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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어드 1 - Call me Transer
김상현 지음 / 시공사 / 2010년 7월
평점 :
품절
<하이어드>는 2002년에 각자 독자적인 사건으로 이루어진 전 4권의
시리즈물로 출판했다가 절판, 2010년 재출간한 SF 판타지 소설이다.
판타지는 대체로 허무맹랑한 사건과 영웅들의 이야기이며 문학성이
덜하다고 생각했던 나의 선입견이 이 책을 읽으며 걷히는 것 같다.
작가의 상상력에 의해 만들어지고 재창조되는 가상의 공간에서 벌어지는
이야기이지만 그 뿌리와 토대, 기반이 되는 것은 오늘날의 세상이며
현실임을 유추할 때 이 소설은 대단히 흥미롭다.
미래의 지구, 중립구역 행성 어스에 각 종의 망명자들이 모인다.
소설의 배경은 서로 다른 환경, 생김새, 생각과 사고방식, 문화와 전통 등을
지닌 종들이 뒤섞여 살고 있는 어스 행성이다.
만티드 레이스인 '시크사'는 왕족의 피에 반군들의 유전인자를 섞는
'갈색의 여왕'이라는 비밀 프로젝트를 달성하기 위해 왕족의 보물을 훔쳐
지구별 어스에 오게 된다.
청부업자 쿨란과 트랜서인 메이런은 힘을 합쳐 사건을 의뢰한 시크사가 임무를
마칠 수 있도록 돕는다.
세계 어디를 여행하든지 그 나라 말을 모르면서도 기본적인 의사소통이
가능한 것은 손과 발 등의 훌륭한 바디 랭기지가 통하기 때문이다.
개체가 다른 종일 경우 의사소통은 어려워진다.
다른 종과 종의 사이, 즉 개 혹은 고양이와 사람 사이에도 마음속으로
대화를 나누는 놀라운 경우가 있기는 하다.
특별한 초능력자들의 경우이다.
고양이와 대화를 나누고 마음의 상처를 치유하는 어떤 외국인 여성,
개의 마음을 읽고 상처를 어루만지는 우리나라 사람을 TV에서 본 적이 있다.
그들의 선량하면서도 사려깊고 연민에 찬 눈빛이 잊혀지지 않는다.
저자가 책에서 묘사하고 있는 트랜서들은 그들과 같은 초능력자를 모델로 한 것 같다.
어스 행성에 사는 종들은 오늘날 인류가 부에 의해 생활의 차등이 있듯이
힘의 서열이 존재하지만 각자의 주체적인 문화를 가지고 살아간다.
어느 종과도 의사소통이 가능한, 독특한 능력을 가진 '트랜서'는
단순한 의사소통이 아니라 상대 종의 모습, 가장 친숙하게 여기는 이미지가
되어 그 존재가 전달하고자 하는 바를 정확하게 읽어낸다.
그것이 가능하기 위해서는 마음을 열고 타자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임을 의미하는데 타자의 기억과 경험 모두를 수용하고 이해하는 것이다.
저자의 기발한 상상력은 트랜서를 종 간의 매개체로 둠으로써 빛을 발한다.
소설 속에서 트랜서를 통한 다른 종과의 소통은 오늘날 소통의 부재와
관계의 단절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던지는 메시지이다.
소설적인 재미를 놓치지 않으면서 판타지가 가질 수 있는 가벼움에서
벗어나게 하는 진중한 주제의식이 - 관계 속에서만이 진정한 자신을
찾을 수 있다 - 돋보인다.
트랜서인 주인공 메이런이 다른 종족과 기억을 트랜스하는 장면에서
엄마와 아기의 관계가 떠오른다.
서로 대화를 나눌 수는 없지만 엄마는 아기가 무엇을 원하는지,
아이의 상태가 어떤지 가장 잘 알 수 있다.
트랜스(관계짓는 행위)는 아이가 자라면서 아이를 어떻게 키워야겠다는
엄마의 욕심이 개입되면서 안타깝게도 조금씩 어긋난다.
서로 다른 음식문화에 대한 이야기와 친밀함을 표현하는 종들간의 제스츄어,
곤충들과 벌레들의 모습이 연상되는 여러 종들을 묘사하는 작가의 상상력에
거듭 놀라며 웃음짓게 된다.
종들간에 힘의 우위에 따라 자존심 대결을 하는 상황에서는 강대국과 약소국의
모습이 보이고 뇌물이 오가는 사회 분위기 역시 재미있게 그려진다.
종족들간에 벌어지는 사건들과 그 사건을 맡아 해결하는 메이런의 활약이
어떻게 전개될지 2, 3, 4권의 이야기들이 기대된다.
"생각을 읽는 일은 대단히 복잡하고 혼란스러운 일이다.
생각이라는 건 일정하게 머물러 있는 것도 아니고 명확하게 이거다.
하고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부분이 더 많다." ~ 270쪽
"생명체는 혼자 존재할 수 없다. 혼자 떨어져서는 생존할 수 없다.
그래서 서로 관계를 맺는다. 중요한 것은 믿음이다.
공포심, 질투, 무관심, 분노 등은 트랜스를 방해한다." ~ 298-299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