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상의 빛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 에스미 마키코 외 출연 / 아인스엠앤엠(구 태원) / 2005년 5월
평점 :
품절


 

 

 

고레에타 히로카즈감독은 다큐멘터리 영화를 주로 만들다가  <환상의 빛>이

베니스 국제영화제에서 황금사자상을 수상하면서 국제적인 감독으로 인정받았다.

미야모토 테루의 동명 원작소설을 각색한 <환상의 빛>은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데뷰작인 셈이다.

그는 <아무도 모른다>,<하루> 등 7편의 작품들을 연출했는데 각 작품들이 소재와

서술방식에서 큰 차이가 있다.

한 감독의 작품들이라고  보기 어려울 정도로 실험적이고 그가 아직도 여전히 진화,

발전하고 있는 감독임을 알려준다.

처음으로 접했던 그의 작품 <원더플 라이프>에서 소재의 독창성을 보고 놀랐다면

내용을 풀어가는 방식에서 더욱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그는 지극히 일상적인, 사소한 것들 가운데 행복이 있다는 것을 요란한 제스츄어 없이

아름답게 드러낸다.

그의 작품들은 카메라 앵글이 객관성을 유지하며 멀리서 돌아가고 화면에 표현되는

일상적인 장면들은 느리면서 조용하게 흘러간다.

감독을 세상에 드러내게 했던 <환상의 빛>은 무섭도록 쓸쓸한 삶에 대한 질문이다.

시종일관 주인공과 등장인물들은 검은 색 의상을 입는다.

화면의 배경 또한 어둡고 정적이다.

감독이 33살에 만든 이 영화는 죽음을 말하지만 그보다도 남겨진 사람들에 대한,

삶의 가운데 던져진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이다.

 



 

그녀는 어릴 적에 집을 떠나는 할머니를 붙잡지 못한다.

고향 마을 바닷가에서 죽음을 맞이하겠다는 할머니.

그녀는 알 수 없지만... 좀더 잡았더라면 할머니는 떠나지 않았을까.

꿈에서도 한사코 할머니는 떠나고 소녀는 할머니의 뒷모습만을 볼 뿐이다

 

그녀와 그, 이제 3개월 된 아이가 있고 인생의 절정기를 보낸다.

그들은 가진 것은 없지만 서로 사랑하고 행복한 신혼부부이다.

남에게 도둑맞은 자전거 대신 훔쳐온 자전거에 노란 페인트를 칠하기도 하고...

 

그러던 어느날, 그가 죽었다.

웃으며 출근했고, 저녁에 퇴근 후 찻집에서 커피를 마시고 아무런 징후도 없이...

달리던 열차의 경적소리가 있었음에도 그대로 걸어들어갔다는 것이다.

그의 자살은 이해할 수가 없다. 왜? 무엇때문에?

 



 

5년의 세월이 흘러 그녀는 딸이 있는 사람과 재혼을 하고 바닷가 마을에 살게 된다.

 



 

결혼생활은 행복하지만 문득, 문득, 이해할 수가 없다.

당신은 왜 사랑하는 여인을 두고 나와 결혼했어요?

그는 왜 자살했을까?

 



 

아이들이 뛰어노는 바닷가 마을의 모습이다.

아름답지만 쓸쓸하다.

감독은 일상적인 장면들을 오래 붙잡아 놓는다.

 

그녀는 계단을 오래도록 닦다가... 멈춘다.

순간 가슴이 찌르르하는 통증을 느낄 것이다.

삶은 매순간 의문을 가지고 질문을 던질 수는 없는 일, 또한 매순간 의미를 찾을 수도 없다. 

아픈 기억들은 어느 순간 갑자기 기억속에서 삐죽이 솟아나온다.

감독은 일상적인 것들에 오래 머무르고 그 일상의 한켠에서 아프게 떠오르고 던져지는

질문의 순간을 놓치지 않는다.

우리 삶이 향해가는 결정적인 이유가 있기나 한 것일까?

인간은 해답이 없는 것을 견디지 못한다.

의미를 알지 못하는 과거의 사건들에 대해 시간이 흐르고 시간이 흐른 후에도 끊임없이 질문을 던진다.

삶에 대해 끊임없이 의미를 캐는 것이다.

왜? 무엇때문에?

 



 

그녀는 바닷가에서 상여가 나가고 불에 타오르는 죽음의 장면을 지켜본다.

아무리 생각해도 알 수 없는 그의 죽음.

"왜 그는 자살을 하고 왜 철로 위를 걸어갔는지 그 사실만 생각하면 견딜 수가 없어져요."

"아버지는 바다에 홀로 나가 있으면 멀리서 반짝반짝 빛이 있어서 자신을 끌어당기는 것 

같다고 했어. 그것은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일이 아닐까?"

 

 

 

현재의 행복이 질문을 멈추게 하지는 못한다.

바닷가 마을에서 사계절을 보내며 때로는 사납게 요동치기도 할 것이고

때로는 봄날씨처럼 마음이 따스해지기도 할 것이다.

 

"날씨가 풀렸지요?"

"좋은 계절이야."

 



 

(재혼식 장면에서 흰 옷을 입은 것과 몇 장면을 제외하고 검은색 의상만

입던 그녀가 마지막 장면에서 흰 브라우스와 파랑색 치마 차림이다.)

자연과 바다, 그리고 흐르는 세월은 그녀의 상처를 치유할 것이다. 

그렇다고 그녀의 아픔과 질문들이 없어지지는 않을 것이다.

다만 그 상처는 조금씩 작아지고...

의미를 찾는 그녀의 질문들은 여전히 계속될 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