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끼
영화
평점 :
상영종료











 

영화 <이끼>는 윤태호의 웹툰 <이끼>가 원작이다.

웹툰이 3분의 1만큼 연재되었을 때 <이끼>의 영화화를 결정했다고 하니

원작만화의 흡인력이 얼마나 큰지 알 수 있다.

원작에 뒤떨어진다는 수많은 평이 있지만 등장인물들의 생생한 캐릭터, 짜임새있는 구성,

음산한 음악, 어둡고 기괴한 배경묘사 등 영화가 살릴 수 있는 장점들이 잘 버무러져

한 편의 잘 만든 스릴러가 탄생하였다.

<실미도>, <공공의 적> 등으로 흥행 영화들을 만들어 온 강우석 감독은

"<이끼>는 내 영화 인생 최대의 분수령이 될 것" 이라고 자신감을 내비친다.

영화는 권력과 선악의 문제, 구원과 복수, 인간의 본성과 내면의 모습, 우리 사회의

감추고 싶은 어두운 모습들에 이르기까지 많은 것들을 담고 있다.

 



 

월남전의 과거를 참회하고 진정한 의미의 구원을 찾고자 하는 유목형(허준호),

사람들은 그에게 열광하고 맹목적인 믿음을 가진다.

사람들의 마음을 얻는 그를 이용하여 부를 쌓으려는 천형사(후일 천용덕 이장, 정재영)

는 유목형에게 범죄자들을 모아 그들을 새롭게 만드는 사회를 이룩하자고 제안한다.

금욕과 극기, 고행으로 신의 세계를 지향했던 유목형은 파라다이스를 꿈꾸고 그 제안을

받아들이지만...

인간 본성에 내재한 악이  매순간  선의 의지를 받아들이는 것은 애초에

불가능한 일인지 모른다.

 



 

섬에서 매춘사업을 하다가 여인들을 가두어 불에 타죽게 만드는 성규(김준배),

자신의 돈을 주지 않는다는 이유로 총 네 발을 쏘아 사람을 죽이는 잔인성을

가진 석만(김상호) 

천용덕 이장의 수족 노릇을 하는 덕천(유해진),

편법과 뇌물을 써서 부동산으로 부를 축적한 천형사(이장) 등이 유목형의 의지대로

선한 세계에 편입할 수 있는지가 궁금했다.

편입된다면 어떻게, 어떤 방식으로 감화되어 가는지 보고 싶었다.

그러나 영화는 내 바램대로 전개되지 않는다.

 



 

"착한 사람은 사람의 겉을 훔치지만 악한 사람은 사람의 마음을 훔친다."

기도원 원장이 교인들의 마음을 사로잡는 유목형을 지목하여 하는 말이다.

예수에게 천상세계의 가난으로 대표되는 극기와 고행 대신 달콤한 빵과 권력,

그리고 명예를 주겠다고 유혹한 것은 사탄이었다.

저질렀던 악의 심판에서 벗어나 새로운 삶, 아니 죄가 면죄된 삶을 살고자 했던 세사람은

생식과 금욕만을 고집하는 유목형과 유목형의 세계에 편입할 수 없었다.

그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던 것은 유목형이 아니라 적절한 때에 고기와 여자를

제공하는 이장 천용덕이었다.

그는 형사 시절부터 약자들에게는 폭력을, 강자들에게는 뇌물과 청탁으로 재산을

치부했고 유목형을 전면에 내세우고 그 이면에서 불법, 협박 등의 방법으로 부동산을

늘려 엄청난 부를 축적하게 된다. 

마을 사람들은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는 이장을 신처럼 떠받든다.

 



 

아버지 유목형이 죽었다는 전화를 받고 마을을 찾은 유해국(박해일)은

도시생활을 정리하고 마을에서 살기를 원한다.

마을사람들은 노골적인 거부감을 드러내는데...

 



 

덕천(유해진)은 이장에게 절대적인 복종을 보이지만 권력에 몸을 실은 자의 내면에

존재하는 공포를 유머와 어리석음으로 위장하다가 한순간에 폭발시킨다.

폭력으로 억눌린 세월과 고통, 이장의 부정부패에 대해 말하면서

"~~~내가 안했어. 나는 시켜서 한 것 뿐이여.~~~ 이장님 때리지 마세요.~~ "

권력과 폭력에 길들여진 자아가 어떻게 분열하고 해체되는지를 분명하게 보여주는

명장면이다.

이때 토굴에서 덕천의 말을 듣고 있는 이장의 눈동자...

등장인물들의 촘촘한 내면연기는 다소 긴 러닝타임 163분 동안 지루할 틈을 주지 않는다.

 

 



 

하나씩 드러나는 검은 그림자들...

해국은 집의 지하에 토굴이 뚫려 있어 이장의 집으로 연결이 되어 있고,

사람들이 무엇인가 감추고 두려워하고 있음을 알게 된다.

아버지의 땅과 계좌의 돈이 이장에게 양도되어 있음을 알고 아버지가

자연사한 것이 아니라는 심증을 굳힌다.

그는 이장의 배후를 캐보라고 박검사(유준상)에게 알린다.

박검사는 해국에 의해 좌천되어 지방으로 발령된 원한이 있지만 이장의 배후에

엄청난 배경이 있음을 직감하고 수사에 착수한다.

그는 유해국과 함께 사건의 실마리를 풀어간다.

 



 

"우리가 그렇게 이상하게 보이냐?

네 아버지가 가해자라는 생각은 안해봤어?

네 아버지는 끊임없이 우리가 죄인이라는 생각에, 죄의식에 사로잡히게 했어."

 

그들은 과연 악했을까? 선과 악의 경계는 참으로 모호하다.

 



 

처음부터 끝까지 음울한 시선으로 비껴 있는 영지.

그러나 그녀는 사건의 중심부에 위치하고 있다.

원작의 결론과 다른 반전은 영지에게 있다.

 



 

이장이 유목형에게 하는 말이다.

"너는 신이 되고 싶었냐? 나는 인간이 되고 싶었어.

넌 사람들의 마음을 훔치는 법을 알고 있을지 몰라도 난 사람들의 목줄을 조여서

어떻게 조종해야 하는지를 알아."

이끼는 축축하고 그늘진 곳에 엉켜 집단을 이루어 자라며 가장 험한 공간에서도

살아남을 정도로 생명력이 강한 식물이다.

이끼, 어둡고 그늘진 곳에서 가장 강인하게 생명을 이어 나가는 이끼는

햇빛이 있는 곳에서는 살 수가 없다.

결국, 해국에 의해 이장은 파멸하고 만다.

 

과연 유목형은 선한가?

영화가 상영하는 내내 드는 의문은 과연 유목형(허준호)은 선한 사람인가 하는 점이다.

유목형은 천형사에게 윤간당한 영지의 복수를 부탁했다.(선한 사람이 복수를?)

이장의 말이라 진실성에 의심이 가지만 삼덕기도원 27명이 집단자살한 현장에서

기도원 원장의 "유목.... 형"이라 지목한 말.(집단자살이 아닌 유목형의 심판?)

30년 전에 2억원의 돈이 통장에 들어있었고 기부 받은 자신 명의의 땅이 많았다.

(생식과 극기, 고행의 길을 걷는 사람이 그토록 많은 돈과 땅을?)

악행을 일삼는 이장을 칼로 찔러 죽이려 한다.(인간이 심판?)

영지가 유목형의 목숨을 살리기 위해 마을사람들과 천용덕 이장에게 몸을 주는 것을

알았을텐데 그저 무기력한 노인으로 살아갔다.(악을 모른 척? 영지의 희생에 대한 방임?)

영화는 유목형의 모든 것을 추리하게 할 뿐 친절한 설명이 없다.

유목형이 선한가? 악한가? 하는 문제는 내내 궁금했고.

지금까지도 모른다.

 

유목형이 자연사했는지, 이장이 죽였는지, 영지가 죽였는지...

유목형의 삶과 죽음의 진실이 무엇인지 알 수 없다.

영지의 이야기, 이장의 이야기, 석만과 준배의 이야기는 모두 지나간 세월에

대해 자신의 관점에서 자신의 이야기만을 하고 있을 뿐이다.

선과 악의 실체는?

무엇보다도 궁금한 선과 악의 경계는?

진실은 알 수 없지만...

이끼가 되어 바위에 납작하게 붙어서 살아가는 것보다

빛을 향하여 사는 것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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