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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에 젖은 땅 - 스탈린과 히틀러 사이의 유럽 ㅣ 걸작 논픽션 22
티머시 스나이더 지음, 함규진 옮김 / 글항아리 / 2021년 3월
평점 :
1.
아우슈비츠는 20세기 가장 큰 비극 중 하나이며, 반드시 기억해야 할 역사이다. 그러나 아우슈비츠‘만’이 강조될 경우, 아우슈비츠 이전에 많은 학살과 죽음이 은폐될 수 있다. 저자에 따르면, 아우슈비츠가 전체 희생자의 수에서 차지하는 비율은 7% 정도라고 한다. 그리고 다른 학살에서는 구덩이에 사람을 단체로 줄지어 눕게 하여 죽게 하거나, 자동차 엔진 배기가스로 질식사시키는 등 그 수법도 더 잔혹했다. 무엇보다 아우슈비츠가 이렇게 주목받을 수 있었던 결정적인 계기는 역설적으로 생존자들이 있기 때문이었다. 반대로 생존자가 거의 없던, 그리고 자신의 기록을 남길 수조차 없던 죽음의 장소는 상대적으로 덜 알려지게 된다. 실로 ‘아우슈비츠의 역설’이다. (그렇다고 이것이 아우슈비츠 폄하로 이어져서는 안 될 것이다)
1930년대 초 최소 330만 명(저자 추정)이 사망한 우크라이나 대기근, 1937~1938년 스탈린의 대숙청, 1939~1941년 소련과 독일의 폴란드 학살, 독소전쟁 중 나치에 의한 계획적인 소련인·유대인 대학살, 전후 스탈린의 인종 청소 작업. 이 모든 일이 블러드랜드, “폴란드 중부에서 러시아 서부, 우크라이나, 벨라루스, 발트 연안국”에서 스탈린과 히틀러의 체제하에서 일어났다. 이 책은 이때 죽어간 1400만 명의 이야기다.
2.
“어떻게 그토록 많은 사람이 폭력적인 최후를 맞게 할 수 있는가(있었는가)?”
저자가 결론에서 던지는 이 질문은 이 책 전반에 걸쳐 전제된 문제의식이라고 생각하며, 오늘날 우리에게도 의미가 있는 질문인 듯하다. 어떻게 그러한 대학살이 가능했을까? 이를 스탈린과 히틀러라는 피에 굶주린 광기에 찬 악인의 탓으로 돌릴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모든 역사적 사건을 단순히 한 개인의 잘못으로 돌리는 해석은 역사의 진실과도 맞지 않거니와, 별다른 시사점을 주지 않는다. 이를 받아들일 경우, 우리가 해야 할 것은 그런 싹이 보이는 인물을 배제해버리는 것 말고는 없다. 대학살이 다시 일어나지 않게 하기 위해서라도 대학살의 원인을 묻는 일은 오늘날에도 매우 긴요하고 절실한 작업임에 다름 아니다. 그리고 그 죽음을 기억해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저자는 스탈린과 히틀러가 ‘블러드랜드’에서 저지른 학살의 전개와 결과를 아주 상세하게 기술한다. 그가 이렇게까지 하는 이유는 히틀러와 스탈린, 독일과 소련, 국가사회주의와 스탈린주의의 학살을 살펴보고 비교하여 수많은 사람의 폭력적인 최후의 원인을 밝히고자 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3.
우크라이나 대기근 당시, 스탈린은 즉각적으로 이 사태를 “우크라이나 농민의 굶주림을 우크라이나 공산당 당원의 배신으로 간주”하였다. 그는 자신의 계획이 공격받는 것을 용납할 수 없었다. 그래서 모든 문제의 책임을 지역 지도자와 “외세의 체제 전복 행위”에 전가하였다. 대숙청 과정에서는 안보적 우려 때문에 수많은 폴란드계 소련인들을 ‘폴란드 군사 조직’이라는 그 실체가 너무도 모호하고 불확실한 허구적 조직과 관련시켜 죽였다. “폴란드의 음모 따위는 실체가 없었기에, 내무인민위원회 장교들은 폴란드계 및 폴란드와 관련된 다른 소련인들, 폴란드 문화나 로마 가톨릭교를 박해해야 했다.” 대숙청에서는 정적들과 집단화에 저항하던 때를 상징하는 부농도 살육의 대상이 되었다. 그중에서도 ‘부농의 저항’이 많았던 우크라이나가 “살육의 중심지”였는데, 이곳은 폴란드계 소련인의 대다수가 살던 곳이기도 하였다. 한 장교는 이렇게 말했다. “폴란드 출신이라면, 당연히 부농이다.” 여기서 폴란드인은 개인이 실제로 했을지도 모르는 일 때문이 아니라 정치적으로 규정된 ‘그 존재 자체’ 때문에 처형되었다.
이러한 면에서 나치와 히틀러는 스탈린과 하등 다를 바 없다. 폴란드에 대한 파괴적 열망을 공통으로 가졌다는 점에서 두 체제는 차이를 구분하기 어렵다. 널리 알려져 있듯이 이들의 주 학살 대상은 유대인이었다. 그러나 유대인 못지않게 나치는 폴란드인들에 대해서도 대량학살을 벌였다. 1939년, 폴란드를 공격하면서 나온 전쟁포로를 독일의 지휘관들은 “빨치산, 즉 전시 국제법의 보호를 전혀 받을 수 없는 비정규 집단으로 규정했다.” 독일군은 폴란드라는 나라는 없으며, 따라서 폴란드군도 존재하지 않는 군대라는 지시를 받았다. 그들은 또한 폴란드 유대인들을 “인간 이하의 존재, 미개한 폴란드 땅을 더욱 오염시키는 병균이나 해충”쯤으로 여겼다. 히틀러는 폴란드 지역의 모든 것을 쓸어버리고, “게르만족의 지배”로 대체하려 하였고, 하인리히 힘러가 이 일을 전담했다. 이 원대한 이상을 이루기 위해 독일에 병합된 폴란드 지역의 토착민들은 사라져야만 했다. 그 자리는 독일인으로 채워 넣을 계획이었다.
독소전쟁은 더 크고 더 잔혹한 학살이 자행된 사건이었다. 독일 군인은 레닌그라드를 포위 점령하여 인위적으로 500만 명 이상을 굶주리게 하였다. 뿐만 아니라, 그는 점령지에 수용소라는 이름의 살인 공장을 지었다. 헤움노, 베우제츠, 소비부르, 트레블린카 등지에서 학살 시설이 세워져 약 130만 명의 폴란드 유대인이 사망하였다. 이 학살 작전은 ‘라인하르트 작전’이라는 이름으로 불리며, 이 작전의 마지막을 장식한 곳이 바로 아우슈비츠이다. 이 시설에서는, 총살, 구덩이 파기, 엔진 배기가스로 질식시키기, 독가스 살포 등 유대인을 죽이는 데 여러 방식이 동원되었고, 경찰들은 열차로 보낼 할당량을 채우기 위해 아이들까지 끌고 갔다. 그럼에도 히틀러는 이들이 유럽에서 일어나는 모든 ‘재앙의 원흉’으로 묘사하며, 이들에 대한 학살을 정당화하였다. 이들은 죽어 마땅한 존재였다. 독소전쟁에서 패배가 거의 확실해지자, 독일군은 점령지에서 복수에 가까운 살육전을 펼쳤고, 수용소는 폐쇄, 매우 극소수만 살아남았다. 그와 함께 아우슈비츠가 ‘마지막 해결책’의 마지막 장소로 지정되었다.
4.
사람을 죽이는 체제, 수사, 방식에서 양자는 소름 돋도록 유사하다. 저자가 밝혀낸 “국가사회주의와 스탈린주의의 핵심적인 공통점은 일정 집단의 사람들에게서 사람으로 여겨질 권리를 빼앗는 그들의 능력에 있었다.” 즉, 희생되는 사람들을 인간 이하의 존재로 만듦으로써 살해 행위에 도덕적 부담을 지우고자 했던 것이다. 그리고 두 체제 모두 “무오류의 존재라고 내세워진 지도자를 지키기 위해 막대한 사람들의 희생을 요구한 것이라는 점에서 똑같았다.” 여기에는 두 지도자(스탈린과 히틀러)가 내세운 애초에 실현될 가능성이 없는 유토피아적 비전이 공격받는 것을 막기 위함도 있다. 도덕적 딜레마를 제거하는 데 있어서 히틀러와 스탈린은 모두 조직을 앞세워 “집단학살을 ‘덜 나쁜 일’처럼 여기도록 만드는 데 선수였다.” 마지막으로 소련과 나치 독일은 ‘당’이라는 “규칙 자체를 정하는 유일한 집단”이 지배하는 일당독재체제 국가였다는 공통점도 있다. 최소한의 민주적 질서의 부재, 특정 집단의 인간에 대한 비하와 악마화, ‘막연하지만 절대적인 이데올로기’에의 맹목적인 헌신 강요, 개인 숭배. 그 수많은 사람들을 참혹한 죽음으로 몰고 간 원인이자, 오늘날에도 우리가 그 죽음들을 기억해야 하는 이유이다.
5.
이 책을 읽을 때, 주의 깊게 읽어야 할 또 다른 부분은, 저자가 최대한 복원하고 담아내고자 노력한 희생자 한 명 한 명의 죽음이다. 저자에 따르면 “죽은 이의 숫자를 셀 뿐 아니라 죽은 이 한 명 한 명을 개인으로 취급해야 한다.” 왜냐하면 학살은 기본적으로 개인에 대한 것이며, 그러므로 희생자 개개인의 죽음은 각기 다른 이야기를 간직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저자는 책 곳곳에서 기록과 증언을 바탕으로 죽은 자 한 명 한 명의 이름과 가족관계, 그들이 죽었을 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를 아주 상세하고 생생하게 그려낸다. 아마 여건만 되었다면, 학살당한 사람들 모두의 이야기를 저자는 옮겼을지도 모른다.
이처럼 저자는 대학살의 희생자들이 단순히 ‘몇백만’ ‘몇십만’이라는 추상적인 숫자로 기억되는 것에 반대하며, 나치와 소련의 체제하에서 죽은 개개인에 관심을 가진다. 그 일환으로, 책 전체에 걸쳐서 저자는 어림수를 쓰는 것을 되도록 자제하며, 반드시 죽은 이의 숫자를 일의 자리까지 적는다. “죽은 자들에 대한 기억은 그 수가 어림수가 아닐 때, 다시 말해서 마지막 단위가 0이 아닐 때 쉬워진다.” 저자는 단순한 수치로 죽은 이들을 기억해서는 안 된다며, ‘하나의 ~배’로 표현할 것을 힘주어 강조한다.
‘1400만’이라는 압도적인 숫자 앞에서 죽은 이는 이름도 없이 그저 ‘1400만’ 속에 한 명으로 기억되기 마련이다. 그 압도적인 숫자에 개인성이 묻혀버릴 수 있다. 하지만 인간에게서 개인성을 제거하고 사람을 숫자로 표현하는 것이야말로 나치와 스탈린의 정신에 가까운 것이며, 인간성을 가진 우리가 경계해야 할 일이다. 이 책은 그 숫자들 속에서 개인의 목소리와 삶에 주목한 책이기도 하다. 역사란 숫자가 아니라 사람을 기억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런 의미에서 우리는 홀로코스트와 대학살의 희생자들을 숫자로서가 아니라 그들의 이름을 되찾아주어 ‘고유한 인격을 지닌 인간’으로서 기억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