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느와르 영화 하면 1년 간격으로 개봉한 <신세계>와 <범죄와의 전쟁>이 떠오른다. 두 영화는 큰 화제를 몰아 시간이 지나서도 수많은 유행어와 밈을 탄생시켰다. 그렇지만 작품성까지 따졌을 때 <범죄와의 전쟁>이 더 훌륭한 작품임은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시간이 지나 영화 속 대사들이 재발견되어 밈화된 것으로 보듯이, 이 영화는 일단 장르적으로 대사를 잘 만들었다. 그러나 이 영화는 잘 만들어진 구조 안에서 최익현이라는 인물을 통해 한국 사회에 대한 냉소적이고 날카로운 통찰력을 풍자적으로 보여준다.


이 영화의 이야기는 주인공 최익현을 중심으로 그가 어떤 세력과 손을 잡는가에 따라 나뉘어진다. 본래 부산항 세관원이던 최익현은 온갖 부정부패를 저지르는 부패 공무원이었다. 어느날 그는 누군가의 고발로 인해 강제로 총대를 매게 되어 해고를 당하게 된다. 동료와 술을 마시며 신세한탄을 하던 중 수상한 컨테이너 박스 안에서 마약을 발견하고는, 동료의 주선으로 부산 최대 조직폭력배의 두목인 최형배와 동업자 관계가 된다.


폭력배의 세계에 속하지 않던 인물이 정식으로 최형배 조직의 일원이 될 수 있었던 것은 최형배와 최익현의 특별한 관계 때문이었다. 최익현과 최형배는 같은 본관의 같은 파로, 최형배의 아버지는 나이로는 그보다 한참 연상이지만 촌수로만 따지면 최익현이 더 웃어른이다. 그렇다보니 최형배의 아버지는 그에게 꼼짝도 못하고 최형배에게도 최익현에게 깍듯하게 대하라고 한다. 형배 입장에서는 탐탁치 않지만 아버지의 요구로 어쩔 수 없이 익현과 손을 잡게 된 것이다. 익현으로서는, 주먹의 논리로 대부분의 문제가 해결되는 세상에서, 그 주먹의 정점에 위치한 가장 '쎈놈' 형배가 최고의 조력자로 여겨졌다. 그렇게 첫번째 파트너인 형배와 조폭의 비호 아래, 또 자신의 정치권 인맥의 비호 아래 형배는 뒷세계의 실권자로 군림한다.


그의 두 번째 파트너는 검사이다. 1990년 노태우 정권이 범죄와의 전쟁을 선포하자 형배가 손을 잡던 조폭 무리는 궤멸적인 피해를 입게 된다. 경찰과 검찰의 대대적인 검거 작전은 형배 조직을 사실상 와해시켜 버리고, 형배와의 관계가 틀어진 직후 익현의 새 비즈니스 파트너가 되었던 판호의 조직은 두목까지 검거되는 등 완전히 무너진다. 일련의 사건을 겪은 익현은 이제는 조폭의 주먹보다 검찰이 더 쎈놈임을 거의 본능적으로 인식하고는 그들에게 빌붙는다. 범죄와의 전쟁으로 익현은 깡패에 대해 무자비한 검사 조범석에 의해 실형을 받을 위기에 처한다. 그러나 최익현은 교묘한 잔머리를 굴려 최형배 검거에 협조하겠다는 제안을 하고는 완전히 공권력과 한패가 된다. 물론 오로지 인맥과 혈연으로 권력에 기생한다는 방식에는 차이가 없었다. 새로운 쎈놈인 검찰을 찾은 그에게는 형배와 같은 깡패는 이제 필요 없었다.


작중 최익현을 상징하는 소품은 '빈 총'이다. 야쿠자 두목으로부터 익현은 빈 총을 선물받는데, 익현은 형배를 체포할 때 이 총으로 그를 위협한다. 그런데 총알이 없었기 때문에 사실상 모양만 총이지 총으로서 제대로 된 기능을 수행하지 못하는 빈껍데기와 같았다. 겉모습은 위협적이나 그저 블러핑 용도였을 따름이다. 최익현은 부산에서 카지노 세 개를 운영하고 한때 조폭들을 거느렸으며, 이후에 검찰 아들을 두고 검찰국장 인맥을 두며 검찰세력에도 영향력을 행사하는 거물이다. 하지만 그 실상은 마치 껍데기뿐인 빈 총처럼, 그 자신의 노력으로 일군 것은 하나도 없으며 그저 쎈놈에게 기생하여 얻어낸 것들뿐이다. 그의 성취는 그의 능력보다는 그가 가지고 있던 인맥빨이 더 크다. 그러면서도 그는 당당하게 자신의 업적인양 으스댄다. 최익현은 한국인에게 퍼다한 쎈놈주의를 반영한다. 자기개발서는 쎈놈이 되라고 말해준다. 학자들은 최신 해외 학술이론을 얼마나 많이 잘 알고 있는가로 공개적으로 격렬한 논쟁을 벌이기도 하며*, 공직자들은 '어떻게 하면 미합중국을 더 닮아갈 것인가'를 치열하게 고민하며 정책업무를 수행한다. 교회 성직자들은 기독교 수용을 문명의 척도로 삼아 미합중국을 신국으로 삼고 비기독교 국가를 야만국으로 이분한다. 오늘날의 이러한 행태는 최익현의 비열하고 기회주의적 행태와 얼마나 다른가.


*"학자들은 최신 해외 학술이론을 얼마나 많이 잘 알고 있는가로 공객적으로 격렬한 논쟁을 벌이기도 하며"

- 그 한 증거가 바로 주기적으로 반복되는 해외 최신 학설의 유행과 쇠퇴이다. 자기 공부가 없으니 들뢰즈, 라깡, 하버마스니 지젝 같은 최신 유행 학자들을 겉핥기로 공부하고 이들을 아는 것을 지성인의 잣대로 삼지만, 유행이 지나면 곧바로 새 학자로 갈아타고 기존의 담론은 사그라든다. 이런 물화된 한국 학계를 비판적으로 고찰한 책이 최근에 출간되었다. 이시윤, <하버마스 스캔들 - 화려한 실패의 지식사회학>, 파이돈 ,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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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로 17세기 영국을 중심으로, 관련서적 덧붙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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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테의 <신곡>은 천국을 위해 쓴 책이라는 것을, 즉 우리는 단테와 함께 고전문학적 교양으로 지옥을, 오성과 상상력으로 연옥을 편력한 후, 그제야 마침내 빛으로 충만한 천국에서 이성적 정신이 신의 지복으로 초대받는 기쁨을 위한 책이라는 것을 실감해야 한다. 그리고 <신곡>은 그런 기쁨을 알고 있는 상태에서, 지상에 있는 고통스러워 한다는 것을 말하는, 그리고 천국의 지복을 마음이 품고 다른 사람을 사랑할 때 성취되는, 천상과 지상의 사랑의 교류 노래인 것이다.
이를테면 지옥편은 문학, 연옥편은 철학, 그리고 천국편은 신학의 연습의 장이라 말할 수 있다. - P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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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년에 출간된 책 중에서 올해의 책을 보통 고르지만, 나는 올해 출간된 책을 많이 읽지 않았기에 22년에 내가 읽은 책 중에서 올해의 책을 골라봤다. 순서는 그냥 무작위로 적은 것이다.


  1. <옥스퍼드 세계사>, 교유서가, 2020

문명사가 아닌 진정한 의미의 글로벌 히스토리를 쓴, 현 시점에서 가장 완벽에 가까운 세계사 서적이다.




2. 토니 주트, <재평가>, 열린책들

6~7월에 읽으면서 대가의 필체에 감탄하면서 역사의식의 중요성에 대해서 지적 자극을 많이 받았던 책이다. 특히, 20세기의 역사를 어떻게 읽어야 할지에 대해 많은 참조가 되었다.








3. 이정철, <권력 이동으로 보는 한국사>, 역사비평사

이 목록에 있는 다른 책은 서평을 썼는데, 이 책만 서평을 쓰지 않아 조금 자세히 감상을 말해보려 한다.

이 책은 올 1월에 사서 부분부분 읽다 2월에 완독하였다. 이때는 알다시피, 한국에서 중요한 사건을 앞두고 있던 때였다. 한치 앞을 알지 못하던 그때에, 여론의 대세는 지난 5년에 대한 비판적, 회의적 평가였다. 나 자신에게도 과연 그간 개혁은 옳았을까? 라는 물음이 가시지 않았던 때 이 책을 읽었다.(이정철 교수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한국사 연구자이기도 하다, 이분이 쓴 단독 저술은 다 소장하고 있다)

이 책은 7세기경 삼국시대부터 조선왕조의 성립 때까지 정치적으로 중요한 개혁이 행해졌던 역사적 국면을 촘촘히 다룬 책이다. 저자는 아직 개혁이 옳았는지 논하기에는 이르다면서 이 책을 통해 개혁은 어떤 과정을 통해 일어났는지 설명한다. 저자의 설명을 따라가다 보면, 현재의 정국을 염두에 둔 서술도 많이 보이며, 다각적으로 한국사의 중요한 정치적 전환기를 살펴보는 저자의 촘촘하고 섬세한 분석에 흐릿한 머릿속이 또렷해졌다. 좋은 책은 읽으면 머리가 개운해진다. 개인적으로는 이 책이 내 올해의 책이다.





4. 마사 누스바움, <시적 정의>, 궁리

문학의 사회적 역할에 대해 이론적이면서도 감동적인 필체로 잘 서술하였다. 문학 읽기를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그렇지 않은 사람들에게도 새로운 감각을 일깨워줄 것이다.

​마사 누스바움은 (흔한 출판사의 상술 문구가 아니라 정말로) 문예이론, 정치학, 페미니즘 이론 등에서 뛰어난 업적을 많이 남긴 학계의 석학인데, 그녀의 다른 저서도 번역이 많이 되어 나왔다.






5. 폴 우드러프, <최초의 민주주의>, 돌베개

매우 탁월한 민주주의 입문서. 민주주의 이념을 일곱 가지로 간결하지만 대범하게 정리하면서도, 주요 논점들을 놓치지 않았다. 민주주의를 공부하고 싶다면, 우선 이 책의 내용부터 숙달하는 게 좋을 것 같다.

​이 책을 읽는 내내, 자주 다른 책의 내용과 연결 짓게 되었는데, 좋은 책은 역시 다른 좋은 책들을 불러온다.



6. 매슈 윌리엄스, <혐오의 과학>, 반니

혐오가 만연한 현재에, 혐오와 혐오범죄의 원인과 그 심리를 이해할 수 있는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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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부>는 영화사에서 길이남을 걸작일 뿐만 셰익스피어의 드라마나 그리스 비극과도 같은 인류의 고전이다. 무엇을 고전이라고 할 수 있을까? 고전은 우선 잘 만들어진 이야기다. 이야기란 재현(mimesis)이다. 이때의 재현은 복사기처럼 대상의 모든 부분을 완벽하게 똑같이 재현하는 것이 아니다. 이야기의 창작자는 자신이 드러내고자 하는 특성을 부각하여 자신이 만든 인물과 세계에 투영한다. 그리고 단순히 투영하는 데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처음과 중간과 끝이라는 형식에 맞추어 인물의 행동과 심리를 묘사해야 한다. 즉, 고전이 되기 위해서는 내용과 형식이라는 조건을 충족시켜야 하는 것이다. 이야기의 수용자는 잘 짜여진 고전을 보며 인간 존재의 어떤 특성을 이해할 수 있게 되고, 나아가 나 자신에 대해서도 성찰할 수 있다. <대부>를 고전이라 부른다면, 이런 질문을 던질 수 있겠다. <대부>는 무슨 이야기이며, 그 주인공은 어떠한 인간형을 보여주며, 최종적으로 어떠한 주제를 전달하고자 하는가.

<대부>는 마이클 콜레오네의 파멸의 이야기이다. 이 이야기의 중심에 있는 주인공 마이클 콜레오네는 가족을 위해 폭력의 세계에 발을 담궜다가 타락해버리고 만다. 마이클 콜레오네의 아버지 비토 콜레오네는 뉴욕 5대 마피아 조직 중 하나인 콜레오네 패밀리를 이끄며, 본명보다도 통칭 '돈 콜레오네' 혹은 '대부'라고 더 많이 불리운다. 비토는 목적을 위해 협박이나 살인 등 온갖 수단도 가리지 않는 잔혹함을 보이지만, 누구도 반항하지 못하게 하는 카리스마와 지도력, 그리고 자신의 편에게는 한없이 인자한 인망을 보유하고 있다. 그는 인격적 관계를 맺은 사람의 부탁은 들어주면서도, 자신의 적에게는 총을 들이밀 줄도 안다. 그런 그에게는 소니, 프레도, 마이클, 코니, 이렇게 네 명의 자녀가 있는데, 그의 자녀들도 조직의 일에 몸 담고 있었다. 그러나 마이클은 예외였다. 마이클은 아버지가 음지에서 하는 활동을 알고 있었지만, 늘 거기에 불만을 품고 있었고, 가족과 거리를 두며 살아왔다. 그는 콜레오네 가족 중 유일하게 범죄에 연루되지 않았고, 전쟁에 참전하여 공을 세운 전쟁 영웅이었을 뿐만 아니라 연인 케이 애덤스에게 한없이 자상한 남자였다. 비토 역시 그가 자신처럼 되지 않기를 원했다. 마이클은 그렇게 살았을 것이다. 그 일만 없었다면.

비토 콜레오네는 마약상 바질 솔로초의 마약 사업 합루 제안을 거절한다. 비토는 바질을 감시하기 위해 자신의 부하를 스파이로 보내지만, 바질과 손을 잡은 다른 뉴욕 마피아 세력인 타탈리아 패밀리에 의해 부하를 잃고 비토 자신도 총격을 당해 사경을 헤매게 된다. 일련의 사건이 벌어지는 동안 마이클 콜레오네는 케이와 데이트를 즐기다가 길거리 신문에 아버지의 사고 소식을 접했고, 아버지를 쏘고 가족을 위험에 빠뜨린 이들에 대한 복수를 다짐한다. 마이클 콜레오네는 연기한 알 파치노는 캐릭터에 대한 깊은 이해와 자신의 풍부한 연기력으로 이를 표현한다. 마이클은 이 시점부터 웃지 않게 되고, 그의 표정은 한결같이 차가워진다. 이제 그에게서 이전과 같은 인간적인 모습은 볼 수 없게 된다. 관객은 마이클의 내면에 무언가 변화가 생긴 것을 감지한다. 그는 이전의 선한 마이클 콜레오네가 아니다.

마이클 콜레오네가 본래 멀리하였던 패밀리의 일에 연루되면서 <대부>의 본격적인 이야기가 펼쳐진다. 가족이 큰 위험에 빠질수록 마이클은 패밀리의 일원이 되고, 그럴수록 그의 영혼도 타락해버린다. 그 표정처럼 냉철한 판단력으로 마이클은 콜레오네 패밀리가 처한 난국을 타개할 방법을 궁리한다. 결국 마이클은 바질 솔로초와 그의 뒤를 봐주던 경찰 서장을 총살하고 시칠리아로 피신한다. 마이클은 안전한 시칠리아에서 몸을 숨기고 있었지만, 뉴욕에서는 바질의 사망으로 마피아 세력 간 전쟁은 피할 수 없게 되었다. 그 과정에서 콜레오네 패밀리의 장남인 소니가 기습을 당해 사망해버렸다. 가족이 한 차례 더 위험에 빠지게 되었다. 비토는 총격 때문에 아직 회복 중이다. 차남 프레도는 믿음직스럽지 못하고, 여성인 코니는 애초에 패밀리의 일을 맡아본 적 자체가 없다. 이 상황을 어떻게든 해결하여 가족을 지키기 위해서는 마이클밖에 없다. 마이클은 다시 미국으로 돌아오고 비토의 뒤를 이어 콜레오네 패밀리의 새로운 '돈 콜레오네'가 된다. 얼마 지나지 않아 비토 콜레오네도 사망한다. 마이클 콜레오네는 아버지의 사망을 계기로, 가족의 위협이 되는 마피아 세력의 두목을 모두 처치하기로 결심한다. 이것이 그 유명한 '세례식 장면'이다.

장소는 한 성당. 마이클은 코니와 카를로 사이에서 난 아들의 세례식에 아이의 대부로서 참석한다. 아이의 맑은 울음소리와 유아세례식을 준비하는 신부의 분주한 손이 교차되는 이 신성하고 경건한 가족행사 바깥에서는 뉴욕 5대 두목의 처형식이 준비되고 있었다. 코폴라 감독은 교차편집을 치밀하게 활용하여 무의식적으로 두 이야기 사이의 연관을 확립하고 유아세례식과 처형식의 대비를 더욱 선명히 한다. 세례식과 처형식은 서로에 대한 거울이다. 신부가 세례용 기름을 가지러 카메라 왼쪽으로 이동하면, 그 다음 쇼트에서 카메라 오른쪽에 있는 신부의 손이 아이의 얼굴에 기름을 뿌린다. 그 다음 씬에서 이발사가 카메라 왼쪽에서 면도용 크림을 가지러 가고, 카메라 오른쪽에서 이발사는 마이클의 부하에게 면도 크림을 바른다. 이러한 연출을 통해 감독은 서로 다른 두 공간의 서사를 하나로 이어지게 만든다. 그리고 두 서사의 중심에 마이클 콜레오네가 있다. 마이클은 세례식을 관찰하며 참여한다. 하지만 코폴라가 연결시킨 두 서사에서 마이클의 눈은 또한 처형식을 응시하고 있기도 하다. 그는 부재하면서 부하들에게 감시한다. 그는 세례식에서 사탄의 유혹을 끊어내겠다고 선언함과 동시에 꼴레오네 패밀리의 적들을 끊어낸다. 이런 연출이 지시하는 것은 명백하다. 직접적으로 마피아 두목을 죽인 것은 부하들이나, 실질적으로는 마이클 콜레오네가 그들을 죽였다. 가장 경건한 장면과 가장 폭력적인 장면이 교차되는 이 시퀀스에서 마이클은 불안해하지도 두려워하지도 않는다. 그저 차갑게 눈앞의 상황을 응시하고 있을 뿐이다. 그는 패밀리를 배신한 살 테시오와 가족을 배신하여 소니를 죽게 만든 매제 카를로도 살해한다. 바로 그 카를로 아들의 세례식 날에. 마이클 콜레오네는 더 이상 '대학생 샌님'이라 놀림받던 선한 인물이 아니라 가족을 지키기 위해 어떤 짓이라도 저지를 수 있는 냉혈한 마피아 조직의 보스가 되었다.

세례식 시퀀스를 길게 서술한 이유는 이 장면이 <대부> 전체를 관통하는 주제를 직설적으로 보여주기 때문이다. 마이클 콜레오네가 마피아 세계에 가담하게 된 동기는 아버지와 큰형의 사망으로 위태로워진 가족을 지키기 위해서였다. 그의 행위 목적에는 언제나 가족이 있었다. 그 목적은 정당하고 선한 것이었지만, 그 선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마이클이 택한 수단은 살인과 폭력이었다. 그러한 선택의 결과는 마이클의 영혼의 타락이다. 왜냐하면 마이클이 서로 모순된 두 세계에 몸 담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나는 그와 혈연으로 맺어진 가족의 세계이고, 다른 하나는 마피아 패밀리의 세계이다. 두 세계에 사는 마이클은 또한 두 개의 정체성을 가진다. 한 가정의 아버지라는 정체성과 마피아 조직의 두목이라는 정체성. 마이클의 행위 목적은 전자의 세계와 정체성이나 그 수단은 후자의 세계와 정체성이다. 그렇지만 가족의 세계와 폭력으로 돌아가는 마피아 패밀리의 세계는 양립할 수 없다. 마이클의 목적과 수단은 애초부터 조화를 이룰 수 없었던 것이다. 마피아 세계를 지배하는 것은 '피는 피를 부른다'라는 인과응보적 폭력의 원리이다. 누군가를 죽이면, 더 큰 복수를 불러오고, 그 복수는 또 다른 복수를 낳는다. 이러한 폭력과 복수의 연쇄에 빠져들면 거기로부터 벗어나는 것은 불가능하다. 때문에 그가 이 세계에 더 깊이 연루될수록 사실 가족을 더 위험에 빠뜨리게 된다. 따라서 그의 목적과 수단은 처음부터 내재적으로 붕괴할 수밖에 없었다. 이러한 목적과 수단의 이율배반으로 인하여, 가족을 지키기 위해 폭력을 사용한 대가로 마이클의 내면은 파탄나고 역설적으로 그 때문에 가족으로부터 점점 멀어지게 된다. 마이클을 '돈 콜레오네'라 부르며 그의 손에 입을 맞추는 부하들과 이 광경을 불안하게 쳐다보는 케이 애덤스의 흔들리는 눈빛이 두 세계의 금방이라도 무너질듯한 위태로운 긴장을 드러낸다.

그 파탄과 모순은 <대부> 제2편에서 절정에 이른다. 2편에서도 마이클을 움직이는 원리는 하나다. 가족 혹은 패밀리를 배신하고 위협하는 존재를 가만두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자신의 가족에게 총을 겨눈 하이먼 로스를 잔혹하게 살해하고, 오해가 있어 패밀리를 배신했던 프랭크 펜탄젤리에게 스스로 목숨을 끊으라 명령하였으며, 더 나아가서는 자신의 형인 프레도마저 사살한다. 가족을 지키기 위해서 가족을 죽인 것이다. 심지어 프레도는 굳이 죽이지 않았어도 되었다. 어머니는 형제간의 갈등을 싫어하였고, 코니도 프레도를 용서해달라고 빌었다. 마이클은 프레도를 용서할 수도 있었다. 그럼에도 어머니의 장례식 이후에 프레도를 죽인 것이다. 이 지점에서 그 모든 행위를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정당화하는 마이클의 논리는 도저히 해결될 수 없을 정도로 모순된다. 심지어는 마이클 자신도 이 때문에 고민한다. 2편 후반부에 마이클이 어머니에게 자신의 고민을 토로하는 장면은, 1~2편을 통틀어 유일하게 그가 자신의 내면을 고백하는 중요한 장면이다. 그는 가족을 지키기 위해 강해지다가 가족을 잃어버리지는 않는지를 묻는다. 어머니는 가족은 잃을 수 없다 하지만, 실제 벌어진 사태는 달랐다. 케이 애덤스는 변해버린 마이클에 실망하고 질려버려 그를 떠나버렸다. 마이클이 친형처럼 여기던 집안의 고문 톰 헤이건도 강압적인 그의 일처리 방식에 불만을 품는다. 하나 남은 친형 프레도는 마이클이 죽였다(정확히는 암살 지시를 내린다). 그의 곁에는 아무도 남지 않았다.

이 모순된 남자의 삶의 끝에는 무엇이 있었을까? 바로 그에게 가장 소중한 존재, 가족의 상실이다. 이것이 제3편의 주제이자 플롯이다. 3편은 마이클의 속죄와 인과응보의 이야기다. 그는 불법적인 사업을 대부분 정리하여 합법적인 사업으로 전환하였고, 그의 사업은 승승장구하지만 그의 내면은 공허하다. 마이클 콜레오네는 육체적으로나 심적으로나 늙고 지치었다. 친형을 죽였다는 죄책감은 그를 고통스럽게 하였고, 평생을 냉혈한으로 살았던 탓에 모든 가족에게 외면받는 존재가 되어버렸다. 마이클은 자신의 삶에 회의를 느낀다. 이제 그에게 유일한 삶의 희망은 딸 메리 콜레오네뿐이다. 메리 콜레오네는 아버지가 그토록 위험한 세계의 인물임을 알지 못한다. 마이클이 딸에게만큼은 자신의 과거를 숨긴 것이다. 메리는 비토 콜레오네 재단의 이사장으로 일하면서 아버지의 사업을 도와주는데, 그에게 마이클은 사랑하는 아버지이다. 마이클에게 딸은 자신이 몸 담고 있던 세계를 영원히 모르고 또 이쪽 세계에 들어오지 않았으면 하는 존재이다. 그렇기에 그는 메리가 패밀리의 일원인 빈센트와의 관계를 발전시키는 것을 막을 수밖에 없었다. 메리는 순수하며, 더럽고 음험한 마피아 세계에 물들지 않은 가족의 세계에 속한 인물이다. 따라서 마이클에게 메리는 자신이 그토록 지키고자 한 '가족'이라는 목표의 최후의 보루였던 셈이다.

하지만 마이클이 완전히 마피아 세계에서 벗어나지 않는 한, 이 목표와 안정은 지킬 수 없다. 그리고 이미 폭력의 세계에 너무 깊이 연루된 마이클로서는 애시당초 그 목표를 달성하는 것은 불가능했을지도 모른다. 아들 앤소니의 오페라 데뷔 공연을 계기로 케이와 관계를 개선하고, 빈센트에게 '돈 콜레오네'직을 물려주면서 마피아 세계에서 은퇴한다. 그렇다고 이 남자의 불행이 끝난 것은 아니었다. 아들의 오페라 공연날, 마이클을 죽이려 하는 암살자가 그를 향해 총격을 가한다. 마이클은 부상을 입는 정도로 끝났지만, 그의 딸 메리가 암살자의 총에 맞고 사망하고 만다. 왜 마이클이 아닌 그녀가 죽었을까? 이것은 앞서 말한 폭력이 지배하는 세계의 인과응보의 원리 때문이다. 모든 선택에는 대가가 따르고, 살인의 대가는 또 다른 사람의 목숨이다. 마이클이 그동안 저질렀던 끔찍한 죄들은 그가 마피아를 그만두었더라도 남아 그에게 죄값을 물었다. 그리고 그 대가는 자신이 가장 지키고 싶어했던 가족의 목숨이었다. 이것이 잔혹한 마피아 세계의 보스이자 한 가족의 아버지라는 모순된 정체성을 유지하며 살았던 이 남자의 불행의 결말이다. 마이클은 피범벅이 되어 쓰러진 메리를 품에 안으며 서글프게 울부짖는다. 어떻게든 지키려 했던 세계가 무너져내려 절규하는 마이클의 모습은 시체가 되어버린 딸 코델리어를 안은 리어왕의 마지막 대사를 떠올리게 한다. "개도, 말도, 쥐새끼도 목숨이 있는데, 그런데 너는 숨이 전혀 없다? 넌 더 이상 오지 않겠지, 결코, 결코, 결코, 결코, 결코."

아리스토텔레스는 <시학>에서 비극적 주인공이란 "덕과 정의에 있어서 월등하지는 않으나 악과 죄업에 의해서가 아니라 어떤 결점에 의해서 불행에 빠지게 된 인물"이라고 정의한다. 비극의 주인공은 덕망이 높은 인물이어서는 안 되고 반대로 <추격자>의 지영민(하정우)처럼 극악무도한 인물이어서도 안 된다. 이 양극단 사이에 위치한 인물이 비극의 주인공에 어울리는데, 이 정의에 따르면 마이클 콜레오네를 비극적 주인공으로 규정할 수 있다. 그는 월등한 덕성과 정의감을 가지고 있지는 않았으며, 가족을 잃고 홀로 사망한다는 불행한 최후를 맞이한다. 그러나 이 경우 불행한 결말을 초래한 원인은 그의 범죄행각보다는 앞서 말한 목적과 수단 사이의 이율배반 때문이다. 즉, 마이클에게 있어 불행은 폭력을 휘둘렀다는 사실 자체가 아니고 폭력이 지배하는 마피아 세계와 평화로운 가정의 세계 사이에서 균형을 찾아 성취하려 했다는 데에 있다. 물론 그는 패밀리의 사업을 합법적인 사업으로 바꾸어 폭력의 세계에서 벗어나고자 하나, 그 과정에서 불가항력적으로 폭력을 쓸 수밖에 없는 상황이 발생한다. 가족의 위험 앞에 그는 어쩔 수 없이 계속 폭력의 세계를 지배하는 대부가 된다. 하지만 앞서 서술했듯이, 두 세계 사이의 균형과 안정은 성취될 수 없다. 그렇기에 마이클은 가족을 위해 행동하지만, 그 대가로 가족으로부터 멀어질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돈 콜레오네'를 내려놓으면서 그는 빈센트에게 이렇게 말한다. "한번 빠지면 돌이킬 수 없다. 평생 이 바닥을 벗어나고자 노력했어. 가족도 자유롭게 해주고 싶었고." 이것이 마이클이 추구한 목표였다. 하지만 그 목표는 폭력의 세계에 들어간 이상 도저히 달성될 수 없었고, 결국 그를 파멸로 이끌었다. 이렇게 본다면 그는 자신이 만든 출구 없는 미궁에 스스로 갇히어, 안정을 되찾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나, 그렇게 발버둥칠수록 더욱 깊이 미궁 속으로 빨려들어가게 된 비극적 인물이다.

이러한 마이클 콜레오네의 파멸의 이야기를 표현한 <대부>는 현대의 비극이다. <대부> 이후 작품의 주제나 캐릭터, 연출을 오마주한 영화들이 많았지만(<신세계> 등), 느와르 장르의 쾌감을 치밀한 연출과 형식으로 선사하면서도 인물의 내면과 주제를 이토록 웅장하고 장엄하게 표현하여 하나의 비극으로 승화한 작품은 <대부>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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