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은 번역한 경전의 질이나 양에서 걸출한 업적을 남기었다. 그의 번역은, 구마라집 이전의 고역과 구마라집의 구역과 대비되는데, 이 차이는 번역어에서 나타난다. 현장은 빨리어 혹은 중앙아시아어로 작성된 불전을 통일성 있게 번역하고자 음역어 이론을 구상했다. 구체적으로 말해, 그는 같은 단어가 다르게 번역되는 폐해를 방지하기 위해 범어 원전에 기반하면서도 의역을 해야하는 용어와 음역해야 하는 용어를 다섯 가지로 분류하였다. 이 다섯 가지 분류에 포함될 경우, 의역하지 말고 음역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면 어떤 기준에 의해 오종불번이 행해졌을까? 그것은 다음과 같다.


​(1) 부처님의 비밀한 뜻을 담고 있는 경우. 이런 경우는 의역할 경우 신비한 의미가 사라질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의역하지 않고 음역만 한다. 예를 들어, '아제 아제 바라아제(Gate Gate Paragate)'와 같은 주문은 범어 그대로 낭송하는 게 중요하기 때문에 번역하지 않는다.


(2) 한 단어가 여러 의미를 가지는 경우. 딘어가 가지는 다양한 의미 중 하나만 선택하여 번역하면, 다른 의미가 드러나지 못하므로 음역한다.


(3) 인도나 서역에는 존재하지만, 중국에는 존재하지 않는 사물.


(4) 옛부터 관습으로 사용되어 온 관용어.


(5) 善을 낳기 때문에 번역하지 않는 경우. 다른 말로 의역으로는 원어가 갖는 깊은 의미를 드러낼 수 없는 경우를 말한다. 예를 들어, 산스크리트어 Prajna(프라쥬나)는 중국어 지혜(智慧)로 옮길 수 있지만, 지혜는 인간의 힘으로 도달 가능한 영역인 반면에 프라쥬나는 초지혜적인 영역이 있다. 그래서 프라쥬나를 번역하지 않고 반야(般若)로 음역한 것이다. ​


현장의 오종불번은 수당대 불경 번역의 원칙이 되었다. 이는 원어와 아주 가깝게 표기를 해서 원어의 뜻을 표현하려고 했던 시도라고 할 수 있다. 이 다섯 가지 원칙 중에서 나에게 가장 심각하게 다가왔던 것은 두 번째와 다섯 번째이다. 이 두 기준은 시대를 막론하고 번역을 할 때 가장 큰 어려움으로 다가오기 때문이다.​


society-社会가 다의어 번역의 문제점을 집약해서 보여준다. society는 동료나 친구끼리의 사교모임의 의미와 더불어 "같은 종류의 사람들끼리의 결합...조화를 이룬 공존을 목적으로 하거나 상호 이익, 방어 등을 위해 개인의 집합체가 이용하는 생활 조직이나 생활방식"(<프리덤, 어떻게 자유로 번역되었는가>)을 의미하기도 한다. 자유롭고 평등한 개인들의 모임이자 생활방식이라는 의미의 society에 대응하는 관념이 일본에는 없었기에 이 단어를 어떻게 번역할지를 두고 여러 대안들이 제시되었자. 후쿠자와 유키치는 '인간교제'라는 새로운 조어를 시도하였다. 그는 일상적으로 쓰는 단어에 새 맥락을 부여하여 society가 가진 수평적 관계의 요소를 드러내었다. 하지만 최종적으로 정착된 용어는 사회( 社会)였는데, 이는 모임을 뜻하는 두 단어를 결합하여 만든 단어였다. 그러나 아무 맥락 없이 두 단어를 합친 결과, 단어의 원의와 크게 틀리지는 않지만 너무도 추상적이어서 직관적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단어가 만들어져버렸다.(이와 유사한 다른 예가 헤겔의 Aufhebung지양 개념이다) society의 사례에서 볼 수 있듯, 다의어를 의역하여 원의를 제대로 표현하기는 매우 어렵다. 그래서 현장은 이런 문제를 염두에 두고 다의어의 음역을 주장했다.


5번 사례 중 프라쥬나를 더 얘기해보자. 프라쥬나라는 관념은 지혜와 다르다. 만약 지혜로 프라쥬나를 번역한다면, 원어가 가지는 의미가 축소될 수 있다. 현장은 이런 번역이 "원어가 갖는 육중하고 깊은 뜻을 살리기 어렵고 뜻이 가벼워질" 우려가 있다고 보았고, 아예 이런 단어는 번역하지 않고 음역만 한 것이다.​ 프라쥬나를 중국의 언어로 옮길 때 가장 큰 문제는 프라쥬나라는 관념은 중국사상 세계에 없었다는 점이다. 비단 프라쥬나뿐만 아니라 불교적 세계관, 인간 이해는 모두 기존의 중국 사상 세계에서는 낯선 것이었고, 그렇기에 섣불리 중국 사상의 관념으로 불교의 개념을 담으려 할 경우 필연적인 오역이 발생하고 만다. 현장이 오종불번을 제시했을 때는, 원어의 의미와 불교 사상의 의미를 중국인이 최대한 왜곡 없이 이해하도록 할 방법에 대한 고민이 담겨 있었던 것이다. 번역이란 언어뿐만 아니라 사유체계를 옮기는 작업이다. 이렇게 본다면, 중국의 불경 번역의 역사는 단순히 산스크리트어를 중국어로 옮기는 과정이 아니라 중국에 없는 불교의 관념을 중국인에게 이해시키기 위한 노력의 과정이었다.​​​


아래는 오종불번을 구글링하다가 우연히 발견한 후나야마 도루 <번역으로서의 동아시아> 인용문.



구마라집은 번역이면서도 한편으로 중국어로서 알기 쉬운 문장을 지향했기 때문에 때로는 글자 하나하나의 뜻을 충실히 새기는 축어역에서 벗어나 일부를 생략하거나 말을 덧붙여 알기 쉽게 하는 조작도 했다. … 스탠포드대학 폴 해리슨 교수는 구마라집 번역이 갖는 특징의 하나를 “마치 현대 연구자가 번역할 때 괄호를 사용하여 그 가운데 말을 덧붙여 자신의 해석을 드러내는 것과 같은 방식으로 작업을 했는데, 다만 구마라집은 그것을 본문 가운데 괄호를 사용하지 않고 했다”고 표현한다. … 바로 이 점이 구마라집 번역의 <법화경>, <유마경>, <금강반야경>이 중국 불교사를 통해 후대에 이르기까지 오랫동안 계속 읽혀온 이유다. … 번역이란 타인이 씹다가 내뱉은 음식물 같은 것으로 보는 구마라집의 생각을 파고들면, 결국 타인의 한역을 읽기보다 범어를 배워 원전을 읽으라는 이야기가 될 것이다. – 145


… 중국 불교사에 … 아이러니한 결과가 발생했다. 완성판이라고 할 수 있는 현장 번역은 학술적인 가치는 인정받았다고 할지언정 그 후에도 사람들이 즐겨 읽은 것은 다름 아닌 구마라집 번역이었던 것이다. … 현장 번역은 중국인의 금강경 이해와 관련하여 결국 아무 영향도 미치지 못했던 것이다. … 비판과는 별도로, 현장에게는 ‘오종불번’으로 불리는 번역이론이 있었다… 의역하지 않고 음역에 그치는 편이 좋은 다섯 가지 장르를 열거한 것이다. … 첫째, (음역 그대로 놓아두는 쪽이) 선업을 낳게 하므로 옮기지 않는 경우가 있다. 예를 들면, ‘불타’(buddha)는 깨달음이라는 의미인데 … 범어 그대로 남겨둔다. 사람들의 선업을 낳게 하는 데 의도를 두고 있기 때문이다. 둘째, 비밀로 하기 때문에 옮기지 않는 경우가 있다. 예를 들면, 다라니 등과 같은 주문의 가르침은 범어 그대로 암송하여 부처의 가호를 빌면 즉각 효과가 나타나지만, 중국어로 번역하면 조금도 영험스럽지 않기 때문이다. 셋째, 복수의 의미를 내포하므로 옮기지 않는 경우가 있다. 예를 들면, ‘박가범’(薄伽梵, bhagavān)은 한 단어에 … 여섯 가지 의미가 들어 있다. … 하나의 의미로 옮기면 나머지 다섯 가지 의미가 모두 사라지고 말기 때문에 … 넷째, 예로부터 써내려온 관습에 따르므로 옮기지 않는 경우가 있다. … 다섯째, 중국에 없는 사물이므로 옮기지 않는 경우가 있다. 예를 들면, 염부수(閻浮樹)는 그림자가 달에까지 드리워져 달의 모양을 만들고 … 항아리만 한 크기의 열매가 열리는데, 이 나무는 중국에 없으므로 번역할 수 없다. – 153~155​


음역은 의역을 함에 따라 발생하는 의미의 왜곡을 피하는 데는 유용하지만, 외국어이기 때문에 원어 지식이 없는 독자에게는 의미를 전혀 알 수 없는 데다 짐작조차 할 수 없는 것이 커다란 결점이다. 새로운 음역이 사회에 정착하기 위해서는 그것을 반복적으로 사용하여 실제 용례가 축적됨으로써 많은 용례나 문맥적인 뉘앙스로부터 의미가 귀납법적으로 이해될 수 있게 되기를 기다려야 한다. – 286

*예나 지금이나 학술적 번역보다 글의 맛이 살아있는 번역이 더 인기있나 보다

참조.

문을식, <현장의 오종불번의 음역 이론의 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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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자오광의 <중국사상사> 1권의 마지막 편은 불교의 전래와 그 사상사적 전개를 서술하며 끝이 난다. 제4편은 "서언: 이역의 풍"과 일곱 개의 절로 이루어져 있는데, 이중 불교와 직접적으로 관련된 부분은 4절 "불교의 동방 전래와 그 사상사적 의의 (1)"부터이다. 이번주에는 4~6절을 읽었다. 나는 이 부분을 굉장히 흥미롭게 읽었다. 사실 나는 이 절에서 다루는 문제에 기본적으로 관심이 많다.


바깥쪽의 낯선 개념과 사상 체계가 안쪽으로 유입되었을 때, 그 안에서는 어떤 일이 일어날까? 안쪽은 바깥쪽의 사상을 어떻게 받아들일까? (안쪽과 바깥쪽이란 표현은 강명관의 책 <안쪽과 바깥쪽>에서 가져온 것이다) 이것은 외래 사상을 수용할 때 기본적으로 드는 궁금증들이다. 이 문제를 조금 더 확장해보자. 외래 사상의 수용자는 기존의 전통적인 가치를 습득한 사람이다. 그 수용자는 이 전통적 가치를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가? 체제교학으로서 인정하고 있는가, 아니면 일정한 거리를 두고 비판적으로 조망하고 있는가. 아니면 전부 다 뒤집어 엎어 버리려 하는가. 이건 외래 사상의 수용에서 첫 번째로 살펴볼 물음이다. 다음으로, 외래 사상을 수용할 때 수용자는 그 사상의 핵심 개념을 무엇이라고 이해하며, 이때 전통적 가치가 어떤 역할을 하는가. 수용자는 자신의 관심과 목적에 따라서 외래 사상을 수용한다. 따라서 우리는 사상이 어떻게 수용되는지 그 맥락을 살펴봐야 한다.


불교는 인도에서 시작되고 발전한 종교이기에 사회를 규정하는 가치나 우주에 대한 이해에서 고대 중국과 확연히 달랐다. 하지만 7세기 이후 들어서 불교는 사회 구성원 대다수에 의해 수용되어 지배적인 사상의 위치에 올라서기에 이르렀다. 과연 어떤 과정을 거쳐서 인도의 불교가 어떻게 중국에 받아들여졌는지를 거자오광의 <중국사상사>에서 갈음할 수 있다. 중국의 불교 수용사는 근대 동아시아 세계의 서양 사상 수용을 고찰할 때 유용한 사례가 될 것이다.


낯선 이역 인도에서 발흥한 종교를 처음 접했던 사람들의 반응은 낯섦이었다. "불교가 중국에 처음 들어왔을 때 중국 신도들에게 비췄던 불교의 우주 사회 인생에 대한 사상 중에는 기존 중국 사상에서 들어본 적이 없거나 확립된 적이 없는 내용들이 사뭇 들어있었다. 다시 말해 우주의 허황함, 생존의 고통, 삼세의 윤회, 그리고 진실을 추구하고 고통으로부터 해탈해 윤회의 수레바퀴로부터 벗어나려는 언뜻 보기에 일상적이 아닌 듯한 방법과 수단 등이 그것이다." 불교의 인생관, 가치관, 윤리도덕 규범은 전통 중국에서 사람들의 의식과 생활을 규정한 가치나 규범과는 매우 달랐다. 지식인들과 상층 계층은 4세기 이전까지 불교에 대해 냉담했다. 하지만 하층민 사이에서 급속도로 전파되었던 불교 교리는 상층 문인들의 사상 세계에도 변화를 주기 시작했다.


이 낯선 사상 체계를 받아들이고 이해하기 위해서 사람들은 전통적 사상과 유사한 부분을 먼저 찾고자 하였다. "불교적 참회 방법은 중국에서는 오히려 도교의 '과실을 뉘우치다'와 '과실을 인정하다'와 같은 개념과 섞이게 되어 자신의 도덕이나 윤리에 대한 반성 행위로 변하게 되었다." "도가의 형이상학적 내용은 불교의 사상과 가장 근접하여, 초기 불교를 이해하는 언어 환경이 되었다." 중국의 수용자들은 불교의 언어 속에서 도가의 편린을 발견하여 이해하려 하였고, 이러한 방법론은 "중국 전통의 언어로 불교의 교리를 번역하고 해석하는" '격의'를 생기게 하였다. 예를 들어, "道"로서 "보리"의 개념을 나타내고, 無로써 空의 개념을 대신했으며, 열반의 개념을 '무대(無待)'로 담았다. 이는 모두 노장의 언어와 불교 언어를 배합한 결과물들이다.


하지만 전통적 언어 환경으로 불교의 관념을 담아내려는 시도는 한계가 있었다. 즉, 도가나 도교의 개념으로는 불교의 공, 열반 등의 개념을 완벽하게 표현하지 못했던 것이다. 양자는 공통점만큼이나 고유의 특수성도 있는데, 배합이나 격의로는 이런 고유한 특징을 이해하기 어려웠다. 뿐만 아니라 불성에 관한 명제는 기존 중국 언어 환경으로는 제대로 전달할 수 없었다. "고대 중국에서는 형이상학적 본원에 대한 명석한 단계적 사고가 결핍되었으며, 또한 언어의 정밀함과 정확성도 부족하였다." 불교에 대한 이해가 심화되어 가면서 중국의 수용자들은 점차 이런 한계를 인식하게 되었다. 도안과 구마라집 등은 정확하고 유장한 언어로 불경을 새로 번역하였다. 또한 지둔, 축도생, 혜원 등 불교에 대해 더 심오한 이해에 이르게 된 사상가들에 의해 중국 전통 사상과 불교가 융합하게 된다.


이것이 중국 사상계에 어떤 변화를 낳았는가? 먼저 한어 어휘가 급격하게 늘어났다. 기존의 無로 이해하였던 空이 내공, 외공, 공공, 대공 등 18개의 공으로 분류되어 표현될 정도로 중국의 언어는 점차 세밀해지고 정교해졌다. 그리고 교리 논쟁은 명석한 단계적 사고를 발전시켰다. 불교는 층층의 단계적인 추리로 상호 고리를 연결하는 방식으로 사고를 구체화하고 정밀한 논리를 개발한다. 이러한 방식이 중국의 언어로 흡수되면서 부족한 언어의 정밀함과 형이상학적 사유를 발전시킬 수 있었다.


수 세기에 걸친 지난한 불교와 중국 토착 사상 간의 융합은 다음의 문장으로 집약할 수 있겠다. "사상과 문화의 융합은 결코 간단하거나 평화로운 것만은 아니다. 외국으로부터 지식과 사상 그리고 신앙이 중국에 들어오면 초기 단계나 가장 표면적 단계에서는 직접적으로 저항하지 않는다. 그러나 이러한 외래 지식, 사상, 신앙의 자극으로 인한 부단한 화합 과정 중에 중국 본토의 본래 사상은 점차 자체의 가치와 의의를 확인하면서 꾸준히 자극을 받는다. 아울러 외래 지식, 사상, 신앙과의 충돌 과정 중에서 점차 자신의 내적 함의와 한계를 드러낸다." 이것은 중국뿐만이 아니라 외래 사상을 받아들이는 어떤 상황에서도 동일하게 전개되는 과정이다. 여기서 '중국 본토의 본래 사상' 자리에 다른 말을 넣어도 위 문장은 성립된다.


그런데 중국 토착 사상 못지 않게 불교가 직면한 도전도 만만치 않았다. 그 도전이란 중국의 유구한 문화 전통의 압박이었다. 이 압박은 담론 권력으로서, 세속 권력의 강제적 역량, 문명지역 주민의 습관적 이해와 해석 방식, 문명의 역사적 전통의 권위 등으로 나타났다. 외래 사상이었던 불교는 중국에 받아들여졌으나, 혈연/ 가정윤리/사회책임을 중시하는 중국의 전통 가치와 인생관을 바꾸는 데에는 이르지 못했고, 불교는 오히려 이런 전통 윤리를 보호하는 진영으로 녹아들었다. 불교의 우주에 관한 지식과 도리도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불교는 유구한 문화 전통을 가진 중국과 중국의 언어 환경에서 자신을 변호하였는데, 그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혹은 어쩔 수 없이 본래 형태를 바꾸어야만 했다. 불교는 아직 사회의 생활양식을 규정하는 데까지 이르지는 못하였던 것이다. "그리하여 7세기에 이르면, 중국에서 불교가 사실 이미 중국 사상계에 상당히 섞여들었고, 불교의 사상도 상당히 한화되었던 것이다." 불교는 번역과 수용의 역사를 거치면서 중국의 사상으로 토착화되었다고 볼 수 있다. 이제 시간을 뒤로 돌려 19세기 동아시아 세계를 봐보자.


근대 동아시아는 서구의 충격에 직면하여 서구의 지식과 사상이 급속도로 흡수하게 되었다. 이 충격에 대한 반응으로 막말 일본의 후쿠자와 유키치 등의 지식인들은 society, freedom, individual 등의 낯선 서양 사회과학 용어를 새롭게 '사회', '자유' '개인' 등의 단어로 번역하였다. 이들은 기존에 있던 단어에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기도 하였으며, 아예 없던 새로운 단어를 만들기도 하였다. 근대 일본이 만든 번역어는 근대 조선에 수용되었다. 그런데 근대 일본과 조선의 지식인들은 서양의 사상과 개념을 받아들일 때, 기존의 전통 가치를 기준으로 하여 수용하였다. 특히 조선의 경우에는, 성리학이라는 체제교학의 프리즘을 통해서 서양의 지식을 이해하였다. 처음에는 단지 소수의 지식인들에 의해 수용되었던 서양의 사상은 19세기 말 제국 열강들과의 폭력적인 만남과 그로 인한 동아시아 전통 체제의 위기를 통해 더욱 진지하게 논의되었고, 이는 전통적 가치에 대한 비판적 조망, 나아가 아예 이 가치를 하려는 시도에까지 이르렀다. 불교라는 사상이자 종교는 중국에 현지화되어 지배적 사상에 자리에 올랐다면, 한국에서 서양의 종교와 사상은 어느 위치에 있을까? 그것의 현지화, 즉 지배적인 사상이 되어 삶의 양식을 규정하는 사상이 되었는가의 문제는 이미 완료되었는가, 혹은 진행형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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