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얀 성
오르한 파묵 지음, 이난아 옮김 / 문학동네 / 200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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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스토예프스키의 <<분신>>은 뭉크의 <절규>와 어울릴 법한 소설이었다. 도스토예프스키는 불안과 분열을 형상화했다. 오르한 파묵은 <<하얀성>>에서 사랑을 이야기한다. 둘 다 도플갱어를 모티프로 했지만, 스펙트럼의 양 극단이랄 수 있는 이 차이가 파묵만의 차별성이라는 생각을 했다. <<분신>>은 사회 안에서 존재하는 ‘개인’을 말하고 있지만, <<하얀성>>은 개인뿐 아니라 거대한 ‘문화권’ 간의 경쟁과 혼합을 이야기 한다는 점도 다르다.

<<하얀성>>은 파묵의 다른 소설, <<검은 책>>과 <<내 이름은 빨강>>과도 또 느낌이 다르다. 훨씬 지적이다. 작품을 읽어나가다 보면 좌뇌가 우뇌 보다 훨씬 많이 자극 받고 있음을 느낄 수 있다. <<검은 책>>을 읽었을 때는 내내 이스탄불의 골목골목을 헤매는 기분이었다. 다리가 피곤할 만큼 많이 걸은 느낌. <<내 이름은 빨강>>에서는 비스듬히 누워 다른 이의 이야기를 조금은 느긋한 기분으로 듣는 느낌이었다면, <<하얀 성>>은 도서관에서 맑은 정신으로 역사나 천문학 같은 그런 종류의 책을 읽는 기분이었다. 세가지 색깔 소설은 그 색깔의 다른 만큼 스타일도 달랐다. 눈에 띌 정도로.

일본에서 큰 지진이 일어났다. 생각해 보면 한국과 일본도 마치 이 소설에서 베네치아와 이스탄불마냥. 도플갱어를 이루고 있는 관계 같다. 인간애와 이웃에 대한 관심이 필요한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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렉싱턴의 유령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임홍빈 옮김 / 문학사상사 / 200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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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 <침묵>에서 ‘깊이’와 ‘얼굴’을 말하는 마지막 부분을 출근하는 지하철 안에서 읽어 내려갔다. 지하철 특유의 기계음과 서 있는 자리에서도 몸을 이리저리 움직이는 부산스런 주변 사람들이 점차 희미해져 갔다. ‘깊이를 이해 못하는 사람’과 ‘얼굴을 갖지 않은 사람’을 이야기하는 오자와의 말에 집중하니 나는 내가 아는 사람들 하나하나가 눈 앞에서 나타났다 빠르게 사라져감을 느낄 수 있었다.

그 얘기는 내가 하고 싶은 얘기 같았다. 내가 아주 우연한 기회에 누군가에게 쏟아내고 싶어했던 언어다. 그것은 내 얘기였고 내가 세상에 대해 품고 있는 근본적인 적의를 나타내는 말이었다. 그토록 무서운 파괴력을 속으로 단단히 품고 있는 그 낱말들을 아침 4호선 한강 위 출근길에서 맞이한 나는 이 하루를 또 어떻게 견뎌야 할지 잠깐 동안 아득했다.

견딘다.  


이토록 무겁게 느껴지는 한 마디.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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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 버리기 연습 생각 버리기 연습 1
코이케 류노스케 지음, 유윤한 옮김 / 21세기북스 / 201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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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음으로써 뭔가를 남기는 독서가 있고, 읽는 道中 그 자체 즉, ‘읽기’라는 행위 자체가 중요한 독서가 있다. 법정 스님, 에크하르트 톨레, 오쇼 라즈니쉬, 소로우 등이 쓴 글들은 후자에 속하는 글이 아닐까.

뭔가 취득하는 게 아니라 그저 읽기 자체가 산속 맑은 공기를 호흡하는 것 같은 글들. 생각 버리기 연습도 그런 종류의 글이다. 혼잡스러운 문장이 없다. 간명하다. 읽을수록 뭔가 뚜렷하게 보이고 그 단순한 문장의 호흡을 따라가다 보면 내 숨도 보다 깊어지고 맑아지는 기분.
소로우 같은 문학적인 면은 없지만, 깔끔한 문장은 오히려 현대인들에게 어필한다.

감각에 능동적으로 대처하면, 마음이 충족된다. 는 꼭지의 글이 마음에 들었다. 보인다가 아니라 본다. 들린다가 아니라 듣는다. 등등.. 적극적으로 인식하려는 자세를 강조한다. 오감에 집중하라는 것은 다이앤 애커먼의 <<감각의 박물학>>에서도 얻게 된 배움이었는데 쉽게 체득이 힘들다. 난 더욱 현재에 집중하고 즐기며 살고 싶다. 좋은 지침이 되는 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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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스테르담
이언 매큐언 지음, 박경희 옮김 / Media2.0(미디어 2.0) / 200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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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고 난 이후 감탄을 몇 번이나 하게 된다. 우연의 충돌로 인해 빚어진 필연의 결과가 주는 놀라움과 소설 전체 플롯의 기가 막힌 대칭성. 이 소설은 대위법으로 작곡된 단단하게 빛나는 한 편의 푸가와 다름 아니다.

작곡가 클라이브와 신문사 편집국장 버넌, 몰리라는 매력적인 여성의 옛 애인이기도 한 이들. 그들은 자기 일에 어마어마하게 몰두해 있지만 그 일의 중심부엔 핵심, 심장, 의미가 없다. 클라이브가 레이크 디스트릭트에 등산을 가서 겪은 일은 그의 최후 교향곡이 베토벤의 카피에 불과하다는 사실 때문에 더욱 안쓰럽고, 영국 정치의 방향성에 대해 대단히 걱정하는 양 신문사 일을 하는 버넌도 결국 황색 저널리즘에 매몰된 가엾은 인간에 불과하다.

1.
제목이 암스테르담인데, 실제 이 소설의 대부분의 배경은 런던이다. 클라이브와 버넌은 런더너인 셈. <암스테르담>이라는 제목이 이 소설에서 갖는 의미는 <울프 홀>이라는 제목이 그 소설에서 갖는 의미와 가까워 보였다. 모두 퇴락의 길. 다만 울프 홀은 최고점, 그래서 이제 내려갈 일 뿐인.. 암스테르담은 최저점이자 퇴락의 종료점, 죽음.


2.
가머니(몰리의 애인 넷 중 또 하나)의 와이프 로즈가 뱀 같은 기자들을 피해 달리는 장면과 버넌이 회의실로 달려가 정신 없이 일을 하는 장면이 교차하는 장면에서, “It must have been love”가 카페 모서리 스피커에서 울려 퍼졌다. 음악과 어찌나 잘 매칭되던지, 내가 이 소설로 영화를 만든다면 반드시 이 장면에선 이 곡을 삽입 하리라.


3.
막판 암스테르담 장면에서 나는 일단 읽기를 멈췄다. 하루를 보낸 후 나머지를 마저 읽어 내려갔다. 이 소설의 후반부에서 느끼는 서스펜스는 스티븐 킹이나 존 그리샴, 스티그 라르손에 비해 손색이 없다. 그렇기에 일시 정지할 필요가 있었다. 심호흡을 하고, 다시 플레이버튼을 누른 후 우리 모습과 결코 다르지 않을 그들. ‘저마다의 과오를 향해’ 가는 그 친구들의 폭주를 천천히 단 한 순간도 놓치지 않고 바라봐야만 했다. 이 시대의 일중독자들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였다. 그러고 싶은 마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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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승에서 살아남기
아르토 파실린나 지음, 이수연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1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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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의 종아리를 훔쳐보다 자동차에 치여 죽은 사내여서 그런지 어투가 큰 고민 없이 살아온 사람의 그것이어서 맘에 들었다. 근본이 건강하다고 할까.. 초반 그 목소리를 즐기며 이야기를 따라 갔는데, 중반 이후부터 몰입도가 상당히 떨어져갔다.

저승에서 만난 다양한 사람들을 통해 이쪽 세계의 사회, 문화, 사람들을 비판적으로 보여주는 풍경 그 자체가 너무 평면적이어서 나팔을 벽에 대고 그저 낑낑대며 부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줄리언 반스의 10 1/2장으로 쓴 세계역사의 마지막 챕터도 사후세계를 다루고 있는데, 둘 다 천당과 지옥이 따로 없다는 설정을 하고 있다는 점은 흥미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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