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비노 건강법 - 이재동 교수가 알려주는 내 몸 에너지 혁명
이재동.이수지.홍예진 지음 / 경희대학교출판문화원(경희대학교출판부) / 202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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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이재동 이수지 홍예진이다. 이재동은 경희대학교 한방병원 척추관절센터장, 비만센터 교수, 한의과대학장, 전국한의과대학 한의학전문대학원 협회 이사장, 대통령 한방의료자문의 등을 역임하였다. 수많은 연구논문과 임상 경험을 통해 “건강의 비결은 몸 에너지 관리” 라는 신념으로 노비노 건강법을 개발하였다.

맞춤 노비노 탕약, 암환자, 자가면역질환환자를 위한 면역강화 건칠단, 척추환자의 뼈근육 강화를 위한 보골공진단 개발과 봉독 요법 연구를 통하여 한의계에 이바지한 공로로 보건복지부 장관상을 수상하였다. 예방의학에 강점이 있는 한의학 기반 비대면 건강 관리앱 ‘카이닥’을 개발하여 한의학의 대중화와 세계화 뿐만 아니라 질병 없는 세상을 만드는 데 기여하고 있다.

이수지는 경희대학교 한방병원 침구과 임상교수 한방병원 안면마비센터에서 근무하고 있으며, 한방 동안 클리닉을 운영 중이다. 안면신경마비 같은 뇌신경질은 신체 에너지 기능 문제에서 비롯되는 경우가 많다. ‘노비노 건강법’을 통해 환자들의 생활습관을 개선하고, 에너지 기능의 문제를 회복함으로써 건강하고 조화로운 아름다움을 되찾는 방법을 제시하고자 한다.

홍예진은 경희대학교 한방병원 침구과 임상교수 한방병원 척추관절센터와 한의면역암센터에서 근무하고 있다. 척추질환과 암은 단순히 치료에 그치지 않고, 장기적이고 체계적인 관리가 필수적인 질환이다. 이에 따라, ‘노비노 건강법’을 기반으로 환자들의 생활습관을 근본적으로 교정하고, 신체의 조화로운 건강을 회복시켜 질병을 극복하도록 지원하는 데 전념하고 있다.

한의학에서 인체를 소우주로 바라본다. 자연에서 태양의 불 에너지는 땅을 비춰서 내려오고, 땅의 물 에너지는 수증기가 되어 하늘로 상승하였다가 다시 비로 내린다. 몸 에너지가 정상화되면 비만과 질병은 저절로 사라집니다. 생명활동에 필요한 내 몸 에너지 생성, 순환, 균형 조절로 찾는 개인 맞춤 생활 건강법을 랄려주는 책이다.

인체의 오장육부는 일상의 식이, 운동, 수면 등 생명 활동을 통해 기혈이라는 생명 에너지를 생성하고 인체 각 기관에 순환, 공급하며 균형 조절한다. 한의학에서 건강이란 생명 활동에 필요한 기혈 에너지를 잘 생성하고, 생성된 에너지를 경락이라는 에너지 흐름 통로를 통하여 인체의 모든 기관 조직과 세포까지 잘 공급하며, 이러한 에너지의 생성과 순환 공급이 일정한 리듬으로 잘 균형 조절되는 과정을 의미한다.



사실 우리가 겪는 질병은 수백, 수천 가지가 훨씬 넘는다. 하지만 급작스런 큰 사고나 코로나 같은 전염병이 아니라면 대부분 평상시 자신에게 맞지 않는 잘못된 생활 습관이 원인이다. 몸 에너지의 생성, 순환, 균형, 주절 가운데 어떤 문제가 생기면서 질병이라는 형태로 나타나는 것이다. 현대인들은 질병이 생기면 병원에 가서 아픈 곳만 치료하면 된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대부분 질병은 평상시 잘못된 생활 습관으로 생긴 몸의 문제에서 발생한 하나의 증상에 불과하다. 우리는 보통 병원에서 아픈 곳이 짧은 기간안에 낫길 원하며 치료받지만, 근본적인 치료 없이는 결국 재발하면서 만성적으로 고통받게 된다. 한의학은 밖으로 드러나는 증상뿐만 아니라 질병의 근본 원인인 몸의 문제를 치료하는 의학이다.

모든 질병은 에너지 문제로 발생할 수 있다. 에너지 상태에 따라 주로 발생하는 질환이 있으며 질환에 따라서는 에너지의 생성 ,순환, 균형, 주절의 문제점이 복합적으로 작용하기도 한다. 특히 에너지 생성에 문제가 있을 때 주로 예측되는 질환은 에너지 부족으로 인한 만성피로, 저혈압증이다.

머리에 에너지 공급이 부족해지면 치매, 파킨스, 건망증, 이명, 시력 저하, 어지럼증, 두통, 등이 발생한다. 에너지 순환으로 일반적으로 소화기능이 약해서 급만성 소화기질환이 자주 생기며, 손발이나 관절까지 충분한 에너지 공급이 잘되지 않기 때문에 레이노증후군, 허리통증, 어깨 통증 등이 회복되지 못하고 만성화될 수 있다.

에너지 순환에 문제가 있을 때 주로 예측되는 질환은 순환장애로 쌓인 체지방으로 발생하는 비만, 대사성 질환(고지혈증,고혈압, 당뇨), 심장질환, 중풍, 호흡기질환 등이다. 그래서 관절염, 허리통증(요추 추간판탈중증, 협착증)이 발병할 수 있으며 순환장애로 어혈이 생성되어 자가면역질환 (류머티즘질환,섬유근통, 강직성적추염)이나 각종 암등이 발생할 수 있다.

에너지 균형 조절에 문제가 있을 때 주로 예측되는 질환은 각종 생식기 질환이나 난임, 내분비 질환(갑상선기능장애), 비뇨기 질한 (소변 장애)등이다. 에너지 불균형으로 인한 호르몬의 변화로 이러한 질환들이 발생하게 된다. 에너지의 수승화강에 문제가 생겨 모근이 마르면 탈모가 나타나기도 하고 안구건조증, 피부질환(피부노화), 두통, 이명, 정신질환(불면, 공황장애,우울증)뿐만 아니라 허리 통증(요추 추간판탈출증, 협착증), 건절염, 족저근막염 등이 발생할 수 있다.



평소 심한 피로감을 느끼거나 기력이 급격히 떨어지고, 수면이나 소화장애 등의 증상이 나타난다면 대사증후군을 의심해 보아야 한다. 대사증후군은 혈압 상승, 혈당 상승, 혈액 지질 이상, 비만(특히 부분 비만) 등 여러 신진대사 이상이 겹쳐서 당뇨병, 고혈압, 심뇌혈관질환 위험인자가 동시에 높아진 상태를 말한다.

노비노 탕약 치료와 함께 소화되는 음식은 무엇이든 잘 먹고 적절한 운동을 하면서 고지혈증이 개선되었다. 대사증후군 사람은 심장병, 뇌졸중과 같은 심혈관계 질환으로 사망률이 대사증후군이 없는 사람에 비해 4배 정도 높다고 알려져 있다. 평소 신진대사를 원활하게 하고 개선하려고 노력하면서대사증후군의 예방과 관리에 도움을 줄 수 있다.

앞서 우리 몸의 에너지 순환을 강물의 흐름에 비유하였다. 에너지 순환장애는 있지만, 염증으로 발전하여 여러 가지 질병이 발생하지는 않는다. 이런 경우에는 기본생활 수칙을 지켜서 단백질 섭취를 통해 에너지 흐름의 통로인 근육량을 늘리고, 에너지 흐름을 방해하는 체지방을 줄여야 한다. '인간은 소우주’라고 우리 몸은 작은 우주로 비유할 수 있다.

태초부터 모든 생물체의 생성과 성장은 하늘과 땅, 음과 양의 조화, 수승화강이라는 원리에 따라 이루어져 왔다. 인체 역시 음양의 조화를 이루는 핵심 원리이다. 인체는 이러한 자연의 조화로운 대순환 속에서 오장육부의 기능으로 음식과 호흡, 운동과 일상의 움직임, 수면과 정신 활동과 함께 에너지를 생성, 순환, 균형 조절하면서 정상적인 생명 활동을 유지하게 된다.

자궁 내 에너지 공급에 문제가 생기면 어혈이 생성되어 생리혈이 배출되기 어렵고, 몸에서 이를 배출하기 위해 더 많은 자궁수축 호르몬이 분비되어 자궁뿐 아니라 골반 내 근육과 소화기 근육들까지도 수축시키게 된다. 이 때문에 생리통이 심한 사람은 복부 통증 외에도 요통, 허벅지 앞쪽 통증과 구토, 메스꺼움, 설사, 실신 등 전신증상이 동반되기도 한다.

우선 일상생활이 힘들 정도로 생리통이 심하면 진통제 등을 복용하는 것을 고려할 수 있으나 근본적인 치료에는 도움이 되지 않는다. 2세를 원한다면 에너지 생성기능을 개선하는 노비노 탕약 처방과 함께 생활요법으로 밀가루, 탄산음료 등 찬 음식을 피하고 단백질 위주의 식사를 조금씩 자주 하도록 권고 하였다.

한의학은 수천 년 동안 ‘기혈’ 이라는 에너지 의학으로 발전해 왔다. 이러한 한의학을 바탕으로 35년간 대학병원에서 수많은 환자를 진료하면서 내린 결론이 있다. 모든 질병은 갑작스러운 사고나 바이러스 같은 전염성 질환이 아니면 모두 잘못된 생활 습관으로 인한 내 몸의 에너지 문제에서 비롯된다.

거의 모든 질병은 몸속의 잘못된 에너지 기능에서 발생한다. 자연히 치료가 따라온다는 것을 확인 했다. 따라서 세상에서 고칠 수 없는 병은 없다고 생각한다. 질병 치료와 건강관리는 얼마나 좋은 병원에서 좋은 약을 먹고 값비싼 음식을 먹으면서 편하게 생활하느냐가 아니라, 얼마만큼 내 몸의 에너지에 맞는 음식을 먹고, 내 몸의 에너지에 맞게 움직이고, 내 몸의 에너지에 맞게 생활하느냐에 결정된다. 난 노화를 최대한 늦추고 결혼해서 아이를 꼭 갖고 싶어서 이런 책을 계속 본다. 탄산음료나 찬 음식은 먹지말라는 정보는 얻은 것 같다.



리뷰어스 클럽의 소개로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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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비노 건강법 - 이재동 교수가 알려주는 내 몸 에너지 혁명
이재동.이수지.홍예진 지음 / 경희대학교출판문화원(경희대학교출판부) / 202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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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에 도움되는 얘기가 많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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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만 타서전 - 백골단에서 국회해산령까지, 대한민국 파시즘의 기원
김흥식 엮음 / 그림씨 / 202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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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만은 우리나라의 위대한 국부야. 이런 책 쓰려면 중국이나 북한에 가. 난 이승만 같은 어마어마한 천재가 기독교 정신으로 세운 대한민국이 몸서리 칠 정도로 너무 사랑스러워. 자유민주주의, 자유시장경제의 체제로 대한민국을 세운 이승만 대통령이 너무 감사하고 존경스럽고 자랑스러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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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크스가 옳았던 이유 - 프로메테우스의 꿈과 좌절
테리 이글턴 지음, 박경장 옮김 / 21세기문화원 / 202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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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크스 자본론을 읽었는데 지금은 별로 기억나는 게 없는 것 같다. 마르크스는 유물론자이고 노동자를 대변했지만 진짜 마르크스는 귀족이고 하인을 두고 일했고 일을 별로 안 했다고 했다. 마르크스는 유토피아를 꿈꾸고 사회주의에서 가장 극좌가 되면 공산주의라고 하는데 거기에는 유토피아가 있다고 했다. 마르크스가 뭐가 옳았는지 궁금해서 읽었다.

자유민주주의를 원하고 추구한다. 자유민주주의의 반대가 사회주의라고 생각하는데 그 이론을 주창한 마르크스와 그의 이론에 대해서 잘 알고 싶다. 세계가 점점 사회주의화 되고 있는 시점에서 사회주의가 뭔지 잘 알고 대처할 건 대처해야 할 것 같다. 월남의 공산화, 홍콩의 공산화, 캐나다의 사회주의화, 이탈리아, 영국, 프랑스, 아프리카의 중국 간첩들의 침투, 지금 우리나라도 법이 사회주의화되었다고 하니까 체재의 인식은 무관심할 수가 없는 것 같다.

공산화는 같은 분배를 키치로 내거는데 분배를 받으면 별로 일을 안 하고 창의력이 떨어져서 국고는 줄어들고 나중에는 분배될 게 없을 것 같은데 그 자원은 어디서 나오는지도 궁금하다. 마르크스가 그것에 대한 아이디어를 주는지도 궁금해서 이 책을 읽었다.

저자 테리 이글턴은 대표적인 마르크스주의 문학 평론가, 1943년 영국 샐포드에서 태어났다. 영국 신좌파의 대부이자 문화 연구의 창시자 레이먼드 윌리엄스의 제자로 케임브리지 트리니티 칼리지를 졸업했다. 옥스퍼드대학교와 맨체스터대학교 영문학 교수를 거쳐 현재 랭커스대학교 영문학 석좌 교수로 있다.

19세기 이후 영미 문학을 주로 연구하며, 문학사상론, 포스트모더니즘, 정치, 이념, 종교 등의 분야에서 50여 권의 저서를 펴냈다. 그중 국내에 소개된 책으로 「미학이론 」 「마르커스주의와 비평」 「우리시대의 비극론」 「성좌와 학자」 「성스러운 테러」 「진실 말하기」「포스트모니즘의 환상」 「비극」등 30여권이 있다.

마르크스주의는 끝났다는 말은 전 세계 마르크스주의 자들의 귀에는 음악처럼 들릴 것이다. 그들은 행진과 피켓 시위 현장에서 짐을 챙겨 걱정 하는 가족의 품으로 돌아가 또 다른 지루한 위원회모임에 참여하는 대신, 집에서 행복한 저녁 시간을 보낼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마르크스주의자가 원하는 것은 마르크스주의자가 되기를 그만두는 것뿐이다. 이 점에서, 마르크스주의자가 되는 것은 불교 신자나 억만장자가 되는 것과는 다르다. 그보다는 의사가 되는 것과 비슷하다. 의사는 환자를 치료하여 더는 자신을 필요치 않게 함으로써 스스로 직업을 박탈하는, 비뚤어지고 자기 파괴적인 존재다.

마찬가지로, 정치적으로 급진주의자들의 임무는 자기네 목표가 달성되는 자신들을 필요로 하지 않을 지점에 이르는 것이다. 20년 후에도 여전히 마르크스주의자나 페미니스트가 존재한다면 유감스런 전망이 될 것이다.

오늘날 대부분의 마르크스주의 비판자들은 이 점에 대해서는 반박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들은 마르크스 시대 이래로 자본주의 체제가 거의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변했기 때문에, 이 주장을 보다 상세히 검토하기 앞서, 마르크스가 도전한 이 자본주의 체제가 항상 변화는 성격을 지녔다.



자본의 다양한 역사적 형태라는 개념-상업적 *농업적* 독점적* 금융적*제국주의 등은 마르크스주의 자체에서 유래한 것이다. 그러면 자본주의가 최근 몇 십 년 사이에 형태를 바꾸었다 해서 자본주의 본질을 변화로 본 마르크스 이론을 왜 불신 한다는 것인가?

마르크스 자신은 노동계급이 쇠퇴하고 화이트칼라 노동이 가파르게 증가할 것이라고 예고까지 했다. 어쩌면 마르크스의 이 ‘낡은’ 면모야말로 오늘날에도 그를 여전히 유효하도록 만드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는 빅토리아 왕조 수준의 불평등으로 급속히 회귀하는 자본주의 옹호자들한테 시대에 뒤떨어졌다고 비난 받고 있으니까.

사회주의자는 의심할 여지없이 탈자본주의 경제의 세부 사항에 대해 계속 논의할 것이다. 이런 불완전성을 자본주의 경제-흠잡을 데 없이 작동하면서 이제껏 소규모의 빈곤이나 쓰레기나 불황에도 단 한 번 책임져 본 적이 없는 체제-와는 사뭇 대조 된다. 물론 자본주의 경제는 어마어마한 실업에 책임이 있다고 인정된다.

그러나 결함에 대해서도 세계 자본주의를 선도하는 국가는 기발한 해결책을 내놓았다. 오늘날 미국에서는 백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감옥에 있지 않다면 일자리를 찾고 있을 것이다. 마르크스주의는 결정론 아니다. 그것은 사람을 단지 역사적으로 본다. 자유와 개성을 박탈한다.

마르크스는 역사의 철칙을 믿었는데, 이 법칙은 거침없는 스스로 실현하며, 어떤 인간적 행위로도 저항할 수 없다. 봉건주의는 자본주의를 낳을 운명이었고, 자본주의는 필연적으로 사회주의에 자리를 넘겨줄 것이다. 이처럼 마르크스 역사이론은 섭리나 운명의 세속 버전에 불과하다. 마르크스주의 국가와 마찬가지로, 그 이론도 인간의 자유와 존엄에 대한 모독이다.

마르크스주의는 유토피아를 꿈꾼다. 그것은 어려움이나, 고통, 폭력이나 갈등이 없는 완벽한 사회의 가능성을 믿는다. 공산주의의 아래서는 어떤 대립이나 이기심, 소유욕, 경쟁, 불평등도 없다. 누구도 우월하지도 열등하지도 않다. 누구도 일하지 않을 것이고, 인간은 서로 완벽한 화합 속에서 살아갈 것이며, 물질적 재화의 흐름은 끝이 없을 것이다.

우리가 본성적으로 이기적이고, 탐욕스럽고 공격적이고 경쟁적인 존재라는 사실, 그리고 어떤 사회공학도 이것을 바꿀 수 없다는 사실은 쉽게 간과 된다. 마르크스의 천진난만한 미래 비전은 그의 정치학 전반에 걸쳐 터무니없는 비현실성을 반영한다. 다른 대부분의 유토피아 작품들과는 달리 정치적 변화의 과정이 실제로 어떻게 이루어졌는가를 자세히 보여 주었다.

하지만 ‘유토피아’를 일상적인 의미로 사용하는 경우, 마르크스는 고통, 죽음, 상실, 실패, 갈등, 비극, 혹은 심지어 노동이 없는 미래에 대해서 조금도 관심이 없었다. 마르크스주의는 모든 것을 경제로 환원한다. 경제 결정론의 한 형태다. 예술, 종교, 정치, 전쟁, 법, 전쟁, 도덕, 역사적 변화, 이 모든 것들을 가장 조악한 관점에서 단지 경제나 계급투쟁의 반영으로 간주한다.

참 착한 마르크스는 자신이 반대한 자본주의 체제의 거꾸로 된 이미지에 불과하다. 마르크스에게는 모든 것이 ‘경제’에 의해 결정된다는 주장은 터무니없는 단순화이다. 그의 관점에서 역사의 진로에 형태를 부여하는 것은 계급투쟁이며, 계급은 경제적 요인으로 같은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사람 집단을 계급으로 보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계급이 아니라 사회적 계급을 말하고 있다는 점이 중요하다, 마르크스는 ‘사회적’ 혁명뿐만 아니라 ‘사회적’ 생산관계에 대해 썼다. 사회적 관계가 생산력보다 우선한다면, ‘경제력’ 이란 노골적인 딱지가 뭍은 것이 어떻게 역사의 제1동력일 수 있는지 이해하기 어렵다.

마르크스는 유물론자였다. 인간의식 단지 물질세계의 반영에 불과한 것으로 보았다. 인류에 대한 음울하고 영혼 없는 관점에서 스탈린이나 다른 마르크스 제자들의 잔혹성으로 이어지는 명백한 노선이 있다. 마르크스주의에서 계급에 대한 지루한 강박보다 더 낡은 것은 없다.



마르크스주의자들은 마르크스가 글을 쓴 이래로 사회계급의 풍경이 거의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변했다는 사실을 알아차리지 못하는 것 같다. 특히 그들이 사회주의로 안내해 주리라고 즐거이 상상하는 노동계급은 거의 흔적 없이 사라졌다. 우리는 계급은 점점 덜 중요해지고, 사회적 유동성은 더욱 심해지며, 계급투쟁 이야기가 마녀를 화형시키는 이야기만큼이나 구식이 되어 버린 세계에서 살고 있다.

사악한 자본가만큼이나 혁명 노동자도 마르크스주의 상상력이 낳은 헛것이다. ‘계급주의’라는 괴상한 미국식 개념은 계급이 대체로 태도의 문제인 것처럼 암시한다. 백인들이 아프리카계 미국인들에게 느끼는 우월감을 버려야 하듯이, 중간계급은 노동계급을 경멸해선 안 된다는 것이다. 개인의 마르크스주의는 전능한 국가를 믿는다.

사유재산을 철폐한 사회주의 혁명가들은 전제 권력을 사용해 통치할 것이고, 그 권력은 개인의 자유를 끝장낼 것이다. 인민이 당에 양보하고, 당이 국가에 양보하며, 국가는 괴물 같은 독자에게 양보하는 것이 마르크스주의의 논리이다. 자유민주주의가 완벽하지는 않을지라도, 감히 야만적이고 권위적인 정부를 비판했다고 정신병원에 가두는 것보다는 무한히 낫다.

마르크스는 국가에 대해 반대했다. 그가 국가가 시들어 사라지기를 고대했었다는 사실은 유명하다. 당치도 않는 유토피아적 희망이라고 반마르크스주의자들이 비난할 수는 있겠지만, 동시에 그가 전체적인 정부를 열망했다고 비판할 수 없을 것이다. 마르크스가 더 이상 보지 않기를 희망했던 것은 폭력의 도구로서의 국가이다.

공산주의에서 공적 권력은 그 정치적 성격을 잃게 될 것이다. 당대의 무정부주의에 반대하면서, 마르크스는 오직 이런 의미에서 국가가 사라질 것이라고 강조했다. 사라져야 할 것은 특정 종류의 권력으로, 지배적 사회계급의 통치를 떠받는 권력이다. 국립공원과 운전면허 시험 센터는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마르크스는 국가를 냉정한 리얼리즘의 시각으로 바라본다.

국가가 당파적이라는 개념에 무슨 내밀히 공모 같은 것은 없다.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은 분명 최근에 정치 시위에 참가해 본 적이 없는 사람이다. 자유주의 국가는 자본주의와 그 비판자 사이에 비판자가 이길 것처럼 보이는 순간까지는 중립적이다. 하지만 비판자 쪽이 이길 것 같은 순간이 되면, 국가는 물대포와 무장 경찰부대를 앞세워 쳐들어간다. 탱크를 밀고 들어간다.

어느 누구도 국가가 폭력적일 수 있다는 걸 의심하지 않는다. 단지 이런 폭력이 궁극적으로 누구에게 봉사하느냐 하는 질문에 새로운 답을 제시할 뿐이다. “정부가 국제 자본을 위한 업무 대리인이라는, 한때 추문이 된 마르크스의 명제는 오늘날 ‘자유주의’ 와 ‘사회주의’ 둘 다 동의하는 분명한 사실이다. 정치와 자본 경영의 절대적 동일화는 더 이상 민주주의의 ‘형식’ 뒤에 감추어진 수치스러운 비밀이다.

오히려 이는 공공연히 선언된 진실이며, 정부는 이를 수단으로 정당성을 흭득한다.” 그렇다고 경찰, 법원, 감옥 심지어 특수 부대까지 없어도 된다는 뜻은 아니다. 예를 들어, 특수 부대는 화학무기나 핵무기로 무장한 테러리스트 집답이 날뛸 때는 필요하며, 온화한 성향과 좌파일수록 이 사실을 인정하는 편이 낫다.

국가 폭력이라고 해서 모든 명분이 현 상태를 보존하기 위한 것은 아니다. 마르크스는「자본」 제3권에서 국가가 계급을 특정하는 기능과 계급 중립을 지키는 기능을 구분한다. 마르크스가 옳았던 이유는 차별없이 누구나가 일 안하고 잘 사는 세상을 꿈꿨다는 것인데 그 꿈을 꾼 것만 옳앗지 진짜 그런 세상은 존재하지 않는다. 자신이 일한 만큼 공정한 댓가와 기회를 원해야 한다. 공산주의는 모두가 잘 사는 것이 아니라 공산당만 잘 사는 세상이 되어 있는 걸 공산주의 나라가 증명하고 있다.마르크스는 생각한 저의만 옳고 실질적으로 완전히 틀렸다.



서평단 이벤트에 참여하여 도서를 제공받아 읽고 솔직하게 작성한 후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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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정함이 인격이다 - 임상심리전문가 김선희가 전하는 다정함의 심리학
김선희 지음 / 나무생각 / 202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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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랑 나는 책을 많이 봐서 대화도 잘 통하고 잘 맞는데 아빠는 박사이기는 하지만 책을 우리보다는 많이 안 봐서 그런지 대화가 트렌트를 못 쫓아가서 엄마랑 나한테 쿠사리를 드신다. 아빠가 다정하고 글도 잘 쓰기는 한데 더 대화가 잘 통했으면 좋겠다. 이 책을 보고 도움을 받고 싶다.

저자 김선희는 한국임상심리학회 공인 임삼심리전문가이자 보건복지부 공인 1급 정신건강임상심리학을 토대로 정신병리와 심리치료, 대인관계 적응 및 역동을 탐구하고 과학적으로 검증된 지식을 풍부한 경험으로 내담자를 돕고 있다. 특별히 부부심리치료 분야에 전념하여 부부와 가족관계 전문 임상가로 내담자를 돕고 있다. 연세대학교 학사, 석사를 거쳐 동대학원 임상심리학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저자는 ‘김선희’부부상담 센터를 개소했다. 저자의 책으로는 ⟨가까운 사람들과 편하게 지내는 법⟩⟨내 남자 안아주기⟩가 있다. 저자는 인간답게 그리고 나답게 살아간다는 것에 대해 생각해봤다. 인간답게 살아간다는 것은 타인과 함께 조화를 이루며 살아감을 전제로 한다. 부부 상담을 받고자 내담하는 많은 이들의 말에 대해 이야기한다.

“남편의 거친 말로 인해 오랫동안 상처를 받았다.” 아내가 거침없이 막말을 한다. 서슴없이 모욕적 언사를 쏟아낸다. “날카로운 말로 내 나음을 후벼 판다.” “내 말은 무조건 자르고 윽박지른다.” “욱하며 욕설을 내뱉는다.”라고 호소한다. 장기간 말로 난도질당했다며 아파한다. 이 모두 언어적 학대에 해당한다. 언어로 무기 삼아 학대자가 되었고 또 피해자가 되었다.

사연을 들어보면, 관계를 표현해 내고 마음을 드러내는 언어 본연의 순기능을 파괴당한 이들의 이야기다. 상대를 대하는 방식이 역기능적으로 망가진 이들 관계 속에서 빚어내는 뼈아픈 이야기인 것이다. 그런데 정작 그들은 자신의 말과 행위가 언어적 학대인지 알지 못한다. 화가 나서 그런 거라며 가벼이 넘기려 한다. 상대의 고통에 공감하지 못한다. 심각성을 알지 못하는 것이다.

언어적 학대는 심리적 정신적 학대의 한 유형으로, 폭력에 해당한다. 애정의 토대 위에 세워진 부부관계, 가족 관계에서라면 더욱 심각하다. 신체적 물리적 폭력뿐만 아니라 언어적 학대도 폭력이며 그 위해는 명명백백하다. 한 인간의 신체적 심리적 건강을 무너뜨리고 영혼을 황폐화시킨다. 말의 본산은 마음이다. 입과 입술의 뿌리는 마음에 있다.

마음을 정비하지 않으면 말, 말투, 어법은 변할 수 없다. 많이 배우고, 지식이 많다고, 대화법 책을 통달했다고 말을 잘하거나 다정하게 하는 것은 아니다. 우리가 원하는 것은 마음과 마음의 연결이다. 우리는 그 방식과 마음이 정감있고 다정하길 원한다. 유대감이 필요하다. 그것이 말에 담겨져 나오길 소망한다. 말보다 마음이 먼저다.

성장기 동안 우리는 부모로부터 사랑과 훈련을 받는다. 사랑만으로도 안 되고 훈련만으로도 안 된다. 보통의 건강한 아동기, 청소년기를 영위하기 위해서는 사랑도 필요하고 사랑을 전제로 한 일관된과 돌봄과 훈련도 필요하다. 사랑이 전제된 훈련은 어루만짐으로 작용한다. 어루만짐 없이 성장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사랑이 전제된 돌봄과 훈련을 경험한 아이는 애정 어린 학습과 격려를 통해 사회적으로 바람직한 어른이 될 수 있는 토대를 갖춘다. 어릴 적 부모의 사랑 안에서 훈련 없이 자라면 가족의 소중함 보다 자랄 때 자신을 이용하는 것을 알지 못하고, 그런 자가 자신을 좋아해 주는 것으로 착각하고 결혼을 하고 가정을 가져도, 아내의 옳은 말 하는 것을 잔소리 듣는다.

그리고 자신의 자녀마저도 소중함을 모르고 자신을 이용한 여자의 말을 듣는다. 어릴 적 곁에서 지켜주는 부모가 없다고 무시하고 이용한 자를 분별하지 못한다. 바로 어루만짐없이 성장했기 때문이다. 타인의 사랑과 훈련 중에서 부모랑과 훈련이 중요하다는 건 모든 심리학자가 동의하는 바다. 아이는 본능과 충동이 이끄는 대로 행동하기 전에 주변 어른의 도움을 받는 상황에 맞게 행동을 조절하고, 나아가 이를 말로 표현하는 법도 배운다.

이런 훈련이 부족했던 아이들이 여러 복합적인 경로를 거치면서 막말하는 어른이 되고 자기 주변 소중한 이에게 언어적 학대를 행하는 이로 살아간다. 어릴 때 제대로 사랑을 받지 못했기 때문에 그들에게는 폭력적인 말과 독선적 언사가 튀어나오는 건 자연스럽다. 경우에 따라 막말이 매우 세련되고 지능적인 방식을 취할 때도 있다.

사랑이 전제된 훈련과 징벌은 필요하다. 무분별한 징벌은 지양되어야 한다. 기다림과 인내가 사랑인 이유다. 섣불리 엄한 처벌을 받은 아이는 생명력과 도전정신, 탐험 욕구, 모험심이 죽는다. 사랑이 전제된 훈련이 아니라 처벌을 지배적으로 가혹하게 받은 아이는 ‘으깬 감자’처럼 짓눌리고 어그러진 채 세상살이를 밀고 나가는 힘, 도전정신의 싹이 잘려 나간다.

자존감이라는 용어는 심리학 용어로 긴 시간이 지나 몇 년 전부터 인기를 끌다 못해 일상의 단어로 정착했다. 자존감은 자기존중감의 줄임말로, 자신의 능력과 가치에 대한 전반적인 평가와 판단, 태도를 의미하는 심리학 용어다. ‘내가 나를 얼마나 긍정적으로 바라보고 있는지’ 와 같은 평가 개념이 들어가 있다. 자존감은 타인, 환경 그리고 세월 속 복잡단한 경험과 상호작용을 하며 조성된다.

성장기의 경험으로 어느 정도 기반이 다져지고 고정되는 부분도 있지만, 성인이 되어 심리적 훈련, 새로운 경험과 학습을 통해 일정 부분 조정되기도 한다. 자존감은 높낮이를 표현할 때 이는 진짜 자존감의 문제라기보다는 그 순간의 ‘기분’을 표현하는 것에 불과할 때가 많다. 자존감은 하루아침에 이뤄지는 작업이 아니다. 성장 배경 속에 비밀의 열쇠가 있다. 어렵더라도 그 배경에 다가가는 게 중요하다.

나를 정확히 알기 위해 자신의 성장사와 그 경험에 다가가는 것은 가치 있는 일이다. 자존감의 높낮이를 가늠하는 것과 비교할 수 없는 의미를 지닌다. 자신과 자신에 다정하고 따뜻한 시선, 연민의 마음을 갖고 출발하는 게 필요하다. 자존감의 높낮이에 휘둘리지 말아야 한다. 또 다른 올가미가 될 수 있다. 호기심과 탐구의 눈으로, 있는 그대로 자신을 바라봐야 한다.

이것이 진정한 자기 사랑이자 자기존중이다. 중요한 건 자존감의 높낮이가 아니라 인간미와 개성이다. 좌절에도 불구하고 성장과 성숙에 대한 믿음, 실패 속 깨달음을 환영하는 배움의 자세, 자기 성찰과 개인적 통찰에 대한 사랑, 즉 심리적 마음가짐이 관점이다. 희생 중에 건강하지 못한 희생이다. 맹목적 희생은 독성이 강하다.

부모-자녀 관계나 일대일의 애정 관계에서 맹목적인 희생을 흔히 관찰할 수 있다. 맹목적인 희생만으로는 사랑의 결실을 이루기 어렵다. 오래된 희생은 분명히 알리고 보상받고 더 강렬히 희생하며 집착한다. 응어리가 점점 커지고 있음에도 더 격심하게 희생하며 질주한다. 자기연민에 깊이 빠져들 뿐이다.

그렇게 참다보면 결국 화산이 되어 폭발 지경에 이르기도 한다. 그런데도 가해자는 알지 못한다. 왜 자신이 그런 어려움을 당해 보지 않았기 때문이다. 사과를 바라면 다 지나간 일을 들추어서 잔소리 하다고 적반하장으로 큰 소리 친다. 폭발하거나 원망을 하면 생색낸다고 한다. 맹목적인 희생은 해피엔딩이 될 수 없다.



부부 관계는 참으로 어렵다. 결혼 후 시간이 지나면서 두 사람은 부딪친다. 갈등과 실망, 분노와 환멸을 불러일으키는 시간들이 일어난다. 배우자의 뚜렷한 불찰로 관계가 망가지기도 하지만, 어느 한쪽이 잘못한 것도 아니고 최선을 다하였는데 부부 생활에 먹구름이 드리워지기도 한다. 부부는 연인 관계와 달리 서로에게 차원이 다른 의존을 발생시킨다.

서로에게 끼치는 영향력도 남다르다. 연인은 자기 필요한 것만 이용하기 때문에 언어를 다정하게 할 것이다. 자신의 필요한 만큼 이용하고 나면 안 보면 그만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부부는 그렇지 못한다. 서로 책임을 져야 할 게 있지 않을까? 부부는 결혼할 만큼 서로를 사랑하는 사이고 깊은 부분도 공유하기에 거꾸로 서로를 가장 아프게 할 수 있는 관계다.

결혼은 연애의 연장이 아니다. 결혼과 연애는 차원이 다르다. 연애와 차원이 다른 부부 관계의 난이도를 정확히 파악해야 한다. 결혼은 고난도라는 것을 인정하고 마음의 준비를 해야 한다. 당황하지 말아야 한다. 배우자와 함께 한 지붕 아래에서 오순도순 살며 얻어지는 그 결실에 감사할 뿐이다. 긴 세월을 함께한 부부가 힘있게 살아낸 시간으로 아로새긴 두 사람의 대서사 결혼과 부부에, 그것에 어울리는 기쁨과 보람의 결실, 영광의 결실을 기대한다.

다정함의 근원이자 필요조건인 돌봄! 부부애의 정수도 돌봄이라 생각한다. 특히 배우자가 아플 때의 돌봄이 그렇다. 일대일 애착 관계의 주요 기능을 궁극적으로 역경을 헤치고 살아남는 것이다. 부부가 함께 즐거움과 행복, 성공 경험을 나누는 것도 중요하지만 인간사의 실제인 역경과 고난을 배우자와 함께 손잡고 헤쳐 나가는 것이 애착 관계의 목적이자 목표이자 이유다.

역경과 고난을 함께 헤쳐 나가기 위해선 단기 관계가 아닌 장기 관계 속 두 사람의 안전한 결합과 결속, 협력, 애착이 필수다. 부부에게 닥치는 수많은 역경 중 배우자가 병든 것만큼 애통한 것이 또 있을까? 인간이 더없이 약해지는 순간, 스스로 뭔가를 하기 어려운 상황, 어쩌면 죽음 앞에 한 발짝 다가선 그 시범에서 의미 있는 타인의 함께함, 돌봄은 불가피하다.

이때 부부애의 정수가 드러난다. 헌신적 사랑으로 배우자를 돌보는 것 이것이 인간의 참사랑이다. 신체의 아픔은 단순히 육신의 고통으로 한정되는 것이 아니다. 신체 질환으로 아픈 당신의 몸과 그 여파에 압도된 고통스런 마음은 당신의 삶 전체에 그림자를 드리운다.

당신의 배우자는 아픈 몸과 마음을 넘어 고난의 인생마저 끌어안은 역사적 사랑의 증인이다. 이는 저절로 되는 일이 아니며 누구나 그럴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진실로 귀하고 소중한 것이 거룩한 다정함이다. 교회 언니 오빠들의 부모님이 병원원장이고 700억의 재산이 있는 분들인데 돌아가시는 걸 보면서 인생에 대해서 배우자에 대해서 계속 생각하게 된다. 짧은 인생에서 성공하고 많은 걸 가졌다고 안 죽는 것도 아니고 가진 돈을 전부 쓰고 가는 것도 아니다. 다정함을 가지고 진정한 사랑으로 가꾼 가족만이 마지막에 남고 영원한 게 아닐까라는 생각이 든다.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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