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스 베버, <직업으로서의 학문>, 나남, 38~39쪽
"일단 눈가리개를 하고서, 어느 고대 필사본의 한 구절을 옳게 판독해 내는 것에 자기 영혼의 운명이 달려 있다는 생각에 침잠할 능력이 없는 사람은 아예 학문을 단념하십시오. 이런 능력이 없는 사람은 우리가 학문의 <체험>이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을 결코 자기 내면에서 경험하지 못할 것입니다. 학문에 문외한인 모든 사람들로부터는 조롱당하는 저 기이한 도취, 저 열정 "네가 태어나기까지는 수천 년이 경과할 수밖에 없었으며", 네가 그 판독에 성공할지를 "또 다른 수천 년이 침묵하면서 기다리고 있다"고 생각할 수 없는 사람은 학문에 대한 소명이 없는 것이니 다른 어떤 일을 하십시오. 왜냐하면 열정을 가지고 할 수 있는 것만이 진정으로 가치 있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미야자키 이치사다, 차혜원 옮김, <옹정제>, 이산. '옮긴이의 말', 223~226쪽
18질 112책으로 이루어진 방대한 <주비유지>는 옹정제와 232명의 관료가 주고 받은 서간문을 모아 출간한 자료로 당시 사회의 심층부를 그대로 보존해 놓은 일종의 타임캡슐 같은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곧 실록 등의 공식기록이 사실의 표면적인 부분을 스치고 지나간 정도라면 이 자료는 그 핵심부분까지 깊숙이 파고 들어가서 살아 있는 정보를 제공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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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옹정제>를 세상에 나오게 한 가장 결정적인 요인은 두말할 나위 없이 미야자키 자신의 역사학자로서의 소명의식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지금까지 시야에 사라져 있었으나 결코 간과되어서는 안 될 중요한 사실을 소개하고 기억시킴으로써 역사를 제자리에 자리매김해야 한다는 역사의식이 이 전기의 전편에 흐르고 있으며, 이것이 옹정제의 삶에 한층 더 깊은 의미를 부여해 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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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옹정제>는 일반인을 위하여 쓴 비전문서적이지만 한편으로는 이후 40여 년간에 걸쳐 집중적인 연구가 이루어지는 이른바 '옹정학'의 출범을 알리는 서곡이기도 하다. 미야자키는 1949년부터 교토 대학 내에 옹정주비유지 연구반을 만들어 <주비유지>의 윤독을 시작하였고 수업교재로도 활용한다. 이때부터 구어체와 속어가 섞여 난해하기 그지없는 <주비유지>는 오랜 시간에 걸쳐 연구반에 의해 완전히 독해되기에 이른다. 그리고 단순히 읽는 데만 그친 것이 아니라 고유명사와 법제상의 술어, 지방풍속에 이르기까지 주요한 어휘를 카드에 채록하는 색인작업도 동시에 진행되었다. 40여 년간 매주 거의 빠짐없이 윤독회가 이루어졌는데, 모두 99명의 인원이 참가하였던 대사업이었다.
<주비유지>의 윤독회가 수백회 거듭되면서 연구원들 사이에는 이렇게 반복되는 작업이 무슨 의미가 있냐며 빠른 결론을 촉구하는 목소리도 있었다고 한다. 여기에 대하여 연구반의 또 다른 기둥이었던 아베 다케오라는 학자는 이렇게 일축하였다고 한다. "이런 것을 해나가는 일, 그게 바로 학문이라는 겁니다"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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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6년 그 총결산이 <옹정시대의 연구>라는 방대한 단행본으로 출간되기에 이른다. 또한 1990년대에는 그동안 정리한 카드 12만 매 분량의 색인작업을 완성하였다. 이 색인은 단순히 어휘의 소재를 밝히는 데 머물지 않고 이해를 돕기 위하여 전후의 문장을 몇 구절씩 함께 채록한 일종의 난해어 사전과 같은 성격을 띠고 있다. 청대사 연구자들이 <주비유지>라는 망망한 사료의 바다를 헤쳐 나가는 데 있어 가장 든든한 등대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