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이 전제된 돌봄과 훈련을 경험한 아이는 애정 어린 학습과 격려를 통해 사회적으로 바람직한 어른이 될 수 있는 토대를 갖춘다. 어릴 적 부모의 사랑 안에서 훈련 없이 자라면 가족의 소중함 보다 자랄 때 자신을 이용하는 것을 알지 못하고, 그런 자가 자신을 좋아해 주는 것으로 착각하고 결혼을 하고 가정을 가져도, 아내의 옳은 말 하는 것을 잔소리 듣는다.
그리고 자신의 자녀마저도 소중함을 모르고 자신을 이용한 여자의 말을 듣는다. 어릴 적 곁에서 지켜주는 부모가 없다고 무시하고 이용한 자를 분별하지 못한다. 바로 어루만짐없이 성장했기 때문이다. 타인의 사랑과 훈련 중에서 부모랑과 훈련이 중요하다는 건 모든 심리학자가 동의하는 바다. 아이는 본능과 충동이 이끄는 대로 행동하기 전에 주변 어른의 도움을 받는 상황에 맞게 행동을 조절하고, 나아가 이를 말로 표현하는 법도 배운다.
이런 훈련이 부족했던 아이들이 여러 복합적인 경로를 거치면서 막말하는 어른이 되고 자기 주변 소중한 이에게 언어적 학대를 행하는 이로 살아간다. 어릴 때 제대로 사랑을 받지 못했기 때문에 그들에게는 폭력적인 말과 독선적 언사가 튀어나오는 건 자연스럽다. 경우에 따라 막말이 매우 세련되고 지능적인 방식을 취할 때도 있다.
사랑이 전제된 훈련과 징벌은 필요하다. 무분별한 징벌은 지양되어야 한다. 기다림과 인내가 사랑인 이유다. 섣불리 엄한 처벌을 받은 아이는 생명력과 도전정신, 탐험 욕구, 모험심이 죽는다. 사랑이 전제된 훈련이 아니라 처벌을 지배적으로 가혹하게 받은 아이는 ‘으깬 감자’처럼 짓눌리고 어그러진 채 세상살이를 밀고 나가는 힘, 도전정신의 싹이 잘려 나간다.
자존감이라는 용어는 심리학 용어로 긴 시간이 지나 몇 년 전부터 인기를 끌다 못해 일상의 단어로 정착했다. 자존감은 자기존중감의 줄임말로, 자신의 능력과 가치에 대한 전반적인 평가와 판단, 태도를 의미하는 심리학 용어다. ‘내가 나를 얼마나 긍정적으로 바라보고 있는지’ 와 같은 평가 개념이 들어가 있다. 자존감은 타인, 환경 그리고 세월 속 복잡단한 경험과 상호작용을 하며 조성된다.
성장기의 경험으로 어느 정도 기반이 다져지고 고정되는 부분도 있지만, 성인이 되어 심리적 훈련, 새로운 경험과 학습을 통해 일정 부분 조정되기도 한다. 자존감은 높낮이를 표현할 때 이는 진짜 자존감의 문제라기보다는 그 순간의 ‘기분’을 표현하는 것에 불과할 때가 많다. 자존감은 하루아침에 이뤄지는 작업이 아니다. 성장 배경 속에 비밀의 열쇠가 있다. 어렵더라도 그 배경에 다가가는 게 중요하다.
나를 정확히 알기 위해 자신의 성장사와 그 경험에 다가가는 것은 가치 있는 일이다. 자존감의 높낮이를 가늠하는 것과 비교할 수 없는 의미를 지닌다. 자신과 자신에 다정하고 따뜻한 시선, 연민의 마음을 갖고 출발하는 게 필요하다. 자존감의 높낮이에 휘둘리지 말아야 한다. 또 다른 올가미가 될 수 있다. 호기심과 탐구의 눈으로, 있는 그대로 자신을 바라봐야 한다.
이것이 진정한 자기 사랑이자 자기존중이다. 중요한 건 자존감의 높낮이가 아니라 인간미와 개성이다. 좌절에도 불구하고 성장과 성숙에 대한 믿음, 실패 속 깨달음을 환영하는 배움의 자세, 자기 성찰과 개인적 통찰에 대한 사랑, 즉 심리적 마음가짐이 관점이다. 희생 중에 건강하지 못한 희생이다. 맹목적 희생은 독성이 강하다.
부모-자녀 관계나 일대일의 애정 관계에서 맹목적인 희생을 흔히 관찰할 수 있다. 맹목적인 희생만으로는 사랑의 결실을 이루기 어렵다. 오래된 희생은 분명히 알리고 보상받고 더 강렬히 희생하며 집착한다. 응어리가 점점 커지고 있음에도 더 격심하게 희생하며 질주한다. 자기연민에 깊이 빠져들 뿐이다.
그렇게 참다보면 결국 화산이 되어 폭발 지경에 이르기도 한다. 그런데도 가해자는 알지 못한다. 왜 자신이 그런 어려움을 당해 보지 않았기 때문이다. 사과를 바라면 다 지나간 일을 들추어서 잔소리 하다고 적반하장으로 큰 소리 친다. 폭발하거나 원망을 하면 생색낸다고 한다. 맹목적인 희생은 해피엔딩이 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