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이네 살구나무 - 교과서에 나오는 동시조와 현대 동시조 모음집
김용희 엮음, 장민정 그림 / 리잼 / 2010년 4월
평점 :
품절


 



 

동시조는 동요, 동시와 함께 동시문학의 한 갈래이다.

동시조는 초장. 중장. 종장의 3장, 6구로 이루어진 시조의 가락에

어린이의 마음과 생각을 담아낸다.

묘사와 비유를 통해 시조 가락으로 동심을 표현해야 하는 창작의 어려움

때문에 전문적인 동시조 시인들이 드물지만 전통적인 문학 양식을 지키려는

시인들이 있어 그 명맥을 이어왔다.

1992년 박경용 시인은 동시조 동인회인 [쪽배]를 결성, 고유의 양식과

가락에서 가치를 찾으려는 시인들과 함께 동시조 창작에 전념하면서

많은 작품들이 창작되고 널리 보급되기 시작하였다.

 

저자인 김용희는 두 가지 체험으로 동시조의 중요성을 깨달았다고 한다.

하나 ; 조선일보에 짤막한 해설을 붙인 동시를 연재하였는데 그 조건이

9행 미만의 짧은 동시를 선정하는 것이었다.

이때 새롭게 발견한 양식이 동시조이다.

동시조는 짧고 이미지와 비유를 중시한 시적현실을 따르면서 동심의

상상력을 잘 담아낼 수 있었다.

둘 ; 일본 고등학교의 수업 참관 중에 하이쿠(단시)를 배우는

학생들에게서 그들의 전통문학에 대한 자부심과 민족적 자긍심을 자랑하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저자는 교실 뒤에서 우리의 전통문학인 초라한

정형시를 떠올리면서 수치심을 느낀다.

 

동시조는 짧은 시형에 재치 넘치는 동심적 상상력을 시적 이미지로 빚어낸

양식이라는 점에서, 그 속에 우리의 가락을 담고 있다는 점에서 그 문학적

가치는 실로 크다.

또한, 어린 독자들이 쉽게 외울 수 있는 낭송의 매력까지 지니고 있다.

 

이 책은 동시조 선집으로 1992년 [쪽배] 동인회 결성을 기준, 그 이전과

이후로 나누어 64 편의 작품을 수록하였다.

저자는 이 작은 동시조 선집 하나가 우리 가락으로 노래하는 동심의 세계에

새로운 문학적 관심을 불러 일으키는 큰 계기가 되기를 소망한다.

 

   분이네 살구나무 

동네서 젤 작은 집 분이네 오막살이

동네서 젤 큰 나무 분이네 살구나무

밤 사이 활짝 펴 올라 대궐보다 덩그랗다 ~ 정완영

 

분이네 집은 동네에서 가장 작고 초라하지만 가장 큰 살구나무가 있다.

오막살이를 자랑스럽게 꾸며 준 봄, 봄이 밤 사이 살구꽃을 활짝 피워서

분이네 집은 대궐보다 더 훌륭한 집이 된다.

 



 

 정류장에서

어느 더운 나라에서 일하러 온 아저씨일까.

언 손을 호호 불며 정류장에 나와 섰다.

봄으로 가는 버스가 빨리 왓으면 좋겠다. ~ 전병호

 

겨울은 가난한 이들에게 힘든 계절이다.

추운 겨울날 일터를 가기 위해 버스를 기다리는 외국인 노동자들...

그 옛날, 우리들도 다른 나라에서 봄을 기다렸고 손발이 시린

추운 겨울을 보냈다.

그들의 고단함을 달래 줄 봄이 어서 왔으면... 이국 땅 차가운 겨울, 

얼어버린 그들의 손을 녹여 주고 싶은 시인의 따스한 마음이 전해진다.

 



 

몽돌

물새가 껍질을 깨고 나오려는 것일까.

손에 쥐니 참 따뜻하다. 어미새가 품던 알처럼

바다가 갈고 다듬어 놓은 작고 까만 돌새알. ~ 전병호

 

몽돌... 나는 어릴 적 몽돌을 빠돌, 빠독 이라고 했다.

반질반질한 빠돌을 가만히 쥐고 손가락을 오물거리면 기분이 좋았다.

몽돌은 몽돌이 되기까지 얼마나 많은 시간을 기다려야 했을까.

 



 

징검다리

고 작은 걸음 나비로는 아무래도 부치겠다.

폴짝폴짝 건너뛰다 삐끗하면 어쩐다지?

안스런 짝꿍 생각에 사잇돌 세 개 놓았다. ~ 박경용

 

어른들이 건너 다니는 개울가에 놓인 돌 사이로 키 작은 짝꿍이

물에 빠질까, 넘어질까 몇 날 며칠을 걱정하다가...

개울가에서 적당한 크기의 사잇돌을 찾노라 구부린 아이의 모습이 생생하다.

 



 

꽃신

꽃놀이 때 한번 신고 곱게 아껴 두었더니

단풍구경 가는 길에 발꿈치를 자꾸 문다.

요담에 세배 가는 날 신고 가나 두고 봐라 ~ 허일

 

봄에 신은 꽃신...

신지 않고 내내 아껴 두었는데 이제는 작아져 신을 수가 없다.

그렇줄 알았으면 아끼지 말고 신을걸 그랬다.

 



 

낙타

울 엄마 울 아빠는 하루해가 사막 같대

올망졸망 매달리는 우리들 짐보따리

좌판대 먼지나 터는 하루해가 너무 길대

그래도 야자나무 넓은 그늘 어디일까

꿈에도 좌판대 벌린대 사막 세상 헤맨데. ~ 서재환

 

가난한 엄마 아빠는 길거리에서 물건을 판다.

하루는 무척이나 길지만 물건은 팔리지 않고.

길고 긴 사막같은 세상에서 벗어나고도 싶지만...

먹고 사는 일, 세상사는 쉬운 일이 없어서,

가난한 엄마, 아빠는 낙타처럼, 낙타처럼 끝없이 걸어간다.

꿈에서도 사막같은 길을 걸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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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산스님 초기경전 강의 - 한국 불자들의 공부 갈증을 채워주는 새로운 경전 읽기
미산 스님 지음 / 명진출판사 / 2010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깊은 산 속에 자리잡은 절을 갈 때마다 마음이 가라앉고 속세의 눅진한 때가

벗겨지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편안하게 맞아주는 부처불상들과 스님들의 목탁소리, 불경소리가 가득한 절에서는

발걸음과 숨소리마저 조용해진다.

오래전에 엄마와 할머니가 절에 다녔고 그 치마꼬리를 잡고 따라 다니던 기억때문인지

불교신자는 아니지만 불교 교리에 대한 관심과 호기심이 있던 차에 이 책을 만났다.

어려운 교리를 쉽게 풀어 해석하는 저자의 능력이 놀랍다.

대화체로 조근조근 설명하는 글을 읽다 보면 불교교리가 일상생활에서 쉽게 이해되고 

현대 사람들의 복잡한 내면세계와 그 심리에 대해 다루는 심리학과도 밀접하게

맞닿아있는 것을 알게 된다.

 

저자 미산스님의 사주는 스무 살까지 살기 힘들다는 사주였다고 한다.

단명할 운명을 피하기 위해 어린 나이에 절에 보내졌던 그는 무의식 속에

'죽음이란 대체 무엇일까? 죽음을 뛰어넘는 길은 없는 것일까?'

라는 문제로 고민한다.

중학교 2학년이던 어느 날, 위암 말기로 입적한 주지스님의 죽음을 처음 목도하고

충격에 사로잡혔던 그는 석가모니가 생로병사의 고민을 안고 가출을 결심했듯이

수행길에 나서게 된다.

대학을 졸업하고 스리랑카, 인도, 영국, 미국의 대학 등에서 유학하면서 학문을 위한

학문이 아니라 마음수행을 위한 실질적인 불교 공부를 하게 된다.

 

이 책은 방대한 불교 경전과 그것을 해석하는 다양한 언어와 표현방법 때문에 생기는

불일치를 극복하고 부처가 불법을 펴신 핵심 가르침을 한 꾸러미로 꿰어 일관성있는

주요 사상을 드러내고 있다.

전체 내용은 8장으로 나누어 연기법과 일체법, 삼법인, 사성제, 12연기와 연기법 실천 등

초기불교의 핵심교리를 중심으로 초기경전의 말씀을 발췌하여 실었다.

(초기경전은 부처가 초기에 설법한 말씀을 모아놓은 것이다)

각 장과 관계되는 부처님 말씀을 원문 그대로 싣고 다시 한문으로 옮기고

우리말로 쉽게 주석을 달았다.

책에서 나오는 불교교리에 대해 다 알 수는 없었지만 생활과 관련해서 설명하는

많은 부분에서 공감할 수 있었다.

이 책은 불교에 대한 흥미와 관심이 있거나 교리를 공부하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더없이 훌륭한 참고서가 될 것이다.

 

부처의 깨달음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연기법이라고 한다.

연기법은 세상의 모든 존재현상들이 원인과 조건에 따라 , 즉 인연 따라 형성되었다는 것이다.

연기법에 의해 세상과 자신을 바라보다 보면 나와 남은 뗄 수 없는 한 몸으로 연결된다.

지혜와 자비행을 살아야 한다는 것이 여기서 드러난다.

불교에 대해 잘 모르는 나에게도 연기법의 의미는 쉽게 다가왔는데 연기법을 실제 생활에서

실천하는 방법에 대한 마지막 장은 여러번 새겨 읽어도 좋았다.

저자는 연기법을 실천하는 4가지 수행법에 대해 설명한다.

4가지 수행법을 과제삼아 실천한다면 마음이 고요해지고 평화롭게 될 것 같다.

첫째, 감사하고 사랑한다. 수행법은 들숨에 '감사합니다.' 날숨에 '사랑합니다.'를 반복한다.

둘째, 공존을 생활화한다.

        공간을 모든 존재와 함께 쓰고 있다는 사실을 한시도 놓치지 않고 행복하게 생활한다.

세째, 안으로 늘 깨어 있자.

        순간 순간 깨어있는 마음으로 상황의 노예가 되지 않고 자신의 말과 뜻을 관조한다.

        맑은 물 한 컵과 흙탕물 한 컵을 가만 놔두면 양쪽 다 맑게 보이지만 막대로 휘저어보면

        맑은 물은 그대로 맑지만 흙탕물은 엄청나게 탁해진다. 항상 마음을 정화하는 수행을

        해야만 어떤 경계를 맞더라도 맑고 당당한 모습을 유지할 수 잇다.

네째, 좋으면 좋은 대로 있는 그대로 보고 흘려보내고 나쁘면 나쁜 것대로 흘려보낸다.

 

사바세계는 고통을 참고 살아야 하는 세계이다.

여러 고통 중에 참으로 괴로운 것은 정신적인 압박감과 불안함, 모멸감과 수치감이다.

이런 괴로움을 당할 때에 사람들은 이중의 고통에 시달린다.

스님은 '두 번째 화살을 맞지 마라'고 충고한다.

우리는 가족, 친지, 동료들의 말과 행동을 통해 의사소통을 한다.

"경계에는 외경 (外境)과 내경(內境)이 있다.

예를 들면, 상사가 지시하는 말과 행동은 외경이다.

'기분 나빠. 나 잘하고 있는데 왜 저래?' 하는 생각이 내경이다.

외경은 첫 번째 화살로 상사가 그러는 것을 내가 말릴 수도 없고 어쩔 수 없이 맞아야 한다.

두 번째 화살은 그 외경을 맞았을 때 거기에 반응하는 내 마음이다.

그런데 생각이 일어날 때마다 두 번째, 세 번째, 열 번째, 백 번째 화살을 계속해서

자기가 스스로에게 쏜다." ~ 197 쪽

 

인간은 스스로 의식하건, 의식하지 못하건 홀로 살 수 없는 존재여서 온갖 종류의

사회에 속해 있다.

말과 생각과 행동으로 남에게 상처를 주기도 하고 받기도 하면서 살아간다.

행복한 마음으로 평생을 살아도 허무하게 가는 것이 인생인데...

오고 가는 상처 속에 마음이 약한 사람들은 만신창이가 되기도 한다.

다른 이에게 상처를 주는 것은 큰 죄이니 항상 삼가하고 조심해야겠다.

다른 이를 받아들임에 있어서도 스스로를 상처내지 않아야 할 것이다

건강한 정신을 가지려면 저자의 '두 번째 화살을 맞지 마라'는 말을 명심해야겠다.

 

"즐거운 느낌을 경험할 때도 매이지 않고 그것을 느낀다.

괴로운 느낌을 경험할 때도 매이지 않고 그것을 느낀다.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은 느낌을 경험할 때도 매이지 않고 그것을 느낀다.

지혜 있는 이,

즐거운 느낌이나 괴로운 느낌 겪지 않나니." ~ 200쪽 <화살경>

 

"바와뚜 삽바 망갈람  모든 존재들이 다 행복하기를." ~ 39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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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무소유 - 법정스님 이야기
정찬주 지음 / 열림원 / 2010년 4월
평점 :
절판


 



 

<소설 무소유>는 법정 스님의 출가전 소년시절의 모습에서 입적하기까지

그 일대기를 기록하고 있다.

저자 정찬주는 스님에게 법명과 계를 내려 받은 재가제자이다.

그는 스님에게 스님의 저서에 나오지 않아 세상 사람들에게 알려지지 않은

소년시절과 학창시절의 고독했던 이야기들에 대해 듣는다.

집을 떠나 등대를 벗삼아 사는 등대지기를 동경했던 소년, 소년이 4살 되던

해에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어머니는 아버지가 다른 여동생을 낳았고 그는 이후 어머니와 여동생을 멀리 한다.

초등 5학년 산수시간에 일본인 흉내를 내는 조선인 담임교사에게 반감을

표시하다가 무자비하게 폭행을 당한 일, 목포에서 중학교를 다니면서 공납금을

내지 못해 울던 이야기, 아르바이트를 하며 어렵게 학교에 다니던 이야기 등이

소설의 앞부분에 등장한다.

집보다 절에서 편안함을 느꼈던 그는 돌멩이를 바다에 던지면서,

던져져 바다에 수장된 돌멩이처럼 다시 돌아오지 않으리라 결심, 속세의 인연을

끊고 고향을 떠난다.

 

글은 소설의 형식을 빌었지만 스님의 살아 생전의 모습이 생생하게 묘사되어

있어서 한 편의 다큐를 보는 듯하다.

글 한 줄 한 줄에서 스님의 인간적인 향기가 묻어 나온다.

 



   '맑고 향기롭게' 근본 도량인 길상사 극락전 

 

은사인 효봉스님에게 법法의 정頂수리에 서라는 법명을 받은 법정 스님...

구도의 길 위에서 끊임없이 갈고 닦으며 정진하는 그 모습은 치열하기 그지 없다.

'미리 쓰는 유서'를 새겨 읽다 보면 스님이 자신의 긍극적인 목표인 선을 위해

얼마나 섬세하게 노력했는지 알 수 있다.

섬세한 노력... 그렇다.

그 섬세함은 사람에게 상처주지 않으려는 마음과 배려이다.

"나는 인간의 선의지, 이것밖에는 인간의 우월성을 인정하고 싶지 않다.

온갖 모순과 갈등과 증오로 뒤범벅이 된 이 어두운 인간의 추락에 오늘도

해가 떠오르는 것은 오로지 선의지 때문이다.

세상을 하직하기 전에 내가 할 일은 먼저 인간의 선의지를 저버린 일에

대한 참회다.

나는 평생 한가지 일로 돌이킬 수 없는 후회와 자책을 느끼고 있다.

중학교 1학년 때, 동무들과 어울려 집에 돌아오는 길에서였다.

엿장수가 엿판을 내려놓고 땀을 들이고 잇었다.

대여섯 된 우리는 그 엿장수를 둘러싸고 엿가락을 고르는 체하면서 적지

않은 엿을 빼돌렸다. 팔 하나가 불구이고 말을 더듬는 그는 그런 영문을

전혀 모르고 있었다. 돌이킬 수 없는 이 일이 나를 괴롭히고 있다.

내가 살아 생전에 받았던 배신이나 모함도 그때 한 인간의 순박한 선의지를

저버린 과보라 생각하면 능히 견딜 만한 것이다." ~ 161-162쪽

 

스님은 사람은 물론이고 말못하는 동물, 꽃과 풀, 이끼에게도 사랑을 베푼다.

산중에서 사는 동안 찾아오는 다람쥐, 말벌, 토끼, 까투리, 홀로 피어난 용담,

해바라기, 초록색 이끼 등등 찾아오는 짐승들에게는 먹을 것을 나누고 식물에게는

말을 걸어 숨결을 불어 넣는다.


"며칠동안 펑펑 눈이 쏟아져 길이 막힐 때 오도 가도 못하고 혼자서 적막강산에 
갇혀 있을 때 나는 새삼스럽게 홀로 살아 있음을 누리면서 순수한 내 자신이 되어 
둘레의 사물과 일체감을 나눈다.
그리고 눈이 멎어 달이 그 얼굴을 내보일때 月白雪白天地白의 그 황홀한 경계에 
나는 숨을 죽인다. 살아 있는 모든 이웃들이 다 행복하라. 태평하라. 안락하라."

  ~ <살아있는 것은 다 행복하라> 중에서 

 



    강원도 수류한방 오두막

 

그는 말년에 화전민들이 비우고 간 강원도

수류산방(水流山房~오두막 옆으로 개울물이 흐른다) 오두막에 기거하였다.

자신의 삶도 오두막처럼 간소해지기를 바라면서 날마다 버리고 또 버릴 것을 기도했다.
   

스님이 말한 무소유는 필요없는 것을 가지지 않는 것을 의미한다.

나이가 들면서 필요없는 물건들이 묵은 세월만큼 쌓이곤 한다.

계절이 바뀌면서 옷을 버리고, 신발을 버리고 하다못해 부엌살림을 하나, 둘 버리면서

무소유를 실천하는 일은 내 자신과의 싸움이라는 생각이 든다.

근검 절약하고 내게 남은 것은 나보다 못한 이웃에게 돌리는 것이 진정한 무소유를

실천하는 길이다.

물질에서만이 아니라  마음의 묵은 때도 벗기고 또 벗겨서 맑은 마음으로 살고 싶다.

스님처럼 산중에서 홀로 구도의 길을 걸을 수는 없지만 마음밭을 가꾸며 빈 마음으로

살아야겠다.

 

"어둠이 내리자, 영롱한 별들이 오두막으로 쏟아질 듯했다.

뒤곁으로 날아온 머슴새가 또다시 쏙독쏙독 소리를 내 골짜기를 울렸다.

법정은 찬물을 길어왔다. 멀리서 구해온 햇차를 마시고 별을 다시 보기 위해서였다.

별을 쳐다보고 잇으면 광대무변한 우주와 그 신비 앞에서 숙연해졌다." ~ 243쪽

 

소로가 월든 호숫가에서 명상하며 살았던 것처럼

자연과 벗삼아 청정하게 살다 간 스님이 부럽고도 존경스럽다.

그토록 맑은 가난과 고독을 선택한 삶이란... 얼마나 멋진가.

 



 

"홀로 있는 것은 온전한 내가 존재하는 것.

발가벗은 내가 내 식대로 살고 있는 순간들이다.

아무에게도, 잠시라도 기대지 말 것.

부엌과 고방에 쌓인 너절한 것들 모조리 치워 없애다.

절대로 간소하게 살 것.

날마다 버릴 것." ~ 22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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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페이스풀 - Unfaithful
영화
평점 :
상영종료


 



 

2002년에 개봉한 영화 <언페이스풀>은 1969년 아내의 불륜을 그린

끌로드 샤브롤 감독의 리메이크작이다.

<위험한 정사>와 <은밀한 유혹>의 에드리안 라인이 연출을 맡았는데

단순한 내용인데도 리차드 기어와 다이안 레인의 뛰어난 연기와  

순간적인 감정들의 섬세한 묘사가 빛나는 영화이다. 

영화는 아내의 불륜을 다룬 한국영화 <해피엔드>와 비슷하지만 몇가지

차이를 보인다.

해피엔드에서는 남편이 아내를 죽이기위해 치밀하게 범죄를 계획하지만

이 영화에서는 극히 우발적으로 아내가 아닌, 아내의 정부를 죽이게 된다.

해피엔드의 전도연은 코니보다 훨씬 독한 엄마이고 양심의 가책 면에서도

코니보다 자유롭게 여겨진다.

(전도연이 젖먹이 아이에게 수면제를 먹이고 정부를 만나러 가는 장면은

충격 그 자체이다)

가정을 지키기 위해 아내의 불륜을 덮는 에드워드에 비해 최민식의

아내에 대한 증오는 아내를 계획적으로 살해할 만큼 크다.

 

영화의 결말 그 이후가 궁금하다.

에드워드는 자수해서 정상참작이 되어 짧은 형기를 마치고 아내와 아들과

함께 다시 행복하게 살것인가.

멕시코로 가서 모두 잊고 아내를 용서하며 행복하게 살 것인가.

신뢰를 깨뜨리고 불륜을 저지른 아내를 용서하지 못하고 괴로워할 것인가.

그리하여 결국 헤어질 것인가.

영화는 열린 결말로 처리, 각자의 상상에 맡겼지만.

내 느낌은... 행복하게 사는 것이 어려울 것 같다.

이불에 오줌을 싼 아들에게 "누구나 실수할 수는 있는거야."라고 말하는

코니에 비해 에드워드는 회사 직원이 다른 회사 관계자와 미팅하는 것을

알고 "신뢰를 깨면 안되는 것"이라고 말한다.

 

불륜이 운명일까... 선택일까... 선택마저 운명에 포함되는 것일까...

불륜은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 물론 영화의 남녀 배우처럼 멋지고

매력적이지는 않다 하더라도- 일이기는 하다.  

만약 사회적, 도덕적으로 죄가 아니고 행위에 따른 책임에서 자유롭다면,

영화처럼 멋진 불륜을 저지르고 싶다는 생각을 누구나 할 것이다.

사랑의 유효 기간이 2~3년이라는 말이 맞다면, 평생을 한사람만 바라보고

사는 것은 어쩌면 지겨운 일인지도 모른다. 

백 년도 못 사는 인생인데 좀 즐기면서 살아도 되지...

라는 생각을 할 수도 있다.

그럼에도 사람이 살면서 지키고 지켜져야 할 미덕이 있다.

유리처럼 깨지기 쉬운, 약한 인간의 삶... 그래서 소중한 몇가지 원칙들을

가지고 살아가야 한다.

결혼의 순결과 가정 역시 소중히 지키고 보호함으로써 행복이라는 파랑새를

내 옆에 두게 되는 것이 아닐까. 

눈에 보이지 않는 소중한 것일수록 가지고 있을 때는 흔한 것이고 평범하다.

그러나 한번 깨진 이후에는 아무리 복원하려 해도 원상태로 돌려 놓기는

불가능할 것이기에...

 



 

뉴욕 근교에 사는 에드워드 서머(리차드 기어)와 코니 서머(다이안 레인) 부부는

8살의 아들과 함께 행복하게 살아가는 중년의 부부이다.

열심히 일하는 자상한 남편 에드워드.

 



 

아름다운 코니. 가정에 충실하고 자선 단체의 일에도 열심이었던 그녀는

뉴욕의 거리에서 부부의 행복을 시기하는 운명의 바람을 만난다.

 



 

코니는 어느날 우연히 만난 매력적이고 젊은 남자 폴 마텔 (올리비에 마르티네즈)에게

정신없이 빠져든다.

 



 

다이안 레인은 관능적인 노출과 표정으로 정염에 싸인 모습을 실감나게 연기한다.

목욕탕 장면, 열차에서 폴 마텔과 자신의 모습을 생각하는 리얼한 표정연기,

남편의 범죄 사실을 알고 슬퍼하는 장면 등에서 그녀의 연기는 빛난다.

 



 

에드워드는 코니가 젊은 남자와 불륜을 저지르고 있음을 알게되고 고통스러워한다.

헐리우드의 섹시 가이인 리차드 기어가 이 영화에서는 남편의 역할을 맡아 열연한다.

 





 

수정구슬은 아내에게 결혼 25주년이 되면 열어 보라고 구슬 아래에 편지를 넣은

특별한 선물이다.

그는 폴 마텔의 집에서 아내에게 선물했던 구슬을 아내가 폴에게 선물했다는 것을

알고 분노한다.

소중하게 지키던 가정을 깨버린, 코니와 자신과의 관계를 너무나도 태연하게,

아무 주저함이나 죄의식 없이 털어 놓는 폴에게 그는 분노한다.

(침대 가장자리에 앉아 격심한 분노로 떨고 있는 에드워드를 연기하는 리차드 기어는

역시 최고이다. "더이상 참을 수 없어, 더이상은...")

평생 후회하게 될 순간이 흐르고.......

자동응답기에 아내의 음성이 들려온다.

"폴, 이제 그만 만나야겠어요. 미안해요."

 



 

코니는 남편의 주머니에서 자신과 폴의 사진이 들어있는 것을 보게 된다.

 



 

자신이 폴에게 주었던 수정구슬을 집의 거실에서 발견한 코니는 모든 사실을 알게 되고...

 



 

모든 일의 후회는 항상 한 발 늦게 찾아온다.

코니가 그날 뉴욕의 소호 거리를 걷지 않았더라면...

무릎이 다치지 않았더라면...

그녀가 공중전화를 걸어 그를 만나자고 하지 않았더라면...

그가 그녀에게 커피를 대접한다고 할 때 그녀는 마시던 커피를 슬며시 전화기

위에 올려 놓는다.

(그 감정의 떨림을 그녀는 표현했고 감독은 섬세한 연출로 화면에 잡았다)

그만 만나자는 코니의 자동 응답 전화가 조금 더 빨리 울렸다면...

끝까지 에드워드가 코니를 믿어 주었더라면...

 

거부할 수 있었다면 바람이 아니었을텐데...

바람 또한 운명일까?

더 이상 참을 수 없었어도 한번만 더 참았다면 그 가정은 행복해졌을까?

인간의 생각과 말과 행동으로 생기는 모든 일이 일어나기 전에 그 결과를 알 수 있다면,

그래서 인생에서 실수하지 않을 수 있다면,

우리의 삶은 훨씬 행복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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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이샤의 추억 - Memoirs of a Geisha
영화
평점 :
상영종료






 

<게이샤의 추억>은 1997년 출판된 아서골든의 원작을 영화 <시카고>의 롭마샬이 

연출하였다.

화면 가득히 퍼지는, 화려한 색채의 영상에 존 윌리엄스의 신비로운 음악이 흐른다. 

250벌의 화려한 기모노와 사실감을 살리는 세트의 재현, 많은 제작비 등으로 화제를

몰고 왔던 이 영화는 일본이 아닌, 미국 자본으로 만들어진 헐리우드 영화이다.

(주인공들은 모두 영어로 말한다)

 

남자들의 로망을 자극하는 게이샤...

펼치면 8미터에 달하는 화려한 기모노와 목덜미까지 새하얀 화장, 새빨간 입술...

'아름답지 않으면 게이샤라고 할 수 없다'는 말이 있듯이 아름다움은 기본이고

춤, 음악, 미술, 화법 등 다방면에 걸쳐  험난한 교육 과정을 거쳐야 정식 게이샤로

인정받을 수 있었다.

돈과 권력이 없었던 계층에서는 쳐다볼 수 조차 없었던  게이샤의 세계를 보며

복잡한 생각이 드는 것이 사실이다.

게이샤가 단순히 몸을 파는 사람들이 아니라 기예와 음악, 마음가짐까지 철저하게

예술가라는 설명에도 불구하고 몇가지 이유로 납득이 가지 않는다.

그것은 기생 황진이가 예술가인가. 아닌가의 문제인지도 모른다.

어찌됬건, 남자에 의해 선택되는 것이 게이샤의 삶이라면 예술가라는 표현은

어딘지 맞지 않는 것처럼 들린다.

예술인이라면 일방적인 순종, 복종의 의미보다는 자유와 자율적인 삶이 먼저

떠오르는데...

내가 게이샤에 대해 오해하고 있는 것일까?

게이샤의 문화가 당연시되는 사회 안에서 예술가연하면서 돈이 많은 남자를  

후견자로 두려 하고 남자들 앞에서 술을 따르고 춤을 추며 자신의 몸을 경매에

내거는 것등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  

영화에서는 게이샤와 남자들 뒤에 가려진 다수 여자들, 즉 본처에 대한 언급은 

전혀 나오지 않는다. 물론 영화가 전부를 다룰 수는 없겠지만...

우리네 옛날 양반들과 기생, 일본 남성들과 게이샤의 관계를 생각하다 보니 세상

많이 좋아졌다는 생각이 절로 든다.

 

그런데 일본 게이샤의 이야기에 왜 중국의 여배우들이 등장하는지...

(일본 게이샤 영화에 미국감독, 영어로 대사처리한 것도 생소하다)

그들이 권력과 돈을 가진 남자들로 분한 일본 남자 배우들의 시중을 드는 게이사

역할을 하는 설정이 왠지 마음에 들지 않는다.

아마 중국에 대한 동병상련의 감정이 분명하다.

중국에서도 이런 이유로 상영금지가 되었다고 한다.

 

여러 불만들에도 불구하고... 재미만을 따진다면...

<게이샤의 추억>은 분명 볼거리가 많고 재미있는 영화이다.

꽃잎 날리는 장면, 춤추는 장면, 게이샤의 화장법과 머리, 아름다운 영상, 화려한

기모노의 아름다움, 게이샤의 문화에 대한 살짝 엿보기,

배우들의 출중한 연기, 무엇보다 신비롭고 은근한 음악 등등.



 



 

청회색 신비한 눈동자, 눈에 가득 물기를 담고 있는 치요.

물의 운명을 타고난 치요...

(물은 바위도 뚫을 수 있고 흐름이 막히면 새로운 길을 찾는다. 어느 곳에나 스며드는

물처럼 자신의 운명을 만들어 나간다)

일본의 작은 어촌 마을에서 살던 치요는 가난 때문에 교토의 게이샤 하우스로 팔려 간다.

치요를 처음 본 순간 하츠모모(공리)는 그녀의 비범함을 한눈에 알아본다.

어린 치요를 질투하면서 그녀에게 도둑 누명을 씌우고 경멸한다.

 



 

슬픔과 분노에 젖은 눈동자, 냉소적인 입매, 풀어 헤친 듯한 긴 머리와 여미지 않은

앞섭, 어딘지 흐트러진 기모노 자락...

공리는 질투로 몸부림치고 사랑에 우는 여인 역을 실감나게 한다.

그녀는 '중국이 세계에 선사한 공리'라는 말을 이 영화에서도 증명한다.

광기와 허무, 비애에 빠진 악인을 연기하지만 절실함과 절절함에 대한 그의 연기는

그 악마저도 공감하게 한다.

 



 

도망가다 지붕에서 떨어져 빚이 늘어난 치요는 게이샤에서 하녀의 신분으로 떨어지고.

삶의 목표가 없이 절망에 빠진 그녀에게 다가온 작은 친절...

치요는 그에게 다가가기 위해 게이샤가 되기로 결심한다.

빙수를 사 주고 손수건에 돈을 싸서 건네는 체어맨 역은 <라스트 사무라이>의

와타나베 켄이 맡아 열연한다.

 



 

치요 역을 맡은 일본의 CF스타 오고 스즈카. 참 예쁘다. 연기도 잘한다

 



 

치요는 마메하(양자경)의 덕분으로 하녀 신분에서 벗어나게 되고 혹독한

게이샤 수업을 받게 된다.
이후 치요는 사유리라는 이름을 받고 최고의 게이샤가 된다.








 

30cm 이상의 나막신을 신고 등장, 게이샤의 마지막 관문인 춤을 추고

몸의 대가로 15000엔의 최고 경매가를 받는다.

신비로운 춤과 동양의 정서를 표현하는 음악, 화려한 춤사위, 몰입하는 장쯔이...


 


 

오래도록 사모해 왔고 그의 옆에 머무르기를 소망하던 사유리는 마침내 그의

사랑을 확인하는데...

 



 

"태양에게 더 비추라거나 비에게 덜 내리라고 말할 수는 없다.

남자에게 게이샤는 절반의 부인일 수밖에 없다.

작은 여자애가 자신이 알던 것 이상의 용기를 냈던 것은 기도의 응답을

받았던 것이다.

그걸 행복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

결국 이 모든 추억은 여제의 것도 여왕의 것도 아니다.

이 모든 것들은 다른 종류의 추억인 것이다."

 

"게이샤는 모든 것을 다 얻어도 사랑만은 얻지 못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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