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림책 <시간의 네 방향>은 같은 시간을 살아가는 수많은 사람들,
다른 시간을 사는 사람들의 되풀이되는 삶의 모습들을 이야기한다.
비슷해 보이는 그림들 속에 퍼즐과 실마리가 들어있고 연속적인 장면들을 담고
있어서 작가의 의도를 알기 위해 고민하며 읽어야 하는 책이다.
저자인 이보나 흐미엘레프스는 이 책을
'50년의 삶을 갈무리하는 일생의 역작'이라고 표현한다.
저자의 자신있는 표현만큼 철학적인 의미들이 많이 담긴 책이다.
표지에 초등학생이 보는 그림책이라고 되어 있지만 읽을 때마다 다른
느낌으로 다가오고 다소 난해하게 느껴진다.
유럽의 오래된 도시에 시계판 네 개가 동서남북을 향하고 있는 시계탑이 서 있다.
1500년부터 2000년까지 500년 동안 백 년마다 시계가 알리는 같은 시간에 시계탑의
동서남북의 네 집 안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4장면씩 24장면의 이야기로 담았다.
같은 시간, 시계탑은 똑같은 시각을 알려 주지만 각자가 느끼는 시간의
속도나 표정, 그 색깔과 양상은 다를 수맊에 없다.
작가는 시간의 흐름 속에서 사건들의 연속성에 대해 말하고 있다.
100년씩 건너뛴 시간들 속에서 사람들의 삶의 모습은 크게 다르지 않다.
음식을 먹고, 일을 하고, 이별하고, 슬퍼하고, 꿈꾸며 각자의 시간을 보내는
사람들은 같은 시간 다른 공간에서, 그리고 다른 시간과 같은 공간에서
서로 의식하지 못하지만 얽히고 설킨 인연으로 맺어짐을 보여준다.
수백년의 시간이 흐르면서 전쟁과 전염병, 가난, 홍수 등을 겪고 과거, 현재,
미래의 일들이 비슷하게 반복되는데...
여전히 사람들은 살고, 죽고, 태어나고 살아갈 것이다.
아무리 고통스러운 시간도, 붙잡고 싶은 행복한 시간도 모두 다 지나간다.
같은 시간이지만 어떻게 느끼느냐에 따라 더디 가는 것 같기도 하고
살처럼 빠르게 지나가기도 한다.
길지 않은 인생... 아까운 것이 시간이라 고통스러운 순간들마저도 지나고
보면 추억으로 남는다.
빨리 가라, 빨리 가라 등떠밀어 보내 아쉬움이 남는 시간들이 있다.
왜 그랬을까. 후회된다.
앞으로 주어지는 시간들은 충분히 느끼며 살아야겠다.

사람들은 몇 세기 동안 열쇠로 자기 집 문을 열고, 설거지를 하고 , 머리를
빗고, 식탁에 앉고, 아이들을 껴안고, 책을 읽고, 앞일을 생각해 왔어요.
500년 전이나 지금이나 똑같아요.

1500년 2월 어느 날, 아침 6시 동쪽 집 부엌
어부 아저씨가 요리사 아주머니에게 물고기를 가져 왔어요.
그 물고기는 강에서 얼음구멍을 뚫고 잡은 것이랍니다.
지금은 사육제 기간이고 저녁에 큰 잔치가 있어요.

2000년 12월 31일, 자정 동쪽 집 부엌
1600년의 동쪽집 부엌에서는 물고기가 조리를 위해 도막나 있었는데
2000년에는 도마 위에 물고기 뼈만 남아 있어요.
물고기는 오늘 아침 아는 아저씨가 낚시로 잡아다 주었어요.

1800년 8월 어느 날, 오후 5시 북쪽집 거실
아주 귀한 설탕은 은으로 만든 함에 보관하는데... 이상하군요.
열쇠가 어디로 갔을까요? 오늘 커피는 설탕을 넣지 못하고 마셔요.

2000년 12월 31일, 자정 북쪽집 거실
외국인 두 사람이 길에서 아주 오래된, 작은 은색 열쇠를 주웠어요.
행운의 상징인 이 열쇠로 새로운 천 년을 멋지게 시작하려고 마음먹어요.

"앞으로 100년, 200년, 300년 동안 이 도시에 무슨 일이 일어날지는 아무도 몰라요.
하지만 분명히 여름엔 태양이 이글이글 타오를 것이고 겨울에는 눈이 올거예요.
가을이면 나뭇잎이 노랗게 변하고 봄에는 꽃이 피겠지요.
갓 태어난 아이들은 시간이 지나면 증조할아버지, 증조할머니가 되어요.
백 년이 지나면 그들은 기억 속에만 남게 되고 또 백 년이 지나면 그들을 기억하던
아이들도 기억 속에만 남게 되지요.
시간을 알려 주던 금빛 시곗바늘이 언젠간 멈춰 설 수도 있겠지요.
하지만 시계가 멈춘다 해도 시간은 끊임없이 흘러갈 거예요." ~ 76-7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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