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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시봉 이야기
김종철 지음, 강모림 그림, 고서점 호산방 자료제공 / 21세기북스 / 2011년 4월
평점 :
지나간 시절을 생각하는 것은 언제나 그리움과 애틋함을 동반한다.
이 책에 나오지 않지만 70년대에 듀엣가수 어니언스가 부른 '편지'는
당시 여학생들의 마음을 휘저어 놓았고 달뜨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그 노래를 듣노라면 당시 중학생이던, 음악을 잘 모르던 나의 마음도 설레였다.
"말없이 건네주고 달아난 차가운 손 가슴속 울려주던 눈물젖은 편지~~~"
노래를 들으며 그런 편지 하나 받아봤으면... 하는 생각을 하곤 했다.

60년대 중반 이후 젊은이들의 감성에 불을 댕겼던 것은 송창식, 윤형주를 비롯,
김세환 등이 각자의 개성대로 독특하면서도 감미롭게 불렀던 노래들이었다.
비록 순수한 우리 음악이 아니라 번안가요였다 하더라도 그 노래들은 문화적,
경제적으로 가난하고 배고팠던 시절에 사람들의 감성을 촉촉하게 감싸주었다.
세시봉에서 울려 퍼지던 외국 팝가요들 역시 빠르게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세시봉은 전축이나 TV가 극히 드물었던 시대에 외국 팝음악을 접할 수
있었던 곳으로 1953년 서울 충무로에 문을 연 한국 최초의 대중음악 감상실이었다.
책 <세시봉 이야기>의 저자 김종철은 당시로서는 획기적이었던 세시봉의
'대학생의 밤' 행사를 기획했다.
음악을 좋아했던 그는 세시봉에 드나들며 음악으로 한 시대를 풍미했던 송창식,
윤형주, 김세환, 조영남, 서유석, 김도향 등의 가수들과 박상규, 이상벽,
이백천 등과 교류했다.
저자는 세시봉 친구들을 서정적인 노래를 부르는 자유분방한 광대 조영남,
영혼과 육체의 화음으로 노래하는 송창식, 청아하고 경쾌한 윤형주,
늙어서도 젊음을 노래하는 김세환 등으로 분류하고 그들의 음악세계와
에피소드들을 이야기한다.
"돌이켜 보니 그때로부터 45년이 흘렀다. 스물한 살에서 서른다섯 살 사이에
있던 '세시봉 사람들'이 이제는 만 65세를 훌쩍 넘어 지하철을 거저 타는
'지공선사' 아니면 팔순을 바라보는 노인이 되어버렸다.
그 시절이 그리운데 돌아갈 수 없으니 더욱 그리워질 뿐이다." ~ 39쪽

박정희 정권 시대에 해직언론인이었던 저자가 묘사하는 당시의 운동가요와
민중가요, 사회적인 분위기, 금지곡들에 얽힌 이야기 역시 흥미진진하다.
박정희 정권은 문화예술 전반을 통제하기 위해 60년대 중반부터 법과 제도를
정비했고 금지곡들을 만들었다.
왜색이라는 이유로 이미자의 '동백 아가씨'를 금지시켰고
'한 번 보고 두 번 보고 자꾸만 보고 싶네"로 시작되는 신중현의 '미인'은
내용이 저속하다는 표면적인 이유로 금지시켰지만 속내는 '한 번하고 두 번하고
자꾸만 하고 싶네'라는 독재정권의 의미를 담고 있다고 해석했기 때문이라는
소문이 있다.
김추자의 "거짓말이야 거짓말이야 거짓말이야 사랑도 거짓말 웃음도 거짓말"로
시작되는 '거짓말이야'는 가사 중에 19번이나 나오는데 박정희가 거짓을 일삼다
보니 자신을 빗대는 것처럼 들려 금지했다는 소문이 돌았다.
이외에도 한대수의 '물 좀 주소' 김민기의 '아침이슬'과 '친구',
송창식의 '고래사냥' 등이 금지곡이었다.
김세환의 '길가에 앉아서'는 "젊은 놈이 이 중차대한 시기에 멍하니 앉아서
무엇을 하겠다는 것이냐" 는 심사위원들의 유권해석때문에 금지곡이 되었다고
하는데 이 대목에서 아들과 남편 모두 얼마나 많이 웃었는지 모른다.
세시봉에서 울려 퍼지던 서양의 팝음악에 대한 이야기들도 자못 흥미롭다.
소리와 몸으로 세계를 뒤흔든 엘비스 프레슬리,
팝음악을 예술로 승화시킨 비틀스,
서정적 저항을 노래하던 밥 딜런,
반전과 평화를 노래한 운동가 존 바에즈 등등 세계적인 팝가수들의 생애와
원곡의 소개까지 읽을거리가 풍부하다.
외국의 팝가요에 대한 부분을 읽다 보니 기타를 치며 비틀즈와 호세 페르시아노의
노래를 즐겨 부르던 오빠의 젊은 모습이 생각나 가만 미소가 떠오른다.
1980년대 이후의 민중가요를 주도했던 김민기, 한대수, 양희은,
'떠나가는 배'의 정태춘, 노찾사의 안치환 등에 이르기까지 지나간 가요사에 대한
이야기들은 그 시절에 대한 기억을 생생하게 떠오르게 한다.
저자는 좋은 음악이 삶을 바꾼다고 말한다.
음악이 개인의 삶을 전적으로 바꿀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삶을 즐겁게 하고 세상을 살만한 곳으로 만든다고 생각한다.
사람들의 가슴에 꿈과 사랑, 낭만과 희망을 안겨주던 마이클 잭슨과
엘비스 프레슬리, 비틀즈 등은 저세상으로 떠났지만 그들이 남긴 음악은
아직 지구별을 떠돌아 다니면서 여전히 빛나는 감성을 선사하고 있다.
그렇듯이 음악은 사람들에게 기쁨과 희망을 주어야 하는데...
2011년 서민들의 힘겹고 팍팍한 삶에 빛과 희망을 던지는 좋은 음악이
보이지 않는다는 저자의 마지막 말에 공감이 간다.
"세시봉 친구들이 암울하던 옛 시절의 노래들로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푸근하게
해주었듯이 지금 이 시대의 대중에게 위안과 힘찬 기운을 불어넣어줄 음악을
간절히 기다린다." ~ 맺음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