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이 사는 꺽다리 집 사계절 1318 문고 66
황선미 지음 / 사계절 / 2010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황선미는 <나쁜 어린이표>(1999), <마당을 나온 암탉>(2000) 등 여러 작품에서 

섬세한 심리묘사와 진중한 주제의식을 보이며 고정 독자층을 확보하고 있는 동화작가이다.

책 <바람이 사는 꺽다리집>은 작가가 처음으로 발표하는 청소년소설이자 자전적 체험에

의해 진솔하게 써내려간 성장소설이다.

'바람'과 '꺽다리집'이라는 말이 주는 여운이 컸다.

책장을 넘기기 전 저자의 헌사이다.

"시장 귀퉁이에서 문득문득 아직도 내 발걸음을 잡아 세우는 어머니께 바칩니다."

저자의 어머니께 바치는 헌사에 한참을 머물러 나의 부모님 생각을 했다.

가난을 기억하지 못하던 나의 어린 시절, 엄마는 나를 포대기에 업고 집집마다 다니며

음식 찌꺼기를 얻어다가 돼지를 키우고 콩나물을 길러 팔았으며 

아버지는 남의 집 점원으로 일하며 악착같이 돈을 모으셨다고 한다.

궁핍함을 모르고 자랐던 나의 풍요가 부모님의 뼈를 깍는 고생 덕이었으니...

이제 와 효도를 하고 싶어도 이미 계시지 않으니 참으로 슬프고 통탄할 일이다.

 

가난에 굴하지 않고 버티고 이겨냈던 어린 연재의 이야기는 바로 작가 자신의 삶이다.

저자는 시장 한 귀퉁이에서 생선을 팔던 어머니와 어린 시절을 그리워하며 

가난과 마음속 이야기들을 원없이 하고 싶었을 것이다.

책속에서 중학교를 검정고시로 마쳐야 했고 집안의 맏딸로 세 동생들을 돌보아야 했던

어린 그녀의 가난에 대한 절절한 묘사들이 마음 아프게 다가온다.

 

주인공 연재는 가난하지만 자존심이 강하고 총명하다.

11살이었던 연재와 똑똑한 오빠, 일정한 수입이 없어 떠돌던 아버지, 시장에서 생선을

팔아 하루의 생계를 책임져야 했던 엄마, 병에 걸린 막내와 동생 둘... 

사이다와 찐 달걀을 가지고 소풍을 가는 것이 소원인 연재는 맏딸이라 동생을 돌봐야 한다.

연재는 미군들이 차에서 던지는, 땅에 떨어진 쵸코렛의 향긋한 맛에 취하고 미군들이 버리는

쓰레기산에서 동네 아이들과 함께 찢어진 인형과 유통기한이 지난 깡통, 헌옷가지 등을 찾는다.

그리 오래지 않은 우리네 가난했던 부모 세대의 이야기이다.

연재네 집은 새마을운동의 초가지붕 개량하기에 의해 각목을 여기저기 받쳐서

바닥을 만들고 나무 계단을 몇 개 올라야 들어갈 수 있는, 키만 껑충하니 커서 공중에

뜬 것처럼 보이는 꺽다리집이다.

연재는 남의 기와집 처마에 애걸하듯 매달린 판잣집을 볼 때마다 가슴이 아프다.

색이 다른 판자를 이리저리 이어붙인 누더기같은 집이 불쌍하고

그 속에서 밥먹고 자는 식구들이 불쌍하고 판잣집 밑에서 먼지바람을 고스란히 뒤집어쓰고

있는 살림들이 불쌍하고 점점 더 초라해지는 자신이 한없이 불쌍하다고 생각한다.

문틈으로 흐릿한 불빛이 흘러나오는 집.

집요하게 스며드는 바람 때문에 온 가족이 웅크린 채 불안한 꿈을 꾸며 뒤척이는 집.

천막을 친친 감아 댄 몸뚱이를 떠받치기에는 너무 가느다란 각목이어서 위태로워 보이는

꺽다리집이지만...

연재는 손바닥만한 창문으로 달빛이 비쳐들고 비가 새서 양동이를

대 놓아야 햇던, 천장 구석이 시커멓고 어둠을 틈타 노래기들이 줄줄이 내려올 것이지만

그래도 식구들이 같이 있어서 참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바람이 함께 사는 꺽다리집이지만 가족들이 같이 있어 세상에 하나뿐인 집,

가끔 햇살에 반짝이는 서리가 눈부시게 예쁘고 식구들이 모여 밥을 함께 먹고 같이 울고 웃는

장소이다. 다행히도 똑똑한 아이들의 장래를 배려한 어느 이웃에 의해 싼 값에 따듯한 방으로

이사하고 입이 돌아간 아버지는 한의원에게 제대로 된 치료를 받게 된다. 

책의 결말은 행복하다. 

 <바람이 사는 꺽다리집>은 가난하지만 아름답고 소중한 가족의 의미를 알게 한다.

 

"꺽다리집이 어둠 속에 우두커니 남았다. 마지막 짐이 떠날 때 나는 잠시 걸음을 멈추고

돌아보았다. 여전히 바람은 차갑고 어떻게든 안으로 스며들고자 천막을 쑤석거리고 있었다.

어쩌면 바람에게도 집이 필요했던가 보다. 그러지 않고서야 날마다 저렇게 안간힘을 쓸리 없다.

그래 꺽다리집은 바람에게." ~ 181쪽

 

저자는 후기에서 유년시절 요람은 자신의 작품의 색깔을 지배하고 자신은 그곳에 속한

아이라는 것을 고백한다. 그녀는 누군가의 옷을 얻어입고 유통기한이 지난 음식을 먹고

표지와 내용이 맞지 않는 책이나마 갉아 읽듯이 읽을 수밖에 없었던 객사리의 유년기가

늘 황량했고 바람 사나운 객사리를 떠나는 꿈을 천 번쯤 꾸었으나 끝내 떠나지 못했다는

것을 술회한다. 삶의 본질적인 문제들을 문학적으로 형상화하는데 탁월한 그녀는

자신의 삶속에서 보여지는 것들을 유심히 관찰하고 그것을 내면화시키는 치열한

시간들을 보냈을 것이다. 작가의 토양이 된 가난은 오히려 작가의 보는 눈과 재능을

살리는 천혜의 기회를 제공했으리라 여겨진다.

삶을 구성하는 어느 것 하나도 버릴 수 없는 소중한 것들이기에 가난속에서 함께 했던

모든 것들 역시 시간이 흐른 후에 지나가버린 그리움의 대상이 될 것이다.

가난 안에 머무를 때에 지독하게 고통스럽다 할지라도...

댓글(1)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임유진 2011-04-11 23: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재미있겠네요 ㅇ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