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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이, 바보 예찬 - 당신 안의 바보를 해방시켜라!
김영종 지음 / 동아시아 / 2010년 5월
평점 :
절판
에라스무스는 1511년, <우신예찬>을 세상에 내놓았다.
그는 어리석음의 여신인 모리아를 화자(話者)로 등장시켜 어리석음을
그대로 드러내는 광대 같은 부류의 바보에 비해 똑똑한 체 하는 부류의
지식인이나 현자들을 풍자한다.
"광대들은 군주에게 진실을 받아들이게 하고 군주에게 욕설을 퍼부으면서도
그들을 즐겁게 하는 놀라운 일을 해치운다. 신들은 오직 이런 광대들에게만
진실을 맡겨 놓는다."
그는 문법학자, 시인, 법학자, 신학자, 군주, 궁정인, 교황, 추기경, 주교,
수도사, 신부 등 그 시대의 지식인과 지도층을 풍자의 대상으로 삼는다.
당시 유럽의 베스트셀러였던 <우신예찬>이 금서(禁書)가 된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헤이, 바보예찬>은 에라스무스의 <우신예찬>의 내용과 서술방식을 그대로 따른다.
저자 김영종은 이 책에서 헛된 지식과 겉치레가 난무하는 세상에 일침을 가한다.
인생과 삶이라는 한바탕 놀이판에서 어리석은 지식인, 어리석은 현자에서
탈피하여 진짜 바보, 어릿광대가 되어 축제를 즐기자고 한다.
그는 끝없는 금욕적인 이성, 욕망을 부채질하는 이성, 우열을 가리고
지식과 현명함으로 모든 것을 재단하는 이성에서 벗어나자고 제안한다.
우리 안에 있는 이성 대신 바보가 살아야 모두가 잘 살고 축제를 나눌 수 있는
진정한 삶이 시작된다는 것이다.
책을 읽으며 사회를 지탱하는 진정한 뿌리는 무엇일까,
진짜 지성은 무엇일까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지식이 인간을 현명하게 만든다는 것은 사기이다.
평범한 시민이 지식 쌓기, 스펙 쌓기에만 매달리는 이유는 지식이 더 나은 밥을
먹여주고 출세의 가장 빠른 수단이기 때문이다. 지식은 존경심을 불러일으킨다.
정말 놀라운 속임수이다." ~ 64-65쪽
"지식과 학문은 지배자가 건설하려는 질서를 위해 봉사한다.
현자인 척하는 이들은 자신과 자기 집단의 이익외에는 관심이 없기에
돈 있고 힘있는 자들에게 아첨한다. 자존심을 빙자한 현자의 자만심은 자기들의
지식이 사람들을 깨우치기에 가장 훌륭하다는 착각이다." ~ 90-93쪽
"'악마'는 그리스어로 학자를 뜻한다." ~ 85쪽
"현대인은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 조종되고 있고 기꺼이 전 삶을 그것에 바친다.
그것은 사회를 진보와 보수의 구도 속에 몰아넣고 자신은 증발해버린다."
~ 프레시안에 연재하는 김영종의 <잡설> 중에서
저자는 '보이지 않는 손'의 정체를 드러내기 위해 <헤이, 바보예찬>을
집필했다고 한다.
아마도 어리석은 현자들과 거짓 지식에 의해 사회 전체가 통제, 운영되고
있음을 풍자하는 것이라고 보여진다.
그런데 의문 하나가 생긴다.
에라스무스가 언급한 어릿광대, 저자가 말하는 바보, 깊은 혜안과
통찰력을 가지고 쓴 소리를 할 수 있는 이 시대의 어릿광대의 몫은
누가 맡아야 할 것인가.
어쩌면 고양이 목에 방울을 누가 달 것인가의 문제인지 모른다.
고양이 목에 방울을 다는 것은 두려움과 용기의 문제이지만
어릿광대는 진정한 의미의 지성을 갖춘 사람이다.
"어릿광대는 낙심한 마음을 일으켜 세우고 슬픔을 어루만져 누그러뜨린다.
무기력한 자들에게 힘을 북돋워주고 둔감해진 자들에게 생기를 주고
아픈 이들의 고통을 덜어주며 성난 마음을 진정시킨다." ~ 92쪽
그 누가 어릿광대가 될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