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끼
영화
평점 :
상영종료











 

영화 <이끼>는 윤태호의 웹툰 <이끼>가 원작이다.

웹툰이 3분의 1만큼 연재되었을 때 <이끼>의 영화화를 결정했다고 하니

원작만화의 흡인력이 얼마나 큰지 알 수 있다.

원작에 뒤떨어진다는 수많은 평이 있지만 등장인물들의 생생한 캐릭터, 짜임새있는 구성,

음산한 음악, 어둡고 기괴한 배경묘사 등 영화가 살릴 수 있는 장점들이 잘 버무러져

한 편의 잘 만든 스릴러가 탄생하였다.

<실미도>, <공공의 적> 등으로 흥행 영화들을 만들어 온 강우석 감독은

"<이끼>는 내 영화 인생 최대의 분수령이 될 것" 이라고 자신감을 내비친다.

영화는 권력과 선악의 문제, 구원과 복수, 인간의 본성과 내면의 모습, 우리 사회의

감추고 싶은 어두운 모습들에 이르기까지 많은 것들을 담고 있다.

 



 

월남전의 과거를 참회하고 진정한 의미의 구원을 찾고자 하는 유목형(허준호),

사람들은 그에게 열광하고 맹목적인 믿음을 가진다.

사람들의 마음을 얻는 그를 이용하여 부를 쌓으려는 천형사(후일 천용덕 이장, 정재영)

는 유목형에게 범죄자들을 모아 그들을 새롭게 만드는 사회를 이룩하자고 제안한다.

금욕과 극기, 고행으로 신의 세계를 지향했던 유목형은 파라다이스를 꿈꾸고 그 제안을

받아들이지만...

인간 본성에 내재한 악이  매순간  선의 의지를 받아들이는 것은 애초에

불가능한 일인지 모른다.

 



 

섬에서 매춘사업을 하다가 여인들을 가두어 불에 타죽게 만드는 성규(김준배),

자신의 돈을 주지 않는다는 이유로 총 네 발을 쏘아 사람을 죽이는 잔인성을

가진 석만(김상호) 

천용덕 이장의 수족 노릇을 하는 덕천(유해진),

편법과 뇌물을 써서 부동산으로 부를 축적한 천형사(이장) 등이 유목형의 의지대로

선한 세계에 편입할 수 있는지가 궁금했다.

편입된다면 어떻게, 어떤 방식으로 감화되어 가는지 보고 싶었다.

그러나 영화는 내 바램대로 전개되지 않는다.

 



 

"착한 사람은 사람의 겉을 훔치지만 악한 사람은 사람의 마음을 훔친다."

기도원 원장이 교인들의 마음을 사로잡는 유목형을 지목하여 하는 말이다.

예수에게 천상세계의 가난으로 대표되는 극기와 고행 대신 달콤한 빵과 권력,

그리고 명예를 주겠다고 유혹한 것은 사탄이었다.

저질렀던 악의 심판에서 벗어나 새로운 삶, 아니 죄가 면죄된 삶을 살고자 했던 세사람은

생식과 금욕만을 고집하는 유목형과 유목형의 세계에 편입할 수 없었다.

그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던 것은 유목형이 아니라 적절한 때에 고기와 여자를

제공하는 이장 천용덕이었다.

그는 형사 시절부터 약자들에게는 폭력을, 강자들에게는 뇌물과 청탁으로 재산을

치부했고 유목형을 전면에 내세우고 그 이면에서 불법, 협박 등의 방법으로 부동산을

늘려 엄청난 부를 축적하게 된다. 

마을 사람들은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는 이장을 신처럼 떠받든다.

 



 

아버지 유목형이 죽었다는 전화를 받고 마을을 찾은 유해국(박해일)은

도시생활을 정리하고 마을에서 살기를 원한다.

마을사람들은 노골적인 거부감을 드러내는데...

 



 

덕천(유해진)은 이장에게 절대적인 복종을 보이지만 권력에 몸을 실은 자의 내면에

존재하는 공포를 유머와 어리석음으로 위장하다가 한순간에 폭발시킨다.

폭력으로 억눌린 세월과 고통, 이장의 부정부패에 대해 말하면서

"~~~내가 안했어. 나는 시켜서 한 것 뿐이여.~~~ 이장님 때리지 마세요.~~ "

권력과 폭력에 길들여진 자아가 어떻게 분열하고 해체되는지를 분명하게 보여주는

명장면이다.

이때 토굴에서 덕천의 말을 듣고 있는 이장의 눈동자...

등장인물들의 촘촘한 내면연기는 다소 긴 러닝타임 163분 동안 지루할 틈을 주지 않는다.

 

 



 

하나씩 드러나는 검은 그림자들...

해국은 집의 지하에 토굴이 뚫려 있어 이장의 집으로 연결이 되어 있고,

사람들이 무엇인가 감추고 두려워하고 있음을 알게 된다.

아버지의 땅과 계좌의 돈이 이장에게 양도되어 있음을 알고 아버지가

자연사한 것이 아니라는 심증을 굳힌다.

그는 이장의 배후를 캐보라고 박검사(유준상)에게 알린다.

박검사는 해국에 의해 좌천되어 지방으로 발령된 원한이 있지만 이장의 배후에

엄청난 배경이 있음을 직감하고 수사에 착수한다.

그는 유해국과 함께 사건의 실마리를 풀어간다.

 



 

"우리가 그렇게 이상하게 보이냐?

네 아버지가 가해자라는 생각은 안해봤어?

네 아버지는 끊임없이 우리가 죄인이라는 생각에, 죄의식에 사로잡히게 했어."

 

그들은 과연 악했을까? 선과 악의 경계는 참으로 모호하다.

 



 

처음부터 끝까지 음울한 시선으로 비껴 있는 영지.

그러나 그녀는 사건의 중심부에 위치하고 있다.

원작의 결론과 다른 반전은 영지에게 있다.

 



 

이장이 유목형에게 하는 말이다.

"너는 신이 되고 싶었냐? 나는 인간이 되고 싶었어.

넌 사람들의 마음을 훔치는 법을 알고 있을지 몰라도 난 사람들의 목줄을 조여서

어떻게 조종해야 하는지를 알아."

이끼는 축축하고 그늘진 곳에 엉켜 집단을 이루어 자라며 가장 험한 공간에서도

살아남을 정도로 생명력이 강한 식물이다.

이끼, 어둡고 그늘진 곳에서 가장 강인하게 생명을 이어 나가는 이끼는

햇빛이 있는 곳에서는 살 수가 없다.

결국, 해국에 의해 이장은 파멸하고 만다.

 

과연 유목형은 선한가?

영화가 상영하는 내내 드는 의문은 과연 유목형(허준호)은 선한 사람인가 하는 점이다.

유목형은 천형사에게 윤간당한 영지의 복수를 부탁했다.(선한 사람이 복수를?)

이장의 말이라 진실성에 의심이 가지만 삼덕기도원 27명이 집단자살한 현장에서

기도원 원장의 "유목.... 형"이라 지목한 말.(집단자살이 아닌 유목형의 심판?)

30년 전에 2억원의 돈이 통장에 들어있었고 기부 받은 자신 명의의 땅이 많았다.

(생식과 극기, 고행의 길을 걷는 사람이 그토록 많은 돈과 땅을?)

악행을 일삼는 이장을 칼로 찔러 죽이려 한다.(인간이 심판?)

영지가 유목형의 목숨을 살리기 위해 마을사람들과 천용덕 이장에게 몸을 주는 것을

알았을텐데 그저 무기력한 노인으로 살아갔다.(악을 모른 척? 영지의 희생에 대한 방임?)

영화는 유목형의 모든 것을 추리하게 할 뿐 친절한 설명이 없다.

유목형이 선한가? 악한가? 하는 문제는 내내 궁금했고.

지금까지도 모른다.

 

유목형이 자연사했는지, 이장이 죽였는지, 영지가 죽였는지...

유목형의 삶과 죽음의 진실이 무엇인지 알 수 없다.

영지의 이야기, 이장의 이야기, 석만과 준배의 이야기는 모두 지나간 세월에

대해 자신의 관점에서 자신의 이야기만을 하고 있을 뿐이다.

선과 악의 실체는?

무엇보다도 궁금한 선과 악의 경계는?

진실은 알 수 없지만...

이끼가 되어 바위에 납작하게 붙어서 살아가는 것보다

빛을 향하여 사는 것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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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이, 바보 예찬 - 당신 안의 바보를 해방시켜라!
김영종 지음 / 동아시아 / 2010년 5월
평점 :
절판


에라스무스는 1511년, <우신예찬>을 세상에 내놓았다. 

그는 어리석음의 여신인 모리아를 화자(話者)로 등장시켜 어리석음을

그대로 드러내는 광대 같은 부류의 바보에 비해 똑똑한 체 하는 부류의

지식인이나 현자들을 풍자한다.

"광대들은 군주에게 진실을 받아들이게 하고 군주에게 욕설을 퍼부으면서도

그들을 즐겁게 하는 놀라운 일을 해치운다. 신들은 오직 이런 광대들에게만

진실을 맡겨 놓는다."

그는 문법학자, 시인, 법학자, 신학자, 군주, 궁정인, 교황, 추기경, 주교,

수도사, 신부 등 그 시대의 지식인과 지도층을 풍자의 대상으로 삼는다.

당시 유럽의 베스트셀러였던 <우신예찬>이 금서(禁書)가 된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헤이, 바보예찬>은 에라스무스의 <우신예찬>의 내용과 서술방식을 그대로 따른다.

저자 김영종은 이 책에서 헛된 지식과 겉치레가 난무하는 세상에 일침을 가한다.

인생과 삶이라는 한바탕 놀이판에서 어리석은 지식인, 어리석은 현자에서 

탈피하여 진짜 바보, 어릿광대가 되어 축제를 즐기자고 한다. 

그는 끝없는 금욕적인 이성, 욕망을 부채질하는 이성, 우열을 가리고

지식과 현명함으로 모든 것을 재단하는 이성에서 벗어나자고 제안한다.

우리 안에 있는 이성 대신 바보가 살아야 모두가 잘 살고 축제를 나눌 수 있는

진정한 삶이 시작된다는 것이다.

 

책을 읽으며 사회를 지탱하는 진정한 뿌리는 무엇일까,

진짜 지성은 무엇일까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지식이 인간을 현명하게 만든다는 것은 사기이다.

평범한 시민이 지식 쌓기, 스펙 쌓기에만 매달리는 이유는 지식이 더 나은 밥을

먹여주고 출세의 가장 빠른 수단이기 때문이다. 지식은 존경심을 불러일으킨다.

정말 놀라운 속임수이다." ~ 64-65쪽

"지식과 학문은 지배자가 건설하려는 질서를 위해 봉사한다.

현자인 척하는 이들은 자신과 자기 집단의 이익외에는 관심이 없기에

돈 있고 힘있는 자들에게 아첨한다. 자존심을 빙자한 현자의 자만심은 자기들의

지식이 사람들을 깨우치기에 가장 훌륭하다는 착각이다." ~ 90-93쪽

"'악마'는 그리스어로 학자를 뜻한다." ~ 85쪽

 

"현대인은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 조종되고 있고 기꺼이 전 삶을 그것에 바친다.

그것은 사회를 진보와 보수의 구도 속에 몰아넣고 자신은 증발해버린다."

~ 프레시안에 연재하는 김영종의 <잡설> 중에서

저자는 '보이지 않는 손'의 정체를 드러내기 위해 <헤이, 바보예찬>을

집필했다고 한다.

아마도 어리석은 현자들과 거짓 지식에 의해 사회 전체가 통제, 운영되고

있음을 풍자하는 것이라고 보여진다.

그런데 의문 하나가 생긴다.

에라스무스가 언급한 어릿광대, 저자가 말하는 바보, 깊은 혜안과

통찰력을 가지고 쓴 소리를 할 수 있는 이 시대의 어릿광대의 몫은

누가 맡아야 할 것인가.

어쩌면 고양이 목에 방울을 누가 달 것인가의 문제인지 모른다. 

고양이 목에 방울을 다는 것은 두려움과 용기의 문제이지만

어릿광대는 진정한 의미의 지성을 갖춘 사람이다.

 

"어릿광대는 낙심한 마음을 일으켜 세우고 슬픔을 어루만져 누그러뜨린다.

무기력한 자들에게 힘을 북돋워주고 둔감해진 자들에게 생기를 주고

아픈 이들의 고통을 덜어주며 성난 마음을 진정시킨다." ~ 92쪽

 

그 누가 어릿광대가 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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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상의 빛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 에스미 마키코 외 출연 / 아인스엠앤엠(구 태원) / 2005년 5월
평점 :
품절


 

 

 

고레에타 히로카즈감독은 다큐멘터리 영화를 주로 만들다가  <환상의 빛>이

베니스 국제영화제에서 황금사자상을 수상하면서 국제적인 감독으로 인정받았다.

미야모토 테루의 동명 원작소설을 각색한 <환상의 빛>은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데뷰작인 셈이다.

그는 <아무도 모른다>,<하루> 등 7편의 작품들을 연출했는데 각 작품들이 소재와

서술방식에서 큰 차이가 있다.

한 감독의 작품들이라고  보기 어려울 정도로 실험적이고 그가 아직도 여전히 진화,

발전하고 있는 감독임을 알려준다.

처음으로 접했던 그의 작품 <원더플 라이프>에서 소재의 독창성을 보고 놀랐다면

내용을 풀어가는 방식에서 더욱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그는 지극히 일상적인, 사소한 것들 가운데 행복이 있다는 것을 요란한 제스츄어 없이

아름답게 드러낸다.

그의 작품들은 카메라 앵글이 객관성을 유지하며 멀리서 돌아가고 화면에 표현되는

일상적인 장면들은 느리면서 조용하게 흘러간다.

감독을 세상에 드러내게 했던 <환상의 빛>은 무섭도록 쓸쓸한 삶에 대한 질문이다.

시종일관 주인공과 등장인물들은 검은 색 의상을 입는다.

화면의 배경 또한 어둡고 정적이다.

감독이 33살에 만든 이 영화는 죽음을 말하지만 그보다도 남겨진 사람들에 대한,

삶의 가운데 던져진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이다.

 



 

그녀는 어릴 적에 집을 떠나는 할머니를 붙잡지 못한다.

고향 마을 바닷가에서 죽음을 맞이하겠다는 할머니.

그녀는 알 수 없지만... 좀더 잡았더라면 할머니는 떠나지 않았을까.

꿈에서도 한사코 할머니는 떠나고 소녀는 할머니의 뒷모습만을 볼 뿐이다

 

그녀와 그, 이제 3개월 된 아이가 있고 인생의 절정기를 보낸다.

그들은 가진 것은 없지만 서로 사랑하고 행복한 신혼부부이다.

남에게 도둑맞은 자전거 대신 훔쳐온 자전거에 노란 페인트를 칠하기도 하고...

 

그러던 어느날, 그가 죽었다.

웃으며 출근했고, 저녁에 퇴근 후 찻집에서 커피를 마시고 아무런 징후도 없이...

달리던 열차의 경적소리가 있었음에도 그대로 걸어들어갔다는 것이다.

그의 자살은 이해할 수가 없다. 왜? 무엇때문에?

 



 

5년의 세월이 흘러 그녀는 딸이 있는 사람과 재혼을 하고 바닷가 마을에 살게 된다.

 



 

결혼생활은 행복하지만 문득, 문득, 이해할 수가 없다.

당신은 왜 사랑하는 여인을 두고 나와 결혼했어요?

그는 왜 자살했을까?

 



 

아이들이 뛰어노는 바닷가 마을의 모습이다.

아름답지만 쓸쓸하다.

감독은 일상적인 장면들을 오래 붙잡아 놓는다.

 

그녀는 계단을 오래도록 닦다가... 멈춘다.

순간 가슴이 찌르르하는 통증을 느낄 것이다.

삶은 매순간 의문을 가지고 질문을 던질 수는 없는 일, 또한 매순간 의미를 찾을 수도 없다. 

아픈 기억들은 어느 순간 갑자기 기억속에서 삐죽이 솟아나온다.

감독은 일상적인 것들에 오래 머무르고 그 일상의 한켠에서 아프게 떠오르고 던져지는

질문의 순간을 놓치지 않는다.

우리 삶이 향해가는 결정적인 이유가 있기나 한 것일까?

인간은 해답이 없는 것을 견디지 못한다.

의미를 알지 못하는 과거의 사건들에 대해 시간이 흐르고 시간이 흐른 후에도 끊임없이 질문을 던진다.

삶에 대해 끊임없이 의미를 캐는 것이다.

왜? 무엇때문에?

 



 

그녀는 바닷가에서 상여가 나가고 불에 타오르는 죽음의 장면을 지켜본다.

아무리 생각해도 알 수 없는 그의 죽음.

"왜 그는 자살을 하고 왜 철로 위를 걸어갔는지 그 사실만 생각하면 견딜 수가 없어져요."

"아버지는 바다에 홀로 나가 있으면 멀리서 반짝반짝 빛이 있어서 자신을 끌어당기는 것 

같다고 했어. 그것은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일이 아닐까?"

 

 

 

현재의 행복이 질문을 멈추게 하지는 못한다.

바닷가 마을에서 사계절을 보내며 때로는 사납게 요동치기도 할 것이고

때로는 봄날씨처럼 마음이 따스해지기도 할 것이다.

 

"날씨가 풀렸지요?"

"좋은 계절이야."

 



 

(재혼식 장면에서 흰 옷을 입은 것과 몇 장면을 제외하고 검은색 의상만

입던 그녀가 마지막 장면에서 흰 브라우스와 파랑색 치마 차림이다.)

자연과 바다, 그리고 흐르는 세월은 그녀의 상처를 치유할 것이다. 

그렇다고 그녀의 아픔과 질문들이 없어지지는 않을 것이다.

다만 그 상처는 조금씩 작아지고...

의미를 찾는 그녀의 질문들은 여전히 계속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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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어드 2 - Missing Transer
김상현 지음 / 시공사 / 2010년 7월
평점 :
품절


미래의 지구 행성 어스는 모든 종의 망명지이자 정치적인 중립지역이다.

종과 종의 의사를 전달하고 다른 종들의 기억, 의지, 감정을 공유하고

의사전달의 매개체인 트랜서는 행성 어스에서 가장 필요한 존재이다. 

주인공 메이런은 트랜서이다.

그는 하이어드(청부업자)인 쿨란의 지시하에 다른 종들이 맡긴 사건들을

해결하는 일을 돕는다. 

연방정부나 경찰, 군에서 해결하지 못한 일들도 하이어드 손에 오면

해결이 되는데...

사건은 그만큼 위험하고 목숨을 걸어야 한다.

하이어드 쿨란은 전쟁터에서 뼈대가 굵은 용병이었다.

전쟁이 끝나고 그의 삶은 무기력해졌고 새로운 목표가 생겨야 했다.

하이어드 일은 많은 금덩이가 생기게 했고 그는 생의 목표를 금덩이를

모으는 것에 두지만...

금덩이는 그의 허무를 채워주지 못하고 다시금 용병으로 돌아가게 된다.

"나는 돈이 최고라고 생각했어. 다른건 생각하지 않으려고 했지.

그리고 돈이 모이면 모일수록 점점 더 허망해지는 걸 느꼈어." ~ 164쪽

 

2권의 마지막에 밝혀지는 쿨란의 정체는 복제인간이다.

"휴먼 레이스는 전 우주에서 가장 흉폭하고 강인하다.

그들은 행성 밖으로 비행할 수 있는 기술도 만들기 전에 행성을 날려

버릴 수 있는 폭탄을 만들어냈고 복제인간 기술로 전쟁을 준비했다.

몇 대의 시행착오를 거쳐 몇 가지 형태의 군인 클론들을 뽑아냈다.

강하고, 사악하고, 죄책감 따위는 느끼지 않는 전쟁 기계..." ~ 340-341쪽

 

저자는 시간과 공간의 배경 설정에 자유로운 판타지 장르의 묘미를 살려

온갖 종들에서 가장 잔인한 휴먼 레이스가 전쟁을 만들었다고 고발한다.

지구상에 존재한 종 중에 생존을 위한 목적 이외의 목적을 가지고

다른 존재를 해친 종이 있었던가...

전쟁을 일으키는 인간만큼 잔인한 종이 있을지 의문이다.

한정된 자원의 지구에서 더 가지려 함은 결국에는 남의 것을 빼앗는

행위이기도 하다.

 

숨막히게 돌아가는 사건들 속에서 하이어드 쿨란,

트랜서인 메이런, 미싱 트랜서인 키티 본이 선택한 삶을 보면서

진정한 자아를 찾고 삶의 의미를 묻게 만드는 소설의 주제의식은

매우 신선하게 다가온다.  

주인공 메이런은 다른 종들간의 기억을 너무나 많이 공유해야

하기 때문에 두통에 시달리고 기억이 앞서는 데쟈뷰 현상 등의

'미싱'공포를 겪는다. 선택은 두가지이다.

키티 본처럼 트랜스 상태에 머물러 있는 멈춤 상태,

아니면 구르는 바퀴처럼 끊임없이 달려 나가는 삶을 택하는 것이다. 

인간은 행복했던 시절에 머무르고 싶거나,

이율배반이지만 어두운 기억 속에 잠겨 자신을 잊고 싶은 욕망에

시달리는 존재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인간의 삶은 기억 속에 담가 두거나 멈추기에는 너무 아깝다.

시간이 유한하고 구르는 것의 끝을 알지만...

그러기에 끊임없이 달려야 하는 존재이다.

주인공 메이런이 힘겹게 자아를 찾아가는 모습이 그려질 3, 4권의

이야기가 기대된다.

 



"트랜서는 동전같아. 굴리면 굴러가지만 멈추면 쓰러져버리거든." ~ 16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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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어드 1 - Call me Transer
김상현 지음 / 시공사 / 201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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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하이어드>는 2002년에 각자 독자적인 사건으로 이루어진 전 4권의

시리즈물로 출판했다가 절판, 2010년 재출간한 SF 판타지 소설이다.

판타지는 대체로 허무맹랑한 사건과 영웅들의 이야기이며 문학성이

덜하다고 생각했던 나의 선입견이 이 책을 읽으며 걷히는 것 같다.

작가의 상상력에 의해 만들어지고 재창조되는 가상의 공간에서 벌어지는

이야기이지만 그 뿌리와 토대, 기반이 되는 것은 오늘날의 세상이며

현실임을 유추할 때 이 소설은 대단히 흥미롭다.

 

미래의 지구, 중립구역 행성 어스에 각 종의 망명자들이 모인다.
소설의 배경은 서로 다른 환경, 생김새, 생각과 사고방식, 문화와 전통 등을

지닌 종들이 뒤섞여 살고 있는 어스 행성이다.

만티드 레이스인 '시크사'는 왕족의 피에 반군들의 유전인자를 섞는

'갈색의 여왕'이라는 비밀 프로젝트를 달성하기 위해 왕족의 보물을 훔쳐

지구별 어스에 오게 된다.

청부업자 쿨란과 트랜서인 메이런은 힘을 합쳐 사건을 의뢰한 시크사가 임무를

마칠 수 있도록 돕는다.

  

세계 어디를 여행하든지 그 나라 말을 모르면서도 기본적인 의사소통이

가능한 것은 손과 발 등의 훌륭한 바디 랭기지가 통하기 때문이다.

개체가 다른 종일 경우 의사소통은 어려워진다.

다른 종과 종의 사이, 즉 개 혹은 고양이와 사람 사이에도 마음속으로

대화를 나누는 놀라운 경우가 있기는 하다.

특별한 초능력자들의 경우이다.

고양이와 대화를 나누고 마음의 상처를 치유하는 어떤 외국인 여성,

개의 마음을 읽고 상처를 어루만지는 우리나라 사람을 TV에서 본 적이 있다.

그들의 선량하면서도 사려깊고 연민에 찬 눈빛이 잊혀지지 않는다.

저자가 책에서 묘사하고 있는 트랜서들은 그들과 같은 초능력자를 모델로 한 것 같다.

어스 행성에 사는 종들은 오늘날 인류가 부에 의해 생활의 차등이 있듯이

힘의 서열이 존재하지만 각자의 주체적인 문화를 가지고 살아간다.

어느 종과도 의사소통이 가능한, 독특한 능력을 가진 '트랜서'는

단순한 의사소통이 아니라 상대 종의 모습, 가장 친숙하게 여기는 이미지가

되어 그 존재가 전달하고자 하는 바를 정확하게 읽어낸다. 

그것이 가능하기 위해서는 마음을 열고 타자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임을 의미하는데 타자의 기억과 경험 모두를 수용하고 이해하는 것이다.

저자의 기발한 상상력은 트랜서를 종 간의 매개체로 둠으로써 빛을 발한다.

소설 속에서 트랜서를 통한 다른 종과의 소통은 오늘날 소통의 부재와

관계의 단절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던지는 메시지이다. 

소설적인 재미를 놓치지 않으면서 판타지가 가질 수 있는 가벼움에서

벗어나게 하는 진중한 주제의식이 - 관계 속에서만이  진정한 자신을

찾을 수 있다 - 돋보인다.

 

트랜서인 주인공 메이런이 다른 종족과 기억을 트랜스하는 장면에서

엄마와 아기의 관계가 떠오른다.

서로 대화를 나눌 수는 없지만 엄마는 아기가 무엇을 원하는지,

아이의 상태가 어떤지 가장 잘 알 수 있다.

트랜스(관계짓는 행위)는 아이가 자라면서 아이를 어떻게 키워야겠다는

엄마의 욕심이 개입되면서 안타깝게도 조금씩 어긋난다.

 

서로 다른 음식문화에 대한 이야기와 친밀함을 표현하는 종들간의 제스츄어,

곤충들과 벌레들의 모습이 연상되는 여러 종들을 묘사하는 작가의 상상력에

거듭 놀라며 웃음짓게 된다.

종들간에 힘의 우위에 따라 자존심 대결을 하는 상황에서는 강대국과 약소국의

모습이 보이고 뇌물이 오가는 사회 분위기 역시 재미있게 그려진다.

종족들간에 벌어지는 사건들과 그 사건을 맡아 해결하는 메이런의 활약이

어떻게 전개될지 2, 3, 4권의 이야기들이 기대된다.

 

"생각을 읽는 일은 대단히 복잡하고 혼란스러운 일이다.

생각이라는 건 일정하게 머물러 있는 것도 아니고 명확하게 이거다.

하고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부분이 더 많다." ~ 270쪽

 

"생명체는 혼자 존재할 수 없다. 혼자 떨어져서는 생존할 수 없다.

그래서 서로 관계를 맺는다. 중요한 것은 믿음이다.

공포심, 질투, 무관심, 분노 등은 트랜스를 방해한다." ~ 298-29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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