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소설 무소유>는 법정 스님의 출가전 소년시절의 모습에서 입적하기까지
그 일대기를 기록하고 있다.
저자 정찬주는 스님에게 법명과 계를 내려 받은 재가제자이다.
그는 스님에게 스님의 저서에 나오지 않아 세상 사람들에게 알려지지 않은
소년시절과 학창시절의 고독했던 이야기들에 대해 듣는다.
집을 떠나 등대를 벗삼아 사는 등대지기를 동경했던 소년, 소년이 4살 되던
해에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어머니는 아버지가 다른 여동생을 낳았고 그는 이후 어머니와 여동생을 멀리 한다.
초등 5학년 산수시간에 일본인 흉내를 내는 조선인 담임교사에게 반감을
표시하다가 무자비하게 폭행을 당한 일, 목포에서 중학교를 다니면서 공납금을
내지 못해 울던 이야기, 아르바이트를 하며 어렵게 학교에 다니던 이야기 등이
소설의 앞부분에 등장한다.
집보다 절에서 편안함을 느꼈던 그는 돌멩이를 바다에 던지면서,
던져져 바다에 수장된 돌멩이처럼 다시 돌아오지 않으리라 결심, 속세의 인연을
끊고 고향을 떠난다.
글은 소설의 형식을 빌었지만 스님의 살아 생전의 모습이 생생하게 묘사되어
있어서 한 편의 다큐를 보는 듯하다.
글 한 줄 한 줄에서 스님의 인간적인 향기가 묻어 나온다.

'맑고 향기롭게' 근본 도량인 길상사 극락전
은사인 효봉스님에게 법法의 정頂수리에 서라는 법명을 받은 법정 스님...
구도의 길 위에서 끊임없이 갈고 닦으며 정진하는 그 모습은 치열하기 그지 없다.
'미리 쓰는 유서'를 새겨 읽다 보면 스님이 자신의 긍극적인 목표인 선을 위해
얼마나 섬세하게 노력했는지 알 수 있다.
섬세한 노력... 그렇다.
그 섬세함은 사람에게 상처주지 않으려는 마음과 배려이다.
"나는 인간의 선의지, 이것밖에는 인간의 우월성을 인정하고 싶지 않다.
온갖 모순과 갈등과 증오로 뒤범벅이 된 이 어두운 인간의 추락에 오늘도
해가 떠오르는 것은 오로지 선의지 때문이다.
세상을 하직하기 전에 내가 할 일은 먼저 인간의 선의지를 저버린 일에
대한 참회다.
나는 평생 한가지 일로 돌이킬 수 없는 후회와 자책을 느끼고 있다.
중학교 1학년 때, 동무들과 어울려 집에 돌아오는 길에서였다.
엿장수가 엿판을 내려놓고 땀을 들이고 잇었다.
대여섯 된 우리는 그 엿장수를 둘러싸고 엿가락을 고르는 체하면서 적지
않은 엿을 빼돌렸다. 팔 하나가 불구이고 말을 더듬는 그는 그런 영문을
전혀 모르고 있었다. 돌이킬 수 없는 이 일이 나를 괴롭히고 있다.
내가 살아 생전에 받았던 배신이나 모함도 그때 한 인간의 순박한 선의지를
저버린 과보라 생각하면 능히 견딜 만한 것이다." ~ 161-162쪽
스님은 사람은 물론이고 말못하는 동물, 꽃과 풀, 이끼에게도 사랑을 베푼다.
산중에서 사는 동안 찾아오는 다람쥐, 말벌, 토끼, 까투리, 홀로 피어난 용담,
해바라기, 초록색 이끼 등등 찾아오는 짐승들에게는 먹을 것을 나누고 식물에게는
말을 걸어 숨결을 불어 넣는다.
"며칠동안 펑펑 눈이 쏟아져 길이 막힐 때 오도 가도 못하고 혼자서 적막강산에
갇혀 있을 때 나는 새삼스럽게 홀로 살아 있음을 누리면서 순수한 내 자신이 되어
둘레의 사물과 일체감을 나눈다.
그리고 눈이 멎어 달이 그 얼굴을 내보일때 月白雪白天地白의 그 황홀한 경계에
나는 숨을 죽인다. 살아 있는 모든 이웃들이 다 행복하라. 태평하라. 안락하라."
~ <살아있는 것은 다 행복하라> 중에서

강원도 수류한방 오두막
그는 말년에 화전민들이 비우고 간 강원도
수류산방(水流山房~오두막 옆으로 개울물이 흐른다) 오두막에 기거하였다.
자신의 삶도 오두막처럼 간소해지기를 바라면서 날마다 버리고 또 버릴 것을 기도했다.
스님이 말한 무소유는 필요없는 것을 가지지 않는 것을 의미한다.
나이가 들면서 필요없는 물건들이 묵은 세월만큼 쌓이곤 한다.
계절이 바뀌면서 옷을 버리고, 신발을 버리고 하다못해 부엌살림을 하나, 둘 버리면서
무소유를 실천하는 일은 내 자신과의 싸움이라는 생각이 든다.
근검 절약하고 내게 남은 것은 나보다 못한 이웃에게 돌리는 것이 진정한 무소유를
실천하는 길이다.
물질에서만이 아니라 마음의 묵은 때도 벗기고 또 벗겨서 맑은 마음으로 살고 싶다.
스님처럼 산중에서 홀로 구도의 길을 걸을 수는 없지만 마음밭을 가꾸며 빈 마음으로
살아야겠다.
"어둠이 내리자, 영롱한 별들이 오두막으로 쏟아질 듯했다.
뒤곁으로 날아온 머슴새가 또다시 쏙독쏙독 소리를 내 골짜기를 울렸다.
법정은 찬물을 길어왔다. 멀리서 구해온 햇차를 마시고 별을 다시 보기 위해서였다.
별을 쳐다보고 잇으면 광대무변한 우주와 그 신비 앞에서 숙연해졌다." ~ 243쪽
소로가 월든 호숫가에서 명상하며 살았던 것처럼
자연과 벗삼아 청정하게 살다 간 스님이 부럽고도 존경스럽다.
그토록 맑은 가난과 고독을 선택한 삶이란... 얼마나 멋진가.

"홀로 있는 것은 온전한 내가 존재하는 것.
발가벗은 내가 내 식대로 살고 있는 순간들이다.
아무에게도, 잠시라도 기대지 말 것.
부엌과 고방에 쌓인 너절한 것들 모조리 치워 없애다.
절대로 간소하게 살 것.
날마다 버릴 것." ~ 22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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