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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구상식사전 - 야구는 왜 매력적이고 위대한 스포츠인가
김은식 지음 / 이상미디어 / 2011년 4월
평점 :
절판
야구를 좋아하는 아들 덕에 야구에 관한 책들이 하나, 둘 늘어간다.
<야구 상식 사전>은 야구 이론을 정리하는데 그치지 않고 흥미롭고 다양한
이야기들이 포석을 깔고 있다. 그래서인지 글을 읽는 재미가 쏠쏠하다.
야구 역사의 연대기적 서술과 더불어 비하인드 스토리, 야구사에 길이 남을
진기록들과 야구 주변의 이야기들, 저자의 야구관, 야구경기들에 대한
저자의 독특한 시각과 해석 등이 담겨 있어 야구에 대한 선지식 없이도
즐거이 읽을 수 있다.
이 책은 야구가 왜 그토록 매력적이고 위대할 수밖에 없는지를 맛깔스럽게
풀어 놓았다.
노련한 글솜씨와 더불어 정치학과 사회학을 전공했던 저자의 논리적인
전개가 글 읽는 재미에 한몫을 차지했으리라 여겨진다.
인류가 처음으로 사용했던 무기는 돌멩이와 몽둥이이고 그들은 인간과 함께
진화해 온 몸의 확장된 일부분이다.
그렇게 원시적이며 원형적인 무기로 맞서 대결해 승부를 가리는 경기가 야구이다.
"야구에는 야성이 숨어 있고 치밀한 현대적 두뇌플레이와 수싸움이 가로지르며 빈볼과
태클과 벤치클리어링이 나오는 동시에 변화구와 치고 달리기, 시프트 수비가 등장한다.
야구는 몸으로 먹고 사는 거친 사내들의 이를 악문 승부욕에 지배되는 동시에 그들의
거친 숨소리를 지켜보고 눈물 흘리고 평생 기억하고 그리워하는 나른하고 감상적인
현대 도시의 여성적인 여가문화와도 맞닿아 있다.
야구는 인간의 진화 과정을 관통하며 몸으로, 유전자로 기억되어온 어떤 본능적인
감정선을 자극한다. 동시에 숫자 하나하나로 기록되고 가늠되는 현대적인 삶의 논리와
궤를 같이 한다."
아들이 기아타이거즈 팬인 것이 신기해서 하루는 왜 기아타이거즈 팬이냐고 물었다.
목포에서 태어난 아들의 대답이 걸작이다.
"마음의 고향이 전라도여서..."
헐.. 어릴 적부터 외가가 있는 목포가 익숙해서인가고 짐작했던 터다.
"실은... 가장 좋아하는 선수인 국가대표 1번타자 이용규가 있어서..
대단한 승부욕과 근성, 그리고 집중력이 있고 몸을 사리지 않는 주루플레이,
특이한 타구폼을 가진 선수라 엄청 좋아해요. 그의 플레이를 보고 있자면
야구에 대한 그의 집념이 느껴져서요.."
아버지와 남동생 역시 야구 시즌이 돌아오면 별일 없어도 경기를 챙겨 보시며
해태 타이거즈를 응원해서 야구를 잘 모르는 나도 해태의 팬이었다.
기아 타이거즈는 전신인 해태타이거즈가 단 한 번도 경험하지 못했던
꼴찌로 떨어지는 수모를 두 번이나 겪었다.
하지만 2009년 만년 유망주 김상현과 외국인 투수 구톰슨과 로페즈의 맹활약에
힘입어 정규리그 우승을 차지했다. 한국시리즈에서도 나지완의 짜릿한 역전
끝내기 홈런으로 해태 시절의 9회 우승에 더해 10회째 우승을 달성했다.
그 한 번의 우승으로 기아는 영광스럽고도 부담스러운 과거와 화해했고
멀어졌던 해태의 팬들을 현재의 팬으로 돌아오게 만들었다.
이렇듯 역전승이 있고 승리를 원하는 야구팬들의 기대와 설렘, 선수들의 열정과
땀이 있기에 야구 역사는 매번 새로운 진기록들을 양산하고 야구사의 페이지를
새롭게 장식한다.
잠실야구장이 생기면서 흘러간 야구장이 되어 버린 동대문야구장의 풍경에
대한 묘사는 지나간 시간들이 다 그렇듯이 가슴저리고 뭉클하다.
"난닝구 바람에 바지 허리띠를 가슴께까지 추켜올리고 민망한 '병신춤'을 추는
술꾼 아저씨 대신 늘씬한 아가씨들이 하늘하늘한 짧은 치맛자락 나풀거리며
응원을 이끄는 깔끔한 야구를 보게 되었다. 깔끔하지 못하고 때로 촌스러우며
종종 썰렁한 이 도시의 마지막 한 구석이 동대문야구장은 아니었을까.
그러나 그러건 말건 언제나 '플레이볼' 함성이 오르고 경기가 시작하면
환호성이 터지고 눈물이 터지고 욕설이 난무하고 고함이 날아다니던
그리운 축제의 밤.." ~ 71-72
'까마득하게 날아가는 하얀 공의 희열, 홈런' 편에서 저자는 생각지도
못한 순간, 기대하지도 못했던 처지에 찾아오는 행운들을 홈런에 비유한다.
만일 그것들이 없다면 삶이 얼마나 막막하고 심심한 고행이 될것인가...
'홈런은 삶의 어딘가에 숨은 채 나를 기다릴지도 모를 그런 벼락같은
희소식들을 떠올리게 하기에... 야구가 삶의 활력소가 되는 것'이라는
저자의 말은 희비가 교차하는 인생살이와 닮은 야구 경기에 매력을 느끼는
수많은 야구팬들의 입장를 대변하는 듯 하다.
"야구는 가슴 속의 피를 끓게 하는 동시에 머릿속의 회로를 급가속시키고
인간으로서의 삶을 끊임없이 되새기거나 연민하게 만든다.
야구란 그래서 삶...이..다." ~ 서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