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시는 ‘서시’라는 이름으로 통용되고 있다. 회장을 지낸 이근배 시인은 서시 제목을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로 되돌려야 한다고 하면서 윤동주는 서시를 쓴 적이 없다고 한다. 윤동주 시인의 시는 100% 육필 원고가 남아있는데 서시라는 말은 육필원고 어디에도 나오지 않았다.
시의 내용에도 하늘, 바람, 별은 나오지만 서시는 어디에도 없어서 지금이라도 제목을 윤동주가 쓴 대로 다시 바꿔야 한다. 이 시는 윤동주의 시 세계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시로 자유와 부끄러움이 없는 삶을 살고자 하는 의지를 담겨있다. 또한 이 시는 이바리기 노리코 시인에 의해 일본의 고등학교 국어 교과서에도 실려 있다.
자화상
산모퉁이를 돌아 논가 외딴 우물을 홀로 찾아가선 가만히 들여다봅니다.
우물 속에는 달이 밝고 구름이 흐르고 하늘이 펼치고 파아란 바람이 불고 가을이 있습니다.
그리고 한 사나이가 있습니다.
어쩐지 그 사나이가 미워져 돌아갑니다.
돌아가다 생각하니 그 사나이가 가엾어집니다, 도로 가 들여다보니
사나이는 그대로 있습니다.
다시 그 사나이가 미워져 돌아갑니다.
돌아가다 생각하니 그 사나이가 그리워지니다.
우물속에는 달이 밝고 구름이 흐르고 하늘이 펼치고 파아란 바람이 불고 가을이 있고 추억처럼 사나이가 있습니다.
자화상은 자기가 그린 초상을 말한다. 동주는 자신의 모습을 자화상이라는 제목으로 시를 썼다. 연희 전문학교 재학 때 쓴 시로 일제 강점기라는 암울한 시대의 현실 속에서 부끄럽게 살아가는 자신의 모습을 거울에 비쳐 보듯, 우물을 들여다보는 행위를 통해 자아 성찰의 상징적 공간으로 활용하면서 자신의 내면을 형상화하고 있다.
돌아와 보는 밤
세상으로부터 돌아오듯이 이제 내 좁은 방에 돌아와 불을 끄옵니다. 불을 켜두는 것은 너무나 피로롭은 일이옵니다. 그것은 낮의 연장이 옵기에-
이제 창을 열어 공기를 바꾸어 들여야 할 텐데 밖을 가만히 내다 보아야 방안과 같이 어두워 꼭 세상 같은데 비를 맞고 오던 길이 그대로 비속에 젖어 있아옵니다.
하루의 울분을 씻을바 없어 가만히 눈을 감으면 마음속으로 흐르는 소리, 이제, 사상이 능금처럼 저절로 익어 가옵니다.
일제의 기혹한 탄압으로 어수선하고 엄혹한 바깥세상에서 돌아와, 호젓한 방안에서 불을 그고 어둠과 대면하는 윤동주 시인의 내면의 세계가 훤히 보인다. 따라서 밤은 구원의 공간이고 해방감이 깃든 위안의 보금자리다. 희망을 가져 봐도 현실은 어둡고 암울하여 출구 없는 열정 가슴속 깊은 곳에 삭이는 수밖에 없다는 현실이 안타깝기만 하다.
태초의 아침
봄날 아침도 아니고
봄, 가을, 겨울,
그런 날 아침도 아닌 아침에
빨-간 꽃이 피어났네,
햇빛이 푸른데,
그 전날 밤에
그 전날 밤에
모든 것이 마련되었네,
사랑은 뱀과 함께
독은 어린 꽃과 함께
‘봄날 아침도 아니고 여름, 가을, 겨울, 그런 날 아침도 아닌 아침에, 로 시작되는 이 시는 성경의 창세기를 근간으로 했다. 아침에 피어나는 빨간 꽃과 그에 담긴 독이라는 상반된 이미지를 통해 삶에 대한 아름다움과 위험과 갈등이 내제된 시로 모순적인 진실이 날카롭게 묘사되어 있다. ‘사랑은 뱀과 함께/ 독은 어린 꽃과 함께’ 이 마지막 구절에서 시인은 삶의 본질을 얼마나 무섭게 꿰뚫어 보고 있는가를 알 수 있다.
또 태초의 아침
하얗게 눈이 덮이었고
전신주가 잉잉 울어
하나님 말씀이 들려온다.
무슨 계실일까
빨리 봄이
죄를 짓고
눈이
밝어
이브가 해산하는 수고를 다하면
무화과 잎사귀로 부끄런데를 가리고
나는 이마에 땀을 흘려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