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시봉, 서태지와 트로트를 부르다>는 제목을 처음 접했을 때 포크가수인
세시봉 가수들과 트로트 가수들 그리고 서태지가 함께 노래를 부른다면 어떤
모습일까. 다른 장르임에 분명한 노래들이 과연 섞일 수 있을 것인가 등의
생각이 들었다.
대중음악은 대중예술의 모든 장르중에서도 가장 민감하게 시대상과 사회적인
분위기 그리고 사람들의 정서를 밑바탕에 깔고 있다.
고로 음악이 동시대를 사는 사람들에게 사랑받고 널리 불려지기 위해서는
자기 시대의 사회상을 반영해야 할 것이다.
대중문화평론가이기도 한 저자 이영미는 이 책에서 시대별로 대중에게 사랑받았던
트로트, 포크, 신세대 가요를 소재로 각 세대가 자신의 대중음악을 같이 또 다르게
서로를 인정하고 소통해야 함을 피력한다.
대중예술의 유행이 시대, 세대, 계층으로 나뉘는 점을 고려할 때
대중예술을 시기별로 향유하던 세대의 사고방식과 시대적인 분위기 등을 전체적인
시선을 유지하며 서술하는 저자의 작업은 의미있는 일이라고 여겨진다.
저자는 식민지 시대를 지나 근대화 과정을 거쳐 외환위기를 겪으며 오늘의 시대에
이르기까지 우리 대중문화사와 대중음악을 심도깊게 짚어내고 있다.
가볍지 않은 이야기들임에도 수다떠는 것처럼 편한 말투로 질곡의 현대사를 반영하는
대중문화사와 대중음악에 대한 해박한 지식을 서술하는 모습에서 녹록치 않은
내공이 엿보인다.
저자는 명절 추석, 설특집으로 편성, 방영된 세시봉 열풍을 지켜보며 포크 취향의
청년문화 세대들이 노인층으로 진입했다는 것에 주목한다.
60~70년대의 명절특집이 민요였고 80~90년대의 조류가 트로트로 바뀌어 나훈아 쇼가
차지했는데 2010년 명절 특집이 세시봉 시대의 포크가 되었다는 것은 70년대 청년문화
세대들이 노인층으로 진입했음을 의미한다.
명절의 세시봉 쇼는 통키타와 청바지, 장발로 대표되는 청년문화 세대의 노령화를
말해주는 중요한 문화현상이다.
세시봉 콘서트에 나오는 가수들이 환갑을 넘었고 이를 지켜보던 사람들이 노인이
되었듯이 20년쯤 후에 머리가 허옇게 센 서태지 세대들이 텔레비전 앞에서 지난 날
좋아하던 노래를 들으며 추억에 잠길 것이다.
이 책은 대중음악을 통해 살아왔던 과거의 모습들을 알 수 있고 지나간 시절을
점검해볼 수 있는 기회와 시간들을 제공한다.
각기 다른 세대는 같은 세상을 살고 있지만 서로 다른 노래를 좋아하고 들으며
다른 생각과 느낌을 가지고 산다.
노래를 함께 부르지 못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차이라지만 다른 세대를 마음으로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심각한 문제이다.
나와 다른 생각과 가치관, 취향이라 하더라도 다른 이의 것을 소중하게 여긴다면
열린 마음으로 다른 세대의 생각과 느낌들을 이해하고 소통할 수 있을 것이다.
저자는 이 책에서 자신의 세대에서 향유했던 대중에술은 아련한 추억이자
즐거움으로 여기면서 청소년들의 것만을 유해한 것으로 단순화하는 이중적 잣대를
거두라고 당부한다.
마음을 열고 다른 세대가 좋아하는 음악에 대해 역지사지의 태도를 보이는 것은
대중예술을 바라보는 가장 중요한 태도일 것이다.
"세시봉 광풍의 에너지를 중년들의 추억을 되살리는 것으로 소진해버리고 말기에는
너무 아깝습니다. 다른 문화적 정체성을 가진 세대의 등장이 그러했듯이 이 광풍을
통해서도 세대와 시대에 대해 깊이있는 생각을 할 수 있을테니까요.
대중가요가 단지 추억을 불러내는 것에 멈추는 것이 아니라 우리 사회를 구성하고
협력하며 살아가는 각 세대의 문화와 사고방식을 살펴보는 디딤돌이 될 수
있을 겁니다." ~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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