 위해서는 생각이 막힘없이 흐를 공간이 필요하다. 그런데 우리의 감정은 체력과도 밀접하다. 몸이 피곤하면 감정이 쉽게 예민해지고, 감정이 흔들리면 독서 집중력마저 무너진다. 독서가 의지의 문제가 아닌 물리적인 한계에 부딪친다. 이럴 때 버팀목이 되는 것이 체력이다. 이는 단순한 운동에서 끝나지 않고 독서를 지속할 수 있는 핵심 시스템이 되었다.

실제로 하루 30분만 걸어도 두뇌 혈류가 늘고 집중력이 올라간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저자 역시 이 원리를 몸으로 느낀다. 10분이라도 뛰면 코로 들어오는 산소가 마치 뇌 속에 고스란히 전해지는 느낌을 받는다. 기분 탓이겠지만, 감정 역시 기분 탓 좋은 최적의 몸과 마음 상태라고 신호를 주는 셈이다. 축적한 에너지를 막힘없이 흘려보내는 순간, 독서는 비로소 몰입의 단계로 접어든다. 저자는 한때 약한 체력을 원망했다. 20대 후반 메니에르증후군이 왔을 때는 현실을 부정하기도 했다. ‘왜 하필 나에게 이런 일이 벌어지는 걸까.’ 누군가에게는 당연한 체력이 저자에게는 결핍이었다. 그리고 그 결핍은 저자에게 없어서는 안 될 존재가 되었다. 몸에 좋은 습관을 유지하는 데 있어 결핍만큼 큰 원동력은 없었다. 매일, 매년 운동을 거를 수 없는 마땅한 이유가 되었다.

독서는 단순히 ‘책을 펴놓고 보는 시간’만 늘린다고 잘 되는 게 아니다. 자신에게 맞는 습관과 루틴, 그리고 컨디션 관리가 필수다. 운동뿐 아니라 식습관 수면습관처럼 자신만의 ‘책을 읽기 적당한 상태’를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 시행착오 끝에 찾아낸 자신만의 독서 시스템은 몸과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며, 그 편안함이 한 장, 한 줄에 더 몰입하게 만들어줄 것이다.

자기계발서에 자주 나오는 말이 있다. “생생하게 상상하면 이루어진다. 저자가 직접 경험한바 목표를 글로 써야 이뤄질 가능성이 생기고, 쓰지 않으면 절대 이루어지지 않는다. 목표를 적는 순간, 그것은 막연한 소망이 아니라 구체적인 행동이 된다." 맞는 말 같다.

독서 지도를 만들면 독서는 글자를 읽는 행위로 끝나지 않는 다. 독서는 행동으로 연결된다. 책에서 얻은 통찰을 현실로 가져와 목표가 없었다면 저자는 여전히 ‘유튜브 한번 해볼까’라는 막연한 생각만 하며 책을 읽었을 게 뻔하다. 자기계발서에서 흔히 말하는 ‘행동하라’를 읽어도 목표가 없었다면 진짜 행동으로 연결되지 않았을 가능성이 크다. 독서 지도에 명확히 그렸기 때문이다. 지금부터 자신만의 지도를 만들어본다. 지도 사용 기한은 1년, 미리 캔버그나 칸바와 같은 사이트를 활용하면 이미지 파일을 쉽게 구할 수 있다. 원하는 목표를 눈치 보지 말고 다 붙여본다. 지도를 볼 때 두근거려야 한다.

인간은 결과보다 과정에서 오는 기대감으로 살아간다. 로또 복권의 가치는 당첨에 있는 것이 아니라 월요일부터 토요일 저녁까지의 설렘에 있다. 다음은 지도를 현실화하는 것이다. 우리는 목표에 등을 돌리는 순간, 0.2초 만에 잊어버린다고 한다. 독서 지도를 한 장의 사진으로 만들었다면, 다음은 생활 곳곳에 목표를 몸에 스며들게 만든다. 지도는 독서의 방향을 잡아주는 시스템이 된다. 책을 즐겨 읽다가도 종종 멈추고 싶은 때가 찾아온다. 저자는 한때 1년에 80권씩을 읽어나가며 독서에 불이 붙었다.

박승오와 홍승완 작가의 『인디 워커, 이제 나를 위해 일합니다』에서 ”자신의 길을 충실히 걸으면 이 길의 끝에 푸른 바다가 놓여있음을 깨닫게 될 것이다."라고 했다. 지도를 보고도 엉뚱한 길을 걸어갈 수도 있다. 목표가 너무 멀어 보여 중간에 포기하고 싶을 수도 있다. 하지만 결국 길은 통한다. 제자리를 맴도는 것처럼 보여도 결국 돌고 돌아서 도착하게 된다. 힘들더라도 지도를 펼쳐 묵묵히 독서를 이어나가야 한다. 자신만의 지도가 없으면 남이 만든 지도에 따라 걷게 되기 때문에 꼭 자신만의 지도를 만들어야 한다. 이 책을 읽는데 왠지 모를 목표에 대한 강렬함과 열정이 생기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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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츠제럴드, 글쓰기의 분투 - 스콧 피츠제럴드는 ‘이렇게 글을 씁니다!’
프랜시스 스콧 피츠제럴드 지음, 래리 W. 필립스 엮음, 차영지 옮김 / 스마트비즈니스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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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개츠비 작가라는 걸 알게 되니까 몰입이 되더라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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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츠제럴드, 글쓰기의 분투 - 스콧 피츠제럴드는 ‘이렇게 글을 씁니다!’
프랜시스 스콧 피츠제럴드 지음, 래리 W. 필립스 엮음, 차영지 옮김 / 스마트비즈니스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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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스콧 피츠제럴드는 미국의 소설가다. 1896년에 태어난 F. 스콧 피츠제럴드는 제1차 세계대전 후 ‘광란의 20년대’에 두각을 나타냈다. 20세기 초 미국 문학을 대표하는 작가로, 화려하고 향락적인 재즈 시대의 아이콘이다. 자서전적 소설 〈낙원의 이편〉 (1920)을 발표하면서 비평가와 독자들의 호평을 받았다. 유럽과 미국을 오가며 활동하던 그는 1925년 발표한 〈위대한 개츠비〉로 세계적인 작가의 반열에 올랐다. 이 작품은 오늘날까지도 20세기 미국 소설을 대표하는 걸작으로 평가 받는다. 위대한 개츠비는 어마어마한 작품 같았다.

이후 〈밤은 부드러워〉( 1934)를 발표했으나 상업적으로 실패한다. 잇따른 작품의 실패와 경제적 어려움, 그리고 부인 젤다의 병으로 절망에 빠진 피츠제럴드는 회복 불가능한 알코올 중독자가 되었다. 그럼에도 그는 할리우드에서 시나리오 작가로 활동하며 마지막까지 글쓰기를 멈추지 않았다. 1940년〈더라스트타이쿤〉을 집필하던 중 심장마비로 생을 마감했다. 이 책을 엮은 사람은 래디 W. 필립스는 저널리스트, 작가, 프로 포커 플레리어다. 〈헤밍웨이, 글쓰기의 발견〉 편집자였고, 그는 위스콘신 주의 몬로에 살고 있다.

제1차 세계대전 후 미국은 대량생산고 대량소비로 호황이 지속되면서 ‘광란의 20년대 ’라고 불렸다. 피츠제럴드의 경력은 이런 시대적 흐름과 궤를 함께한다. 깁슨 걸이라 불리는 순수하고 이상적인 여성상을 시작으로, 화려하고 요란한 1930년대를 보냈으며, 1940년대의 어둠 속에서 그의 생애는 끝자락에 이르렀다. 흥미롭게도 그의 삶은 그가 태어난 국가의 운명을 거울처럼 비춘다.

그는 언제나 본능적으로 자신이 속한 국가를 반영했다. 또한 스스로 외부 세계와 동일시하려는 경향이, 보통 사람들보다 강하다고 말하곤 했다. 이 경향은 상호적이었다. 그의 명성이 높아지고 그의 책이 날개 돋친 듯 팔려 나가면서, 미국이라는 나라도 그를 통해 자신을 투영하려 했다.



이 책은 피츠제럴드가 글쓰기에 관하여 남긴 의견과 통찰을 모두 담고 있다. 이전에 출간된 《헤밍웨이, 글쓰기의 발견 》과 짝궁 책이다. 와 대단한 책이다. 피츠제럴드와 헤밍웨이는 사람의 관점은 각기 달랐지만, 다른 작가들에게 아낌없이 조언을 나누었다는 점에서 공통분모를 가진다. 헤밍웨이는 가르치는 일을 즐겼다는 사실은 너무 유명하다. 피츠제럴드 전기를 쓴 안드레 르봇은 피츠제렐드 역시 ‘배운 것을 나누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사람’ 이라고 설명하며, 앤서니 포웰의 말을 인용한다.

가장 미국적인 두 작가가 지닌 글쓰기에 대한 신념의 차이가 궁금해진다. 이 두 작가는 세계를 향한 미국적 접근법을 대변한다. 헤밍웨이의 철학은 오늘은 남은 내 인생의 첫날이다라고 했다면 피츠제럴드의 철학은 조금 더 본질적이고 시적이며 헤밍웨이의 것과는 반대되는 개념이다. ‘오늘은 연속적으로 보낸 지난 날들을 끓어내는 날이다.’라고 했다. 그의 철학은 시간이라는 개념과 깊이 얽혀 있어서, 언젠가 말콤코울리는 피츠 제럴드에게 ‘마치 시계와 달력으로 가득찬 방에 사는 사람같다는 ’표현까지 했다.

감정과 경험은 언어 이전의 영역에서 연기처럼 피어오른다. 그것을 인지하기 위해서는 의식이 이해할 수 있는 형태로 글자를 조합해야 한다. 피츠제럴드는 이 과정을 누구보다 탁월하게 해낸 작가다. 혼자라고 느끼던 감정이 사실은 모두의 보편적 감정이었음을 깨닫는 과정이라고, 그는 문학의 아름다움에 관해서 말한다. 그의 작품을 읽다 보면 우리가 가진 고독 과 좌절, 희망과 열정이 결코 개인의 것이 아님을 깨닫게 된다.

그는 재즈 시대의 아이콘으로 결코 평탄하지 않는 삶을 살았다. 운명처럼 글쓰기를 시작했고, 생계를 위해 멈추지 않고 써내려갔다 하지만 결국, 글을 쓴다는 것은 단순한 생계 수단이 아니라 ‘반드시 해야만 하는 이야기를 세상에 남기는 일’임을 깨닫는다. 피츠제럴드는 문학가의 길이란 결국 자기 자신을 온전히 정제하여 독자가 받아들일 수 있는 이야기로 탈바꿈시킨다고 했다. 또한 자신을 ‘문학적 도둑’이라 칭하며, 어디에서든 배움을 얻었다. 엉망으로 쓰인 책을 읽고 글쓰기에 용기를 얻었고, 위대한 작가의 글을 곱씹으며 위대한 이유를 파고들어 자신의 작품에 녹여냈다.

다른 작가를 경쟁자로 인식하기보다는 같은 소명을 짊어진 동료로 봤다. 그런 시각은 정말 좋은 시각같다. 조언을 구했고, 이야기를 나누었으며, 자신 역시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 그는 사소한 것들을 중요한 것처럼 포장하는 게 특기였는데, 그런 책들도 거의 베스트셀러에 가까웠다. 그때 결심하고 책을 쓰기 시작 했다. 책을 쓰려면 메모부터 시작하는 거다. 아마 아주오랫동안 메모해야 할지도 모른다. 무언가 떠오르거나 기억이 나면, 반드시 적절한 자리에 적어 둬야 한다.

생각이 났을 때 바로 적어 둔다. 나중에 다시 떠올리면 처음처럼 생생하지 않을 수도 있다. 작가는 무엇 하나 허투루 허비하지 않는다. 피츠제럴드는 위대한 개츠비를 빨리 완성하고 싶었지만 계획대로 되지 않았다. 아름다워도 맥락에 맞지 않으면 잘라내야 한다. 아름다워 보이는 것 , 적당히 괜찮은 것, 심지어 뛰어나 보이는 것도 잘라낼 수 있어야 한다.



예술가의 창작이 지적인 작업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예술가는 기존 스타일을 자기만의 방식으로 다듬고, 세상을 바라보는 자신만의 시선으로 재료를 고르는 것이다. 결국 모든 작가에게 글쓰기는 삶 그 자체나 마찬가지다. 아주 형편없는 사람들이 아니라면 하지만 결국 대부분 소화하기 쉬운 음식만 곱씹으며 산다. 사건이나 인물은 삶에서 올 수도 있다. 하지만 작가는 언제나 그가 읽은 최근 작품의 관점에서 그걸 해석한다. 지성인에게는 수준을 낮춰서 글을 쓰는 게 무척이나 어려운 일인데, 사람들은 잘 모를 것이다.

랭스턴 휴스나 스티븐 위트먼만 봐도 비극적인 책 한 권 쓰고 소식이 없었다. 왜냐하면 진정한 자아나 정신을 가지지 못한 채 신경질적으로 주린 배만 움켜쥐어야 했기 때문이다. 배가 부르고 허영으로 기름칠을 좀 하고 나면, 세상은 낭만적으로 보이기 시작한다. 그러면 얄팍한 대중물 말고는 그 어떤 것도 진정성 있게 쓸 수 없게 된다. 피츠제럴드는 〈위대한 개츠비〉의 제본은 다른 책들과 완전히 동일하게 해야 한다고 했다. 겉표지랑 책에 찍히는 문양도 동일하게 하지만, 겉표지 추천사가 나오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했다. 멘켄, 루이스, 하워드, 뭐 이런 사람들 다 필요 없다고 했다.

만일 〈위대한 개츠비〉가 상업적으로 실패한다면 이유는 두 가지중 하나, 혹은 두 가지 때문일 것이다. 첫째, 제목이 그저 그렇다고 생각해 본다. 좋다기보다 오히려 나쁠 것이다. 둘째, 두 번째가 더 중요한 이유인데, 책에는 비중 있는 여성 인물이 전혀 없다. 요즘 소설 시장은 여성이 이끌어 가고 있는데 말이다. 비극적 결말은 사실 크게 문제가 되지 않을 것 같다.

겉표지 문구를 추천해보자면 ‘활기가 넘치는 초기 작품에서는 전례 없던 도전적인 미국소녀상을 그려냈고, 이후 진진한 분위기의 〈위대한 개츠비〉같은 작품을 탄생시키며 미국의 6대 거장 중 한 사람으로 자리매김했다.

이처럼 예기치 못한 전개, 다채로운 빛깔, 그리고 고요와 격정이 교차하는 리듬을 보여준 작가는 지금까지 없었다. 어조는 조금 조정해야겠지만 피츠제럴드는 해냈다. 글을 쓰며 산다는 것은 삶에서 자신의 목소리를 찾는 것이다. 피츠제럴드의 글쓰기는 성실함과 장인정신에서 비롯되었다. 난 저자가 위대한 개츠비의 작가인지 모르고 이 책을 읽었다가 개츠비의 작가인 걸 알고 반가웠다. 항상 유튜버들도 그렇고 상대는 나를 모르지만 나혼자 안다고 해도 혼자서 반갑다. 이 책도 그런 느낌이었다. 개츠비의 얘기를 모두 알아서 저자가 가깝게 느껴졌거 그의 글쓰기가 더 와닿는 느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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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는 아이가 미래를 지배한다 - 한국 최고의 문해력 전문가 신종호 교수의 자녀교육 특강
신종호 지음 / 시원북스 / 202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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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공부를 하거나 책을 읽을 때 가장 중요한 게 읽고 바로 이해를 얼마나 하느냐인 것 같다. 문해력만 있으면 공부를 하거나 책을 읽거나 시험을 보는데 문제가 없을 것 같다. 잘 읽고 이해하는 방법만 알면 모든 문제점이 끝나는 것 같다. 이 책을 보고 문해력이 뛰어나는 방법이 없는지 찾아보고 싶어서 읽었다. 저자 신종호는 서울대 교육학과 교수, EBS〈미래교육 플러스: 문해력〉출연 문해력 전문가, tvN〈유퀴즈!〉출연 서울대 공부법 멘토이다.

저자는 20년 이상 교육심리학을 연구해온 국내 최고의 교육학자로, 서울대학교 사법대학 교육학과 교수이며, 서울대학교 학습창의센터에서 미래 인재의 학습 역량과 창의성 개발을 위한 실천 방안 연구에 매진하고 있다. 대표 저서로는 《저 감정적인 사람입니다.》 《이런 공부법은 처음이야》 《교육심리학.》《폭력 없는 행복학교 만들기》《창의 혁명》 등이 있다.

유발 하라리의 통찰은 문해력에 대한 우리의 전통적인 이해를 한 단계 더 발전시킨다. 그가 말하는 문해력은 단순히 글을 읽고 이해하는 능력을 넘어, 급변하는 시대를 헤쳐 나가기 위한 종합적인 생존 기술에 가깝다. 이는 마치 디지털 시대의 생존 키트와도 같은 것이다. 새로운 문해력은 비판적이고 사고력이라고 말할 수 있다. 정보의 홍수 속에서 우리는 끓임없이 ‘이 정보는 믿을 만한가,’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무엇인가,’를 판별할 줄 아는 능력이 있어야 한다.

소셜 미디어에서 퍼지는 가짜뉴스를 식별하거나, 인공지능이 생성한 콘텐츠의 신뢰성을 평가하는 능력이 문해력이다. 문해력은 창의적 사고력이다. 서로 다른 정보들을 연결하여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는 능력은 미래 사회에서 더욱 중요해진다. 인공지능이 단순 작업을 대체하게 되면서, 인간만이 할 수 있는 창의적인 문제해결과 혁신적인 아이디어 창출의 중요성이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세계경제 포럼은 가장 수요가 많은 직무 역량으로 ‘창의성’과 ‘혁신성’을 꼽을 수 있다.



자기주도학습은 더 이상 누군가가 무엇을 배워야 할지 알려주기를 기다릴 수 없는 시대임을 각성시킨다. 스스로 학습의 방향을 설정하고, 필요한 자원을 찾아 활용하며, 자신의 학습 과정을 관리할 수 있어야 한다. 자신의 학습 과정을 관리할 수 있어야 한다. 이러한 확장된 개념으로서의 21세기 문해력은 마치 내게이션과도 같다고 할 수 있다. 불확실성이라는 안개 속에서, 우리는 끓임없이 새로운 길을 찾아야 한다. 이때 비판적 사고력은 현재 위치를 발견하게 해주며, 자기주도학습력은 실제로 그 길을 따라갈 수 있게 해주는 것이다.

미래 교육은 이러한 종합적 문해력을 키우는 데 초점을 맞춰야 한다. 단순한 지식의 전달이 아닌, 학생들이 스스로 생각하고, 판단하며, 새로운 것을 창조할 수 있는 능력을 키우는 데 주력해야 한다. 이는 단순한 교육 방법의 변화가 아닌, 교육의 근본적인 패러디임 전환을 요구한다. 문해력은 단순히 글자를 읽고 이해하는 능력을 넘어서는 복합적인 인지 활동이다. 텍스트의 각 문장, 각 단락과 진지한 대화를 나누며, 그 속에 담긴 의미를 찾아가는 여정인 것이다.

현대 사회에서는 빠른 정보 습득과 효율성을 강조하지만, 텍스트와의 깊은 대화 과정에서 발생하는 ‘인지적 마찰’은 오히려 우리의 사고를 더욱 깊고 풍부하게 만드는 촉매체가 된다.

텍스트의 난해한 부분을 만났을 때, 우리의 뇌는 적극적으로 활성화된다. 우리의 뇌도 이러한 도전적 상황에서 가장 활발하게 발달한다. 글의 맥락을 파악하고, 숨겨진 의미를 해석하며, 경험과 지식을 연결하는 과정은 그 자체로 귀중한 학습 경험이 된다.

읽기의 중요성을 과학적으로 입증하고 있다. 최근 연구에 따르면, 깊이 있는 독서 활동 중에는 전전두엽의 활성화가 현저히 증가하며, 이는 단순한 생리학적 현상이 아니다. 뇌가 더 복잡하고 창의적인 사고를 할 수 있는 능력을 발달시키고 있다. 특히 아이들의 경우, 이러한 뇌의 활성화는 인지발달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반면, 요약본이나 짧은 글만을 접하는 경우, 이러한 인지발달의 기회를 잃게 된다. 예상치 못한 만남을 통해 시야를 넓히듯, 책 속에서 새로운 관점을 발견하고 사고의 지평을 넓혀가는 여정 자체가 독서의 진정한 의미가 된다.

문해력에서 가장 기본적인 단계인 표면적 처리는 단순히 글자의 모양을 보는 것이다. 아이들이 스마트폰으로 빠르게 스크롤을 하며 보는 것이다. 수많은 정보들을 스쳐 지나가듯 보는 것이 여기에 해당한다. 이러한 표면적 읽기는 현대 사회에서 가장 흔한 소비 방식이지만, 진정한 이해와 학습으로 이어지기는 어렵다. 뇌에 더 깊은 흔적을 남기게 된다. 연구에 따르면, 소리 내어 읽기는 특히 어린 아이들의 언어 발달과 읽기 이해력 향상에 큰 도움이 된다.

세계적인 요리사의 레시피를 수백 번 읽는 것과, 실제로 주방에 들어가 요리를 해보는 경험이 다르듯이, 텍스트를 단순히 들어가 요리를 해보는 경험이 다르듯이, 텍스트를 단순히 읽는 것과 텍스트와 적극적으로 상호작용하며 읽는 것은 전혀 다른 차원의 학습을 가져온다. 마치 요리할 때 재료의 상태를 판단하고, 불의 세기를 조절하며, 양념의 균형을 맞추는 것처럼, 능동적인 독서 과정에서는 텍스트의 맥락을 파악하고, 숨겨진 의미를 추론하며, 작가의 의도를 해석하는 등 수많은 인지적 판단과 조정을 이루어진다.

독서도 요리와 비슷하다. 단순히 텍스트를 읽고 내용을 암기하는 것은 레시피를 읽기만 하는 것과 같다. 실생활의 예시를 찾아보며, 다른 텍스트나 지식과 연결고리를 발견하는 과정은 실제로 요리를 해보는 것과 같은 깊이 있는 독서 경험을 제공한다. 이러한 생성적 읽기를 통해 우리는 텍스트의 표면적 의미를 넘어 심층적 의미에 도달할 수 있다.



뇌과학 연구는 이러한 생성적 독서의 가치를 과학적으로 입증한다. 특히 고차원적 사고를 담당하는 전두엽과 기억 형성의 중추인 해마가 적극적으로 활성화되면서, 더 강력한 지속적인 신경망 연결이 형성된다고 한다. 생성적 독서 과정은 우리 뇌에 더 선명하고 견고한 ‘독해의 길’을 만든다. 텍스트의 내용을 자신의 언어로 다시 표현하고, 다른 텍스트나 지식과 연결 짓고, 실생활의 예시를 찾아보는 과정은 이 길을 더욱 단단하게 다지는 작업이다.

문해력은 상상력을 자극하는 ‘만약에’ 질문도 매우 유용하다. 가정적 질문들은 아이들의 상상력을 자극하고 새로운 자신의 관점에서 이야기를 바라보게 한다. 이는 비판적 사고력과 창의성을 동시에 키우는 효과적인 방법이다. 문해력 발달에서 이 말은 더욱 절실한 진리로 다가온다. 마치 거울처럼, 아이들은 부모의 모든 행동과 태도를 섬세하게 반영하며 성장한다. 특히 독서 습관과 학습 태도는 말로 가르치는 것보다 보여주는 것이 훨씬 더 강력한 영향을 미친다. 이것이 바로 자녀 교육에서 부모의 역할이 그토록 중요한 이유다.

부모의 행동이 미치는 영향력은 실로 놀랍다. 매일 스마트폰을 보며 시간을 보내는 부모와, 소파에 편안히 앉아 책을 읽는 부모 사이에는 큰 차이가 있다. 전자의 경우, 아무리 “책을 읽어야 한다”고 강조해도 그 메시지는 공허하게 들릴 것이다. 이는 채소를 먹으라고 하면서 정작 본인은 패스트푸드만 먹는 부모의 모습과 다르지 않다. 아이들의 예리한 눈은 이러한 불일치를 즉각적으로 감지하며, 이는 교육의 효과를 크게 감소시킬 수 있다. 자녀의 독서동기 형성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부모의 역할이다.

아이들의 독서 성취는 인지적 능력뿐만 아니라 정의적 요인과도 밀접한 관련이 있다. 이 연구에 따르면, 초등학교 저학년 시기부터 독서에 대한 태도와 자신감이 읽기 능력과 상관관계를보이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부모들에게 중요한 시사점을 제공한다. 아이들이 독서에 대해 긍정적인 태도를 형성하는 결정적 시기에 부모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기 때문이다. 문해력은 단순히 글자를 읽고 쓰는 기술이 아니다. 그것은 마치 퍼즐을 맞추듯 의미를 찾아가는 여정이며 , 때로는 미로를 탐험하듯 새로운 해석을 시도하는 모험이다. 이러한 도전적인 과정에서 가장 필요한 것은 실수해도 괜찮다는 안전감이다.

아이들의 자유롭게 생각하고, 질문하고, 때로는 틀릴 수 있는 환경이 마련되어야 진정한 배움이 시작될 수 있다. 문해력은 단순히 글자를 읽고 쓸 수 있는 능력을 훨씬 뛰어 넘는 개념이다. 글 것은 마치 깊은 바다를 탐험하는 것과 같다. 표면적인 의미를 넘어 텍스트의 깊은 의미를 이해하고, 그속에 담긴 맥락을 파악하며, 문해력은 진실과 거짓을 구분하고 가치 있는 정보를 선별하는 필수적인 도구가 되었다. 저자가 문해력이 요리와 비슷하다고 비유를 해줬는데 그 점이 정말 와닿았다. 책을 읽는 것은 요리를 하듯이 직접 해보는게 정말 중요한 것 같다. 책으로 요리를 하는 것과 같이 책을 들고 읽으면서 일허게 저렇게 머리를 굴려봐야 하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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